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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먹거리 2876

LNCK 2011. 2. 16. 19:31

 

◈영적인 먹거리                  요6:51              07.12.25.설교스크랩



영적으로도 배가 고프면 돈이 많아도, 성공하고 명예가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회자로서는 설교를 잘하거나 교회가 성장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영적으로 배고프면 그 사람은 참 행복이 없습니다.


이 시대에 먹을 것이 많아 배가 부르지만, 영적으로는 너무 굶주려 있습니다.

배 고픈 사람에게 금강산을 구경하라고 하면 관심이 없는 것처럼 (금강산도 식후경)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영적인 배가 고프면 행복이 없습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한 목회자도, 가만히 보면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행복하지 않는데 유명하고 대접 받는 것이 인생무상이라고 느껴집니다.

영적으로 비어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고

무엇으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있는 우리가 다 점검해봐야 합니다.

자기가 가진 것과 받은 것, 자기가 누리는 것은 다 소용 없습니다.


과연 내가 영적으로 채워졌는가, 비어있는가!

이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다 영적으로 배가 불러 진정 행복한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영적인 먹거리’에 관해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광야에 가서 40일을 금식하고 주리셨을 때 마귀가 와서 시험하기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여러분, 밥만 먹지 말고, 말씀을 먹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것처럼 날마다 말씀을 읽고

또, 예배가 있을 때마다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떡이라는 것은 단순히 성경 읽는 것이나

설교 듣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증거로

렘15: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예레미야는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자입니다.

주의 말씀을 얻어먹었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닌

계시적인 주님의 음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단순히 성경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 하신 말씀이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지금 떨어지는 말씀, 이것이 진짜 영의 양식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음성을 들은 가장 최근의 시간이 언제입니까?

여러분 심령 가운데 주님께서 정말 불 같이,

반석을 쳐서 부서뜨리는 방망이 같이 말씀하신 순간이 언제인가요?


우리는 날마다 그런 음성을 우리 영에 듣고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영의 양식입니다.


이것을 설교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설교가 단순히 성경이나 책, 혹은 머리에서 나오면 안 됩니다.

설교는 여호와의 입에서 나와야합니다. 바꿔 말해서 성령께로부터 와야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어야 하고 성령께서 비춰주시는 조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들에게 영의 양식이 됩니다.


암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이 말씀은 오늘의 현대 교회를 생중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설교자가 많고, 설교집과 설교 방송도 많습니다.

그러나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이 찬송 가사처럼 생명수가 말라 사람들 속에 기갈이 있습니다.


설교와 설교집, 방송으로 해결되지 않는 기갈이 한국교회에 분명히 임해있습니다.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고 하듯이

성도들이 신앙 생활하는 것이 너무 버겁고 힘이 들고 피곤합니다.


교회 오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 뛰며 기대감에 넘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피곤에 찌들어 있는 이유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왔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지적이고 기교투성입니다.

설교자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혹은 거의 듣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강단에서 선포할 재간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만 읽고 책만 읽고 머리를 짜냈을 뿐이지

주님 앞에서 머무르며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은 설교자들이 너무나 소수에 불과합니다.


오래전 제가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들은 얘기입니다.

세계2차대전 때로 기억하는데, 양식이 다 떨어져,

밀로 빵을 만들어야 하는데, 밀이 없어 톱밥을 잘게 가루를 내어

빵하고 똑같이 만든 것을 군인들에게 먹였습니다.

겉은 빵과 같은데 영양가가 없어 나중에 군인들이 다 죽었습니다.


저는 현대 교회의 설교들이 떠오릅니다.

겉모습은 하나님의 말씀 같으나 단순히 지적인 메시지이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생명을 살리고 힘을 주고 자라게 할 영적 칼로리가 너무 적습니다.


지식과 정보만 있을 뿐이고 영적 칼로리가 턱 없이 부족해

아무리 설교를 듣고 들어도 성도들의 영이 살아나지 못하고

기진하여 말라 죽어가는 것이

한국교회와 이 시대 교회들의 부인할 수 없는 실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교회와 이 시대 교회들을 위해 기도할 때

목회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위기가 한국교회의 위기이므로

성령과 교제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2. 우리는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눅11:9~13,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여기에서 예수님은 성령님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성령님을 구하고 계십니까?


‘성령님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시니까, (나는 구할 필요 없다)’

- 이 말은 맞습니다만, 성경의 일면만 본 것이고요,

너무 깊이 생각할 필요 없이

위 말씀이 ‘성령을 구하라’ 그랬으면, 우리는 ‘구하면’ 됩니다.


‘성령을 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안 구하면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만이 아닌 날마다 기도로써 성령을 구해서 받아야합니다.

또,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어느 정도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 것처럼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기도해야합니다.


한 시간, 두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30분을 하더라도 성령이 충만해질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시간에 기도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기도를 통해 ’성령을 먹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새 힘을 얻습니다.

성령으로 배가 불러질 때까지 날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갖게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우리는 의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하지만

아무리 성령충만해도 의를 행하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무리 선지자 노릇하고, 병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어도

불법을 행하고, 습관적인 죄를 지으면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실은 ‘의의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이 많이 모릅니다.

말씀의 중요성을 알고 ’말씀, 말씀’하지만.. 의롭진 않습니다.

균형을 잃으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중요성을 알고 영성집회를 다니며

능력 받고 성령 받으려고 하지만 양심이 죽어있습니다.

의를 중요시하지 않으며.. 말씀을 추구하거나 은사나 체험을 추구하는 것은

다 어리석고 공허하며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사람 속에는 의에 대한 목마름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어서 의로워지지 않으면.. 만족이 없고 기쁨이 없습니다.


신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사람은 의로워져야 행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어지는 배부름(삶의 만족)이 있습니다.


이 배부름에 관해 사도바울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롬2:9~10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영의 배고픔)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영의 배부름)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이것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약속된  영적인 배부름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으로 우리 영에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는데

이것이 영적 배부름이고 포만감입니다.


영적 배부름 없이는, 인간은 절대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회개하여 악에서 돌이키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으로 영적 포만감을 누리며

행복한 사람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우리는 예수님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


우리는 의로워져야 하는데

의나 거룩이 우리 목표가 아닌 정결한 처녀로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단순히 의롭게 살고 거룩해지려는 것은 종교적이고 율법적인 것입니다.

의롭게 될 뿐만 아니라 주님과 사랑에 빠져야 됩니다.


성막의 모든 기구들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떡상에 있는 진설병도 예수님입니다.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모든 음식은 식물이든 동물이든지 죽어서 사람을 위한 음식이 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살 찢고 피흘려 죽으심으로 인류를 위한 영의 음식이 되셨습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예수님을 먹게 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마다 영생하리라’


바꿔 말해 예수님을 먹지 않으면 영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 다니고 설교 듣는 것으로 예수님을 먹는 것이 아니라

회개함과 믿음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입니다.


바른 회개를 하시고 바른 믿음 갖게 되셔서

모두 예수님을 먹고 마셔 영생할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진설병은 ‘하나님의 얼굴’, ‘내 얼굴의 떡’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회개하고 믿을 뿐 아니라 주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계속 성장하기 위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주님 자신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사람, 주님을 사랑하고 친밀해지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이것이 주님으로 우리 영을 채우는 것입니다.


아래 간증주1) 에서처럼

우리는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임재의 떡을 구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의 떡을 먹기 위해 주님 앞에서 머무르고 시간을 보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자신의 영을 채워야합니다.


제가 요즘 기도를 하며 작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다가 조금 하면 기도시간이 평화롭고 기쁘고 감미롭지만

시간이 지나다보면 똑같은 분량을 기도해도 영이 채워지지 않고 공허해집니다.


그러면 사람은 만족을 찾게 되기 때문에 죄에 대해 취약해집니다.


그러다가 제가 최근에 하나님께 끊임 없이 무언가 구하기보다는

잠잠히 하나님 앞에 기다리며 머무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지만 기도가 깊어지면 조용해집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라 우리가 말해야만 듣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저 우리의 심령으로, 마음으로 쏟아내는 것이지


정말 회개의 영이 강타해서 울며 기도하는 것아 아니라

늘 시끄럽게 기도하는 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흐름을 따라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기도함에도 굉장히 죄를 깨닫거나

주님의 은혜가 특별히 강하게 임한 것도 아닌데

혼자 요란하게 기도한다면 교만입니다.

육이고 혈기입니다.


마음에서 불 같이 일어날 때 통성기도가 합당하지만

인격적으로 주님과 교제할 때엔 통성기도가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기도하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아뢰기도 하지만

주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저는 만나면 끝날 때까지 떠드는 사람과 있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시작하면 한 시간동안 방언으로 혹은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방언과 통성기도가 필요하지만 주님 앞에 잠잠히 머무르는 것도 필요합니다.

잠잠히 주님께 관심과 초점을 맞추어 임재해 계신 주님을 인식하고

더 깊이 임재 속으로 들어가서 주님을 더 깊이 느끼고 속으로 잠잠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가 느끼는 주님의 성품이 나의 성품이 되게,

내가 느끼는 주님이 내 속에 들어오게 해주시고 나의 특성이 변화되게 해주옵소서.

주님을 닮기 원합니다.


삶 속에서도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며

주님 말씀대로 합당하게 살아갈 은혜를 베푸소서.


기도시간에만 임재를 느끼는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게 해주옵소서.

주님의 임재를 삶 속에서 느끼며 삶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변화되게 하옵소서.’



◑5. 우리는 ‘헌신’으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한다.


우리는 주님과 교제해야 하지만, 부부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가장 중요하고 비중이 가장 큰 것이지,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그것으로 인간이 참으로 행복해지는 것이지 완전히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참으로 행복한 것과 완전히 행복한 것은 다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있어야 하고 친구와의 우정도 있어야합니다.

주님이 제일 친한 친구이지만 두 번째 좋은 친구, 세 번째 좋은 친구도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인간은 진짜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만.. 직장에서 일도 해야 합니다.

직장과 교회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예수님이 수가성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이 양식을 구하러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홀로 앉아계시다가 물 길러 온 여인에게 예언전도를 하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이 돌아와 "랍비여, 잡수소서."하며 음식 들기를 청하였을 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의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양식을 먹어야합니다.

실제로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일하는 것은 영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봉사하고 섬길 때

설교 듣는 것 이상으로 은혜를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납니다.

정말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밥 하는 것을 일로 생각하지 않고 기쁨입니다.

이것 자체가 마음의 양식이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어 시장에 가서 반찬을 만드는 것이

영적 생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집안일은 돌보지 않은 채로 기도하고, 사역 하러 교회에만 나오면 잘못된 것입니다.


영적 삶은 주님을 사랑하면 남편을 더 사랑하고,

아내를 더 사랑하고, 자녀를 더 사랑합니다.


남편들도 마찬가지로 직장이 있고 일을 해서

아내와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 것에 기쁨을 느끼며

배부르고 만족을 얻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양식입니다.

쓰레기 치우고, 청소하는 일.. 그것도 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냄새 나고 꺼려하는 일이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진정한 봉사를 할 때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불평하고 짜증내면 진정한 봉사가 아닙니다.

바울처럼 매 맞고 옥에 갇혔음에도 기뻐하여 옥 중에서 찬양할 수 있듯이

일하고 봉사하며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진짜 봉사입니다.


진짜 봉사를 하게 되면 우리의 영의 양식이 되고 봉사하며

힘을 얻고 은혜를 받고 새로워지고 성장합니다.

여러분, 말쟁이가 되지 않고 진짜 봉사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치는 말

오늘 설교는 일종의 메뉴판입니다.

첫 번째가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두 번째로 성령,

세 번째로 의,

네 번째로 예수님,

다섯 번째로 진정으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먹어야 할 영의 양식입니다.

양식을 먹는 것에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양식에 나의 영적 성장이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외식하지 않고 실제적인 양식을 먹으면

나중 되었더라도 빠르게 성장하여 먼저 되는 자가 될 것입니다.


............................................

 


주1) 이소영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개인적 체험은 그저 참고만 하시고, 성경보다 더 앞세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수요 예배에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서 큰 은혜를 주실 거라는 기대를 갖고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설교 중에 목사님께서 식당에 가서 냄새만 맡지 말고 먹어야 되지 않겠냐고

임재의 분위기 냄새만 맡지 말고 간절히 예수님 자신을 구하라고,

임재의 떡을 먹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예수님, 바로 지금 예수님을 원해요…

그저 예수님 임재의 분위기나 냄새에 만족하지 않고, 실재적인 예수님을 바로 지금 원합니다.’

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안수해 주셨을 때, 주님의 임재가 강하게 느껴져 자리에 누웠습니다.

밝은 빛 속에서 흰옷을 입은 예수님이 서 계셨습니다.

어린아이가 된 제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예수님, 지금 예수님을 저에게 주세요.’ 하고 말하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수많은 상처와 피투성이 모습으로 변하시고

심장에서 조그만 살을 ’이것을 먹으라’ 하며 하나 떼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손에서는 핏덩이였는데, 제가 두 손으로 받자 하얀 떡으로 변했습니다.


제가 ’예수님 저는 사랑이 너무 부족해요 예수님의 사랑을 더 주세요’ 하고 말하자

다시 한 번 살점을 떼어서 주셨습니다.

조그만 살점이 아까보다 훨씬 큰 떡덩이로 변해 있었습니다.


한 번 더 예수님께 ‘예수님 더 주세요’ 하자 한 번 더 주셨습니다.

다시 주실 때마다 점점 더 큰 떡덩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조그만 잔에 심장에서 흐르는 피를 떠서 저에게 주셨습니다.

예수님 손에서는 작은 작이었는데 제 손에 주어지자

갑자기 엄청나게 큰 잔으로 변했습니다.

두 팔로 가득 안아야 될 큰 잔에 포도주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 성령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