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기적, 그 신학적 얽힘 막11:20~25 -출처보기, 정리-
※정리과정에서, 원문의 흐름과 약간 달라질 수도 있음
◑예수는 무엇에 대해 기도했을까?
▶마가복음의 특징 - 예수님의 사적인 생활을 기록하지 않는다.
마가복음에는 비밀이 많다. 예수의 메시아 정체를 노출하지 말라는
이른바 ‘메시아의 비밀 messianic secret’이 그 중 대표적인 비밀이지만
그것 외에도 마가복음의 비밀은 더 있다.
예수가 광야에서 시험을 받을 때 막1:12-13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과 달리
마가복음에는 무슨 시험을 어떻게 받았는지 상세한 언급이 없다.
이보다 더 궁금한 비밀도 있다. 그것은 예수의 사적인 생활에 관한 비밀이다.
예수가 홀로 머물던 순간의 기록은 ‘아주 희박’하다.
‘전혀 없다’고 쓰지 않고 ‘아주 희박하다’고 쓰는 것은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있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홀로 기도하는 모습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적인 생활의 기록이 마가복음에 거의 없는데,
예외적으로 기록한 유일한 예가, 홀로 기도하시는 예수의 모습이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그만큼 마가복음은 복음서 중에 기도를 강조한다.)
마가복음에서 예수는 3번 홀로 기도하시는 것으로 기록한다. 막1:35, 6:46, 14:32~42
이 가운데 마지막 세 번째 겟세마네의 기도를 제외하곤
그 상세한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예수가 그저 ‘외딴 곳’ 또는 ‘산’에서 기도했다는 식의 개괄적 기록뿐,
그 ‘외딴 곳’이나 ‘산’이 구체적으로 어디였으며,
그가 거기서 무엇을 어떻게 기도했는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비밀이다.
세 번째 겟세마네의 기도를 해석의 잣대로 사용해서, 1~2번째 기도를 유추한다면,
그 기도의 주요 내용은,
예수가 자신의 수난과 죽음을 전망하면서 (겟세마네 기도처럼)
자신의 뜻을 넘어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고자 한 기도였으리라고 추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 말고도) ‘치유사역’에 대해서, 예수님은 많이 기도하셨다.
마가복음에는 특히 치유 사역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그렇다면 예수의 기도 내용을 채울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로
우리는 치유의 능력을 설정할 수 있다.
예수의 사역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한 그 치유 활동의 에너지 충전 차원에서
예수는 기도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했다는 식의 상정이다.
실제로 그는 단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는 생래적인 타이틀을
권위적으로 내세워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기보다
평소의 기도 훈련으로, 그 타이틀에 걸맞은 실력을 스스로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마치 재벌 아들이 제 나름의 인격 수양이나 경영 능력 없이
단지 재벌 아들이라는 그 위상에 기대어
아버지의 재산을 제멋대로 펑펑 써대면서 으스대는 것처럼
예수는 그렇게 제 신분상의 ‘빽’을 남용하지 않은 듯하다.
예수는 질병과 마귀에 대적할 만한
신적인 권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기도를 선용한 것이다.
▶신유 능력을 위해, 평소에 예수님이 기도하셨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가 변화산 사건 직후 축귀와 관련하여 있었던
다음의 에피소드이다. 막9:14~29
어떤 사람이 미친 듯 거꾸러지고 거품을 흘리는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제자들에게 축귀를 부탁했다.
제자들은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마침내 그 아비가 치유를 간청하자, 예수는 대뜸 ‘믿음’을 강조한다.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수의 답변이다.
마침내 예수의 단호한 명령으로 귀신은 쫓겨난다.
집안으로 들어가 축귀에 실패한 제자들이 그 실패의 이유를 묻자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명료하다. “이런 유는 기도 이외에는
그 어떤 방식으로도 나오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막9:29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기도와 기적의 신학적 상관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수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한테 확실한 ‘믿음’이 없는 상태를 나무라지만
제자들에게는 ‘기도’의 부재를 지적한다.
이 기록으로만 보자면 축귀나 치유 기적은, 당사자나 보호자의 확실한 ‘믿음’과
후원자의 ‘기도’로 가능해진다.
여기서는 믿음이든, 기도든,
이 모두가 하나님의 신적인 능력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언급되고 있다.
▶중간 정리하면,
예수님은 경건한 유대인의 예법에 준하여
예수가 하루에 적어도 세 번씩 기도했다고 볼 수 있는데...
4복음서 중에서 특히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기도에 대해 많이 할애하고 있는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과연 무슨 내용으로 기도하셨느냐고 질문해 볼 때,
①십자가의 길을 바라보시며 그 길을 준비하는 기도
②신유나 축귀 사역을 위한 평소의 기도
를 드리셨을 것으로 본다.
그 두 가지는, 마가복음의 기도 신학적 견지에서
서로 긴장하면서 동시에 보완하는 관계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더 자세히 살펴보면...
◑능력을 구하는 기도 막10:20~24
마가복음의 기도의 가르침은,
가령 산상수훈의 기도의 가르침(마6:5-8, 골방기도)과 달리
기도자의 마음가짐이나 자세를 표나게 앞세우지 않는 듯하다.
그 대신 강조되는 것은, 기도의 실질적 효과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즉 기도의 윤리적 측면(골방기도)보다는
기도의 실제적 능력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호의 막11:25절 해석 참조 요망)
그런 ‘능력을 얻게 되는 기도’의 예를, 마가복음에서 살펴보면,
▶1. 위에서 언급한 막9:29절의 ‘귀먹고 벙어리된 귀신의 축귀 예’에서 보듯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기도에 있음을 강조하셨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기도의 부족에 있었다는 것이다.
막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2.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기도에 관한 직접적인 가르침으로 마가복음에서 유일한 구절(막11:23~25↓)은
그런데 좀 이상한 문맥 속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서 나온다.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 가 있거든 용서하라... 막11:23~25
‘샌드위치 기법’으로 막11:12~25단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빵 :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 (이 시점에서 저주하신 진의 파악이 아직 어렵다)
②고기 패드 : 성전청결 /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핵심주제는 기도)
③빵 : 저주하신 무화가나무가 진짜 말라버린 것 발견하고서 연이어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24 (기도에 관한 마무리)
저 산을 명하여 바다로 옮기우라 (기도)해도 그대로 되리라 :23
정리하면, 기도의 본질은,
(십자가를 앞두고 준비하는 삶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신적인divine 능력을 얻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막11:12~25절 단락에서, 소위 샌드위치 기법으로 가르치신
<무화과나무 저주 - 성전청결, 내집은 기도하는 집 - 무화과나무 마른 것 보시고 기도에 대해 교훈>
의 주제이다.
즉, 기도하면, 능력을 받아서,
무화과나무만 마르게 할뿐 아니라, 저 산을 명하여 바다로 던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는 말
여기서 예수는 어마어마한 ‘산’을 예로 들어서
기도의 능력, 능력으로서의 기도를 말씀하고자 한 것이다.
여기서 본문이 말하는 기도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가 아니라
‘주시옵소서’로 표상되는 간구다.
“너희가 기도하면서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미 그것을 받은 줄로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막 11:24). 주1)
※저/편집자는, 그동안 이 블로그를 통해서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으며,
뭘 구해서 얻는 것은, 필요하지만, 기도의 본질은 아니라는 흐름으로 설명해 왔습니다.
‘기도해서 능력을 얻는다’는 개념은, 이제껏 자세히 설명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도 필요는 하겠지만, 그것이 기도의 본질(중의 하나)이라고는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다.
소위 '소나무 뿌리 뽑는 기도' 말입니다.
그런데 위 글은,
마가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기도의 중요한 본질 중 한 가지가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는 것과 아울러)
기도해서 능력을 얻는 것이란 논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 동안 부흥사들이 부흥회 때 강조한 ‘기도의 본질’
즉 ‘기도해서 능력을 받는 것’이, 그 신학적/성경적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일단 여러분께 소개해 올리고,
이 논지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으로 앞으로 마가복음을 찬찬히 읽으며,
또한 마가복음을 다른 복음서과 비교해 보면서
결론은 숙제로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내리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깊이 해 보신 분들의 체험담에 의하면,
기도를 깊이/오래 하면, 평소에 없던 신적 능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러나 기도에 있어서.. 삶의 순종, 교제, 친밀함 등도, 물론 함께 고려되어야 하겠지요.
그런 것 다 무시하고, 기도만 하루에 수 시간씩 한다고, 능력이 생기는 아니겠지요.
만약 생긴다면, 그것은 출처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하겠지요. 얼마든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능력'이라 하지않고, '불법'을 행한다고 하잖아요. 능력은 능력입니다만..
◑기도, 용서, 하나님의 뜻
막11: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 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다음 호 http://blog.daum.net/rfcdrfcd/15972889 에 계속)
주1)
여기서 단순과거의 시제로 씌어진 동사 ‘받다’(elabete)의 의미에 대하여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 과거시제는 기도와 구할 때의 시제보다 앞선다.
그러니까 기도하기도 전에 이미 받은 경우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 기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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