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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6강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2922

LNCK 2011. 3. 19. 18:23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           계1:5         인터넷설교스크랩 녹취, 정리



서론, 사탄의 2가지 방면의 공격


▲세상이 주는 ‘불완전한 평화’

사도요한이 계시록을 썼던 당시는 로마가 전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팍스 로마나’ 즉, 로마에 의한 세계평화를 외치고 있었다.


로마의 제국주의적 통치는 충분히 매력적인 것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황제숭배만 따른다면, 더 없는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로마에 의해 세계가 평정되었으므로, 전쟁도 없었다.

예수만 믿지 않는 다면.. 박해를 받을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게 정말 '평화'일까?


마치 미국의 뉴올리언스나 라스베가스에 가면, 좀도둑이 없다고 한다.

왜냐면 거기에는 마피아가 자체 치안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안전하게 기분 좋게 돈을 많이 잃고 가야 되는데,

좀도둑들이 기승을 부리면 방해가 되니까,

자체 치안을 마피아가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정말 평화일까? 물론 아니다.

 

마치 그런 것과 같은 것이 당시의 로마의 평화였다.


▲양쪽에서 오는 공격

①그렇게 로마의 제국주의적 통치/ 정치적 안정이 주는

무사안일, 평화, 안녕이라는

그런 영적 생명력을 상실케 하는 사탄의 공격,

그 공격에도 초대교회 사람들은 노출되어 있었고,


②예수를 믿는 것으로 말미암아 물리적으로 가해져오는

가시적인 핍박, 환란에도 노출되어 있었다.


이렇게 양쪽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짜 은혜가 무엇이고, 진짜 평강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 주시려고,

이렇게 계시록 서문의 인사말(1:5~6)에서 ‘은혜와 평강’을 말씀하고 계신다.


▲오늘날도 사탄의 2방면의 공격

그런데 요한계시록 안에서, 로마로 상징된 그 사탄의 세력의 공격은,

이런 동일한 모습으로 양쪽에 동일한 모습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①평안함, 무사안일, 안녕 이런 것으로..

‘꼭 이런 상태에서도 예수를 믿어야 하나?

내가 돈 많고, 건강하고, 집안에 아무 문제없는 데.. 뭐 하러 예수를 믿나?‘


②또는 시어머니께로부터, 또는 직장 상사로부터 구박을 받는

이러한 가시적인 핍박의 모습으로, 사탄은 성도를 공격하고 있다.

우리를 실망시키고 좌절시키기 위해서..


그러니까 우리는 이 계시록을 보면서,

‘아 동일하게 우리에게 이야기 하시는 구나’ 하면서

우리는 계시록 안에서 우리를 발견해야 한다.

 

▲참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

전쟁이 없고, 외부적 적이 없고, 먹을 것 입을 것이 부족하지 않은 그런 편안한 상태가 아니라,

‘그런 편안한 상태가 평화라면, 지금 너희들은 평강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계1:5b

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있는지..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래와 같은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3가지 묘사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본문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묘사가 3가지 나온다.

-충성된 증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진짜 왕 중의 왕) 이다.


서두에서 ‘팍스 로마나’가 주는 평화는.. 불완전한 평화라고 했는데,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은혜와 평강(평화)만이

참 은혜요, 참 평화이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포, ~로부터, from)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라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왕/제사장/선지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3중적 역할과 지위에 대해서 묘사이기도 하다.


충성된 증인 - 선지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 제사장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분 - 그 분이 진짜 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참 왕이셨고, 제사장이셨고, 선지자셨다.

이 3중직에 대해서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은혜와 평강은.. 오직 왕/제사장/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만 나온다. 계1:5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참 은혜와 평강이 없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엉뚱한 왕, 다른 제사장, 거짓 선지자를 섬기고 있기 때문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충성된 증인 - 선지자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증인은..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는 자이다.

예수님은 하늘에서 보고 들은 것만, 하나님이 시키신 것만 말씀하셨다.

그래서 증인은, 곧 선지자란 뜻이다.

 

그 분은 참 증인이며 선지자이시다. 신18:18 참조.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로 상징되었던 참 선지자이셨다.


그런데 그 충성된 증인/선지자의 삶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늘 반대하는 사람들과 회유하는 자들과, 노골적으로 야유하는 자들,

때리고 침 뱉는 사람들, 배신하고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늘 둘러 싸여 있으셨다.

수난을 받으셨고, 죽으셨다. 바로 그 증인의 삶을 살다가 가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 교회에 당부하신 말씀을 보면, 행1:8절 같은

우리들을 똑같은 증인으로 부르고 계신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그 증인 예수님이 어떻게 살다가 가셨나?

수난 받고, 고난 받고, 죽으셨다.

우리가 증인이라면, 우리도 그런 증인의 삶을 살아내게 되어 있다.


이렇게 예수님은, 교회(성도)를 예수님과 똑같이 증인으로 부르셨다.

증인으로 부름 받은 교회는, 예수님처럼 증인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어야 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다.

당시로는 죽음까지도 불사해야 하는 그런 삶이었다.


하나님은 당시 예수를 믿음으로 핍박을 받고 있고,

고난을 당하고 있던 교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충성된 증인들아. 너희가 충성된 증인으로 지금 당하고 있는 그 고난을

메시아이신 예수가 다 겪고 갔단다. 그러니까 너희는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단다.’

 

     그런데 이런 증인의 삶에서.. 은혜와 평강이 나온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은혜와 평강이 메마르다면.. 증인의 삶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설적 진리다.

     환란과 고난을 통과하면서.. 은혜와 평강을 누린다... 

 

사람들은 의아했고 두려웠을 것이다.

‘아니 예수를 믿는데, 왜 우리 삶은 이렇게 고난과 핍박으로 점철되어 있을까?’


그럴 때 하나님이 지금 말씀하신다.

‘충성된 증인이었던 예수가 먼저 그 길을 살다가지 않았니?

너희도 증인이잖아. 당연히 그 길을 너희들도 가야 되는 거야.

너희들의 삶에 나타나는 그 고난과 핍박은 당연한 것이란다.’

이렇게 너희를 응원하고 계신다.


▲다 선지자 되기 원하신다.


민11:29 모세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여호와께서 그 신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그 신을, 성령을, 그 모든 백성에게 주사,

다 선지자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일이 언제 일어났는가?

행2장 오순절에 일어났다. 교회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해서

그들이 성령을 받고 이제 그들이 선지자가 된 것이다. 모세의 예언처럼.


▲적용

여러분은 모두 이 시대에 증인/선지자로 부름 받은 것을 알고 계시는가?

그러면 그 선지자들이 어떻게 살다 갔는가?

 

구약에 나오는 호세아, 예레미야, 에스겔 그 수많은 선지자들이 어떻게 살다가 갔는가?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하면서

계속 수모당하고, 배척, 배신당하고,

심지어는 통나무 안에 들어가서 톱으로 켜서 죽고, 기름에 튀겨서 죽고..


그런데 여러분의 삶에서, 지금 어떤 삶이 나타나고 있는가?

무사안일, 태평, 편하게 살기..


옛날에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공격하던 사탄이

지금은 힘이 빠져서 쉬고 있는가? 그래서 요즘 성도들은 무사안일, 태평이신가?


지금 우리의 삶에도, 그 선지자의 삶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당연해야 한다.

(그 가운데서 은혜와 평강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불평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가 똑같이 예수를 믿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평안한데, 나의 삶은 왜 이렇게 지지리도 복도 없는가?’


그러나 성경은 ‘그게 맞는 길이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이렇게 계시록을 통해 말씀하고 있다.


하도 세상이 합리주의, 경영논리, 효율성.. 이런 것들을 강조하다 보니까,

그런 개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예수를 믿으면 당연히 이 땅에서 복 받고, 축복받고, 만사형통, 무사안일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늘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기독교가 아니다.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럼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를 좌절, 실패, 절망시키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염려와 탄식과 눈물로 공격을 해 온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낙담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사업을 방해하고, 때로는 건강을 치기도 한다.

때로는 자녀와 남편이 속을 썩이기도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낙망, 좌절시켜서

‘야, 예수를 믿었더니 어떻게 삶이 더 고달퍼지냐?’ 이렇게 우리를 속일 것이다. 


그럴 때 여러분은, ‘드디어 내가 선지자의 삶, 증인의 삶에 들어섰구나!’

라고 오히려 기뻐하고, 평안히 여기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힘들 때, 이미 충성된 증인으로, 선지자로

우리가 겪고 있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고통과 수난을 당하시고

그 증인의 역할을 완전하게 수행해 내신 그 예수를 바라보며 이기라는 것이다.


‘이 까짓것 이겨낼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이 길을 기꺼이 가셨다.’

 

그리고 미리 다 겪으시고 승리하신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다윗이 그 왕국을 다스렸던 것처럼,

그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우리를 다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힘내시라. 환란과 고난 속에서도

참 선지자/증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참 은혜와 평강을 누려라. 너희도 증인의 삶 속에서 은혜와 평강을 누릴 것이다’

- 이 이야기가 계시록이다.



◑2.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 제사장


계1:5,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


죽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다는 뜻이다.

자신이 직접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리셨다. 히5:8, 히6:20 참조

 

 

그런데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그 제사가 완전한 것이었음을 확증하셨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신 걸로 끝나셨으면.. 우리는 구원 못 받았다.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은.., 그 제사가 완전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완전한 제사였다는 증거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돈이 중요하고, 명예와 지위가 중요하지만,


그런데 모든 사람은, 노쇠해서 중환자실에 가야하고,

또 혼수상태에 빠지는 날이 온다.

그때는, 돈/명예/지위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시 사는 것(부활)’이 제일 중요하다.


사람이 늙어서 90세가 지나면,

외모, 교육, 빈부, 남녀의 성 구분까지 다 없어진다.

살아있으나 산 송장인 셈이 되는 날이 반드시 온다.


에이즈나 백혈병 등 불치병이 있는데,

어떤 신약이 개발되어, 누가 그 약을 먹고 기적적으로 나았다.

그러면 다른 환자들도.. 그 약을 먹으면, 다 낫게 되어 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1차로 일어나셨다.’ 계1:53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 고전15:20

그러면 2차, 3차로 계속해서 일어날 부활할 사람도 반드시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크리스천이 가지는 ‘은혜와 평강’의 근거다.


▲‘먼저 나셨다’는 것은 맏아들/장남이란 뜻이다.   the first begotten of the dead  계1:5

나중에 날 자들도 있다는 뜻이다.


바로 그 분이 장자로, 맏아들로 먼저 나셨다는 이야기다.

맏아들이면서 장자인 예수님의 동생들이 있는데, 우리들이다.


시89:27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맏아들이고, 우리는 ‘많은 형제’들이다.

우리가 예수님과 형제사이다. 예수님의 동생들이다.

그렇게 영광스러운 신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히1:6 참조

 

예수 그리스도가 맏아들, 장자라는 것은

바로 전체인 우리를 대표하신다는 이야기다.


그 분이 완전히 다 고난을 다 당해주셨고, 완전히 죄를 다 이기셨고, 승리하셨다.

그것이 ‘먼저 나셨다’는 말의 의미다.

이 말이 얼마나 우리에게 ‘은혜와 평안’을 주는 말인지...  계1:5


※당시 로마 사회의 양자 개념은, 오늘날 우리 양자 개념과 조금 다르다.

아버지는 (핏줄이 다른) 자기 양자를 후계자로 택하여,

자기의 모든 기업으로 물려주고, 그 아버지의 법적 권세를 물려주었다.


하나님의 친아들은 예수님이고,

우리는 양자가 되었다.

이 말은, 우리를 예수님과 동일한 수준으로 법적 권리와 대접을 해 주신다는 것이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공동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 외  롬8:15, 엡1:5 참조)


우리가 예수님과 동일한 몸을 입고, 동일한 신분을 상속받게 되었다.

이게 기독교 신앙인의 특권이다.

 

그 맏아들을 따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양자)들이 되었다.

 

그 맏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나셨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다.

이미 완료된 과거다.

그러면 우리 대표가 그 길을 가서 그렇게 앉아 계신다면,

우리 신분은 너무 확실하고, 우리 갈 길은 너무 정확하게 결정되어 있다. 운명적으로!


당시 예수를 믿으므로, 죽음에 까지 내몰려서 벌벌 떨고 있던 성도들은,

이 대목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했을 것이다.

우리 교회(성도)의 삶을 대표로 살다 가신 우리 큰 형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으셨지만,

그 분은 우리처럼 죽음에 내몰렸지만, 그 분은 영광스런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도 그렇게 부활할 것이다. 그 영광스런 몸을 입고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 기쁨이 지금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그 평강이 우리 평강이 되어야 한다.


▲오늘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닥친 문제들이 아니다.

정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의 몸과 영혼을 전부 지옥에 멸해서 불태워 버릴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정작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는 진짜 크리스천인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맞나?’ 이것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자기 앞에 닥친 문제들.. 그것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여러분의 신분은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 설명되어 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마음속에 고민해야 할 것은,

‘내가 진짜 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 맞나?’ 그것을 고민하셔야 한다.



◑3. 땅의 임금들의 머리 - 왕이신 그리스도


계1:5,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그 예수님은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셨다.

모든 왕들의 왕, 진짜 왕이라는 것이다.


시89:27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계1:5절 본문의 낭독을 들을 때,

당시 유대교 출신 성도들은, 즉시 시편 89편을 떠올렸을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지금도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그 화려했던 그 다윗의 왕국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바로 다윗의 언약으로 약속되었던 영원한 나라를 완성하셨고,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시89편 전체 내용)


당시 교인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강조시키기 위해서

요한은 시89편의 표현을 인용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다.

<계시록의 대부분 구절은 구약을 토대로 풀어야 한다는 뜻>

 

당시 초대교회 사람들은 로마 황제의 막강한 권세 앞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진짜 왕은 너희 영혼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천명하고 있다.

우리 진짜 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여러분의 진짜 왕은 누구인가?

돈, 명예, 자식, 가정의 행복?

여러분의 온 생각을 다스리고 있는 것(왕)이 무엇인가?

진짜 예수님이신가?

예수가 아닌 다른 왕 때문에, 벌벌 떨고 있지 않으신가?


계시록은 ‘진짜 왕은 예수님이야!’ 라고 말씀하는데,

당시 크리스천들이 로마 황제에 벌벌 떨고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돈에, 명예에 벌벌 떨면서 살 수 있다.

혹은 ‘사람들이 나를 불행하다고 여기면 어떻게 하나?’ 하는

사람의 평판에 벌벌 떨면서 살 수도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 되신 임금님’ 계1:5

이런 표현을 대할 때,

구약에 예언된 왕이신 메시아를 떠올렸을 것이다. 시89편을 연상하면서..


‘그 분이 우리 편이라면, 그 왕 중의 왕이 우리 편이라면,

우리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

왕이신 그 분이 우리를 지키고 계신데, 지금 우리에게 환란과 핍박이 닥치는 것은,

뭔가 섭리가 있을 것이다. 결국 그 모든 것들이 합력해서 선을 이룰 것이다!’

라고 생각하며 평강을 얻는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두려워하며 세상을 살아가는가?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세상 왕들이 마귀의 세력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우리를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고,

고난을 가하고, 고통을 주면, 까짓것 죽으면 된다. 죽으면 천국 간다면서요?


죽기로 각오한 사람은, 천국을 진짜 믿는 사람은,

죽는 것/천국 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핍박과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성경이 왜 이렇게 힘써서 우리를 격려하고 있는가?

계시록 전체가 우리를 응원, 격려하고 있다.

이렇게 격려하는 이유는 - 예수 믿는 것은, 뭔가 싸울 대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계시록에 반복해서 나오는 말은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이기는 자는..’ 이다.

‘복 받는 자는..’, ‘복 받는 자는..’ 이 아니다.


‘이겨라’는 것은 이겨야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투하는 교회, 성도들이다.


멍하니 복이나 받는 자들이 아니라, 전투하는 성도들이다.

마귀의 세력과, 자기 옛 사람(육신)과, 죄에 물든 세상과 전투해야 하는 군사들이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안일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크리스천의 삶에서 고난을 제거해 주시기 위해서, 아들을 보내신 것이 아니다.

크리스천은 전투하는 군병들이고,

오히려 하나님은 영적전투의 고난을 허락하시고,

환란을 허락하심으로써..

 

우리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힘을 키우고,

우리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시는.. 그래서 이 땅은 훈련소이다.

이것이 복음의 바른 해석이다.


우리의 큰형님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대표가 되셔서 이미 이기셨고,

이 땅에서 이길 수 있는 모델(십자가)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가셨다.


그 분은 승리자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지금 앉아 계신다.

우리는 그 자리로 반드시 갈 것이다.


여러분은 자기 문제를 너무 몰두해서 바라보지 마시라.

그 문제에 너무 몰두해서 거기에 목숨을 걸지 마시라.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 보면, 순례자 크리스천이 길을 가는데,

맹수 2마리가 사슬에 묶여서 확 물려고 달려든다.

 

그 맹수를 보고 두려워하면 물리게 된다.

크리스천은 앞에서 비취는 빛만 보고 걸어간다. (맹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맹수가 가까이 오지 못했다.


마귀의 공격은 그런 것이다.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낙담, 좌절 시킬 뿐이지,

우리 영혼을 건드릴 수 없다. 빛만 보고 십자가만 보고 나아가야 한다.

 

문제를 바라보시면 안 된다. 그러면 물어 뜯긴다.

궁극적 승리, 예수님만 바라보셔야 한다.

이걸 잘 하자고 우리가 교회로 함께 모여서, 서로 격려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뭉개구름 타고 오실 것이라 상상하지 마시라.

그 분은 전투하는 모습으로, 폭풍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마귀의 세력과 이 세상에 관영한 죄를 심판하러, 전사의 모습으로

불말과 불병거를 이끄시고, 그들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그때 여러분들은 어떤 모습으로 예수를 맞이하실 것인가?


이 땅에서 예수의 전투에 참여해서 온통 옷이 다 찢어지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부상을 당해서 팔과 다리가 부러진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이해야.. 진짜 군병이지..

이러한 전투인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만나야지..


그때 예수님이 우리를 품에 안으시며 ‘그래 고맙다. 네가 잘 싸워 주었구나.

이제 봐라.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심판하는지..’ (이게 세상 종말이다.)


그런데 군복이 말끔하고, 깨끗하고,

자기 군복 다리느라고

전쟁에서 동료들이 막 죽어 가는데, 자기는 군화만 반짝반짝 닦고 있으면,

그가 예수님이 오실 때 상과 칭찬을 얻을 수 있겠는가?


오늘 우리 십자가 군병들의 군복과 군화의 모습은 어떠한가?

마귀와 세상과 자기 육신과 전쟁을 치열하게 벌이느라고, 다 너덜너덜해져 있는가?

아니면 말끔하고, 반짝반짝 빛이 나는가?


군복이 군복다워지는 것은, 전투를 하면서 피가 묻고 찢기고 헤어졌을 때, 그게 군복 아닌가?

우리는 이 땅에서 싸워야 하는 군병 들이다.


영적 전투가 우리 삶에 막 닥치는데,

남들은 다 편하게 사는 것 같은데, 왜 내 삶만 이렇게 괴로운 거야?’ 하지 마시고,

‘주여, 제가 드디어 선지자로서, 증인으로서 전투를 하게 되었군요,

감사합니다. 한 번 싸우러 나가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겨보겠습니다.’

하고 전선으로 나가게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보호하시고, 끝까지 안전하게 데려가실 것이다.


여러분, 게하시의 눈에 보였던 그 불말과 불병거를 여러분도 보셔야 한다.

몇 번 전투에 나가서 승리하신 경험이 있으신 분은,

더 이상 전투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불말과 불병거를 확신하실 것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문제, 고통, 고난, 눈물, 슬픔.. 을 보시기 이전에,

우리를 안전하게 둘러싸고 있는 불말과 불병거가

우리를 딱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셔야 한다.

지금 우리 옆에 하늘의 불말과 불병거가 마귀들로부터 우리들을 지키고 있다.

끝까지, 마지막 날까지 우리들을 보호하며, 지키며, 거룩하게 만들어 가실 것이다.


여러분, 오늘 본문을 읽으실 때, 하나님의 응원의 목소리를 들으시라.

‘너희들은 증인, 선지자, 왕’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거야. 이기면서 살아가야 되는 거야!

이겨라, 내 아들과 딸아!’

그 목소리를 듣게 되시기 바란다.

 

▲정리하면,

은혜와 평강은.. 무사안일, 태평한 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데,

그 분의 지상에서 삶이 증인으로,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으로, 땅의 임금들의 머리로,

치열하게, 마귀와 영적인 전쟁을 치르며 사셨다.

 

지금 초대교회 성도들도, 그런 똑같은 영적 전투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와중에, 그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온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다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설적 진리요,

오늘 우리에게 왜 은혜와 평강이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 계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