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기름부으심 사모하기 창50:15~21 주1) 10.05.18.설교스크랩, 정리
◑용서 vs 선지자적 외침
우리가 이 땅에서 살면서 꼭 배워야 할 한 가지가 용서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는 걸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필수 과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일 만 달란트나 되는 빚을 탕감 받았기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지 않는 자를 용서 하지 않으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고, 용서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 중간 지대에 ‘선지자적 외침’이 있습니다.
그래서 ‘용서’ 라는 주제를 가지고
‘선지자적인 외침’을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선지자들이 용서하지 못해서 ‘선지자적 외침’을 발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실제로 주님께 용서 받게 하기 위해서 외친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하더라도, 그들이 회개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심판은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에.
용서는 우리의 몫이고, 심판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고,
교계의 죄를 지적하고 하는 건.. 사랑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용서와 관용)을 따르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사랑과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아무도 ‘선지자적 음성’을 발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결국 그들이 회개치 않으면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을 받습니다.
물론 아무나 모두 자기 목소리를 발한다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질서가 사라지고, 힘들게 쌓아온 것들이 혼란으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아무나 자기 목소리를 발하면서 ‘선지자적 음성’이라고 주장하며,
혼란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성령이 자기를 감동하지도 않으셨는데,’
자기가 지어낸 말을 가지고 ‘선지자적 음성’이라고 주장하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정리하면,
용서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고, 심판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그 둘 사이엔 선지자적 외침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사랑으로 책망하고, 권고하고, 권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 성경에 나오는 것이고,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조화를 이루고 보충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부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도 해야 되고, 용서도 해야 되고, 책망도 해야 되고,
지적도 해야 되고, 선지자적으로 담대하게 외칠 것은 외쳐야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심판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악을 행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에게 악을 행했던 것처럼.
이 일이 형제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 날도 교회 안에서, 친구/형제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생깁니다.
이것은 물론 악이고 없어져야 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형들의 악행을 사용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십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0
이단시비도 사용하십니다. 불의한 판단과 정죄까지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시냐 하면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쓰시려 하는 사람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또한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하시는 사람들을 겸손하게 하십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들이 깨지게 하시고, 용서를 배우게 하시고
아버지의 마음을 품도록 하십니다.
또 그것을 통해서 그들이 극단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십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 극단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십니다.
사람은 제동이 전혀 걸리지 않으면 오버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음해나 공격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선을 이루시고, 그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분입니다.
정리하면, 여기서 우리가 붙잡아야 될 것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이 손해가 아니라, 결국 유익이 될 것이다.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이 결국 합력해서 선이 될 것이다.’
이것을 (요셉처럼)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는.. 각오가 필요해요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하나님과 약속을 하셨는데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지 않으면 강단에 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쩌다가 한 번씩, 몇 달에 한 번 정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임하는 것.. 그것을 대단하게 여깁니다. 거기에 만족합니다.
예배드릴 때, 설교 들을 때, 찬양 부를 때,
회중 모두가 ‘하나님의 임재가 지금 이곳에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잖아요? - 이게 성령의 기름부으심 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 - 이것이 특별하게 간헐적으로 한 번씩 나타나는
뭐 이런 정도로 치부하는 이런 인식들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런데 오랄 로버츠 목사님(미국의 오순절계, 지금 소천)은
‘성령님의 기름부음이 임하지 않으면 강대상에 올라가지 않겠다.’
이런 각오와 열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책을 읽으면서,
이것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제게 와 닿았습니다.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랄 로버츠 목사님은 집회를 가서도
예배가 시작되고, 설교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자기 방에서 나오질 않는 겁니다.
왜 안 나오시냐 하면 ‘성령의 기름부음이 아직 임하질 않아서 못 나간다’고
그래서 실제로 어떤 때는 30분이 지나도 안 나오십니다.
이 분이 특별히 신유사역을 많이 하셨는데,
자기 오른손이 뜨거워질 때.. 안수하면.. 안수 받은 사람들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오른손이 뜨거워지지 않으니까 (기름부으심이 임하지 않으니까)
안수를 하러 나가지 못하고, 방에서 계속 기도로 간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간절히 구하니까.. 그 기름부으심이 결국 자기에게 임했습니다.
▶꼭 오랄 로버츠 목사님과 같은 방식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만큼은, 우리가 배워야 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의존해야 됩니다. 의지해야 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을 반드시 받아야 됩니다.
◑강해설교 +ɑ (플러스 알파)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주도해 왔던 설교자들은 강해설교자들입니다.
그들이 교계 전반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리더로 부상이 되고,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 교회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런데 (발전을 위해서) 강해설교가 무엇이 문제냐 하면,
아무리 설교를 잘 해도 교리적인 겁니다...
교리는 필요해서 만든 것이고, 실제로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묶이면, 자칫 성령의 역사와 엇박자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해석하고, 강해설교를 잘하고
그런데 교리에 종속이 되어 버리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교리를 활용해야지, 교리에 묶이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전통과 장로의 유전에 종속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세례요한, 예수님, 베드로, 사도바울을 핍박 했잖아요.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나 바울은 그 교리를 분별해 버립니다.
이것은 사람의 계명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하나님의 말씀이고.. 분별합니다.
오늘날에도 캘빈 교리가 기준이 되어서, 형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점에 매우 유의해야 합니다.
강해설교를 잘 한다는 분들 중에
머리가 좋고, 말을 잘 하고, 똑똑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강해설교를 잘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원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기 원하는 사람은
미련하더라도, 약하더라도,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
그래서 성령께로부터 온 지혜를 갖고 있고
그 지혜로 강해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그 설교위에 부어지는 것이지,
사람이 자기 머리, 자기 신학지식으로 강해설교에 뛰어들다가는
‘교리 강좌’의 한계를 못 벗어납니다.
교리나 강해설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을 활용할 줄 알고, 그것을 뛰어넘을 줄 아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저와 여러분이 함께 사모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니까, 지금부터 약 20년 전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외국 강해설교자가 저희 신학교에 초청강사로 오셨어요.
그런데 그 분의 강해설교를 듣는데, 제 심령이 공허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기름 부음이 없었어요. 제 느낌에는 그랬습니다.
지성, 지식, 말재주, 웅변, 감성... (이것도 대단한 실력입니다만)
그게 전부였어요.
내가 신학생 때 들어보니깐 듣는데 심령이 괴로웠어요.
‘무슨 설교를 이렇게 하나?’
그런데 다른 신학생들에게는 그게 먹히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따분했습니다.
그분의 장점도 있고, 훌륭한 점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름부음이 없었어요.
강해설교하는 은사가 있으신 분은, 강해설교를 하면 좋습니다.
강해설교라는 것이, 설교자가 자기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성령님)이 말씀하는 메시지를 찾아내어서, 전달하는 것이니까요.
(강해설교를 할 지적/지식적 능력이 없으신 분은.. 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신학생 여러분, 강해설교로 만족하시면 안 됩니다.
거기엔 반드시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있는 (강해)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제까지 ‘강해설교’를 강조하면서도,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신학교에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강해설교가 ‘교리 설명’ 또는 ‘지적 설교’로 격하되어버린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이 다 ‘강해설교도 별수 없구나!’라는 인식에 도달해 버렸습니다.
진짜 기름부음이 없어요. 논리로 사람들에게 나가는 것이지, 지성으로 나가고,
심하게 표현하면 말재주로 나가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꼭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정말 기름부음을 통해서 터트리는 설교가 되도록(강해면 더욱 좋고)
우리가 오랄 로버츠 목사님처럼, 기름부으심을 사모하자는 것이죠.
그리고 ‘기름부으심이 없으면, 내가 안수/설교/찬양인도 안 하겠습니다!’는 각오로
심지어 순서를 펑크내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 방에서 안 나오고 기도하며 버텨야죠.
오랄 로버츠가 그랬다는 것 아닙니까!
▶무조건 기도만 많이 한다고 기름부음이 오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정말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을 가지고
평소에 겸손하게 살며,
평소에 자기 영적컨디션을 항상 최상의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어야죠.
‘기름부으심의 상태로’ 언제든지 갈 수 있도록 스탠바이 하고 살아야죠. 평소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고 있어야죠. 평소에.
그러다가 찬스가 왔을 때,
기도로 구하면, 하나님이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시죠. 대개는 그렇습니다.
(물론, 성령님을 내가 원하시는 시간에, 내 마음대로 불러낼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가 먼저 있던 교단의 노회장을 지내던 분은, 바른 정신을 가지고 계신데,
그분이 뭐라고 그랬냐 하면은
‘내가 목회를 하다보니깐 잘되지도 않고, 힘만 들고,
아 그래서 난 목사 자격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목회를 그만 두고, 그럼 내가 목회를 그만 둬버리면 어느 교회를 다닐까?’
그 분이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노회 교회들을 쭈욱 생각해 보니깐,
정말 쉽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목사님이 갈 교회가 없더라고 합니다.
여러분, 신학교 나온다고 어떻게 (성경이 말하는 사도행전적) 목사가 되겠습니까?
목사들이 모여서 안수해준다고.. 그렇게 목사 되는 것으로 절대 만족하지 마세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따라다니는 목사가 되도록.. 목표를 거기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자, 목사-교사 되시기 바랍니다. 엡4:11
왜냐하면, 여러분, 어느 시대에나 그랬듯이,
지금은 그런 주의 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7천명’을 예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7천명 : 엘리야가 ‘나만 남았나이다’ 했을 때, 주님이 엘리야에게 주신 말씀, 아니다. 7천명이 있다!)
▶은사와 기름부으심.. 거기에서 영적 권위가 생깁니다.
사도도 성령님이 만드는 것이고, 선지자도 성령님이 만드는 것입니다.
사도도 성령님이 만드는 것이고, 선지자도 성령님이 만드는 것이고,
복음전하는 자도 성령님이 만드는 것이고 목사도 성령님이 만드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은사와 기름부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무시한 교계가 참담합니다. 성령을 무시한 교단들. 성령을 무시한 신학교.
다 영적으로 보면 참담합니다. 황폐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이 심어놓으신 ‘7천명’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에게 ‘기름부으심’이 뜨겁게 부어지고, 일어나야 합니다.
뭘 판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물밑에서,
하는 둥, 마는 둥,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그러나 거기서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기 역할/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굳이 말하면 ‘오바댜’같은 사람입니다. *왕상18:4, 선지자 백명을 살린 사람
여러분, 교인하나 옮기는 것을 참지를 못합니다. (특히 이민교회)
목사인지 비즈니스맨인지 모르겠습니다.
‘양 도둑질’이란 말도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성도들이 그 교회로 옮겨가면, 무조건 ‘이단’으로 매도해 버리던 과거의 전통도
이제 우리가 바꿀 때가 되었습니다.
탐심이나 이기심입니다. 수평이동 없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자발적인 수평이동을 탓하다가는, 교회가 ‘족쇄’라는 평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양은 다 예수님의 양입니다. 우리 소유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런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도/ 성령님만이 사도를 만드십니다. 성령님만이 선지자를 만드십니다.
성령님만이 복음 전하는 자를 만드십니다. 성령님만이 목사와 교사를 만드십니다.
성령님 임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우리를 만져 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게 하소서...
우리들에게 필요한 분별력과, 우리들에게 필요한 영적권위를 주시옵소서.
그래서 진정으로 기름부음과 은사를 가지고, 부르심대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도는.. 사도의 은사와 기름부음을 가지고 일어나게 하시고
선지자는.. 선지자의 은사와 기름부음을 가지고 일어나게 하시고
복음전하는 자는.. 복음 전하는 자의 은사와 기름부음을 가지고 일어나게 하시고
목사와 교사는.. 각자의 은사와 기름부음을 가지고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내 육신의 힘, 인간의 힘으로 말게 하옵소서...
주1) 요셉의 용서.. 창50:15~21 성경 본문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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