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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하지 맙시다 2707

LNCK 2010. 10. 24. 22:13

◈불평하지 맙시다                    신8:1~4                         설교2편조합



◑1. 교만으로 인한 불평


▲광야 생활 40년 속에 담긴 뜻은, 첫째가 겸손의 훈련이었다.

출애굽의 10재앙, 홍해 기적은.. 모두가 ‘은혜’였다.

그러나 ‘은혜’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40년 동안의 훈련기간이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많은 시련을 통해서, 가나안에 들어 갈만한 사람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게 40년이나 걸렸다. 40년이란 긴 시간을 보내고야

비로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1)


    어떤 분은 80세가 넘어서, 이제야 사람 같은 말 한 마디 하는 것 보았다.

    사람 하나 성품이 바로 되는데, 오늘날 우리도 40년 이상 걸린다는 것이다.


▲겸손의 훈련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8:2 


하나님은 겸손을 제일 귀중하게 보신다.

기독교인의 최고의 덕은 겸손이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교만하면 안 된다.


교만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자기 스스로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하려는 속성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면서, 신앙을 명목삼아 교만하면 큰 일 난다.)


하나님의 40년 광야 훈련 목적은 - 첫 번째 목적이 겸손이었다. 너를 낮추시며...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었다.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교만한 믿음, 겸손한 믿음이 있다.

①‘합격할 줄 믿습니다. 사업이 잘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것을 교만한 믿음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뜻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믿는다는데, 제 마음대로 믿는 것 같다.

자기 욕망을 신앙화해서, 주실 줄을 믿는다며 달라고 조르는 것..

그 달라는 소원들이 따지고 보면 다 세속적인 것들인데,

그것을 목 놓아 부르짖는 것, 자기 고집으로 하나님의 뜻을 꺾겠다는 것이다.

반드시 주실 줄을 믿는다면서...


②그러나 겸손한 믿음은, 내 고집을 버리고,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수용한다.


    ‘주실 줄로 믿습니다!’는 .. 교만한 믿음이고,

    ‘받은 줄로 믿습니다!’ .. 이것이 겸손한 믿음이다.


병들어도, 실패해도,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거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 사랑, 깊은 뜻이 있음을 믿는다.

No도 응답이고, Wait도 응답인 것을 믿는다.

우리가 많은 어려움을 겪어도.. 그 속에서도 주님의 세밀한 뜻과 섭리를 찾는다.


10년도 좋고, 20년도 좋고, 40년도 좋다.

하나님의 시간에, 가나안에 갈 것이다.

그것을 믿고, 마음이 늘 편하다.

40년 광야에 살게 한 목적이.. 나를 낮추시며 겸손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2. 경제 문제로 인한 불만


하나님께서 40년간 백성들을 훈련시키신 두 번째 큰 목적은

‘경제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훈련이었다.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8:3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떄, 이 말씀을 인용하셨다.

40일을 금식하신 다음에, 몹시 주리신 때에, 이 말씀을 인용하셨다.

배부를 때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도, 몹시 주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이 신8:3절을 고백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40년이나 걸리셨다.

왜 만나를 매일 주셨는가?

그것도 왜 한꺼번에 주시지 않고, 매일매일 찔끔찔끔 주셨는가?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이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 살지 않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뜻은?

오늘도 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큰 문제가 경제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피상적 문제요,

그 근본을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 신앙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기술 혁명, 부의 축적.. 이런 것들이 사람을 ‘잘’ 살게 만든다고 여기지만, 

그러나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문제가 있다.

쉽게 예를 들면, 성공한 사람들이 많이들 자살하는 것을 보면, 단적인 예가 된다.

경제문제가 해결되어도, 사람의 근본문제는.. 사실 영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광야 40년동안 하나님이 그것을 가르치신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 살지 않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여러분, 나는 아직도 인생의 모든 문제를 - 경제문제로 보시는가?

그건 사실 공산주의자들, 유물론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


오늘 내 눈에는, 돈이 없어서 기근에 처한 현실만 눈에 들어오는가? - 더 훈련이 필요하다.

아니면 오늘 내 눈에는, 말씀이 없어서 사방이 기근에 처한 현실이, 내 눈에 들어오고 있는가?


▲내 경제 문제를 아직 완전히 주님께 맡기지 못했다면..

그래서 경제문제 때문에 자꾸 불평이 나온다면,

죄송하지만, 아직 광야 40년 여정을 나는 현재 통과 중에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 ‘가나안 땅/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


사실 이게 믿음이 있다고, 쉽게 하루 만에 해결되는 과제는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이나 걸렸다.

어쩌면 우리는 40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래도 온전히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신8:2. 너를 시험하사..

그래서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이, 낙타가.. 할 만큼 어렵다고 하신 것이다.



◑3. 행악자로 인한 불평


다윗은 기도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말한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시37:1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할 때, 방해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신경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

행악자의 형통함을 악한 꾀를 이루는 것을 인하여 불평하게 된다.


불평하는 것은, 내가 내 판단대로 되지 않을 때 불평하게 된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도 계속 ‘불평 금지’훈련을 받았는데,

오늘날 우리도 종종 ‘불평’하게 되는 이유가, 사실은 내 주변사람 때문이다.


이유야 어쨌든, 주님은 불평과 원망을 굉장히 싫어하신다.

그리고 사실 우리가 주변사람으로 인하여 불평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인격이 아직 미숙해서 그럴 때가.. 대부분이다.

특별히 지도자에 대한 불평.. 사실은 자기 신앙 인격이 미숙한 이유인 경우가 많다.


여러분, 주님의 성품 가운데는 불평과 원망을 무겁게 다루신다.

왜냐하면, 불평과 원망은,

하나님의 행하심이 내가 원하는 소원대로 되지 않을 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시37:1

라고 했는데, 그 불평에는 꼭 투기가 세트로 동반된다.

사실은 투기/질투심이 있기 때문에, 불평하게 된다.


이런 것은, 영적인 은사와 사실 별로 상관없다.

영적인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도.. 불평하고, 질투하는데서.. 면제되지 않는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시37:2

다윗이 행악자로 인하여 불평하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때에 공의대로 임할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행악자로 인한 불평’ 문제도, 사실은 내 신앙미숙 문제라는 것이다.


우연히 루이스 책을 읽는데,

거기에 <하나님이 왜 세상에 전쟁을 허락하시느냐?>는 대목이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전쟁이 비극인 것은 분명하지만, 만약에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 전쟁터에 나가있는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하며 지내겠는가?


만약에 전쟁이 없다면, 이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은

지금 젊음을, 인생을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현실에서, 죽음을 직면하게 되니까,

이 젊은이들이, 영원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영생에 대해 생각을 하고, 하나님을 찾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은 비극이지만, 이 전쟁이라는 것을 통해서

오히려 이 젊은이들에게는, 자기들의 영혼과 믿음에 더 유익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변 사람들과 해결되지 않는 오랜 갈등이 있는 것도,

어쩌면 내 영혼에 유익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불평해서는 안 된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에 소원을 이루어 주리시로다. 시37:4


이 말씀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일까?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다.


▲1. 이것은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욕으로 기도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Yes도 응답이지만, No/Wait/Grow(성장하면 주신다)도 응답이다.


그러니 ‘받은 줄로 믿습니다!’ 하면서 기뻐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사업이 안 되고, 내 소원대로 안 되어도-

하나님을 기뻐한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정말 믿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남편이 꼭 돈 많이 벌어와야 그를 믿고 신뢰할 것인가?

하나님도 마찬가지다. 꼭 내 소원대로 들어주셔야 그 분을 믿겠다는 것은,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이다.


여러분 혹시 “팔아먹은 은혜”란 이야기 들어보셨는가?

이경재 목사님이 학교에 다닐 때, 그 반에서 공부를 아주 잘했는데,

그래서 자기 반에서 공부를 제일 못하는 학생이,

연애편지를 써달라면 대신 써주고, 공부 가르쳐 달라면 가르쳐 주었는데,


나중에 사회에 나와 보니,

공부를 못한 그 사람은, 돈을 잘 벌어서 부자로 사는데,

공부 잘한 자기는,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가난해서

신혼생활에 땟거리가 없어서, 금반지도 팔아먹고, 옷도 팔아먹고

심지어 놋대야까지도 다 팔아서 양식을 사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 학교다닐 때, 공부가 형편없는 친구는 잘사는데, 나는 왜 요모양 요꼴인가’

하고 늘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느 날 밤에는 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찬송을 부르는데,

“나의 모든 보배는 저 천국에 쌓였네. 나의 평생 자랑은 십자가뿐이로다”

하고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부자 친구는 6.25 사변이 터졌을 때,

재산 때문에 이북에서 피난을 못 나왔고,

이경재 목사님은 가볍게 피난 나와서, 남한에서 목회를 잘하며 잘살았다.


그래서 그 분이 직접 “(재산을 다) 팔아먹은 은혜도 있다”고 하신 말씀을

감명 깊게 들은 적이 있다.



▲2. 여러분, 무엇을 구하기 이전에, 주님을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자.

주님과 나와의 관계는, 사업적 거래관계가 아니다.

Give and Take의 관계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뭘 구하기 이전에, 벌써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 직전에 ‘항상 기뻐하라’가 있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 직후에 ‘범사에 감사하라’가 나온다. 살전5:16~18

무슨 뜻인가?

 

쉬지 말고 내 소원을 주 앞에 기도하기 전과, 후에

‘항상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께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그 샌드위치 가운데, 내 기도를 구할 때 응답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 기도제목과 내 소원이 이루어져야, 비로소 기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안 이루어지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 역시도, 40년 광야생활을 통과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내 소원이 이루어지기 전에도, 여호와를 기뻐할’ 때까지!



◑맡기는 믿음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시37:5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맡기는 믿음’이 될 때이다.

가나안의 승리는 ‘맡기는 믿음’이 될 때 역사한다.


내 인생을 주님께 맡기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하나님 뜻대로 맡기는 것이다.

죽든지/살든지

잘 되든지/안 되든지

그냥 다 맡겨버리는 신앙이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의 신앙이다.


사렙다 과부는, 도대체 어떠한 인생을 평소에 살아왔는지, 잘 알 수 없지만,

놀라운 것은, 그의 인생에 위기에 왔을 때, 

그의 숨은 평소의 삶이 드러나 보였다.


오늘 먹고 죽을 마지막 떡 밖에 없는데,

사렙다 과부는 오늘 나의 마지막 생명보다

주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선택한 믿음의 사람이다.


그는 평소에, 자기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살았던 여인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 평소의 믿음이 드러났던 것이었다.


...........................



주1) ▲정탐꾼들의 보고로 야기된 불평이, 40년을 지연시켰다.

가데스바네아(가나안 땅 남쪽 경계선)에서 정탐꾼들이 40일간 탐지하고 돌아왔다.

그들의 부정적 보고로 인해, 회중이 불평하는 분위기가 되자,

그러자 하나님은, 그 정탐한 하루를 1년으로 쳐서, 이스라엘은 40년간 방랑하게 된다.


‘너희는 회정하여 홍해길로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신1:40


아, 정말 안타까운 순간이다. 거의 다 왔는데,

이제 가나안 땅을 밟기만 하면 되는데,

그리고 다시 그 지점까지 오는데 약 40년이 걸렸다.


순간의 실수(백성들의 불평)가, 오랜 방랑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런데 사실, 그 순간의 실수는, 원래 백성들의 바탕이 미숙한데서 온 것이었다.

그 미숙한 불평하는 신앙을 바로잡고 고치는데.. 40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14살 때 815해방을 맞았는데,

    1달 동안 매일 교회에 모여서 기뻐서 해방 감사 예배를 드렸다.


    교회 종도 일제에 빼앗겨서, 바닷가에 놓여있던 것을

    되찾아 와서, 종을 다시 걸고, 매일 종을 쳤다.

    종을 한 번 치면 1시간을 치는데, 한 달 동안 축제하며 좋아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자유를 지키지 못 했다. 그 은혜로 얻은 자유를 지킬 만한

     (성경의 예로 가나안에 들어갈 만한) 인격적, 신앙적 성숙이 못 되었던 것이다.

    해방 후에 방종, 타락, 폭력, 무질서는 말도 못 했다.

    그러다가 결국 625를 맞게 되었다...


여러분, 우리 각자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가나안 복지(하나님 나라)를 허락해 주셔도,

들어갈 자격을 아직 갖추지 못하여서, 못 들어가고 방황하는 성도들이 많다.

어떤 분들은, 40년이 걸린다.

그래도 40년만이라도, 가나안 복지(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나라)에 들어가면 다행이다.

40년이 지나도, 못 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나안을 약속해 주셨어도, 들어갈 자격이 없으면 못 들어간다.                       ▣ 크리스천 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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