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은 절망에서 시작됩니다. 롬7:21~25 출처보기
▲도입 : 멀쩡한 집을 부수는 이유
제가 고등학교 때 건강이 좋지 않아, 잠시 학교를 다니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병들어 있으니, 제 마음에 절망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때 자주 가던 기도원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 원장님에게 다음과 같이 하소연 하게 되었습니다.
“원장님! 내 인생은 다 끝났습니다!
젊은 나이에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병들었으니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때 그 원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자신이 어느 날 길을 가는데, 포크레인이 건물을 부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에 멀쩡한 건물이고, 아직도 충분히 사람이 살 수 있는 건물인데,
막 부수는 것 같아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원장님의 마음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멀쩡한 건물을 부술 때에는
그 곳에, 이전 것보다 더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 일텐데…
그렇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어려움을 주시고, 내가 세운 것을 부술 때에는
이전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구나!’
그러면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너를 부수고 있는 중이란다!
그런데 하나님이 너를 부수는 이유는 너를 완전히 망가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너를 부수고 이전보다 더 새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란다!”
그 말씀대로 하나님은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부수고, 나를 새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의 종牧師으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에게 하시는 일 - 부수기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지식과 지혜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이고, 단순한 사랑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러면 그 자녀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그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다 주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이 오히려 자녀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로 우리가 어머니를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고, 어머니의 사랑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시되 완벽한 사랑을 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최종목표는 우리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육신의 어려움이 있고, 아픔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도 우리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차근 차근 진행시켜 나갑니다.
그 과정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일이 바로 절망을 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사람에게 절망을 주고, 그 사람을 무너뜨릴까요?
그것은 마치 건물주인이 건물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것과 똑같습니다.
예전보다 더 좋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쌓은 것을 무너뜨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야만 할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잔인하거나 괴팍해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계획, 자신의 생각, 자신의 지위, 자신의 물질, 자신의 경력을 의지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나오고,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의지하는 것을 깨뜨려 버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을 내 힘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결국에는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잘 되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무엇일까요?
그 사람들은 성공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의 성공이 오히려 그들의 영혼에는 더 안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성공으로 스스로를 높이고 교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미워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 그 절망 가운데서 회복시켜 주십니다.
예전에는 내 노력으로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내면의 절망, 내면의 부서짐
▲그런데 이런 절망은 단순히 외적인 부분에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부분에서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선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래도 남보다 선하고 내가 착한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그러기에 우리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문제는 아무리 이런 이야기를 들어도.. 이것이 피부에 와 닿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나보고 죄인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나는 내가 죄인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착한 게 사는 것 같고,
그래도 제법 인생을 정직하게 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절망을 깨닫게 합니다.
내 안에 얼마나 악한 마음이 있는지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의 주인공인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말씀에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1
오늘 바울이 고백하는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라는 말의 의미는
쉬운 말로 번역하면 ‘내가 한 가지 법칙이나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깨달은 법칙은 무엇입니까?
내 안에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과 악이 내면에서 끊임없는 싸움을 벌인다는 것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7:22-23
▲그런데 그 선과 악의 싸움에서, 결국 승리하는 것은 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악한 마음이 나를 사로잡아 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로잡는다’는 말은 헬라어 ‘피프라스코’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고대에 ‘노예가 다른 주인에게로 팔려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팔려가 노예는 주인의 지배를 받으며, 주인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상태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에 팔려 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육신이 결국에는 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내가 때로는 선하게 살고 싶어도
그 마음 본질 깊숙한 곳에는 악이 나를 지배하고 나를 끌고 다닙니다.
이것을 깨달은 바울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4
이것이 바로 바울의 절망입니다.
자기 자신을 보니 자신 안에 커다란 죄성이 있고,
그 죄성이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절망하면서 이렇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
여기서 ‘곤고한 사람’이란 ‘탈라이포로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고대 사회에서 전쟁에 진 나라의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포로로 끌려가는 모습이 어떨까요?
짐승처럼 묶여서 질질 끌려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비참한 상태입니다.
바로 이 ‘곤고한’이란 의미는 또 다른 의미로 번역하면 ‘비참함’이라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의 포로로 된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이 비참함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다음과 같은 고백이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롬7:25
바울이 지금까지 자신이 비참하고 절망 가운데 있다고 고백했는데
왜 갑자기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합니까?
바로 이 비참함을 보았을 때에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가요?
▲여러분! 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까요?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처럼 고행이나 무거운 짐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티벳 불교에는 오체투지라는 것을 합니다.
몸의 다섯 부분이 땅바닥에 닿아서 가는 것입니다.
팔꿈치와 무릎이 다 까지고 상합니다. 그래야 해탈과 경지에 이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고행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 분이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해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자신이 선한 인생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인생과 내면의 절망을 깨닫게 합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인정하지 못해도 인생은 내 힘대로 살 수 없고,
나는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가 이렇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내 인생은 내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내 마음도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죄인이며, 내 내면은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하나님! 내가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분에게 내 삶과 마음을 맡기기로 결단합니다!”
하나님! 지금까지 나는 내 인생을 내 계획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선한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선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거짓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나는 그동안 내 안의 죄에 의해 끌려 다니는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죄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나의 죄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이 시간 내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 믿음이 붙들어 주시고, 성장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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