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7

열병을 멈추고 평강으로 2702

LNCK 2010. 10. 21. 15:07

◈열병을 멈추고 평강으로            마11:20~30                  07.12.30.설교녹취


 

◑열병에 걸려서 뛰어다니는 사람들


▲열병에 걸리면, 뛰어다니는 이유

아프리카에 사는 어느 종족의 이야기다. 그들에게는 특별한 미신이 있는데,

무더운 아프리카에서 살다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열병(고열이 남)을 앓게 되는데,

그러면 이 종족들은, 온 몸에 열이 치솟을 때,

그 열병 환자가 집밖으로 나와서, 아프리카의 들판을 한없이 뛰어다닌다고 한다.


집안에 가만히 있으면,

열병이 계속 더 찾아와서, 자기에게 누적되고 쌓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열병이 일단 걸리면, 열병을 피해 도망 다니는 것이다.


그러다가 열병의 병세가 악화되어서 죽어버리는 그런 경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병만 걸리면 들판에서 뛰어다니면서 도망 다닌다고 한다.

미신 때문에,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로, 열병에 걸려 뛰어다닌다.

여러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2007.12.30.설교)

금년 한 해를

불행해질까봐 두려워하면서, 그 걱정에 쫓겨서 쉬지 않고 뛰어다니셨죠?


돈을 많이 벌지 못할까봐 걱정하면서

그냥 1년 동안 쉬지 못하고 뛰어서 여기까지 오셨죠?


그리고 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기 위해서

강박관념을 갖고서 1년 동안 뛰셨죠?


불행해질까봐 염려하는 것도 열병인데,

그 불행이 정말 현실이 될까봐, 무지 힘들게 뛰어다니셨을 것이다.


걱정 될 만한 일이 생길 때마다, 걱정 자체가 열병임에도 불구하고,

그 걱정을 피해서 한 없이 뛰어다녔다.


그런데 이제 연말에 이르러,

그 뛰어다닌 결과, 여러분께 주어진 것이 과연 무엇인가?

뭐가 달라진 것인가?


달라진 것은, 아마 별로 없으실 것이다.

우리 인생은, 내가 걱정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강감사의 삶만이.. 진정한 인생이다.


그러므로 믿는 성도들이 한 해를 정리할 때는,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한 해를 정리할 때, 물어보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얼마나 뛰었고, 무슨 실적을 남겼으며, 얼마나 벌었는가?’

이것을 묻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방식이다.


그러면 믿는 사람들이, 한 해를 정리하면서

물어보는 질문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나는 금년에 얼마나 평강했느냐?’

‘나는 금년에 얼마나 감사했는가?’ 등이다.


▲참된 인생은, 평강과 감사로 살았던 날들이다.

금년 한 해 동안,

내가 평강과 감사로 10일간만 살았고, 나머지 355일은 걱정과 염려로 보냈다면,

금년에 내가 살았던 진정한 날 수는.. 고작 10일뿐이다.


지난 1년을 잘 사셨는가?

내가 걱정을 많이 한 결과, 돈이 많이 벌려졌는가? (아닐 것이다.)


평강과 감사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금년에, 잘 산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혹시 돈이 없었더라도, 큰 가시적 업적이 없었더라도,

내가 평강과 감사가운데 한 해를 계속 살아오셨다면, 

.. 그게 잘 산 것이다.


우리들의 집 냉장고 안에 음식이 가득 들어있다.

냉동고 안에도 식재료가 계속해서 쌓여져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식사는 보통 외식을 하면 좋아한다.


냉장고 안에 식재료가 가득 있어도,

내가 요리해서 내 입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 음식이 내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2007년 365일 동안에

감사했던 순간만이, 주안에서 평강을 누렸던 날수만이

하나님에 의해서 허락되어진 날수들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기뻐하며 감사하지 못했던 모든 시간들,

걱정에 빼앗기고, 불평에 빼앗기고, 불만에 빼앗겼던 모든 시간들..

다 헛되게 사신 날들이다.


자 이제 연말과 새해를 앞두고,

우리가 다시 한 번 마음에 다져보아야 할 각오가 무엇인가?


열병에 쫓겨서 계속 뛰어다니는,

열병을 오히려 가속화시키는 그런 삶을 중단하고,

이제는 평강의 삶으로 들어가야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열병이 아닌, 평강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일까?  ←문제 제기



◑쉼은.. 마음이 가벼워야 한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쉼이란 마음이 가벼운 것이고, 마음이 무거우면 쉴 수가 없다.

성탄절과 연말연시만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왜 들뜨는가?

바닥에 착 가라앉아 있던 마음들이,

성탄 트리를 보면서, 반짝거리는 따스한 트리의 불빛과,

따뜻한 캐롤을 들으면서 (비록 잠깐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다.


들뜬다는 것은, 가벼우니까 들뜬다.

무거우면 뜨지 못한다. 가라앉아버린다.


이렇게 가벼움이 있어야.. 거기에 쉼이 있다.

쉼과 가벼움은 항상 두 개가 맞물려 돌아간다.


▲내 마음이 무거운 이유는.. 책임감, 열정이 과도할 때이다.

쉽게 말하면, 길에서 어떤 청소년이 담배를 피우며 다녀도,

내 아이가 아니면, 그냥 참고 지나간다.

그러나 그 아이가 내 자식이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반드시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를 훈계한다.


내 삶이 늘 무겁고, 쫓기는 이유는,

내 삶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과도하게 책임감을 느낄 때이다.


사역ministry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어떤 일을 반드시 해야 된다’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떄

거기에 쉼(마음의 가벼움)이 있을 수 없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사지를 놓고 있어도, 그래서 사람이 쉬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늘 어떤 걱정, 염려, 과도한 책임감(사실은 내 체면이 걸린 일) 때문에

내 마음이 무거운데,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사역의 주인이 (사실은) 나인 것이다.

내 체면, 내 얼굴이 될 때, 내 마음은 늘 무겁고, 편히 쉬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마음의 쉼은, 일을 하면서도 쉰다.

막중한 과제들을 처리해 나가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이 가벼울 수 있다면..

나는 막중한 일을 하는 중에도.. 쉬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오해하는 것이, 우리가 ‘쉰다’라고 할 때,

열심히 일한 뒤에, 갖는 휴식시간을 쉼이라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예수 안에서 진정한 쉼을 누리는 사람은,

일을 하기 전에도 쉬고,

일을 하는 동안에도 쉬고,

일을 마치고 나서도 계속 쉬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 쉼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이 주시는 쉼과 평안과 안식은

일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만약 일을 하는 동안에도 쉼이 없으면.. 주님이 주신 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키신 일은)

마음에 쉼이 있으면서.. 하는 일이다. (뭘 계속 쫓기듯이 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해서, 내 마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하는 일은.. 내 일이다.

주님이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내 체면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쉼을 느끼면서 하는 일만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고,

하나님의 일(↔내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된다.


    왜 마음이 아픈가? 왜 걱정이 되는가? 왜 불평과 불만의 신음소리가 나게 되는가?

    내 마음이 무겁기 때문이다.


    왜 내 속에서 불평과 신음 소리가 나는가?

    내가 내 삶에 (마치 하나님과 같은, 과도한) 책임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11:26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의미는,

인간이 자기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금년 한 해의 내 삶에 대한 선악을

하나님이 판단하셔야 되는데,

내가 ‘잘 했어/잘 못했어!’ 하면서

마치 내가 스스로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이 된 것처럼, 

내 스스로 판단해 버리는 태도가,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피를 이어받은 결과이다.


그래서 늘 사람들의 마음이 무겁다는 것이다.

그 ‘과도한 책임감’ 때문에...

사실은 그게 ‘내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 하는 교만’에서 온 것인데...


▲본문 설명

예수께서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에서 엄청난 기적을 많이 베푸셨는데,

말씀도 많이 가르치셨는데,

그런데 아무도, 거의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 마11:20~21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이 세상에까지 내려오셔서, 심혈을 기울이신 사역이

처참하게 실패해 버리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도 실패했던 적이 있었다. 여러분 너무 절망 마시라)


기적을 보여주셨는데도 안 믿고,

그 권세로 말씀을 가르치셨는데도.. 예수님을 거의 안 믿었다.

이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선교사가 1년 동안 열심히 다니며, 선교지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 열매가, 눈에 뛰게는 아무 것도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일로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으셨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11:26


아버지가 옳으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뜻’대로 결과가 되어지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의 뜻’대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걸 믿고, 예수님은 마음이 가벼워지실 수 있었다.. 라고 본다.


▲그러므로 금년 한 해를 돌아보시며 이렇게 기도하시라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특별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라고 기도하시라.


이상하다. 이걸 반복해서 기도하면

내 마음이 뜬다. 가벼워진다.

내 마음에 붙잡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빠져나가면서.. 가벼워진다.


    이것은, 한 해를 제멋대로 게으르게 살다가, 자기를 합리화하는 변명은 아니다.

    한 해를 쫓기듯 열심히 살지만, 그렇다고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쫓기지 않더라도, 하나님 뜻대로 열심히/평안하게 살더라도,

    모든 게 내 생각, 내 뜻,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마11:26

    그러고 나면 예수님처럼 마음이 가벼워지고, 평안해지는 것이다.


바로 이 말씀 다음에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그러므로 28절의 고백이 나오려면,

먼저 26절의 고백이 전제조건처럼 나와야 하는 것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것이다.


출애굽 여정 40년은 사실 이것을 훈련하는 과정이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이 믿음을 가지는 훈련이었다.

그런데 그 훈련에는 무려 40년이나 필요했다.

 

하나님이 만나 한 가지밖에 안 주셔도,

하나님이 물을 제때에 안 주셔서 목말라 죽을 뻔해도

하나님이 광야에서 뺑뺑이를 돌리시더라도

(조건이 이 정도면, 얼마나 불평이 팽배했겠는가, 건드리면 터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고백을 하라는 것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 주권, 섭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훈련 - 그것이 40년 광야 훈련의 핵심이었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더라도,

     뜻밖의 질병의 선고를 당했더라도,

     쌓아왔던 모든 기반이 다 무너져 내리더라도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신뢰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마음의 가벼움, 내 마음의 평안을 누리라는 말이다.


▲마치는 말

내 인생을 내가 판단하고 있으면, 내가 책임지고 있으면,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는 형국이 된다. 내가 하나님(판단자)이 되는 셈이다.

그 결과 걱정, 근심, 불평, 불만이 생기게 된다.

내 마음에 신음소리가 생긴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내 마음에 감사하지 못했던 모든 시간들이 많았던 것은,

내 판단, 내 책임.., 내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책임을 지다보니, 내 삶이 무거워진 것이다.


돈벌이도, 자식 양육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내가 최선을 다해 살지만, 결과는 내 기대와 다를 수 있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면서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 뜻에 내가 맞추기를 원하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매일을 열심히 살지만, 기도도 열심히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하는대로, 그대로 결과가 나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이때 입에서 간질간질 하면서,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온다.

    ‘하나님, 이러실 수 있습니까?  주님이 살아계시기나 한 것입니까?’

    그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 출17:7


대학입시에 떨어지든지, 붙든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면서

마음이 가벼워지시기 바란다.


물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시되

결과는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절대로 믿는 것이다.


    내 인생도, 내 자식의 인생도,

    결국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자식도 하나님의 자식이다.

    하나님이 책임지신다.

    이게 ‘선악과를 따 먹지 않는’ 인생인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하나님의 선하심/지혜/섭리에 다 맡기고..

    나는 그 안에서 쉼을 누리는 것이다.

    꼭 성공해서 쉼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섭리안에서, 쉼을 누리는 것이다.

 

...................... 더 읽으실 분 ..........................


마11:25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지혜로운, 슬기 있는 자들(여기서는 안 좋은 의미임)은 판단한다.

일이 좋다 나쁘다고 스스로 판단한다.

그리고 자기가 책임을 지려고 한다.


이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역사가 가려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에게는 절대 하나님의 나라가 비춰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일은, 뭐든지 다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 삶의 통찰력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이 잠적하신 것같은 세상? 2790  (0) 2010.12.13
모세의 퇴장  (0) 2010.10.29
거짓 선지자  (0) 2010.10.13
적어진 후에야 비로소 2642  (0) 2010.09.10
죄사함 받은 증거 2566  (0) 2010.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