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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33강 1~4째 인 2924

LNCK 2011. 3. 22. 15:54

 

◈1~4째 인 (네 말의 재앙)                  계6:1~8                 계33강 설교녹취, 정리


 

▲32강 복습

①하나님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

그 ‘4 말’들을 등장시키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은.. 4 말이 일으키는 심판, 저주, 재앙과 동시에 공존하게 된다.


그러니까 새창조(구원)를 위해서는,

그런 ‘4말로 비유되는 환란’이

성도의 삶에 실제로 동반된다는 것이다. 세상은 그 환란으로 인해 망하지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그 재앙을 받지 않도록 미리 막아 주시는 게 아니라,

그 재앙을 통과하게 하시면서

새창조(새 피조물)를 향해 한 발, 한 발 움직이도록 만드신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그 재앙의 내용들이

점점 강하게 이 땅에 나타날 때,

(혹은 내 삶에 그런 재앙이 점점 강하게 나타날 때),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가까웠음을, 또한 성도의 성숙이 되어감을 알게 된다.


②그 인印을 떼고 계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그래서 예수님은 인을 떼시면서 완성해 가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 나라의 완성(나의 구원)’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③이 땅에서 ‘만사형통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성도의 삶이 아니라,

성도들은 매일매일 어떤 방식으로든지 ‘죽어야’ 한다.

4말이 이끄는 환란을 당하면서.. 자신을 죽이는 방식으로

우리 구원을 완성해 나가신다. (세상에는 심판이지만)


④그러므로 이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우리는 격려를 받아야 한다. ‘격려’가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쓴 원래 목적이다.

종말의 심판에 대해 무시무시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32강에 이어서, 33강에서는,

     ‘네 말’들이 무엇을 묘사하는지,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인, 흰 말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6:2

 

▲‘흰 말을 타고, 활을 가진 자’는 미혹케 하는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마귀>로 본다.

왜냐하면,

마24:3절 : 제자들이 물었다. ‘종말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이

 

4~6절 :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 하라  (흰 말)

7절a :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전쟁이) 일어나겠고..   (붉은 말)

7절b :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기근 (검은 말)


예수님이 말씀하신 순서를 볼 때,

마24장은 미혹-전쟁-기근이고

계6장은 흰말-붉은 말-검은 말의 순서이니

‘흰말’은 ‘미혹’으로 본다.


▲본문 계6:2절의 ‘흰 말을 탄자’와, 계19:11장의 ‘흰 말을 탄 자’를 비교하면, 

계19장의 예수님이 쓰신 왕관은 ‘디아데마’ 즉 진짜 왕이 쓰는 왕관이고,

계6장의 흰말탄자가 쓴 면류관은 ‘스테파노스’ 월계관이다. 진짜 왕관이 아니다.


19장의 예수님은 ‘검을 가지고’ 싸우시지만,  19:15

6장의 말탄 자는 ‘활을 들고’ 싸우고 있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6:2

사도요한은, 당시 로마에 퍼져있던 어떤 소문을 인용해서,

심판의 심각성/무서움을 먼저 주지시키고 있다.


당시 로마 제국 사람들은,

능숙하게 말을 등지고 타면서도, 미친 듯이 활을 쏘면서 전쟁을 했던

로마의 동부전선에 포진하고 있던, 파르티아 인들을 아주 두려워했다.


죽은 네로가 실제로는 죽지 않았고, 그 파르티아로 도망가서,

지금 그 군대를 이끌고 로마를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 소문(활을 가진 말 탄자)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심판은 그렇게 무시무시하고,

두려운 것이라는 것을 주지시키면서

요한은 ‘7인의 재앙’을 시작한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매우 무서운 이미지임)


▲활을 가진 자는 ‘아폴론’의 상징

당시 로마 문화권에서는, 활을 가진 자는 항상 아폴론 신을 상징했다.

아폴론의 상징은 활과 화살, 그리고 리라(하프)였다.

(영화 ‘트로이’에 보면, 헤라클레스가 해변에서 ‘활을 쏘는 아폴론 동상’의 머리를 베어버린다.)


아폴론은 마귀의 세력,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한다.

계9:11절에도 아폴론이 나오는데,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계9:11

 

아볼루온(‘파괴자’란 뜻)은 ‘아폴론’의 언어학적 유희로 보인다.

‘아폴론’을 직설적으로 쓰면 문제가 되니까, 비슷하게 고쳐서 쓴 것이다.

그런데 나폴레옹도 이 아볼루온(파괴자)에서 자기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또 이기려고 하더라

마귀의 세력은 ‘세상에서 이기고 또 이기는 모습으로’

즉 ‘승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라는 것을 미리 우리에게 힌트해 주고 있다.


‘이기고 또 이기려는’ 모습이 마귀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성도는 ‘죽고 또 죽는’ 모습이 그 특징이다.

계시록에서 성도에게 ‘이기는 자가 되라’고 격려하지만,

그것은 먼저 자기죽음을 통한 승리이지, ‘정복자적 승리’가 아니다.)


계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짐승이 무저갱으로부터 전쟁을 일으켜

저희(두 증인, 성도)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이와 같이 마귀가 세상에서 심어주는 사상은 끊임없이 ‘이기고 또 이기는’ 방식이다.

더군다나 ‘죽이더라’고 했다. ↑

(오늘도 누구를 '죽이려' 하는 사람은.. 마귀적이다. 성도는 '자기가 죽는다') 

 

크리스천은, 세상적/물리적/물질적 힘으로 이기려 하면 안 된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표면적으로는 ‘이기고 또 이기려는’ 마귀의 세력 앞에 ‘지게’ 된다.

심지어는 ‘죽게’된다. ↑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부활하게 된다.

이것이 크리스천의 승리방식이다.


▲적용, 이기고 또 이기려하다가.. 심판 받는다. 6:2

그러나 그 거짓면류관을 쓰고, 흰말을 타고 오는 세력은,

지금은 이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동조하고, 그가 약속하고 있는 달콤한 세상 것들을 쫓아가는 인간들,

그들도 마귀의 세력과 반드시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그 최후 멸망 징조가 지금 이렇게 전쟁, 기근, 질병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상은 계속해서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진다.

‘유전자 복제를 통해서, 모든 질병이 언젠가 극복 될 거야’

‘언젠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부자 되어, 잘 사는 때가 올 거야’

그런 세상적 기대를 가진다.


물론 우리가 의학을 계발하고, 세상을 부유하고 잘 살게 해야 하지만, (그런 일도 필요하지만)

과학과 의학과 경제가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의 통치를 무시하는 세상은,

결국 반드시 멸망하고, 무시무시한 심판 속으로 반드시 들어간다는 것을..

그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적용, 종말의 희망

어떤 이가 등산하다가 인적 없는 깊은 계곡에 갇혔고, 밤이 되자 사방이 어두워졌다.

마침 그믐이라 달빛도 없어서,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계곡 주변 바위틈을 손과 발로 더듬어 내려가는데.. 큰 낭패였다.  


다행히 그 길이 초행길이 아니었다.

과거 경험상 곧 골짜기가 끝남을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에겐 칠흑같이 어두운 절망 가운데 희망이 있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마을이 나오리라...'

만약 끝을 몰랐다면, 그는 산 속에서 절망가운데 주저앉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지나면 마을이 나온다’는 희망이

그로 하여금, 칠흑같이 어두운 밤의 산길을, 계속 더듬어 나가게 했던 것이다.


비유를 바꾸어, 만약 사막에서 조난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저 너머로 20Km만 더가면 오아시스가 있다'는 답을 아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답을 모르는 사람은, 오아시스를 1Km 앞두고도 좌절해서 포기하게 된다.


종말의 암울한 재앙의 연속 가운데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끝을 미리 알려주셨다.

'조금만 더 가면 끝이 있다. 조금만 더 가 보자'

그것이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된다.

계시록은.. 종말을 당하는 성도에게.. ‘끝이 있으니 참고 인내하라’는 희망인 것이다.



◑둘째 인, 붉은 말   6:3~4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계6:3~4


▲붉은 말은.. 전쟁을 의미한다.

화평을 제하고, 서로 죽이게 한다.. 전쟁을 뜻한다.


크리스천들이라고 해서, 그 전쟁을 비껴갈 수 없다.

크리스천들도 똑같이 그러한 전쟁에 노출 된다.


아니, 세상이 겪는 전쟁에 노출 되는 정도가 아니라,

거기에 보태서 '크리스천만 겪는 전쟁'까지 덤으로 더 겪는다.


▲크리스천만 겪는 전쟁도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10:34~36


세상은 그러한 전쟁들을 겪으면서, 어둠, 절망, 좌절, 사망으로 던져지게 되지만,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그런 전쟁을 겪으면서.. 십자가의 도를 배우게 된다.

그래서 환란과 심판의 재앙은, 합력하여 결국은 복이 되는 것이다.


▲전쟁에 관한 관념이 달라야 한다.

전쟁의 속성은.. 자기 유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드시 이겨내야 하는 것이.. 전쟁이다.


미국에 살고 있는 일부 우리 교민들도, 상대 업소를 죽여야 내가 산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음해와 공작을 해서라도,

상대 업소가 죽더라도, 자기는 살아야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크리스천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전쟁’에 동조하고, 공범자가 되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작은 이익을 얻을지 몰라도, 결국은 공의의 하나님 앞에 심판 받는다.

말세가 될수록, 사탄이 일으키는 전쟁에.. 우리가 휘말리지 않아야 하겠다.


10년 과거의 시행착오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교훈이 한 가지 있다.

W. 부시 대통령께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국의 보수 교회지도자들이 다 동조하고, 한국 보수 교회도 덩달아 그랬다.


그런데 그 전쟁의 명분은 그럴 듯했는데, ‘이라크 민주화’ 운운 하더니,

결과는.. 이라크 유전을 차지하고 말았다.(정확한 정보는 확인 요)


지금도 리비아에서 유엔군이 활동하고 있다.

리비아 민주화는 좋은데, 다른 목적은 없어야 한다.

민주화 한다고 전쟁해 놓고, 만약 전리품을 챙기는 전쟁이라면..

<공의의 하나님>속성상.. 득보다 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저/편집자는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말씀드리면)

2~3년 전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경제 사태로

수많은 미국인들이 집을 포기하고, 홈리스가 된 것은,

또한 경제가 지금까지 어려운 것은,

미국이 이라크에 대접한 그대로, 하나님이 미국에게 대접해 주신 것이다.

이라크에 수많은 난민이 발생했는데, 똑같은 (경제)난민들이 미국에서 발생했다.

 

똑같은 일이, 리비아에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 내가 벌이는 전쟁도 마찬가지다.

명분은 그럴듯하고 훌륭하지만,

그 속의 실리를 내가 챙기려는 전쟁은..

사탄의 전쟁에 속하는 것이고, 결국은 패망이다.

 

▲그러나 모든 전쟁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크고 작은 전쟁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분명 그 전쟁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성도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섭리이다. 주1)



◑셋째 인 - 검은 말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6:5~6

 

저울을 가졌더라,

성경 여러 군데에서, ‘저울’은 흉년과 심판을 묘사한다.


겔4:16, 그들이 빵을 저울에 달아서 걱정에 싸인 채 먹고..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우리 ‘되’ 보다 작은 도량형 단위)

당시에 한 데나리온으로 보통 밀 12되를 샀고,

보리는 36~40되를 샀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근과 흉년으로 물가가 올라가서, 한 데나리온으로 밀 한 되밖에 못 산다.


종말이 될수록, 기근으로 인해

아주 극심한 인플레가 일어날 것을 얘기하고 있다.


▲상대적 빈곤, 기근  주2)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밀, 보리, 감람유와 포도주는 유대인의 대표 먹거리였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부유한 사람들의 식품이었다.

있으면 좋지만, 곡 안 먹어도 되는 음식이었다.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는 말씀은,

고가품은 타격을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예언이다.

 

값싼 밀과 보리만, 가격이 폭등하면서,

빈익빈 부익부가 점점 더 심화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새로운 형태의 기근이 발생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내는, 세계적 기근이다.

 

식량 값을 조절하기 위해서, 곡물을 사재기 한다든지,

아니면 잉여 농산물을 폐기처분하는 가운데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해서

그야말로 ‘1데나리온에 밀 1되요, 보리 3되로다.’ 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루 노동 임금이 3$이 안 되는 지역의 인구가 (아마) 수 십 억인데,

그들의 일당은 주로 ‘먹는데’ 80%가 쓰여지는데, (엥겔 지수가 높다) 

곡물 값이 2배로 뛰어버리면.. 절대 기근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적용/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집착은 버리시라.  

크리스천들은, 그러한 기근과 흉년을 보면서, 자신이 당하면서

이 땅에 허울 좋은 자신의 꿈과 비전을 하나씩 내려놓고,

일이 잘 되면 굉장히 풍요로워지면, 자꾸 이 땅에서 꿈을 가진다.


그러나 우리 삶 속에서 그런 기근을 겪고,

또 그렇게 다른 이들이 기근으로 굶어 죽어가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정말 소망해야 할 것은,

‘이 욕심 많은 땅이 아니구나! 진정한 행복과 번영과 부가 있는 그곳을 소망하자!’

라고 우리는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기근은 복이다.


여러분, 요즘 비즈니스가 좀 어려우신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하신가?


그러면 기뻐하고, 감사하시라.

‘아, 내가 소망해야할 땅은, 이 세상이 아니구나!’

하고 자꾸 이 세상에 집착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 둘씩 놓아버리시라.


우리 삶에 일어나는 기근이나, 우리가 목격하는 기근이나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다 유익이 되는 기근이다.


저희 가정도 은행에 잔고를 남기지 않는 훈련을 늘 하고 있다.

아껴서 우리 쓸 것만 쓰고, 남는 것은 다 퍼 낸다.

왜냐하면 물질이 이 세상에서 내 소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인 - 청황색 말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계6:8


‘청황색’은 헬라어로 ‘클로로스’인데, 잿빛, 암갈색, 창백함pale, 시체의 색깔이다.

‘그 말 탄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청황색 말 탄 자’는 사망을 의인화 시켜 놓았다.

(그래서 말 탄 자가 누구인지.. 그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가질 필요 없다. 사망의 의인화다.)


그 검은 말이 무엇으로 죽이는가 하면,

‘검, 흉년, 사망(전염병), 땅의 짐승으로 죽이더라.’

              ※‘사망’으로 번역된 ‘사나토스’는 온역/전염병/질병이란 뜻이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방법을 항상 ‘칼, 기근, 염병’으로 표현했다.

수 십 번 이상 나온다.

대상21:12, 렘14:12, 겔5:11 등 (특히 에스겔서에 가장 자주 나온다.)


이미 구약에 여러 번 예언된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인 ‘칼, 기근, 염병’

사도요한이 그냥 ‘4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4말’이 색 다른 게 아니다 라는 뜻이다.  칼/기근/염병 - 붉은 말/검은 말/청황색 말이다.


에스겔서 등에서 수 차례 예언하고 있는

‘칼과 기근과 염병’의 재앙을

‘4마리의 달리는 말’로 묵시적으로 표현한 것뿐이다. (미혹/흰말이 추가되었다.)



◑나가는 말


▲1. 심판의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닫자.


롬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오늘도 우리에게 ‘작은 7인’의 재앙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예고편처럼!

그러나 종말에 ‘큰 7인’의 재앙이 정말 닥칠 것이다.


오늘도 그 인印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떼고 계신다.

주님이 인을 하나씩 차례로 떼시니까, 전쟁, 기근, 전염병이 일어났다.


그러면 이 세상 재난의 모든 책임이 주님께 있는가?

주님이 그 재난을 불러오게 하시는 장본인이신가? 주님이 인을 땠으니까..

 

그렇지 않다.

모든 재앙들은, 타락한 인간과 마귀의 세력, 즉 악한 세상이 만들어낸 것들이다.

전쟁을 누가 일으키는가?

하나님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전쟁을 만들어 낸다.


기근을 누가 일으키는가? 역시 자기 탐욕의 눈에 어두운 결과다.

 

인간들이 욕심 부려서, 자연을 파괴하고, 땅을 혹사시키고,

수급을 조작하여 값을 폭등시켜 만들어내는 결과이다.


욕심, 죄가, 풍요 속에 기근을 만들어낸다.

전부 인간들이 만들어낸다.


수많은 전염병들이 왜 생기는가?

광우병가 왜 생겼나?

풀 먹고 자라는 소에게, 발육촉진을 위해 뼛가루 먹인 결과다.


에이즈가 왜 생겼나?

순리로 써야 할 것을 역리로 쓰는 인간의 탐욕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행위의 결국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은 마치,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아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전쟁, 기근, 전염병으로 심판하시고,

또한 마귀에게 미혹을 받게 하심으로써.. 그 인간의 욕심을 심판하신다.


▲2. 그러나 그 어떤 재앙도 우리 크리스천들에게는 유익이며, 복이 된다.

이것이 바로 인의 재앙이 주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그 인을 우리 주님이 떼고 계신다.

그 복잡한 모든 사건을 위에, 우리 주님이 주관하고, 섭리하신다.

모든 것은 주님의 섭리 아래서만 일어난다.


세상이 우리를 죽이려고 하면 죽읍시다. 죽으면 천국 간다면서요?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생활하시라.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가 되어선 안 된다.


우리가 죽는 그 죽음은, 우리 옛 몸의 죽음이다. 부활을 전제로 한 죽음이다.

그러니까 빨리 죽을수록 좋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우리가 뭘 두려워하랴?

죽기를 각오한 자들을 누가 당하랴?


그래서 세상이 우리 크리스천을 두려워하게 해야 한다. 무서워하게 해야 한다.


‘저 사람은 건강을 빼앗아가도, 재물을 빼앗아가도,

어떻게 일관성 있게 저렇게 만족하고 기쁘게 살아가지? 와 정말 무섭다!’

마귀가 이렇게 몸을 떨어야 한다. 이게 크리스천이다.


우리의 죽음은, 부활을 전제로 한 영광스러운 죽음이다.

질병이 왔는가? ‘죽자!’ 라고 각오하시라.

기근이 왔는가? ‘죽자!’ 라고 각오하시라. 그러면 오히려 부활하고 산다.

이게 재앙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크리스천의 자세이다.



.................................................

 


주1) ▲그럼 세상의 모든 전쟁과 재앙의 원천 책임은 누구인가?

 

①주님이 인을 하나씩 떼시고, 그래서 세상에 재앙이 닥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세상에서 일어난 모든 재앙과 재난의 원천 책임은 예수님이신가?


물론 아니다.

인간들이 자기 죄성으로 죄를 지어서, 그 결과로 심판/재앙을 당하는 것이지..

세상에 죄가 없다면, 주님이 인을 떼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이유도 없다.

(그러나 성도는 그 ‘심판’을 오히려 회개/새창조의 기회로 삼는다.)


②세상의 모든 재앙이, 그 원천 책임이 ‘주님’이 아니시라면,

그 원천 책임이 ‘사탄’에게 있는가?


물론 그렇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자기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마릴린 먼로가 세계적인 배우가 된 것은, 그의 추종세력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한 때 무명의 여배우시절이 있었고, 주목받지 못하고 평범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먼로를 세계적 여배우로 만들어 준 것은, 추종자들 때문이었다.


마귀의 세력도 마찬가지다.

그를 추종하는 어떤 세력이 없으면, 자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인간은 죄를 짓고, 마귀를 추종하고 따른다. 마귀와 공범이요, 동조세력인 것이다.

(지금 세상의 모든 재앙/재난/심판의 책임이 마귀에게 있는데,

죄인인 인간도 그 동조세력 임을 설명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궁극적 최후의 종말 때,

마귀와 구원 받지 못한 자는 공범으로 같은 곳에 가게 된다.

마귀와 함께 심판 받는다.


③이렇게 볼 때, 모든 재앙은 결국 인간이 일으킨다. 스스로 만들어낸다.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의 방법으로, 인간의 죄를 쓰시는 것뿐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수많은 전쟁..

다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다. 우리 죄성이 만들어낸 것이다.

 

④출애굽 때 마음이 강퍅했던 바로의 예를 들면,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

바로가 착했는데 하나님이 강퍅케 하신 것이 아니다.


원래 그는 강퍅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강퍅함을 내버려두사, 최후 심판의 구실로 사용하신 것뿐이다.


그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셨다’고 성경에 나오지만,

성경에 ‘바로가 강퍅해서..’ 라고도 말씀하고 있다.


⑤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애굽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이 4백년 종노릇 할 것이다.’ 라고 해 놓고,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가는 것을 계기로, 그 후손을 애굽에 보내셨다.


그러나 하나님이 요셉의 형들의 마음을 악하게 만들어서,

요셉을 팔도록 만드신 것은 아니다.


요셉의 형들이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 악행(요셉을 판 것)을, 하나님이 그 계획에 가져다 쓰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⑥롬11:8절에 ‘하나님이 혼미한 영을 사람들에게 주셨다’고 했다.

그 말뜻은 진짜 하나님이 혼미한 영을 주신 것이라기보다

타락한 인간이 혼미한 영을 받아서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만 놔 두시는 것이다... 그런 뜻이다.



주2) 상대적 빈곤, 기근

그러나 더 무시무시한 기근이 있다.

이것은 밥을 굶는 기근이 아니다.

타락한 인간이 아무도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기근이다.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한 사람, 내면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어떤 누구라도 ‘나는 가난하다. 배고프다’ 라고 느낀다.


록펠러가 세계 최고의 부자였지만,

기자가 ‘당신은 얼마만큼 돈을 더 벌어야 만족하겠습니까?’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조금만 더!’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였는데, 아직도 부족했던 것이다.

자기 번 것에 만족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들은, 자기가 늘 가난하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말세의 기근은, 가난한 나라들만 겪는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겪게 되어 있다.

 

사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저계발국가 사람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부자 국민들인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부분 자기가 가난하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건 서구사회도 똑같다. 영적, 정신적 기근인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떤 처지에서도 참 풍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살기 때문에,

늘 만족과 행복함 가운데 살아간다.

부자인 것이다.


제/설교자 얘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저는 자동차가 그리 값나가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에 대한 걱정이 없다.

누가 도난해갈 걱정, 옆 차가 문 열 때 긁힐 걱정 일절 없다.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주가가 오르고, 내려도.. 아무 염려 없다.

부동산이 오르고, 내려도.. 아무 염려 없다.                           ▣ 계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