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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정상과 밑바닥의 모순과 딜레마 2511

LNCK 2010. 6. 21. 11:38

인생의 정상과 밑바닥의 모순과 딜레마             요4:13~14            08.09.17.설교녹취



▲정상에 서고 나면, 너무 허무하다.

어느 영화배우의 고백에 의하면, 정상에 섰을 때 그 느낌은

잠시는 좋지만.. 그 이후로는 ‘계속 너무 허무하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기까지는.. 인생의 목표가 있으니까.. 허무한 줄 모른다.

그래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오직 정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런데 막상, 이제 더 오를 계단이 없는 정상에 오르면,

너무 허무한 나머지

그 인생의 허무를 잊기 위해, 쉽게 술독에 빠져드는 것이다.


   어느 여배우가 대학생 시절부터

   영화감독이 대학교 앞에서 매일 자기를 기다리며 간청했다.

   ‘제발 영화 한 편만 출연해 달라고!’


   사정에 못 이겨, 영화에 출연했고, 일약 스타가 되었다.

   매일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를 받았고, 무대의 조명과 명성 아래서 살았다.


   그런데 인생은,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반드시 있는 법!

   최고의 여배우가 되었는데, 얼마 후에 자기에게 찾아온 것은,

   순식간에 그 최고의 자리를, 후배 여배우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그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최고의 인기와 대중의 추앙을 한 몸에 맛 본 사람이,

   예전과 같은 인기를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으로 떨어질 때,

   보통 사람으로서는.. 그 상실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극소수 사람들은, 너무 큰,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잊기 위해서

   술보다 더 마취가 센 ‘약’에 기대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듯 정상에 선 사람은, 인생의 허무함을 절감하게 된다.

자기가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은, 아직 그 정상에 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그 자리에 서 보니까, ‘아무 것도 없더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최고 정상에 섰던 솔로몬

솔로몬이 그래서 ‘헛되고 헛되다’며 반복해서 외쳤다. 전도서에서.

최고의 정상에 등극한 배우들이 허무감에 빠지는 것처럼,

솔로몬 역시 자기가 해 보고 싶은 일들을 다 해 보았다.


그래서 남들이 정말 꿈꿀 수도 없는 엄청난 재물을 모아보고,

화려한 정원을 꾸미고, 수많은 애완동물을 길러보았는데,

또한 수많은 여인을 거쳐 보았는데,

결국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결론 내렸던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가져본 솔로몬이 ‘헛되다’고 했는데,

   그 어떤 영화배우가, 감히 ‘헛되지 않다’라고 말할 수 있겠나!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 서 보았던 욥

솔로몬이..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가장 정상에 우뚝 선 인물이라면,

반대로 욥은..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가장 밑바닥을 경험한 인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결과가 정반대라는 것이다.

가장 정상에 서 보았던 솔로몬의 고백은.. ‘모든 것이 헛되다’하며 한탄하는 반면에,

가장 밑바닥에 서 보았던 욥의 고백은.. ‘이제야 주님을 제 눈으로 뵈옵나이다.’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다. 욥40:5


10명이나 되던 자녀마저 한꺼번에 모두 잃어버리고,

모든 잘 나가던 사업이 하루 아침에 쫄딱 다 망하고

자기 몸은 병들어 만신창이가 되어 불쌍하게 죽어가던 욥,

아내마저도 자기에게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막말을 하며

(아마) 욥을 떠나버렸던,

완전히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욥은..


오히려 (솔로몬과 달리) 주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고/ 회개하는 기회가 되면서

다시 주님을 바라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행복을 새롭게 회복하게 된다.

그렇게 욥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는 이 세상에서 자기 모든 소유를 잃어버리고, 가족 관계가 다 파괴되었지만,

그는 주님을 만난 감격 속에서,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결론지을 수 있었다.


▲성경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2가지 인생의 길

성경은 수 천 년 동안, 이러한 <2가지 인생의 길>을 반복해서 보여주고 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어느 길에 서서 가고 있는가?


모세를 보시라.

애굽의 왕자로서 ‘나는 다 가졌다’고 생각이 들 때..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나 광야 40년의 고생을 거치며 새롭게 변화된 모세는

비록 ‘괴로운 지도자의 인생 길'을 걸었지만,

영원히 영광스러운, 후회 없는 영생의 길을 살아내었다.


모세 한 사람의 삶에서, ‘솔로몬’과 ‘욥’의 인생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삶의 참 행복은, ‘솔로몬’적인 삶에 있지 않고,

‘욥’같은.. 주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는 삶에 있더라는 것이다.  히11:25


이런 ‘인생의 아이러니’의 예를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이 영적으로 나태하고, 세상에서 불행한 사람이 신앙적으로 행복한 아이러니)

이삭과 야곱의 삶에서도 대조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삭의 삶 (솔로몬에 대비.. 이렇게 한 번 봐 봅시다.)

이삭의 일생에는 별로 큰 인생 문제가 없었다.

몇 가지 문제가 있었으나,

아브라함이나 야곱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것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사업은 그해 100배나 수확을 얻었다. 창26:12

자기 아내 리브가도.. 아버지의 늙은 종이 다 얻어 주었다.

아내를 얻는 과정도.. 야곱에 비하면 너무나 순적(순탄)했다.   창27:20


이삭의 문제는.. 자기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너무 형통한 것이.. 부럽기는 하지만.. 이것이 바로 '이삭의 문제'였다.


그런데 성경에 자세히 보면,

이삭이 너무 형통한 나머지..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는 주님이 주신 것을 누렸을 뿐이지

주님이 어떤 분인지.. 체험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뼈까지 상하는 듯한 고난이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야곱의 삶 (욥에 대비)

반면에 그의 아들 야곱은

아버지처럼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오히려 일평생 험악한 삶을 살았다.


그는 축복을 받았는데, 그 축복을 받자마자, 오히려 집을 떠나 타국으로 도망가야 했다.

사업을 했는데, 외삼촌으로부터 사업적으로 10번이나 속임을 당한다.

결혼을 했는데, 사랑하는 여자(라헬)마저 바뀌어져 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여인 라헬과 결혼을 하지만,

자기가 제일 사랑했던 아내가, 4명의 아내 중에서 가장 먼저 죽어버린다.


자기가 사랑했던 여인의 아들, 그래서 가장 사랑하던 아들 요셉은.. 일찍 행방불명된다.

그 외에도 여러 환란들을 많이 겪었다.

하란에서 20년 동안,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고 했다. 창31:40


그가 살던 땅은, 노년기에 가뭄이 나서, 더 이상 농사가 되지 않았다.

그는 늙은 나이에도, 온 가족을 이끌고, 기근을 피해서 애굽으로 피난 이민을 가야 했다.

자기의 고백대로, 일생을 정말 험악하게 보냈다.


   야곱은, 마치 욥처럼 모든 것을 잃고서, 일생을 어렵고 고생하면서 살았다.

   반면에 그의 아버지 이삭은, 마치 솔로몬처럼, 일생을 평탄하게 살았는데..


   그런데 야곱은 그 고통 속에서, 욥처럼, 주님께 나아간다.

   ‘주님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시면, 나는 당신을 놔주지 않겠습니다.’ 창32:26


   그 때 야곱이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졌다.

   그 때로부터 일평생 그는, 다리를 저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게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축복이었다.


다리 부러진 것 - 그래서 그 후로 그는, 제 맘대로 이리 저리 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도, 네가 말년에 네 맘대로 못 다닐 것이라고 하셨다.  요21:18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로마 감옥에 갇혀서,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축복은 - 고통을 통해서 찾아왔다...


▲이삭은 새 이름을 얻지 못했지만, 야곱은 새 이름을 얻었다.

놀랍게도 야곱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아버지 이삭이 가지지 못했던 단 한 가지를 얻었다.

그것은 ‘새 이름, 이스라엘’ 이었다.


야곱은 인생의 고통 속에서

진정한 회개와

변화를 체험했다. 마치 욥처럼..


반면에 이삭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중에서

‘새 이름’을 얻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변화되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새 이름을 얻을 필요가 없었나? 아마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삭은 모든 것을 누렸지만,

죽을 때까지 자기 이름이 변치 않고, 그대로 이삭이었다.

그는 성공하고 평탄하게, 별 문제없이 살았지만,

이삭은 변화 받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으로부터 새 이름/새 약속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창세기 이후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 특히 야곱의 이름은 종종 후대에 의해 언급되어 나오는데,

이삭의 이름은.. 후대에 거의 언급 되지 않는다. 족보를 제외하면..


아모스서에 딱 한 군데 인용되는데,

아모스 선지자는

축복에 취해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하는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예언했다.

‘이삭의 산당들아’ 암7:9, 16


선지자 아모스에게 있어서,

이삭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끄러운 이름이었다.


축복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을 버린 자들이 우상숭배하는 것을 일컬어

아모스는 ‘이삭의 산당들아!’ 하면서 책망과 예언의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다.


▲마치는 말

위에서 솔로몬과 욥의 삶을,

그리고 이삭과 야곱의 삶을 서로 비교해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아이러니한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세상적인 축복을 받았던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결국 높이 칭송되지 못했고,

세상에서 많은 고난을 받았던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높이 칭송되었다.

(눅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도 같은 맥락일 수 있겠다.)


저와 여러분이, 욥처럼, 야곱처럼,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진정한 회개를 거치면서, 진정한 신앙의 삶이 시작될 수 있다.


주님만을 바라본다면.. 정말 야곱과 욥과 같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솔로몬이나 이삭과는 차원이 다른 인생이다.


사람은, 절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리가 평생 모아도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가져본 사람들..

그런데 그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위에서 영화배우 예를 들었음)


하나님 속에서 새롭게 얻은 영생이 복이 아닌,

세상 축복은

그것을 빼앗으려는 쇠파리들만 그의 주위에 들끓을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인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즉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 성경적인 참 성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