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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 2592

LNCK 2010. 8. 10. 09:35

◈성령님과 동행하는 신앙생활                  고전12:3                 10.07.04.설교스크랩/정리

 

 

▲연인이 없어서 슬픈 사람은, 연인이 생겨도 계속 슬플 사람입니다.

지난 주간 청년 수련회를 인도하고 왔는데,

청년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것입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배우자를 택할 때,

“너 아니면 나 죽을 것 같아.”하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아직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연인이 있어야 행복하니까)

그리스도인인 청년들 중에도 많은 이들이, 연인이 없어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행복해지기 위하여 연인이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이 사람은 아직 성령을 알지 못한 채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연인이 없어서 슬픈 사람은, 연인이 생겨도 계속 슬플 사람입니다.

좋은 배우자나 연인이.. 우리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행복할 텐데.. 성공하면 행복할 텐데.. 건강하면 행복할 텐데..

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유일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사람을, 누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신령한 지식’을 많은 신자들이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자들이, 아직도 목마름을, 예수님 말고, 다른 것으로 해소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님을 알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이런 ‘신령한 지식’들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해 주시므로,

우리는 성령의 내주, 동행, 인도하심(한마디로 충만)을 늘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모시면, 사람이 달라지는 이유

 

 

우리 마음에 성령 하나님이 임하신 것은 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내 마음이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마음이 달라지면 사람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 격언에도 ‘마음이 앞서면 발도 가볍다’고 했습니다. 좋아하는 곳에 가보세요.

마음이 먼저 가니 언제 갔는지 모르게 도착합니다.

제주도에 제일 빨리 가는 방법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성령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임하시니 (제주도에 좋은 친구랑 같이 가는 것처럼)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성질도 바뀝니다,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면 누구나 반드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너무나 놀라운 변화가 우리 마음에 일어납니다.

①하나님의 존재하심과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②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③성령 하나님과 항상 가까이 교제하게 됩니다.

 

④예수님과 성령님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하는 열망이 매우 강하게 생깁니다.

⑤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염려, 두려움이 사라지고 불평, 원망, 시기 질투가 끝납니다. 

⑥죽음 이후의 영생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고,

   불신자가 가게 될 지옥에 대하여도 확신하게 되어 영혼 구원의 갈망이 생깁니다.

 

⑦많은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소원과 자신이 생깁니다.

⑧성결의 생활을 하고자 하는 소원이 생깁니다.

⑨모든 이들이 같은 체험을 하기를 원하여 함께 기도하고 싶습니다.

 

⑩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기쁨과 강한 열망이 생깁니다.

  궁궐이나 초막이나 주 예수님께서 함께 계심을 알게 되니 어디나 천국임을 알게 됩니다.

⑪다른 사람들에 대해 용서하고자하는 마음과 사랑이 갑자기 커집니다.

⑫성령의 은사를 인식하게 되며, 분별하게 됩니다.

⑬원수 사탄에 대하여 인식하게 되며 그를 물리치려는 마음이 생기고

   그 능력이 있음을 믿고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람이 완전히 변화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모습입니다.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을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회복된 것입니다. 

 

 

 

◑아직 성령님의 축복을 모르는 이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어놓고 점검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일시적 충만>과 <영구적 충만>이 있습니다.

<일시적 충만>은, 말 그대로 잠깐 은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며, 이것은 나무의 꽃(일시적임)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는 말씀도 '일시적 충만'이라고 봅니다. 매일 계속 새롭게 받으라는 뜻입니다.

 

<영구적 충만>은, 나무의 열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데도, 열매가 맺힌 후에도.. 오래 시간이 계속됩니다.

눅1:15절, 세례요한이 모태에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다고 했는데, '영구적 충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2개를 동시에 다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쪽 극단으로 치우치면 안 됩니다. (이 단락, J. I. Packer의 책 참조)

 

 

▲첫째 점검할 것은, 성령님을 보내주시겠다는 축복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영구적 충만의 측면> 

예수님을 믿고도 성령충만하지 못한 이유는,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을 정상으로 여기고,

성령충만한 사람을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데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침이 되면 태양이 떠오릅니다. 이보다 더 분명한 일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사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이것은 사도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그렇습니다. 성령 하나님을 마음에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은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으신 모든 이들에게 하신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충만하지 못하다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해야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충만을 받게 됩니다.

 

   다리가 아프면 ‘이상한데?’, 머리가 아프면 ‘이상한데?’ 해야 병을 고치지 않겠습니까?

   고장 난 TV를 바라보기만 하면 저절로 고쳐지는 날이 옵니까?

   ‘이상한데, 고장 났나봐’ 말만 하지 말고, 즉시 AS센터로 가져가야 고쳐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성령님을 마음에 보내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무관심하면 큰일 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세금 1백만원 환급받으라는 통고를 받았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유산 10억을 받아 가라고 하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가만히 있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것을 받기 위해 분주하게 설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임한 소식이 무엇입니까?

성령 하나님이 마음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하고 엄청나고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보내시겠다는 약속에 무관심한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무시를 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셨겠습니까?

 

▲둘째 점검할 것은, 성령님이 내 마음에 임하시기를 진지하게 구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일시적 충만의 측면>

 

눅11:13,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했습니다.

 

성령받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구하기만 하면 받는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 제 마음에 오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오시니 제 마음에 다른 것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 성경대로 살기 원합니다.” 하면 성령님은 오십니다.

 

야고보서4:2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했습니다.

 

처음 성령을 받았던 120성도들은 열흘 동안 모든 것을 전폐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충만했던 다윗이 정말 성령님을 갈망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시42:1-2,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만약 성령을 구했다면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소원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간구한 것 자체가.. 이미 성령님이 임하신 증거입니다. 

 

셋째 점검할 것은,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을 순종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 다 있지만, 일시적 충만의 측면 강조>

우리는 이미 성령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성령님은 이미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고전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롬8:15-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이 두 구절은 '영구적 충만'을 강조하는 구절)

 

그러나 문제는 성령님이 우리를 얼마만큼 소유하고 계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성령의 역사를 많이 받고 지내는 줄 알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다음 말씀들이 들은 기억이 나신다면 성령의 역사를 깊이 경험하셨다는 말입니다.

“네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

“염려를 주께 맡겨 버리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너희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라”

 

문제는 순종인 것입니다. 알고도 순종하지 않으니

성령의 역사를 더 이상 깊이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팔짱만 끼고 있으면 안 됩니다. <일시적 충만의 측면>

유대인인 키이스인트레이터 목사님이 한번 한동대에서 집회를 인도하셨을 때,

모인 학생들이 거의 대부분 성령의 능력을 체험했는데,

한 자매가 뒤에서 다른 학생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기도하는 것을

팔짱만 끼고 보고만 있더랍니다.

 

“자매님, 무슨 문제가 있나요?”

 

“목사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지금 나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더랍니다.

 

   잔칫집에 가면, 누군가의 엄청난 수고로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습니다.

   손님은 아무 수고 없이 그저 집어서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먹는 행위를.. '노력'이라고, '공로'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공로같지만) '믿음'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주님이 다 상을 차려주셨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간절히 간구해서 그 상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집어서 먹어야 합니다.

   상을 받고도, 팔짱만 끼고 구경만 하면서, 누가 음식을 내 입에 넣어주겠지..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가 팔짱만 낀 채 “내가 구했는데, 왜 내게 물을 주시지 않나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가 마시는 노력/믿음은 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고전12:3(↑)구절 등에 의거하며,                                              <둘 중에 일시적 충만의 측면 강조>

   내가 예수를 믿었으니, 성령님이 당연히 자기 속에 들어와 계신 줄 생각합니다.

   (아울러 자동적으로 성령충만 한 줄로 믿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로, 무식하게 소나무 뿌리 뽑는 심정으로

   무조건 ‘성령충만을 주시옵소서’ 하며 달려드는 것도 극단적 태도이지만,

   반대로 ‘팔짱을 끼고 가만히 있는 것’도 동시에 반대쪽 극단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이 내주하신다는 사실도 알고,

   또 그 내주하시는 성령님과 적극 동행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령의 충만을 구하며, 늘 갈급한 심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심령은, 매일 때가 묻으며, 죄의 유혹을 받아, 내 심령이 쉽게 메마르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운동선수는, 늘 자기 컨디션과 기량을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가만히 있다고 그게 되지 않습니다. 음식, 취미생활, 모든 것을 자기 컨디션 유지에 신경 씁니다.

   마찬가지로, 늘 성령충만을 유지하려면, 자기 영적 컨디션과 기량을

   늘 최고 수준의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무던히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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