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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바라보신다 2549

LNCK 2010. 7. 13. 21:28

◈주님이 바라보신다                  눅5:1~11                     08.09.23.설교녹취



◑주님의 시선이 보시는 것이 중요하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눅5:1~2


▶주님이 언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가? - 주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이다.

무리가 에워싸며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모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정박해 있는 두 배를 보셨다.

그날, 예수님의 시선은, 무리에게 머물지 않고, (무리에게 머물러야 정상인데)

고기잡이 빈 배에 머무셨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주위에 운집해 있었지만,

   주께서는 뽕나무 위에 숨어 있는 삭게오를 보셨다. 거기에 시선이 머무셨다.

   주님은 사람의 중심을, 간절한 열망을 정확히 보고 계신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눅5:1

이 날 하나님 말씀을 들으러 왔던 수많은 사람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시지 않았다.

본문이 ‘무리’라고 표현 할만큼, 그들은 그저 ‘군중, 구경꾼’에 불과했다.


그래서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라고만 적고 있고,

그들에게 무슨 말씀을 가르치셨는지..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본문에 구체적으로 기록된 것은,

그 무리들 옆에 있는 빈 배와, 그물을 씻고 있던 어부들을

주님은 보시고 계셨다.


   사람들은 아무도 뽕나무 위의 삭게오를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아마 무리들도, 아무도 그 평범한 어부들을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다만 주님만, 그 시선이, 그들의 빈 배와, 그 어부들에게 머무셨다.


   (※본문에 ‘어부들을 보셨다’는 말은 없지만,

   ‘배를 보셨다’는 말은, 그 곁의 ‘어부들도 보셨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동차를 볼 때, 그 곁에 서 있는 주인을 보는 것, 또는

   우리가 산책하는 개를 볼 때, 그 곁에 있는 주인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약 오늘, 주님이 나를 주목하고 계신다면..

숨이 막히는 일이다. (좋다는 뜻)

주님이 나를 주목해 보시도록.. 우리가 사모해야 한다.

주님이 바라보시는 곳에..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주님이 보시는 곳에, 응답의 역사가 준비되어 있다.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내려치려고 했을 때,

주님은 급히 “아브라함아 네 뒤에 있는 수풀 속에 양이 있다.” 고 외치셨다.


아브라함의 시야에는 답이 없었지만,

주님의 시야에는, 벌써 답을 다 보고 계셨다. 수풀 속의 양을 다 보시고 계셨다.


여러분, 우리들의 모든 문제 가운데..

답은, 우리 시야에는 없지만,

주님의 시야에는 있다.


‘여호와이레’ - 이 말을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보셨다’는 말이다.

우리말 성경에 ‘여호와가 준비하셨다.’ - 이것은 의역이다.

그 목적어는 아브라함이다.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을 보고 계셨다는 말이다.

즉, 여호와께서 보시는 곳에는.. 응답이 다 준비되어 있다.


   아브라함처럼,

   여호와께서 나를 보고 계시고, 우리 가정을 보고 계실 때,

   즉 ‘여호와이레’가 될 때,

   하나님은 ‘응답의 길/문제 해결의 길’을 다 보고 계시고, 나에게 알려주신다.

   나는 못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그 ‘양’까지 다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양 : 해결책


여러분, 우리가, 주님이 주목해 보시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 드린다.

그러려면 아브라함처럼, 기꺼이 주님 뜻에 순종해야 하고,

삭게오처럼, 내 속에 주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본문은, 주님이 어부들을 바라보신 또 다른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들이 밤새 수고했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하고, 낙심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낙심하고 허탈한 사람들을 바라보신다.


주님은 시몬(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가 앉으셨다. 눅5:3

그들은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

주님은, 그 배 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주님의 시선은 ‘무리’가 아니라,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람을 지금 주목하고 계신다.


▶주님은 허탈한 사람을 바라보신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새로운 시작’은,           *다른 말로 ‘주님을 깊이 만남’은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뭔가 성취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내 육신적 지혜와 노력으로 뭔가 이뤄내는 그런 곳이 아니다.


우리 인생 속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내가 수없이 노력을  해 봤지만, 도저히 될 수 없는 지점,

거기에서 주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어쩌면 우리 인간적 힘이 다 빠지도록.. 주님은 기다리고 계신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도저히 해도 해도 안 되는, 그 절망의 장소에서

주님은 그들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새 인생을 주셨다.


▶허탈한 가운데 주님을 만난 야곱

야곱도 20년을 외국에서 힘써 노력하며 살았다.

그런데 막상 에서의 위협 앞에 닥치자, 자기가 쌓은 모든 것이 물거품에 불과했다.

그의 모든 가족과 그 동안 모았던 재산들,

모두 먼저 강을 건너서 보냈다. 그리고 자기 혼자만 얍복 강가에 남았다.


이제 에서가 한 번만 치면, 그동안 쌓은 자기 인생/가족/재산은.. 물거품이 된다.

결국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얍복강에서 밤에 홀로 남은 야곱,

자기가 평생 모았던 모든 것들이 결국 한 순간에 사라져버릴 위험 앞에 처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주님은 거기서 야곱을 기다리고 계셨다.


▶허탈한 가운데 주님을 만난 베드로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자기의 노력과 판단으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 허탈하고 허무한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배를 좀 빌려 주겠니?’

성경에는 ‘네 배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5:3

그 말이 그 말이다.


   만약 이날, 베드로가 밤새 물고기를 많이 잡았더라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예수님 말씀도 귀에 안 들어왔을 것이고, (지금 어서 물고기 팔아야지)

   예수님께 배를 빌려드릴 수도 없었다. (하역 작업 하느라고)


그는 밤새 아무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실패가운데,

주님의 시선은 그에게 머무셨고,

그에게 ‘새로운 인생’을 주셨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5:11


▶인생의 아이러니.. ‘잘 되면 오히려 주님을 버린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내가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주님의 일을 하겠다’고 한다.

그렇게 서원기도까지 한다.


그런데 두고 보면, 조금만 안정이 되어도.. 아무 것도 안 한다.

조금 더 안정되면.. 신앙을 떠나는 것도 본다. 서원도 물론 안 지킨다.

잘 될수록 주님과 멀어지는 것이.. 신앙의 아이러니다.


   그런데 주님은, 나에게, 내힘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없는 큰 어려움을 주신다.

   그제야 나는, 내가 노 젓는 것을 놓고, 배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게 된다.

   내가 해도 도저히 아무 소용없는, 그 상황이 될 때만, 온전히 주님만 붙들게 된다.


지금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다.

‘네가 잡은 물고기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빈 배가 내게는 유익하다.

네 일생에 아무 수입이 없는 너는, 네 인생이 실패라고 생각하지만,

네 실패가 지금 내게는 유익하다.

너를 부르기 위해서는, 네가 하는 일의 실패가 필요하다.’ (성공하면 안 따라나서니까)


여러분, 내 인생이, 내게는 실패이지만, 주님께는 실패가 아니다.

주님께는 그것이 더 유익할 수 있다.

나의 관점에서 주님의 관점으로 옮겨가는 믿음의 시각을 갖자.


주님은 지금 실패한 사람가운데, 위대한 사도를 발견하고 계신다.

놀랍게도 그는 지금 사업의 실패자로 바닷가에 맥없이 서 있었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찾아가신다. 주님의 시선이 머물고 계셨다.


여러분 하나님의 보시는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베드로는 자기 빈배를 주님께 내어드렸다.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주님은 그 배에 앉으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그 수많은 무리들을 가르친 말씀들을 성경은 본문에서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

누가가 기록하기 원한 것은, 수많은 무리에게 가르친 말씀이 아니라,

한 실패자, 그러나 자기를 내어드리는 사람, 그에게 대화하신 말씀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 누가의 참 신기한 ‘대조법’이다. 정작 설교하신 내용은 하나도 안 적어 놓고..,


▶우리의 빈 배를 내어드리자.

여러분, 우리가 베드로 같은 사람이 되기 바란다.

사람들은 ‘빈 배’라서, 실패했다고, 부끄럽다고, 내어드리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조금 성공하면 섬기겠다’고 하지만.., 성공하면 마음 달라진다.


그러나 아무 가진 것도 없는, 빈 배/빈 손/빈 그물뿐이지만,

주님이 여러분이 가진 ‘빈 배’를 조금 띄기를 청하실 때에

주님께 우리가 가진 ‘빈 배’를 내어드리게 되기를 축원 드린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그 배가 가득 차 있었으면, 주님께 쓰임 못 받았다.

‘빈 배’라서 오히려 주님의 설교단으로 쓰임 받을 수 있었다.

내 자격지심(부끄러움) 같은 것은 다 버려야 한다.

주님은 오히려 ‘빈 배, 빈 손, 빈 그물’을 더 찾으신다.


▶절망 중에 주님을 만나서.. 베드로는 새 인생을 시작하다.

그 때 주님은 말씀하신다. ‘깊은데 그물을 던져라,’

‘네 판단과 경험을 버리라’는 뜻이다.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자기를 비울 때, 자기를 비우는 만큼,

주님의 역사가 나타난다.

주님은.. 내 판단과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없는 것을 말씀하신다.

‘깊은 데 그물을 던져라’ 5:4


주님은 먼저 자기 사역을 위해서 그렇게 배를 빌려서 사용하신 다음에,

주님은 그 빈 배를 가득 채워주신다.

먼저 주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이것이 주님이 주시는 풍어/만선의 약속이다.


   그때 베드로는 처음에 이렇게 반응한다.

   ‘선생님 제가 다 해봤습니다. 그런데 안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5:4


이제부터는 자기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방법으로 사는 인생으로 바뀐다.


베드로는 은혜 가운데, 자기의 죄인임을 깨닫는 회개에 까지 이른다.

이것은 참 놀라운 순서다.

회개하고 주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신앙생활의 최고경지인 회개에 이른 것이다.


이 지점에 이르지 않고는, 신앙생활은 영원히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다.

영원히 그렇다. 그게 광야에서 유리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님은, 우리를, 더 이상 전진할 수없는 막다른 골목에 내모신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허탈과 절망에 빠지면서.. 오히려 주님을 깊이 만나게 된다.

거기서, 베드로처럼, ‘새 인생’이 시작되고, 회개의 은총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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