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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

LNCK 2010. 5. 22. 04:24

◈삶의 지혜                       모두 스크랩



◑사슴에게 늑대도 필요한 면이 있다.


사슴이 사는 곳과 늑대가 사는 곳 사이에, 철조망을 쳤습니다.

늑대로부터 사슴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철조망을 친 이후로, 오히려 사슴이 더 많이 죽어 갑니다.

왜냐하면 철조망이 없을 때는, 늑대가 쫓아오니까,

사슴이 도망 다니느라 점점 강하게 됩니다. 그리고 약한 사슴은 잡아먹힙니다.

결국 강한 사슴만이 살아남게 되어, 자꾸자꾸 강한 새끼를 번식시킵니다.


그런데 철조망이 쳐져, 늑대의 위험이 없으니까

잡혀 먹힐 걱정이 없어져, 사슴은 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이 찝니다. 약하고 늙은 사슴도 죽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성보다 열성의 사슴이 자꾸만 늘어나고, 결국 자멸케 되는 것입니다.


짧은 눈으로 보면 늑대는 사슴의 적이지만

숲 전체가 함께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거꾸로 사슴에게 있어서, 늑대의 역할도 있는 셈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철조망을 쳐서 보호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철조망 없이 더 강하게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운명을 바꾼 미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여주인공 역을 맡은 비비안 리의 탁월한 연기와 강렬한 눈빛입니다.


비비안 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여배우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영화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자신의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오디션이 끝난 뒤 감독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우리가 찾는 여주인공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군요.”


기대가 큰 만큼 당연히 실망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비안 리는 잠시 생각하고 나서 당당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잘해 보고 싶었는데, 아쉽군요. 그러나 실망하진 않겠어요.”


비비안 리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활짝 웃으며 인사한 뒤

경쾌하게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비비안 리가 문을 막 열고 나가려는 순간 감독이 다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잠깐! 잠깐만요! 미소, 당신이 조금 전에 지은 바로 그 미소와 표정을

다시 한 번 지어 보세요.”


그렇게 해서 비비안 리는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오디션에 떨어져 실망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시무룩해지기는커녕 활짝 웃으며 등을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감독은 ‘스칼렛 오하라’를 본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서도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거야!”라며

당당하게 일어서던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과

오디션에 떨어지고도 활짝 웃는 비비안 리의 모습이 닮은꼴이었던 것입니다.

                                                        <이요셉, ‘개인도 기업도 이젠 웃어야 성공한다’ 중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비방 


인도의 어느 현자에 관한 이야기다.

그 현자에게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어느 곳에서든 그 현자를 보기만 하면

온갖 트집을 잡으며 욕설을 퍼부어댔다.


누가 들어도 억지가 틀림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현자가 그의 욕설을 잠자코 듣고만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날도 길에서 우연히 현자를 본 사내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그러고는 “당신이 얘기하는 모든 것은 다 썩어 빠진 이론이야!

그러니 이 동네에서 얼씬거리지 말고 썩 꺼져 버려.

당신을 보기만 해도 난 밥맛이 떨어지니까!”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현자는 별 대꾸 없이 잠자코 있다가 돌연히 그에게 물었다.

“이것 보게, 만약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어떤 물건을 주려고 하는데,

상대방이 받지 않는다면, 그 물건은 누구의 것인가?”


예상치 못한 현자의 질문에, 당황한 사내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야 뭐, 당연히 물건을 주려고 한 사람의 것이지.”


사내의 대답을 들은 현자는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받지 않는 물건은 원래 주려고 했던 사람의 것이지...”

(이것이 바로 그 현자가 ‘비방’에 대처하는 법이었다.)



◑알프스의 돌맹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알프스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맑은 시냇물에서 하루를 보내던 그 소년은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 속에서 예쁜 돌멩이를 줍고 있던 그 소년은

"여기 물 속에 있던 돌멩이의 속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속이 말라 있을까? 아니면 젖어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소년은 궁금증을 확인하기로 하고서는,

물속에 있는 돌멩이 중 주먹 만한 돌멩이를 건져내었습니다.

그리고는 큰 돌에 던져 반을 쪼개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돌멩이는 어땠을까요?

그 돌멩이는 완전히 말라있었던 겁니다.

근데, 이 돌맹이가 물속에 있었던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요?

10년, 20년 아니면 100년... 아니 그보다도 훨씬 더 오래 있었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돌멩이는 오랫동안 물속에 있었지만

그 물을 한 방울도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좋은 사랑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돌처럼 딱딱하면

그 사랑을 한 방울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겠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푹 잠겨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돌처럼 굳어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분명 우리를 감싸고 있는데

우리는 그걸 종종 깨닫지 못할 때가 더러 많습니다.



◑의미 있는 여행을 하려면


‘초보’ 때의 일입니다. 갑자기 말로만 듣던 ‘성지순례’를 가게 되었습니다.

철없던 시절이라서 그랬던지 엄청 신났습니다.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곳을 수도 없이 다녔습니다.

‘죽기 전에 한번은 가봐야 할 텐데’ 생각했던 성지도 들렀습니다.

천사와도 같은 순례자들과 함께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긴 여정이었기에 출발하기 전에 나름대로 계획도 세웠습니다.

어디 도착하면,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누구에게 전화해서 만나야지,

어디 가면 달팽이 요리가 맛있다던데 꼭 맛봐야지,

백과사전을 펼쳐놓고 경유지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수집했습니다.


그런 나름대로의 준비가 있어서 그랬던지, 성지순례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날마다 흥미진진했습니다. 낯선 세계와 문화에 대한

개인적인 상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뭔가 ‘이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뭔가 결여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회상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향기를 맡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자취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결국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지순례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할 기도는 뒷전이고,

어떻게 즐길까, 무엇을 먹을까, 어떻게 돌아다닐까만 생각했던 제 모습이 떠올라

엄청 창피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어찌 보면 일종의 순례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나아가는 여행입니다.

천국을 향해가는 여행길인 우리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한

다양한 계획들 모두 소중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계획인 ‘기도’에 있어서 소홀하지는 않은지요?

그래야 그 ‘여행’(순례)가 더 의미 있고 풍성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기억나지 않아도, 밥의 역할은 분명히 있다.


이탈리아 어느 일간지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되었습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성당에 다니면서 약 3천 번 가량 강론을 들었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소!

그러니 그동안 시간 낭비만 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소!

그런 면에서 사제들 역시 헛수고만 한 셈이오."

 

편지를 받아든 편집국장은 다음 날 '독자 투고'란에 실었고

예상대로 그 내용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여러 주에 걸친 논쟁 끝에, 마침내 쐐기를 박는 글이 들어왔습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왔고

그 동안 아내는 3200번 가량 식탁을 차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수한 식단 가운데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은 잘 알고 있다.

그 모든 음식이 영양분이 되어 내게 필요한 힘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만일 아내가 식사를 차려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죽고 없었을 것이다."

 

이후 강론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빗자루의 사명

 

"성직자는 빗자루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빗자루가 자신에게 주어진 몫(마당 쓰는 일)을 다한 후에

<내가 이만큼 열심히 일했는데!> 하면서

안방 한 가운데를 차지한 것을 보셨습니까?


빗자루는 빗자루일 뿐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다 했으면

다시 자신이 있을 자리인 구석에 가서 서있지 않겠습니까?

목사님, 부디 구석진 자리에 서있는 한 자루 빗자루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