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진 후에야 비로소 삿7:7~8, 고전1:25~29 설교스크랩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자매가 목사님께 자기의 결혼 상대자를 한 사람 소개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어떤 상대를 원하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것은 아무 것도 필요 없고요, 직장이 있고, 신앙만 좋으면 되요." 그랬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괜찮은 직장에 다니고, '신앙만 좋은' 한 형제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목사님이 그 자매에게 들은 얘기는
"목사님! 절 뭘로 보고 그런 사람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거였답니다.
우리가 배우자감을 소개 받거나 또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사람을 선발할 때 그 기준은 뭐든가요?
대체로 말로는 그 자매처럼 '신앙만 좋으면' 된다고들 그러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정말 그렇습니까?
사실 우리는 이것 저것 다 봅니다.
외모, 학벌, 재산, 업무능력, 현재의 지위, 신앙 등등 두루두루 다 봅니다.
아마도 신앙만 보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든 모든 면에서 '좋아 보이는 사람'을 택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발 기준은 우리와 다릅니다.
하나님이 뽑은 사람들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훌륭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잘 뛰어서가 아니라, 자주 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팀원으로 선발됩니다.
높이 뛸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점수를 받습니다.
다재다능하기 때문이 아니라, 뭐 하나 변변하게 하는 일이 없어서 뽑힙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거기에 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본문 사사기의 말씀은 기드온 선지자에 관한 말씀인데요...
성경에는 한 두 절만 언급되어도 그 의미가 상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기드온의 얘기는 그 분량으로만 봐도
보통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려 석 장에 걸쳐 100절을 할애했습니다.
이렇게 길게 기록한 것은, 하나님은 기드온의 얘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말씀하시고 싶었던 게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마트 회사로 크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사장의 말이, 자기 가게에 불이 나지 않았으면
자기는 지금도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을 거라고 썼더군요.
무슨 얘긴가 하니, 원래 이 사람은 동네 사람을 대상으로 조그만 마켓을 하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큰 돈 버는 것 없이, 그저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장사가 다 파한 시간에 가게에 원인 모를 불이 일어났습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안에 있던 물건이 하나 남김없이 모두 다 타버렸습니다.
절망스러웠지만 그 잿더미 위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다음 날 아침에, 다 타서 뼈대만 겨우 남은 건물 앞에다, 이런 글을 써 붙였다고 합니다.
"그 동안 우리 가게를 이용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불이 났지만 저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계속해서 찾아 주시면 제게는 큰 힘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랬는데 전혀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의지에 감동해서 열심히 팔아 준 것은 물론이고,
그게 소문이 나서 이웃 동네 뿐 아니라 꽤 먼 동네 사람들까지도
그 가게를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엔 매장을 늘리고 종업원들도 몇 명 고용하게 되면서,
점점 더 기업형 마트로 발전하게 됐습니다.
나중에는 전국에 체인점을 둔 마트로까지 크게 성공했다고 합니다.
만약 그의 가게에 불이 나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자기 식구 먹고 사는 것만으로 끝났을 겁니다.
불이 나서 하나도 남은 게 없게 되자, 그에겐 새로운 장(場)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도 이와 똑같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기드온 얘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소유나 능력은,
'적은 것이 좋고 없으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말씀이기 때문에 한 번 따라 해 보겠습니다.)
'적은 것이 좋고, 없으면 가장 좋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 전체에 걸쳐 흐르는 하나님의 사역 법칙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원칙에 따라 달갑지 않은 일을 겪게 됩니다.
뭐냐 하면, 흔히 자연과학에서는 '낙하점' 영어로는 'ground zero' 하고 하더군요.
우리가 그 ‘ground zero’에 떨어질 때야, 비로소 인격의 성숙에 이르게 되고,
그제야 하나님 일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의 사전적 의미는 (폭탄의) 낙하점, 핵폭발 바로 아래 혹은 위의 지점을 뜻한다.
이 말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일본에 떨어진 원자탄의 피폭지점을 지칭하는 것. 911때 다시 쓰였다.
이 글에서는 표고점을 의미함.
여기에 반대되는 경우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예수님 시대의 대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 등 유대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잘 훈련된 종교적 관료들이었지만
가진 게 너무 많고 아는 게 너무 많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청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자
재물이 많은 까닭에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를 낙하점,
또는 점수로 치면 O점에 이르러서야 일을 시작하실까요?
그 대답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힘이나 업적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도해 나가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또 하나의 본문, 고전1:25~29 말씀이 그 질문의 해답이 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 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고전1:26~29
▶보세요. 꼭 우리들 이야기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당신의 영광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우리 인간이 선호하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방법으로 하신다는 겁니다.
그 분의 방식이 뭐냐?
지금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언제나 그 어리석음과 연약함과 수치와 무능력 가운데서
인간을 들어 쓰신다는 겁니다.
이것은 수학 공식처럼 하나님 사역의 변함없는 공식입니다.
아무리 공식이라도 예외 없는 공식은 없는데, 여기서만큼은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여러분 자신이 하나님 일하는데 부적합하다고 느끼면 느낄수록,
이 공식에서 여러분이 차지하는 역할은 더 커질 겁니다.
▶기드온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뭐 하나 잘난 게 없었습니다.
농부요, 무명에다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지파 출신이요, 게다가 우상장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택함을 받은 건데, 처음엔 택함 받은 것에 대해서 모세처럼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하나님이 밀어 붙이시자,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양털 한 뭉치를 가져다가, 하루는 마른 땅 가운데 양털에만 이슬이 있게 하고,
그 다음 날은 반대로 땅엔 이슬이 있되 털은 바싹 말라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요구를 들어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드온의 얘기 가운데 눈 여겨 볼 게 있는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려 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다 기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려면, 우리는 기적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잖아요?
그 상황은 우리나 기드온이나 똑같습니다.
지금 기드온의 당면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지금 자기네들이 개같이 여기던 미디안 족속에게
무려 7년이란 세월을 유린당하고 있었습니다.
일 년 내내 죽어라 농사를 지어 놓으면 꼭 추수 때 나타나서 곡식을 강탈해 가는 겁니다.
한 두 해도 아니고 지난 7년 동안 매년 똑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얼마나 분하고 원통했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을 원망했겠습니까?
고생 고생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왔는데 젖과 꿀이 흐르기는커녕,
피와 눈물과 고통만 흐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처음 나타났을 때,
기드온이 잔뜩 부어 오른 불만스런 입으로 그를 맞이한 게, 절대로 무리가 아닙니다.
어쨌든 이제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미디안 족속을 쳐서 부수어야 됐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에 구멍이나 굴을 파서 여기저기 숨어 사는데,
미디안 족속들은 그 숫자가 얼마나 많은지, 메뚜기 떼 같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약한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쳐부수려면 기적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이라는 게 뭐냐 하면,
우리가 기적을 원하면 원할수록
하나님은, 기적의 영역 안으로 불러들이실 때까지
계속해서 우리의 자원을 줄여 가신다는 겁니다. ground zero까지요!
지금 기적이 일어나려면 우리는 가진 자원들이 많아야 될 것 같은데,
오히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기 위해서
우리 가진 것들을 차례 차례 소멸해 가신다는 겁니다.
오늘 하나님의 사역 법칙, '적은 것이 좋고, 없으면 가장 좋다'는 게 바로 이 얘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소유가 고갈되어 갈 때야 비로소 나타나는 법입니다.
처음에 기드온이 군대를 소집했을 때 그 숫자는 3만 2천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어요.
너무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두렵고 떨리는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고 명하라는 겁니다.
그러자 실망스럽게도 2만 2천명이 즉시로 짐을 싸 들고 산 너머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상황은 아주 나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더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보여주실 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한 번 더 기드온을 낙담케 합니다.
"네게 아직도 군사가 많구나!"
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들이, 남은 1만 명으로 전쟁을 치른다면,
이스라엘은 그 승리의 공을 자기들에게로 돌렸을 겁니다.
1: 13의 싸움은, 좀 과하긴 하지만 이긴다고 해도, 기적은 못됩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깁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시지요?
"이제야 네가 내 영역에 들어오기 시작했구나."
이제 기드온의 300 용사는 대략 13만 5천명이나 되는 적군과 싸워야 했습니다.
1: 450은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적을 일으킬 확률이 높아진 것입니다.
이 전쟁의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기드온은 300명을 이끌고 너 댓개 나라의 연합군을 궤멸시킵니다.
그렇게 기적이 일어날 때까지 기드온이 겪은 일은 뭐였습니까?
자기의 모든 자원이 점점 더 줄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께 맡기신 일이 그 무엇이든 간에
그 일을 완수하려면 기적이 필요합니다.
만약 기적이 필요치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아니거나
또는 여러분의 비전이 너무 작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자기의 일을 맡기시기 위해 여러분을 부르신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자원을 줄이시되,
기적이 일어나야 성공할 수 있는 상황까지 계속 줄여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의 자원이 다 고갈되어 가고 있습니까?
은행 잔고는 비어가고, 비빌 언덕이나 기댈 사람은 없고, 앞일의 전망 또한 시원찮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기적을 체험할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손쓰실 기적의 영역에 들어 온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바라보세요!
분명히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 사실을 믿고 기다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윌리엄 캐리라는 인도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인도 최초의 선교사로서 굉장히 부지런했던 분이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인도의 여러 지방 방언의 활자를 만들어서 성경으로 찍어냈고,
또 중국어 활자를 제작하고 중국어로 성경을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인도문법책을 만들고, 산스크리스트어로 구약을 번역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뱅갈어로 신약을 번역하고, 인도 지방마다 언어가 다른데,
일일이 그 지방문법책들을 정리해서 써냈습니다.
그런데 1812년 3월12일, 이 분의 집에 불이 났습니다.
한 순간에 잿더미가 됐습니다.
20 년 동안 해놓은 일이 하루아침에 다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으실 텐데 밤새도록 작업한 문서를,
키보드 한 번 잘못 눌러서 날렸을 때 어떻던가요?
하물며 20년 동안 작업해 놓은 것이 하루 밤 새에 다 소멸되었을 때,
그 허망함이 얼마나 클 지는 가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잿더미에서 윌리암 캐리는, 동료 선교사들과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지 우리는 모르지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한 뒤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캐리의 조국인 영국에 전해졌습니다.
영국 젊은이들 사이에 각성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그 이후로 모두 3천명이나 되는 선교사 지원자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500명의 선교사와 전문가가 인도로 와서,
윌리암 캐리가 20년 동안 했던 일을, 단 2년 만에 다 복구시켜놨습니다.
하나님은 인도에 더 많은 당신의 일꾼을 두기 원하셨습니다.
그러자면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데,
하나님은 윌리엄 캐리를 통해서 그 일을 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법은 여태껏 당신이 해 오시던 방식과 똑같았습니다.
윌리엄 캐리가 애지중지하던 자원을 다 소멸시키는 거였습니다.
물론 윌리엄 캐리가 그 엄청난 일을 받아들일 그릇이 아니었다면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택하셨을 것입니다.
결국 단 2년 만에 인도는 500명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 일 역시 바로 zero ground 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자기 자신이 모자라고 부족하고 아둔하고 부끄럽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기적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할 그 시간까지 기다리십시오.
적을수록 좋고 없으면 가장 좋은 하나님의 이 법칙에 따라
기적을 체험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르다와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합니다. 주1)
▶지금까지 여러분과 나눈 말씀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천할 일이 있습니다.
짤막한 말씀이지만, 그 비중으로 봐서는, 앞선 말씀보다 그 중요성이 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은,
기드온이 전쟁터에 들고 나간 무기를 보면 쉽게 정리가 될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군대는 군사적으로 보면 오합지졸입니다.
전쟁을 생활처럼 일삼는 미디안 군대와
농부나 목자들로 구성된 이스라엘 군대는 상대가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자면 무기를 들어야 될 텐데,
오늘 이스라엘이 들고 나간 것은 전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습니다.
뿔 나팔과 진흙 항아리와 횃불, 이 세 가지였는데
이것들 중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뭔지 말씀해 보십시오.
물론 뿔 나팔로 머리를 계속 치면 뇌진탕이 일어나서 죽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그러는 사이 적군은 얌전하게 앉아서 맞는답니까?
또 진흙 항아리는 너무 약해서 조금 굴리기만 해도 깨집니다.
그것으로 사람을 죽일 수 없습니다.
횃불은 그 중 가장 무기다운 무기가 될 수 있겠네요.
미디안 숙소에다 그 횃불을 던져서 불을 지르면 될 텐데, 그런데 거기까지 어떻게 접근하지요?
횃불 들고, 미디안의 경계병들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사실 오늘 이 전쟁은 이스라엘 대 미디안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누구와 누구의 전쟁입니까?
하나님과 미디안의 전쟁이었습니다.
얘기가 그렇다면 뒷얘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늘 이스라엘 군대가 가지고 나갔던 것은, 뭘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성경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거의 매 페이지마다 끊임없이 우리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습니다.
뭐겠습니까?
예배입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라는 겁니다.
실제로 오늘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전투행위가 아니라, 예배였습니다.
나팔을 불면서, 항아리 속에 횃불을 감추고, 일시에 소리를 쳤습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이건 예배입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어둠 가운데 미디안 진영에 소동이 일어나서 자기들끼리 찌르고 베고 한 겁니다.
전쟁은 누가 하는 것입니까? 전쟁은 누구의 손에 붙어 있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뭐였습니까?
바로 예배였습니다.
오늘의 결론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는 예배자가 되어라! 오직 나만을 갈망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다 내가 한다!"
의외로 하나님의 방법은 단순합니다.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예배 한 번의 중요성을 절대로 절대로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단 한 번의 예배로 인생이 바뀐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예배는 우리들 생활이 되고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 가운데 예배’한다는 것은, 언제나 주님 생각으로 내 영혼을 채우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늘 영적인 분위기로 몰아넣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생각으로 자기를 꽉 채우는 것입니다... (후략)
..................................................
주1) ▶마르다와 나사로의 동생인 마리아 얘기를 잠깐 하려고 합니다.
마리아 자매는 오빠 나사로가 중병에 걸려 위중하다는 전갈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평소 예수님은 자기 집을 당신 집처럼 여기고 자주 와서 쉬셨기 때문에, 가족과 같았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이 오빠 소식을 들었다면 그 길로 달려오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반응은 좀 이상했습니다.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틀이나 더 머무시다가 삼일 째 되는 날에야, 뒤늦게 마리아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이미 나사로는 죽어서 장사 지낸 지 나흘이 지난 후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자 언제나 행동이 빠른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을 맞으러 나갑니다.
마르다가 어떻게 했을지는 보나마나 입니다.
예수님을 뵙자마자 대성통곡 했을 겁니다.
오빠를 잃은 슬픔에다,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오빠를 살리지 못한 그 원망이 함께 섞여서
펑펑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 못했을 겁니다.
예수님이 이런 저런 말씀으로 위로했지만, 마르다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말씀 중에는 '네 오빠가 살리라' 하는 결정적 말씀이 있었는데도
마르다는 그것을 부활 때 얘기로 흘려 들었습니다.
곧 마리아가 예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말합니다.
‘주님! 주님이 여기 계셨다면 오빠는 죽지 않았을 텐데, 왜 이제 오셨어요!’
그리고는 조용히 눈물을 훔칩니다.
하지만 마리아에게는 침착함이 엿보입니다.
어찌됐든 오빠가 죽은 것은 기정사실이고 이제는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늦게 오시기는 했지만 예수님을 뵈니 마음에 평안이 왔습니다.
그런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나사로를 보러 가자고 합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은 단 한 마디도 의미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순간, 마리아는 영혼 깊은 곳에서 희망의 샘이 터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무슨 일인가 일어날 거야' 벅찬 기대와 설렘으로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습니다.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하자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앞에서 잠깐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너라!’ 부르셨습니다.
죽은 자가 손발을 베로 동인 채로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죽었던 나사로는 그렇게 다시 살아, 사랑하는 동생 마리아 앞에 서 있었습니다.
왜 기왕 살리실 일이라면 죽지 않게 하시던가
아니면 미리 살리실 것이지 다 지난 후에야 그리 하셨을까요?
물론 이 일은 '적은 것이 더 좋고 없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주님의 사역 법칙을 드러낸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것을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저희 집 둘째가 걸음마를 처음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아이가 내 손을 떠나서 몇 걸음을 걷기 시작할 때
첫째 아이가 나를 보고 놀라서 소리쳤습니다.
"아빠! 아기가 넘어지려고 하잖아, 안 잡아 줄 거야?"
그런데 큰 애는 내 생각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큰 애는 자기 동생이 넘어질 거란 사실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빠인 나는 첫 지점에서 끝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면서, 100% 넘어질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걷기 위해서는 넘어지는 것 역시 걷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그냥 두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넘어졌다가 다시 두 발로 일어나 더 튼튼하게 걸어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바로 이런 쓰러짐과 넘어짐을 견디라는 거였습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시간 속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이란 시간 속에 사시기 때문에
그 어떤 일도 돌이키실 수 없거나, 구원하실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깊이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세상적인 시간표를 맞추시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격을 성숙시키시는 것과,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데, 더 큰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가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늦으셨군요!"
"아니, 늦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 당신이 꾸물거리는 동안 내 사업은 이미 다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끝장났습니다. 어떻게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드셨습니까?”
(이때 주님이 하셨을 말씀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말씀을 하실까요?)
"네가 성숙해져서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넘어지는 것 또한 중요하단다. 기억하거라. 나는 결코 늦지 않는단다.
내 아들이 어떻게 십자가의 죽음 가운데 생명을 심었는가 기억해 봐라.
이제 어떤 것도 돌이킬 수 없거나 불가능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겠느냐?
너는 고통 가운데서도 나를 기다릴 수 있을 만큼 나를 신뢰하느냐?"
▶저의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 주의 종이 되기를 서원했지만
성인이 돼서도 저는 그 약속을 지키질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고 얼마 안 있다 다시 신학교를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또 마음이 변해서 다시 신학교 행을 포기했습니다.
너무 싫었고 내키지 않았습니다.
내 자유를 속박하고 인생의 온갖 재미를 버려야 되는 그 일이
제게는 너무 어려웠던 겁니다.
그렇게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저희 집 사정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가장인 제가 특별한 돈벌이도 하질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까,
빚은 늘어가고 아내의 절망은 점점 커져가기만 했습니다.
여자는 자기 남편이 무슨 일을 하든, 미래가 보이면 어떻든 견뎌내는 법입니다.
하지만 목표 없이 보내는 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자는 자포자기에 빠지게 됩니다.
그나마 이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는 겁니다.
그런 어느 날, 아내가 나간 사이 방바닥에 놓여 있는 아내의 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내는 제가 그 시간에 들어올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의 일기를 다는 기억 못하지만 몇 줄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오늘도 나는 첫째를 업고 동네 길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집에 있으나 밖으로 나오나 괴롭고 슬프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사는 건가? 하나님은 왜 그렇게 내 기도를 외면하시는 건가?
차라리 죽을까? 아이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주님! 오늘 밤 잠이 들면 내일 아침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눈을 뜨면 천국이게 해 주세요!"
그 일기장에 눈물 자국이 보이진 않았지만,
저는 그 한 줄 한 줄에 배어 있는 아내의 눈물과 한숨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진짜 신학교를 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제 아내가 고맙고 존경스럽습니다.
제 아내는 그 넘어짐의 시간들을 잘 견뎌냈습니다.
자기 소유와 자원이 모두 고갈되기까지 잘 참아냈습니다.
지금 저는 보잘 것 없지만, 이 나마의 저라도 있기까지는
제 아내의 그 견뎌내는 시간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극적인 간증거리를 원하고 기적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자원을 줄이셔서 마침내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지점까지 가는
과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넘어지는 것 자체를 싫어할 뿐 더러,
그 기적의 지점에 도착하기까지 기다리는 것은 더 싫어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통제권을 여전히 포기하고 싶어하질 않습니다.
하지만 넘어져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 넘어짐의 아픔과 나락의 순간들을 견뎌내야 합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에게 충분한 힘이 없다면 충분히 기다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드온에게도 7년이란 넘어짐의 순간이 있었고,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누군들 그런 시간이 없었겠니까?
아브라함, 모세, 다윗, 엘리야, 사도 바울… 어떻게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갈망하는 모든 것은 이미 약속되었고 완불됐지만, 아직 배달이 되지 않았다 뿐입니다.
곧 우리 앞에 기다리는 것은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때까지 넘어지더라도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견뎌내서 기적의 자양분으로 삼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의 신학, 영광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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