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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2890

LNCK 2011. 2. 25. 16:35

◈내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창15:1~21           설교스크랩, 출처, 정리

 

 

▲주제 요약

창15: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렵니까?’

나는 자식이 없으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입니다.


이 구절은, 아브라함이 ‘자신의 필요, 관심, 소원’을 주십사고 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 하나님의 관심과 소원’을 구한 것이며,


구원 받은 성도들의 간구와 기도제목은, 마땅히 아브라함처럼,  

‘자기의 개인적 소원과 필요’보다는

‘하나님의 관심과 소원’ 위주로 기도해야 한다는 주제의 설교문



▲하나님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상급으로 주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 이라 말씀하십니다. 15:1 

이 말씀은, 하나님 자신을,

그에게 기업과 상으로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사실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습니다. 15:9~10

이것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 자신'을 주신 것은,

그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아브라함의 개인적 계획/소망/비전은..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는 믿음의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마치 국밥이나 비빔밥처럼’

하나님의 구원계획, 경륜과 섭리의 흐름 속에.. 자꾸 내 소원/비전을 섞어 놓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오래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는 중에,

내 뜻/내 소원/내 욕망을 앞, 뒤, 중간에 마구 섞어서 기도합니다.


아니, 더 심한 경우는

내 뜻/내 소원/내 욕망을 이루어 주시면,

내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 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내 자신의 기쁨과 만족을 위하려는 그러한 바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일

국밥처럼 한데 말아져서 한꺼번에 믹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기업이 되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일에 있어서

나 자신의 개인적 기쁨. 행복. 만족들은.. 거기 섞이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기업이 오직 내 기쁨이고, 하나님의 뜻이 오직 내 소원입니다.


쉽게 말하면,

오늘날 ‘내가 떠야, 하나님도 뜨신다’ .. 뭐 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부자 되어야, 하나님 체면 서신다’ .. 이런 생각도 안 됩니다.


성경은 정반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위해서.. 너 자신은 죽어라! 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사생애와 공생애를 구분하십니다. 그렇죠?

공생에 동안 예수님은 철저히

오직 아버지의 뜻과 영광만을 위해 사셨습니다.

 

자기 개인적 기쁨, 행복, 만족은 없었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함으로써.. 그것을 당신의 기쁨과 만족으로 삼으셨습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창15:2

이런 맥락에서, 이 말씀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아브라함의 이 질문은,

자기 개인적 소원/행복/바램을 채워달라는,

쉽게 말하면 오복을 달라는 그런 간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 자신을 그에게 기업과 상급으로 주시고,

9절에서 그것을 언약체결로 하나님은 맹세까지 하십니다.


그런 큰 은혜를 받은 아브라함이

‘그래도 당장 좀 가시적인 축복, 좀 구체적인 것 좀 주세요!’

이렇게 요구했을 리 없습니다.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라고 말한 뜻은,

그 하나님의 뜻, 비전, 구속역사를 펼쳐나가는데 있어서,

지금 저와 제 가정을 어떻게 사용하시렵니까? .. 그걸 여쭌 것입니다.


한 마디로 대범한 기도지요?

믿음의 기도요, 정말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15:2b

이 말씀도, 아브라함이 자녀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서,

자기 개인적 욕구 충족을 위해서 자녀에 대해 불평한 것이다.. 라고 이해하기 쉽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이 세상 전체보다도 더 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다, 내가 나를 너에게 주노라’ 라는 말씀을 듣자마자

아브라함이 ‘하나님 내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그런 허황된 약속 말고, 구체적으로 자녀 한 명이라도 주세요!’ 라고 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라고 말한 것은,

하나님 나라를 염려해서입니다. 구속사역을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려면, 자신의 자녀가 반드시 있어야/많아야 하니까요!


아브라함이 자기 자신을 향해서 갖고 계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하나님의 계획들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함께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을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공생애와 사생애를 구분지어서 사신 것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이 큰 상급인 하나님을 갖고 

그 만족한 상태에서

자기의 필요가 아니라


자기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루시려고 하는

그 하나님의 계획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불평이라고 보지 마세요!)


“하나님! 저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티끌처럼 많은 자손들을 통해 

하늘의 기운이 흘러내려가는 하늘의 백성들의 번성을 약속하셨는데

이거 어쩌면 좋습니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라고 자기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 프로젝트에 대해서

지금 하나님과 함께 의논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답답하리만큼 장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으로 있을 자손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시면서

지금 아브라함이 있는 이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이 지금 당장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무려 수 백 년 이상 걸릴 계획을 말씀하십니다.            *관련글 ; 축복의 약속이 좀 무섭다


“너의 자손들이 400년 동안 이방민족 밑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고통을 겪다가

내가 많은 기적과 기사를 통해 그들을 끄집어 낼 때에

많은 재물을 함께 가지고 나와서 이 땅에 머물게 되리라.”라고 하십니다.


실제로 아브라함의 생애 자체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하나님의 자신의 프로젝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말입니다.

내 후손이 번창될 것을

내가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 자녀가 잘 되어야.. 만족하는 것입니다. 근시안적 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복의 근원을 삼느니, 천국 영생을 주시느니.. 하더라도

지금 당장 내 자녀가 아브라함처럼 자녀가 없거나, 자녀가 있어도 잘 못 되고 있고,

지금 현실이 내 입에 거미줄 치고 있으면..


그런 장기적인 하나님 나라, 구속사, 천국 영생.. 이런 것 있으나 마나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아브라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자기 앞에 '떡고물'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고요?


애당초 그는 자기 계획, 비전, 열망을 갖고 하나님께 대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비전, 열망에 그가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자기에게 ‘떡고물’이 떨어지는 것이 없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참으로 ‘하나님의 믿음’을 소유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이런 믿음은 그가 자체 생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을 그에게 주셨다고 봅니다.) 

 


▲정리하면

①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상급으로 받은 사람들은,

자기의 현실적 삶 자체로 만족합니다.

자기의 야망은 이제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를 통해서 이루시려는

그 하나님의 계획이 걱정이 되어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현실에 왜 불만이 많습니까?

자기 개인적 계획/열망/비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게 내 마음대로 안 이루어지니까.. 늘 입술이 뾰르퉁, 삐져 있습니다.

우리 믿음이 아직 아브라함을 못 따라간다는 뜻입니다. 


②이런 경지가 왜 없겠어요. 여러분!

이래야 참 믿음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상급과 기업을 받은 사람은,

‘자기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는 안목이 생깁니다.


하나님 자신만을 온전히 기업으로 받아본 그 사람들은,

자기 현실에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고

이 세상에서 다급하게 뭘 강박적으로 이루어야 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에요.

실제로 하나님을 만나면, 그 후로 그 분과 계속 교제하면, 아브라함처럼 됩니다.

자기 삶에 만족이 생기고, 행복하게 삽니다.


CNN 기자였고 작가인 리온 해리스(Leon Harris)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역대 미국 대통령을 분석하는 글을 쓴 것을 흥미 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는 비교적 미국인들이 좋아했고, 건강한 영향을 남긴 대통령들을

3가지 유형으로 나누었습니다.


1)유능한 대통령-조지 워싱톤, 링컨, 루스벨트, 케네디 등이 들어갔고,

2)성실한 대통령-우드워드, 지미 카터가 들어갔고

3)행복한 대통령- 여기에는 로널드 레이건과 윌리암 맥킨리 가 들어갔습니다.


맥킨리 대통령은 특히 그의 겸손함과 조용한 미소,

그리고 평화를 느끼게 하는 부드러움으로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국민들은 평화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그의 행복이 어디서 유래하는가' 라는 질문을 받고

그는 서슴없이 “교회와 가정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는 특히 그의 성장과정에서의 시골 교회의 예배와

시골 자기 집의 식탁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고 하면서

교회 예배의 장에서 하나님과 대화하고,

가정의 식탁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저는 3)번이 참 인상적입니다.

유능한 것도, 성실한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행복한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자질입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 펀 글)


여러분, 행복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자기 행복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을 기업과 상급으로 받은 사람은, 반드시 행복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기업' 관련글 : 울어야 복음의 제맛을 안다

 

③하나님께서 뭇별을 보이시면서

“너는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렇게 이루려고 하고 있어!

너로부터 뭇별과 같은 많은 자손이 번성하게 될거야. 이 땅을 줄 텐데,

그러나 사백년 동안 어려움을 겪다가 이 땅으로 돌아오게 될 거야.”  :13~16


하나님은 멀리 내다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주 장기적이십니다.

우리가 장기적인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역사를 믿는다면,

결코 오늘 현실을 실망하거나, 한숨 쉴 수 없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반드시 이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히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14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15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아브라함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습니다.

몇 년이나 참았습니까?

25년 참아서 이삭을 받았고,

5백년 참아서 가나안 땅을 받았고,

네 자손이 하늘의 별, 바다 모래처럼.. 이란 약속은 수 천 년 참아서.. 결국 성취되었습니다.


     믿음은 ‘오래 참고 기다림’입니다.

     나는 지금 몇 년 참고 기다렸습니까?

     내 '그릇' 하나 깨어지고, 회복되고, 준비되는데도.. 일평생 걸리지 않습니까? ▣ 꿈, 비전,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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