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7

구름 위의 유유자적

LNCK 2011. 2. 18. 22:59

 

◈구름 위의 유유자적             마3:1~12          07.01.01. 스크랩

 

▲도입 일화

제가 영락교회에서 부목사로 교구를 맡아서 시무를 할 때 있었던 기억입니다.

흑석동 산동네에 아파트에 살고 계시는 한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가 폐암을 앓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심방을 하기도 했고 그러던 차에 그 교구를 맡고 계신 구역장님으로부터

할아버지에게 병상 세례를 베풀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전갈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그 교구를 맡고 계시는 장로님과 함께

세례에 필요한 도구를 가지고 그 할아버지 댁을 찾아가게 됩니다.

 

할아버지 댁에 찾아 갔을 때 너무 아프시고 연세도 많으시고 기력도 없으시고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아예 처음부터 반말이십니다.

 

"아니, 목사!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아?

그리고 목사를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이러면서 할아버지가 막 우시다시피 그 아픔을 이기지 못하셔서

마지막 말기에 그 통증을 이기지 못하셔서 괴로워하시면서

손을 휘저으며 반가워하신 것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제 제가 몇 가지 세례문답에 필요한 질문을 하고

병상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 준비를 하며 시작하는데,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것을 깨닫고 인정하십니까?"

 

이렇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는데 할아버지가 제 말을 뺏어서

곧바로 당신이 기도를 하십니다.

눈을 뜨고 괴로워하시면서 아파 통증에 눌린 그런 음성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시는데, 지금도 기도의 내용을 제가 기억을 합니다.

 

기도의 내용들이 대충 이런 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고 하는데

나는 정말로 못되어 먹은 자식입니다.

평생 동안 술만 먹고, 그리고 도박만 하며 살았습니다.

이런 나쁜 놈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 그저 이 못나고 못된 놈 그저 용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면서 기도를 주욱 하시는데 기도의 내용을 들은 이후에는

더 이상 세례에 필요한 질문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신앙 고백적인 이야기들이, 할아버지 특유의 언어들을 통해서 다 표현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문답 하는 것을 중단해버리고

고백이 담겨져 있는 기도를 한 뒤에 곧바로 병상 세례를 베풀게 되었습니다.

 

병상 세례를 베풀고, 할아버지께서 찬송을 불러달라는 부탁을 해주셔서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 방에 앉아서 찬송을 부르게 되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찬송 부르는 저를 향해서 허공에다 대고 막 손을 휘졌습니다.

 

그래서 찬송을 그치고 "왜요? 할아버지. 이 찬송 그만 둬요? 듣기 싫어요?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마음에 거슬려요?" 그랬더니 아니래요.

 

뭐라고 말씀하셔서, 제 귀를 갖다 댔더니,

"아, 있잖아 있잖아. 목사님 앉아 있는 그 밑에서 구름이 자꾸 흘러서 나한테 오는 거야.

내가 이불을 이렇게 깔고 누워 있는데 자꾸 내 요 밑으로 구름이 지나가 구름이 지나가." 그러셔요.

 

“그래요?” 그러면서 약간 제 마음과 온 몸에 소름이 끼칩니다.

아파서 다 죽어가시는 할아버지가 난데없이 구름이 몰려온다고 얘기하니까

맨 처음에는 이 할아버지가 너무 아프신 가운데 정신이 없으신 거 아닌가?

이런 느낌을 가지면서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할아버지! 구름이 몰려온다고요? 헛것이 보이나? 찬송을 그만 부를까요?"

찬송은 그냥 불러 달래요. 그래서 찬송을 합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두 손을 휘저으면서(마치 구름을 만지듯이)

"구름이 오네. 자꾸 구름이 오네." 그러세요.

 

이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에 지혜를 주시는 겁니다.

섬뜩하고 소름이 끼치고 이상한 분위기가

그 할아버지의 말과 함께 갑자기 방안에 엄습을 하는데

제 자신이 마음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밀려가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 응답을 주십니다.

 

‘지금 이 할아버지가 바로 천국 문 앞에 와 있다’고 하는 지혜를 제 마음 속에 주십니다.

천국 문이 열렸고 이 할아버지를 받아들이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 방안에 지금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에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면서 그 할아버지가 마음속에 그렇게 가득히 가득히 담고 있던

이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착과,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집착들이 다 비워지면서

할아버지의 마음이 둥둥 떠서 구름 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구름 위로 올라와서 그 구름 위에서 천국 문을 활짝 열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마음의 깨달음을 하나님께서 주고 계시는데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가 나를 기다려!"

 

또 소름이 쫙 끼칩니다.

"아버지가 나를 기다려. 나 아버지께로 빨리 가고 싶어!"

 

지금 구름은 떠 가서 요 밑으로 구름이 지나갑니다.

할아버지는 구름 위에 얹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 마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향해 두 팔을 벌리시고

부르시는 모습을 마음 속에 보십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가고 싶다, 가고 싶다 하는데,

여러분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창백하게 고통에 신음하고 다 죽어가서

입술에 핏기가 하나도 없는 새까만 입술로 있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붉디 붉은 어린아이 같은 붉은 색을 띠게 되면서 모든 통증이 사라지며

 

할아버지가 "안 아파. 너무 편해. 너무 편해. 나, 아버지께로 빨리 가고 싶어. 가고 싶어."

이렇게 상태가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통증도 사라져 하늘 빛을 보면서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얼굴에 붉은 빛의 핏기가 돌아오고 아버지께로 가고 싶다고 하신 그 할아버지는

제가 심방하고 돌아온 3일 뒤에,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성도의 삶은, ‘천국을 사는 것’  다른 말로 ‘구름 위의 산책’

 

▲그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도 마찬가집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나는 어떤 위치를 점하고 삽니까?

-땅에 발을 딛고 사느냐,

-구름 위로 올라가서(천국에서) 이 땅을 사느냐?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나는 구름 위에 있어야 합니다.

 

‘성도가 지금 구름 위에 있다’(천국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한 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구름이 가려져서 승천하시는 예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계14장에 보면,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이한 낫을 들고 휘두르매

많은 곡식이 거두어졌다’ 라고 하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구름에 가려져 구름 위에 계십니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다’(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그리스도는 구름 위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구름 위에 계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내가 너희와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할 것’을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영적인 주민등록의 소재지가

바로 구름 위라고 하는 것을

우리들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임하는 것은, ‘천국(구름)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땅에 내려온 천국,

이 땅에 내려온 구름 위로 올라가고,

 

이 땅에 내려온 하늘 되시는 예수님 안으로 들어가서

이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구름 위에서 사는 사람들인 것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엡2:6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은 다음에

다시 일으킴을 받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구름 위에 하늘 위에 앉히운 바 되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지만, 절대로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천국을 사는 삶, ‘구름 위의 산책’적 삶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

(물론 8복도 있고, 신약의 모든 말씀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도 있고요,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성도가 천국을 쉽게 살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천국 앞에 불칼(화염검)이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국이 임하지만, 불칼도 같이 임합니다.

 

▲천국은 회개와 더불어 옵니다.

‘하늘이 내려왔다. 구름이 내려왔다’는 이 이야기를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세례 요한이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는 선포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제 구름 위로 올라가서 천국을 살아가야 된다고 선포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단서를 부칩니다. ‘회개하라’

땅으로 내려온 하늘을 살기 위해서, 구름 위의 산책이 되기 위해서는,

‘회개’를 붙여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입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세례요한의 마태3장에 기록된 언급들이

너무나 살벌하다는 것이에요.

 

▲천국은, 살벌한 진노와 같이 선포되어졌습니다.

천국은 기쁜 것 아닙니까? 꿈에도 가고 싶어 할 곳이 천국이 아닙니까?

복음입니다.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기쁨의 소리를 전하는데, 왜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의 말을 합니까?

 

세례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하면서, 

곧바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천국과는 맞지도 않는 이야기,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며 살벌하게 진노를 말합니다.

 

‘천국의 도래’ 와 ‘임박한 진노의 도래’가 한 사건이란 말입니다.

 

마3: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마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여기에 아주 깊은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천국에는 화염검이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천국의 기쁨으로 살지 못하고,

오늘도 우리 마음속에 천국의 행복함이 넘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그럴까요? 여러분!

 

왜 천국이 임하고, 구름 위로 올라가도록 하늘이 내려 왔는데,

임박한 진노를 얘기하고, 도끼가 나무뿌리에 던져졌으니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불에 던져지리라 라는 끔찍한 이야기가

기쁘고 행복한 천국 도래와 함께 같이 선포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3:10

 

아담과 하와가 기쁨의 동산인 에덴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쫓겨납니다.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뒤로 하나님께서 그 에덴동산 동쪽에

불 칼이 두루 돌아다니게 만들어서, 에덴동산으로의 재귀환을 막아버리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쉽게 그 천국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을 지키고 있는, 못 들어오도록 막고 있는 ‘불 칼’ 때문입니다.

 

그 불칼이 바로 ‘임박한 진노’입니다.

천국 주변에는 천국만 있는게 아니라 불칼이 있습니다. 에덴에 불칼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식 표현으로는,

천국이 도래했다고 하면서, ‘임박한 진노’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임박한 진노'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던져져서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찍히어 불에 던져질 것이다.,,’ 입니다.

 

▲시내산 주위에도 불벽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강림을 맞이하게 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산 저 아래 쪽에 경계선을 만들어 놓고 거기를 넘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죽는다.

넘어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라.’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에,

죄인들이 함부로 그 경계를 넘어 갔다가는.. 다 죽게 됩니다.

 

▲정리하면

성도의 삶은, 이 세상에서 천국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불칼’과 함께 임합니다.

그래서 천국이 임했지만, 우리가 쉽게 그 불칼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또한 예수님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하실 때

천국과 ‘임박한 진노’를 짝pair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불칼(임박한 진노)을 피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길은, 천국을 누리는 삶은

‘회개’라는 것입니다.

 

 

◑적용

 

▲그러므로 ‘천국이 왔다’는 것은

천국이 기쁨으로 온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를 죽이려고 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를 죽여서(회개시켜서) 천국으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만, 그리스도 안에 기쁨 행복,

즉 천국이 전혀 없을 수 있습니다. 대신에 불평과 원망이 많습니다.

 

이건 뭔지 아십니까?

천국이 오기는 왔는데, (천국에 신자가 아주 가까이 와 있습니다.)

천국을 지키고 있는 불칼에 우리의 마음이 닿고 있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예 천국과 멀리 떨어진 사람은,

어쩌면 천국의 불칼에서 화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더 뜨거운 지옥불을 당하겠지요)

 

그러니까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제대로 안 믿으면

그 삶에 일생에 고난과 괴로움이 불신자보다 갑절로 임합니다.

 

‘불칼’ 때문입니다.

‘회개하고’ 천국에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임박한 진노(영벌, 지옥)’를 피하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심판과 동시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관련글 복음은 하나님의 의와 심판으로 시작

 

▲여러분,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이 땅 위에서 천국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장차 죽어서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요?

천국은 죽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은 죽음이 없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서 구름위에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 위해서,

또한 ‘임박한 진노’를 피하기 위해서도

이 땅에서 반드시 ‘불칼’을 뚫고, 천국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저 믿음-지적동의-을 통해서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체험해 봐서 잘 압니다.)

 

▲그렇다면,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왔다.’

‘회개하면, 불칼을 피하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이제 회개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 각도의 설명이 있습니다만,

저는 오늘 ‘맞불’ 개념으로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회개는.. 맞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천국의 불칼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가 회개의 맞불을 지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활 속에서도 이 원리를 쉽게 생각할 수가 있어요.

어쩌다 보면, 아내가 요리하다가 생선을 태울 때도 있습니다.

자, 반쯤 태운 생선을 갖고 왔습니다.

 

그러면 남편이 잔소리 합니다.

‘아니, 생선도 제대로 못 굽냐? 당신은 제대로 하는 게 뭐냐?’

하고 짜증을 내기 시작하면서 식탁이 다 지옥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때 아내가 이제 영적인 노하우를 터득하게 됩니다.

생선이 탔습니다. 생선을 갖다 놓으면서 자기가 미리 말해 버립니다.

 

‘나는 잘 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 생선도 제대로 못 구으니.. 주부로서는 빵점이야!

나랑 같이 사는 사람들이 사람 잘못 만나서 불쌍한 거지..’

이러면서 스스로 불을 지릅니다. (세례요한식 표현으로 ‘회개’)

 

그러면 남편이

‘괜찮아. 이 사람아! 그럴 때도 있지. 뭘 그래?’

갑자기 식탁이 천국으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천국 앞에서도,

내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비천해지고, 모욕을 당하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괴롭지요? 뭔가 걱정하고 있지요? 뭔가 원망하고 있지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원수 때문이 아닙니다. 경제상황 때문이 아닙니다.

자녀 때문이 아닙니다. 건강 때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지옥을 가져다주고, 화가 나게 하고,

화병이 생기게 하는 모든 이유가

여러분이 여러분을 변호하고, 여러분을 변명하고,

여러분을 지키려하고, 여러분의 체면과 자존심이 여러분 머리 꼭대기에

이상적인 가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시 말해서, 회개를 안 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여러분을 향하여 맞불을 질러 보세요!

‘나는 죽일 놈이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다.

나를 비난하는 그 사람의 말이 맞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시켜서/허락하셔서 그런다.’

 

이걸 무슨 모면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기 마음 중심에 그런 ‘회개’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아주 천천히 일어나는 사람은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①부인(아냐,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그가 뭔가 잘못 알고 있어!)

②분노(뭐 나만 죄인이라고? 그런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

③타협(저 사람에게 좀 친절하게 대하고, 비위를 맞춰서 입을 막는 것)

④우울, 낙심 등의 단계를 거쳐서

마침내 수용/회개(그래 맞아, 나는 정말 죄인 중의 괴수야!)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빨리 갈수록 좋겠죠.

 

▲십자가 신앙은.. 십자가에 발가벗겨 달려진 비천한 자신을 날마다 인정하는 삶

날마다 천국을 살기 위해서는

날마다 나를 죽이고, 날마다 나를 공격하고,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의 그 처참한 자리까지

그것이 내게 합당한 자리임을 깨닫고

내 모습의 합당한 주민등록의 소재지가 바로 십자가상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를 공격하고 공격하고 밀어부쳐서

십자가에 몰아붙이기 전까지는, 천국은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까지 나를 못 박고 나를 공격해 들어가는 동안에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경제적인 여유도, 내 건강 상태도

모든 것이 다, 현실적으로 주여져 있는 이 모든 것이 다 내게는 과분할 뿐입니다.

 

십자가에 죽어야 할 마땅한 나에게는 과분하지 않은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상태보다 더 심각한 상태가 어디 있겠습니까?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에요.

 

그럴 때 여러분 모두의 마음이 다 내려오신 천국, 내려온 하늘 위로 올라가서

구름 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산책하며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실 것입니다. ▣ 복음 관련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란  (0) 2011.02.21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다 2881  (0) 2011.02.19
영적인 먹거리 2876  (0) 2011.02.16
온전함에 관한 야고보서의 교훈  (0) 2011.01.10
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함 2793  (0) 2010.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