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시24:3~6 10.06.07.설교일부스크랩
◑하나님을 갈망하지 않고, 하나님 손에 있는 선물을 갈망했다.
▶저희는 2003년 5월, 토미 테니 목사님의 책『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를 읽고
동기부여가 되어, 바로 심각한 회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도전해 들어갔습니다.
저희들 나름대로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길 원했고 기쁘시게 해 드리길 원했지만
실상은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직도 마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선물에 마음이 끌려 있을 때가 더 많았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온전히 주님을 사랑하고 싶은 저의 간절한 소원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깊이 침투에 있는 종교의 영에 미혹되어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진정한 길을 몰라
자꾸만 바른 길에서 비켜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녀의 삶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24:3~6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내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기를 원하는가? 내가 그의 거룩한 곳에 서기를 원하는가?’
저는 정말 원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순수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싶었고, 주님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산에 올라 그 거룩한 곳에 서고 싶었지만,
그 소원이 옳은 것이며,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다는 것을
제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성령님은 그런 소원을 나에게 계속 주시는데,
내가 교회에서 받는 가르침들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아갈 그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명료하게 제시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 안에서 올라오는 그 소원을 취하지 못하고, 붙잡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의 형통과 축복을 구하는 그런 가르침들이
나를 너무나 헷갈리게 하고 갈등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라는 책을 통해서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 안에 이루시길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는 선물에 마음과 생각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시편24:3-6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여호와를 찾는 것,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목적으로 하는 삶입니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영광의 정체성은 사랑입니다.
그게 뭔지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비로소 제가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 그분의 영광을 대면하고 싶거든
그래서 여호와의 산에 올라 그 거룩한 곳에 서 있고 싶거든
하나님과 함께 나란히 그곳에 있고 싶거든,
우리의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 데 두지 말고
거짓 맹세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거룩을 추구하고, 그래서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기를 원했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목적 없이 거룩’을 추구한들, (하나님의 얼굴,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하지 않고,
그저 크리스천이니까 거룩하게 살아야지.. 한들)
진정한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삶'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거룩이 맹목적인 목적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것도 하나의 우상이고 종교입니다.
▶종교의 영이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이 목적이 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함정입니다.
거룩을 추구하는 것이 바른 신앙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직 거룩이 목적이면 잘못된 겁니다. 미혹입니다.
왜 거룩을 추구하는가요?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왜 사랑을 추구하는가요? 역시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사탄의 미묘한 속임수에 우리가 쉽게 걸려듭니다.
그래서 사랑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하나님을 놓칩니다.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의 얼굴이고, 하나님 자신인 것을 깨달아야만,
미혹과 어둠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이 바르게 해석되고, 진리가 바르게 해석되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 진짜 사활적으로 중요한 목적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나머지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부수적인 것 즉 수단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수단을 목적으로 바꿔서
우리가 수단이 되는 그 말씀을 붙잡고, 그 계명에 붙잡혀서,
진짜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저희 교회에서 만날 얘기하는 ‘종교의 영’입니다.
하나님을 종교로 바꿔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이 수단이 되어 진짜 목적이 성취되지 못하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 성취되지 않는,
그래서 종교 놀이가 되고 만 그 비극이, 지금까지 전 세계 교회 안에
모든 교계 안에 그 미혹이 교회를 덮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실상이 어떤지 이해되십니까?
하나님 자신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추구함으로써
하나님이 그곳에 임하고 그 영광을 교회에서 대면할 수 있어야 되는데,
지금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우리 교회가 깨끗해야 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고
거짓 맹세치 않는.. 교회의 그 깨끗함 안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느끼기에 우리 교회가 청결합니까? 진실합니까?
우리 교회가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구하고 있다고 느껴지십니까?
아닐 수 있습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교회가 너무나 타락해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처럼 아버지의 영광이 충만했고
다윗의 성전처럼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으로 충만해서
내가 거기서 하나님을 뵈옵는 그런 교회가 정말 찾아보기 힘듭니다.
(저희 교회가 그런 모델을, 지금 제시해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아버지의 영광을 대면하는 교회,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그 교회입니다.
교회다운 교회, 진정한 교회, 모든 교회가 이렇게 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이 일을 하시려고 교회를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를 완전히 개혁하셔서, 이제 정말 교회가 그분의 심장 안에서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되어지고
전 세계의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일으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만 회복되면 수많은 영혼들이 살 것입니다.
성령님을 저들이 환영하고, 성령님으로 자기 삶에 충만히 임하게 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내 속, 깊은 죄성을 깨닫고 회개하다
▶제 삶의 변화와 제 신앙의 개혁이 일어나는 데 엄청난 동기부여가 되었던
토미 테니 목사님의 그 책을,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읽었음을 알았습니다.
그 책을 읽고 우리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 그날부터 방성대곡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책을 읽고도 우리처럼 변화된 사람을 그리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 차이입니다.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 중, 그 책에서 말하는 것에
실제로 자기 심령이 충격을 받고, 완전히 그 방향으로 올인 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요?
제가 그 책을 읽고 나서, 우리 멤버들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철저한 회개로 들어갔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비해서 비교적 사심이 없고 순수한 우리였지만,
지금까지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서 목적을 확실히 붙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우리의 중심에 들어 있는 잘못된
모든 불의한 것들을 샅샅이 파헤치면서 회개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젠 오직 하나님이 목적이다. 은사이건, 능력이건, 거룩, 사랑,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기까지는 결코 멈추지 않는다.
그 얼굴을 대면하기까지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세상을 내려놓자.
우리 자신을 내려놓자. 우리는 그날부터 죽자.’
내가 살아 있으면, 내 소욕이 내 소원이 내 뜻이 나의 원함이 올라와,
하나님을 향해 직행하는 그 일을 방해하고 거스르게 하니까,
그냥 죽어 버리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방성대곡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데
우리 가운데 그 살아 역사하심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너무 부끄럽고 안타까웠습니다.
이 책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저희의 영을 돌파하여 들어왔고
우리로 하여금 겁 없는 도전을 주었습니다.
저희는 모든 다른 기도제목을 내려놓고
악하고 강퍅한 마음에서 돌이켜 주님께 순수한 사랑을 드리기 원하였고,
겁 없이 모세처럼 주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며, 참 회개의 눈물로 울부짖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그렇게 진실하고 참된 회개 가운데 들어가서
우리 안에 있는 순수하지 못한 것, 깨끗하지 못한 모든 잘못된 것들을 다 제거하기 원하니까
강력한 회개의 영이 부어졌습니다.
항상 자신의 갈망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는 것입니다.
내 갈망이 크고 깊은데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지 않는다.
그건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겁니다. (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해놓고, 못 만나니까)
하나님의 잣대는 정확하십니다. 갈망의 크기만큼, 그 깊이만큼
하나님은 영광으로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우리는 그전부터 남보다 더 죄에 대해서 민감했고, 탐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애쓰고,
깨끗하게 진실하고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치며,
매일 모여 자신을 살피면서 회개하기를 계속해 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20년을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고 싶어서,
(그러려면 어떤 불순물도 어떤 사심도 없어야 되고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이 내 안에 없고, 내가 내 안에 없어야 되기 때문에)
원하는 회개의 깊이에 대한 갈망이, 이전하고는 비교도 안 되는 갈망으로
온전한 회개가 이루어지기를 구하니까, 정말로 강력한 회개의 영이 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우리가 구하고 바라는 것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한 그 소원에 대해서 그대로 은혜를 베푸시는, 참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깊은 회개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실체들을 아직 모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기가 바르다는 의인 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틀렸어요. 내가 정직하지 못해요. 내가 선하지 못해요.'라는 고백 대신에
‘내가 다 옳고 내가 다 맞고 다 상대방이 잘못된 것’이라며 이 핑계 저 핑계를 댑니다.
자기의 죄성에 대해서 그 실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회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실체를 자신의 눈으로 보려는 노력을 내려놓아야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자기를 살피시도록 은혜를 구해야 됩니다.
거룩한 온전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내 안에 있는 온전치 못한 것을
헤아려 살피시고 내가 보게 해 주시도록, 깨닫게 해 주시도록, 발견하게 해 주시도록
여러분이 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안에서 비로소 자기 실체를 보게 되고 알게 되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실체를 깨닫지 못합니다.
알아야 그때부터 진짜 절실하게
'아 내가 이 죄성으로부터, 이 거짓됨으로부터, 이 악함으로부터 고침 받고 싶다.'는
진짜 갈망이 나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너희들이 자신은 부요하다고 하지만 실상은 너희들이 가난한 자다.
너희들이 가련하고 곤고하고 헐벗고 있고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라고
그들의 영적인 실체들을 말해 주듯,
'성령님이 내 실체를 알게 하시고 보게 하소서.
내가 얼마나 가련한지,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가난한 자인지'
이제 비로소 자기의 실체를 알게 되면.. 처절하게 울면서 회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 가난 가운데서 벗어나게 되기를
그 곤고함과 가련함 가운데서 벗어나게 되기를
눈먼 상태에서 눈을 뜨게 되기를, 귀머거리 상태에서 귀가 열리게 되기를
여러분이 비로소 구하실 것입니다. 말씀이 그 역할을 해 주십니다.
그러나 말씀이 성령님에 의해서 빛으로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으면, 우리가 모릅니다.
성경 박사가 되어도 자기 죄성, 자기 안에 있는 죄 하나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 하셨듯이
그 사람들은 더 교만하고 강퍅해지면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집니다.
겸손하게 성령님을 의지할 때,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로 하나님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성령님께 나를 보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사람이
진정한 회개, 참된 회개로 들어가면서 계속 변화되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깨끗하게 선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자기 안에 이루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회개의 영은 강력한 힘으로 강타하여
저희 심령 속 깊이 감추어진 죄악들을 낱낱이 구체적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에
저희의 눈에는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회개의 눈물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전부터 우리가 어느 정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회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많이 회개가 되어서 회개의 시간들,
눈물의 시간들을 그렇게 많이 보내지 않아도 될 거라는 착각이 들어 있던 바로 그 시점에,
본격적으로 회개의 영이 임하고 우리 실체를 알게 되니까
그동안은 그냥 겉만 회개하고 (내가 죄를 지었고 그것이 내 행동으로 드러났을 때,
계속 그것을 가지고 했던 회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내 속에 있는 그 죄성
(우리가 타락한 내적 부패 가운데 있었기에) 을 발견하고, 그 회개가 시작되니까,
겉으로 드러난 죄들과는 그 깊이와 크기와 부피로 따질 때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내 내면에 있는 사악함, 간사함, 거짓, 이기적인 마음, 교만함, 오만함,
자만하고 거만한 마음의 그 깊이가 -빙산의 일각으로- 드러난 것을 조금 봤는데,
부패하고 썩어 문드러진 그 죄성은 차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행동으로 죄를 짓지 않으면,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자기가 거룩하다고 거룩이 이루어졌다고 착각을 합니다.
이제 그 착각에서 빠져나오기만 하면
진정한 회개에서 진정한 거룩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더 깊은 단계의 회개로 들어가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걸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다 똑같습니다.
누구는 더 거룩하고, 누구는 더 선하고 그게 아닙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 보실 때는 다 똑같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런 내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부끄러워하면서 감추기 시작하면, 멈춥니다.
성령이 더 이상 역사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막 회개하고 우는 것을 조금은 민망해하고 쑥스러워하면서 감추려듭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아주 당당하게 감추고 있는 그 사람이 지금 문제이지
나는 지금 아주 좋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그걸 기뻐하면서 계속 더 깊게 처절하게
그 죄를 부끄러워하고 아파하고 미워하면서
그 죄성에서 떠나도록 그렇게 여러분이 하나님께 바르게 반응해서 나가면,
하나님이 그 일을 실제 우리 안에 이루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우릴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셨기 때문에 그분이 더 기뻐하십니다.
저희는 그때 그걸 -거룩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았습니다.
저희는 정말 사지가 발발 떨리는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거룩치 않은 우리 자신을 보며 너무 무서워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얼마나 두려웠는지,
덜덜 떨면서 무릎으로 기어 다니고 얼굴은 바닥에 묻어서 고개를 못 듭니다.
그래서 그때 알았습니다. 보혈의 능력, 보혈의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가.
그 보혈 때문에 우리가 죄를 뉘우치고 자백하기만 하면
그 죄가 완전히 도말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속의 은혜와 그 사랑이 어떠한지에 대해서
깊이 깨닫는 정말 놀라운 현장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셔서 계속 더 큰 영광으로 임하십니다.
바른 자세, 바른 반응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회개로 이끄시는 그 은혜를 우리가 부담스러워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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