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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다 2881

LNCK 2011. 2. 19. 23:18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다          창36:1~43          07.02.13.인터넷설교스크랩, 출처



▲중요한 인물도 아닌, 에서의 족보를 길게 나열한 이유는?

본문 창36장 직전에는

야곱의 12아들의 이름이 35절에서 완벽하게 소개된 뒤에 창35:23~


본문 창36장에는 에서의 족보가 지루하리만큼 길게,

마지막절 43절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에서의 계보가 어디까지 소개되는가 하면,

4~5백년 뒤에 태어날 아들들까지

그러니까 모세 때에 출애굽이 일어나는데,

그 출애굽 시절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에서의 계보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왜 성경은, 무슨 뜻인지도 알기도 어려운 이런 계보를 나열을 할까요?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기록된 성경말씀이

왜 이렇게 지루하고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 이런 말씀들을 길게 나열할까요?

 

그런 의문을 품어 봅니다.

 


▲이것은 선택한 야곱, 선택하지 않은 에서.. 이 두 사람의 역사를 대비시켜 놓음을 통하여

하나님이 선택받은 백성을 인도하시는 역사의 의미를

아주 분명하게 이끌어내는 그런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치 성동격서(동쪽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서쪽을 침) 와 마찬가지로

성경이 에서에 대한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야곱 족보를 이끌어 가시고, 야곱 후손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선택받은 자손들 - 연단을 통해 성결하게 된다.


▲선택 받은 자손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이 시작됩니다.

이제 야곱의 족속, 에서의 족보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창37장부터 어떤 이야기가 나오느냐면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곧바로 요셉은 형제에 의해서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이 총리를 하고 있을 당시에 기근이 들면서

12아들과 야곱이 전부 애굽으로 가서 살게 됩니다.

애굽 땅에서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선택하지 않은 에서의 후손의 세일 산을 중심으로 해서

나중에 에돔 족속을 이루게 되는데,

그 땅에 이미 살고 있었던 사람들과 연합해서 결혼도 하면서

그곳에서 무궁한 번성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두 역사를 비교를 하는 것이에요.

일정한 구간 동안에 선택 받지 않은 에서의 후손들이 번성한 모습과 창36장

그리고 야곱의 후손이 번성한 모습. 출애굽기


그런데 야곱의 후손은 400년이 넘는 역사 동안에 노예로 살게 되고,

선택 받지 않은 에서의 후손들은 왕정체제를 이루고 있던 민족과 결탁하면서

문명의 최고조의 수준을 향유하면서 번성하게 됩니다.


이상하지 않아요?

(단순히 이름만 나열한 본문 창36장이 너무 소중한 메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약속한 자녀에겐 안 주시고, 약속 안 한 자녀에겐 주셨습니다.

자, 택한 자녀에게, 가나안 땅이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복지가 430~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에 유보되어 집니다.


그리고 그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지도 않은 가나안 7족속,

그리고 에서(에돔) 족속들이 차지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설교문의 제목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로 약속해 주시고는,

하나도 주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400년이 넘도록 유보되면서

 

그 400년 기간 동안에, 선택 받지 않은 자들이 그 복지를 다 차지하고 살고

왕정체제의 국가를 세우고 살고,

그 땅을 주시기로 한 선택 받은 백성들은

오히려 그 기간 동안에 노예생활을 하라고 보내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 이거 조심해서 받으셔야 합니다.)


야곱은 아시는 대로 복을 쫓아간 사람입니다. 형을 속였습니다.

장자권을 팟죽 한 그릇에 샀습니다. 염소털로 팔을 다 감싸서

아버지 이삭을 속여가면서 장자의 축복기도를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 축복의 후손은 400년 이상 노예생활을 하는 반면에,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넘겨버린,

하나님의 축복권 장자권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소홀하게 생각했던 에서는

왕정국가를 세우고, 가나안 땅 근처에서 이방민족과 섞여 살면서

어마어마한 번성과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고 누리게 됩니다.


이렇다면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해주신 것 좀 무섭지 않아요?

왜냐면 400년이 넘도록 이 긴긴 기간 동안 노예생활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연단을 통해 (축)복된 사람을 먼저 만드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이런 노예생활을 선택한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그들이 가나안 복지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 라는 것이에요.

한 마디로,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는 것이지요.


또 출애굽한 뒤에도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했다가

20살 이상 되는 장정은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기 전에 사막에서 다 죽어버리잖아요.

그것도 2주 만에 들어갈 수 있는 땅을, 40년 동안 사막을 돌게 하시면서...


그렇게 주어지는 복지라면 안 받고 말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지 않으세요?

‘왜 그러셨을까?’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에서가 아닌 야곱의 자손에게 왜 연단이 필요했을까요?


▲약속의 자녀였지만, 세상 사람과 별로 다른 게 없었습니다.

먼저 루우벤을 봅니다.

본문 창36장 에서의 족보(역사) 직전에

르우벤이 아버지의 첩 빌하를 범합니다.  창35:22

잠자리를 같이 합니다. 이런 패륜아적인 죄악이 나타납니다.


또 그 얘기에 앞서서, 시므온과 레위가 주도해서,  창34장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그것이 분통터져서 할례를 빙자해서 그 상처가 아물기 전에

그 세겜 성 전체를 전멸시켜버리는 야곱의 아들들의 범죄가 나타납니다.


세겜이 디나를 강간한 것은 충동적이었다면,

그래도 디나를 사랑해서 아내로 맞겠다고 얘기한 것은 신사적입니다.


그런 반면에 이 야곱의 아들들의 이 범죄는 계획적이고 주도적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놀라운 축복의 약속인 할례를 이용해서,

원수들을 다 멸절시키되, 아녀자까지 다 겁탈하고 재산까지 노략해버립니다.


언약을 받은 자손에게, 이러한 무서운 죄악상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 속에 숨어 있는 죄악의 뿌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죄악의 뿌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나 선택하지 않은 백성이나

동일하게 갖고 있는 무시무시한 죄악의 뿌리예요.


마치 화산이 폭발하면서 용암이 분출해서 그 모든 지역을 다 덮어버리는 것처럼

야곱의 아들들 속에 숨어 있었던 인간 본성적인 죄악이 터져 나오면서

온 세상에 야곱의 말대로 ‘악취로 덮어버리는’ 그런 잔혹한 범죄를 가하고, 창34:30

그리고 그 뒤에 자기의 여동생이 강간당했다고

그 사람들을 다 죽여 놓고는 자기 스스로는 아버지의 아내를 범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았다고, 성도가 하루아침에 성화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자녀다운 경지로 성숙되려면,

예수 믿은 이후로.. 일생에.. 연단의 과정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후손이 애굽에서 430년+출애굽광야40년 거치고 가나안에 들어옵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도 계속적으로 연단을 받습니다. 사사기에서


※의도한 것은 아닌데, 하다 보니까 우연히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이 세상에서 더 힘들다.’는 주제의 설교문을

최근 연속적으로 올리게 되었습니다.

 

1) 이 설교문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다'

2) 구름 위의 유유자적  중 ◑천국이 임하지만 불칼도 같이 임한다

3) 하나님이 붙이시는 전쟁  중 ◑ 하나님이 붙이시는 전쟁

4) 임마누엘의 목적   하나님의 임하심은 심판과 더불어 임하신다는 주제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오래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 완전히 성화된 후에입니다.

성도에게 ‘천로역정(역경의 여정)’은 천국 들어갈 때까지 계속 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일평생 '깨어지는 삶'이요, 바울서신의 표현으로는 '환란/연단/인내' 등입니다. /편집자


▲노예로 살다보니, 범죄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이 4-5백년의 두 개의 역사를 가만히 놓고 볼 때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을 왜 4-5백 년 동안

노예생활로 얽매어 놓았는지를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복지를 주신다는 것은

그 복지에서 하나님이 함께 살기를 원하셨다는 거예요.


그런데 선민이 하나님과 함께 살려면

이 죄악이 화산에서 용암이 흘러나오듯이 내버려둬서는

도저히 하나님과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망하고 죽습니다.


그래서 430년 동안 그들을 노예생활로 묶어버립니다.

그 기간에는, 뭐 범죄를 하려고 해도, 여건이 안 되는 겁니다.

그렇게 억지로, 강제적으로 성화의 삶을 체득하면서, 점점 거룩한 후손이 나오게 됩니다.


▲반면에, 에서의 후손은 그들의 본성 그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나중에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출애굽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가나안 7족속을 다 멸절시키게 만듭니다.


그리고 에돔 족속도, 그 후로 역사에 별로 힘을 쓰지 못합니다.


야곱 후손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동안,

반면에, 에돔 땅에 있는 에서의 후손들과 이 가나안 7족속들은

이러한 노예생활이 아니라 왕정체제를 구비할 만큼 발전된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자기들의 욕망을 다 그대로 표현하며 삽니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몰록 제사와 같이 자기 자식들을 우상에게 다 바치는 일들,

그리고 바알 숭배 아세라 숭배 같은 이러한 무시무시한 우상숭배가

온 땅을 덮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화산의 용암(아담의 타락한 죄성)이 분출한 거예요.


그래서 그 분출한 죄악으로 가득 덮혀 있는 세상을 청소해나가는 과정이

바로 가나안 7족속을 멸절시키는 과정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장자권을 통해 받은 야곱의 축복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장자권을 받지 못한 에서의 비극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단 5백년 가까이 지나서요! 그리고 영원히~


이렇게 하나님이 섭리를 통해서 역사를 보면

그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깊고 오묘한 것입니다.


▲정리하면,

야곱의 족속,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400년이 넘도록 애굽에서 종노릇하게 하신 이유는

그리고 계속 되는 광야 연단을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 종노릇하지 않는 한

우리 죄악이 활화산처럼 용암을 분출하게 되고, 우리의 삶을 다 덮어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돔에서 일어난 에서의 번성을 꿈꾸지 마세요.

돈 잘 벌고, 출세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장 다니고,

몸 건강하고 모든 것이 이 땅에서 형통한 것만을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된 복된 삶이 있습니다마는

천국에 올라가야 될 영적 가나안 땅으로 가야 될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서 종노릇하며 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돈 벌고 싶은 만큼.. 돈 벌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가 건강하고 싶은 만큼.. 건강하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만큼..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가 형통했으면 하고 원하는 만큼.. 형통하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대로 우리의 소망대로 이루었다가는, 우리의 죄악이 묻어나오고 새어나오면서,

용암같이 뿜어져 나오면서 우리의 삶을 죄악으로 다 덮어버리기에

하나님께서 야곱의 자손들을 노예생활을 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택하지 않은 에돔에게 번성을 주는 대신에

선택한 백성들에게 노예생활을 허락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그러한 삶의 질곡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

주님의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아예 세상에 대해서 자기가 스스로 죽어버리는 사람들.

그렇지 않으면 죄악의 뿌리가 다시 살아나니까, 죄악이 용암처럼 뿜어져 나오니까

 

스스로 십자가를 붙잡고 죽어버리는 사람들.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어버리는 그런 사람들. 그러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는 가나안 복지가 기쁨과 감사와 평강의 삶이

좀 더 빨리 주어지지 않겠습니까!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 사람들에게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예생활이 단축될 것이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고난의 신학, 영광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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