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증인 계11:1~6 계44강 녹취
◑1절, 성전을 측량하라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계11:1
▲문제 제기
10장 말미에서, 요한은 예언사역을 위탁받는다.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0:11
그런데 이어지는 구절(11:1)에서, 왜 성전을 측량하라는 것인가? ←문제 제기
10:11, 11:1 이 두 구절을 어떻게 연결시켜서 이해할 것인가?
측량한다는 것은, 보통 건축을 앞두고 하는 일이다.
하나님이 ‘성전’(하나님 나라/성도를 의미)을 온전히 세우시겠다는 것인데...
▲지팡이 같은 갈대(칼라무스)가 주어졌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길이를 재는데 쓰던 ‘자’였다. 3미터 정도 길이의 갈대였다.
에스겔도 똑같이 성전측량의 명령을 받고서,
장대(갈대)로 성전을 측량하는 장면이 겔40:15절에 나온다.
이 에스겔서 40~48장까지 나오는 ‘성전측량’ 이야기를
요한이 계시록에 차용해서 쓰고 있다.
에스겔서에서도, 에스겔이 성전을 측량하게 하신 것은,
당시 바벨론 침공으로 무너진 성전을, 다시 세우시겠다는 하나님의 계시였다.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
계시록의 기록연대는 A.D.95년이다.
A.D.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된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이 환상 중에 측량하라고 명령을 받은 성전은,
하나님의 나라, 성도, 그 성전이 다시 세워지리라는 예언이었다.
11:1절을, 직전 구절인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10:11
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사도요한이 받은 ‘예언-말씀전파’의 사명은,
하늘나라의 성전인 성도들을 굳게 세우는 것이었다.
즉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사도요한에게 명하신 것은,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그 일을, 앞으로 수행해 나가시겠다는 뜻이다.
◑2절,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라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으리라 11:2
▲성전의 구조
맨 바깥에 ‘이방인의 뜰’이 있었다.
그 안에 ‘여인의 뜰’이 있다. 거기에 헌금함이 있었다. 막12:41
그 안에 ‘이스라엘의 뜰’
그 안에 ‘제사장의 뜰’
그 안에 ‘성소’ .. 이렇게 구분되어 있었다.
본문 11:2절의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의 뜰’을 의미한다.
(‘여인의 뜰’을 포함한 그 나머지는 ‘성전 안 마당/뜰’이었다.)
이방인이 그 ‘성전 바깥마당’에서, ‘성전 안 뜰’로 넘어오면.. 죽음이었다.
이방인은 오직 ‘이방인의 뜰(성전 바깥마당)’까지만 들어올 수 있었다.
계시록 연구의 대가, 리처드 보캄의 해석에 의하면,
위 본문에서 ‘성전 안 뜰만 측량하라’는 것은
성도(성전)의 내적/영적 실체를 보호하시고, 재건축하시겠다는 것이다.
즉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라’는 것은,
성도(성전)의 외적/육적/현실적 문제는.. 보호나 재건축하시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렇지 않고, 다른 일반적 해석은,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는 말씀은.. 거기가 ‘이방인의 뜰’이니까,
‘이방인/불신자들은 하나님이 보호/재건축하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성전 바깥마당은 측량하지 말라’는 말씀은,
‘성전 안 마당(뜰)’은 측량하신다는 뜻이요,
그 측량의 의미는.. 성도(성전)의 보호, 재건축, 건축을 통한 완성을 의미한다.
(이 설교문은, 이 부분에서 보캄의 해석을 따른다.)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으리라
‘성전 밖 마당’은 이방인에게 주어서, 저희가 밟도록 허락 하신다.
즉 ‘성전 밖 마당’으로 상징되는
(1)성도의 외적/육신적/현실적 문제는.. 세상에 밟히도록 허락하신다. .. 보캄의 해석
(2)불신자는.. 하나님이 보호하지 않으시고, 세상에 밟히도록 허락하신다. 일반적 해석
그런데 여기서 저희가 거룩한 성을 42달 동안 짓밟으리라 라고 했다.
‘성전 밖 마당’도, 거룩한 성 속에 포함되는 것이다. 원래 성전 구조가 그렇다.
이렇게 볼 때, 위 (1)의 보캄의 해석이 더 맞다. 불신자가 ‘거룩한 성’의 일부 일리는 없으니까
▲42달 동안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주었은즉’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성전 밖 마당’을 짓밟도록 내어주셨다. 허락하셨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의해서, 성도의 ‘육적 상황의’ 짓밟힘이 일어난다. 보캄의 관점
우리가 7나팔을 통해 계속 공부한 것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7나팔의 재앙 가운데 노출되도록, 허락하신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성도를 보호하시고, 건지신다. 성도는 정금같이 단련된다.
앞서 계7장 ‘14만4천’을 공부할 때,
요한이 민수기의 계수장면을 차용해서, 12지파, 14만4천 개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할 때.
그 목적은, 민수기가 전쟁에 나갈 용사를 계수한 것처럼,
신약의 교회도, ‘영적 전쟁에 나갈 용사들’임을 상징한다... 라고 공부했다.
분문과 연결해서 보면,
하나님은 섭리로,
자기 백성의 육체/현실/환경이 ‘이방인에게 짓밟히도록’ 허락하심으로 성전바깥은 측량 안 함으로
성도 14만4천 는 세상에서 살 때 ‘영적 군사로 영적 전쟁에 노출되는’ 것이다.
‘성전 바깥을 짓밟는 마귀와, 영적 전투를 힘겹게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42달
42달=3년반=1260일=한 때, 두 때, 반 때=사흘 반
이것은 ‘교회시대’(초림~재림사이)를 나타내는 표현들이다.
(우리 각자의 인생의 길이를 나타내는 기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3년반의 해석 - 단9:24~27절의 70이레 간략 해석
이렇게 우리는 인생 내내, 대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게 우리에게 유익이니까.. 하나님이 그 공격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42달 동안
즉, 교회 시대 전체를 통해서
좁혀서 보면 우리 각자 인생 내내
대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고통을 겪게 된다.
◑3절, 두 증인, 권세를 가지다.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1260일을 예언하리라 11:3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42달 동안, 1260일 동안 그렇게 밟히게 놔 두시면서도,
성도들에게 권세를 주신다.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하늘에 속한 성도의 영적 신분’과 - 권세를 가진 신분
‘세상을 살아가는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성도의 신분’을 - 세상에서 밟히는 (십자가 지는) 모습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계시록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낼 수 있는
다시 말해서, 삶으로 입으로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는 힘
- 그 힘과 권세를 성도에게 주셨다는 것이다.
‘굵은 베옷’은 큰 슬픔이나, 장례식을 지낼 때 입는 옷인데,
교회(성도)가 세상을 살아갈 때, 그런 십자가에서 죽는 일이 있을 것을 나타낸다.
▲1260일을 예언하리라
우리의 일생동안, ‘하늘의 권세’를 갖고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예언’ ..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뜻한다.
◑4절, ‘두 증인’은 교회를 의미한다.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11:4
▲두 촛대
두 촛대.. ‘복음증거자로서의 교회’를 상징한다.
계1:20에서, 7촛대는 7교회라고 했다.
본문은, 7촛대가 아니라 2촛대이다.
7은 완전수이고, 7교회는 ‘전체로서의 교회’를 뜻한다.
그리고 2촛대는 ‘그 중에 특별히 증거의 역할을 맡은 교회’를 뜻한다.
※모든 7교회가 다 증거 해야 하지만, 그 중에 특별히 증거의 사명을 받은 교회도 있다.
예를 들면, 신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전도(증거)하러 보내실 때
꼭 2명씩 짝 지워 보내셨다. 막6:7등
두 촛대, 두 감람나무 다 마찬가지다.
42달=1260일 동안, 교회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존재라는 뜻이다.
'촛대'의 이미지가 '빛을 비추는' 것이고,
'감람나무' 역시 슥4장에서 보면, 촛대에 기름을 공급하는.. 즉 '빛을 비추는 것'과 관련 있다.
두 촛대, 두 감람나무.. 모두 '증인'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상징인데,
거기에는 '빛을 비춘다'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두 감람나무
이것은 스가랴서에서 인용되었다.
스가랴서 당시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의미한다.
당시 기름부음 받은 두 사람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였다. 슥4:14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는.. 모두 다 교회를 반복적으로 상징하고 있는데,
스룹바벨.. 교회는 ‘왕(총독)처럼’ 기름부음의 권세를 받았다는 뜻이고,
여호수아.. 교회는 ‘제사장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권세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의 신분과 권세를 나타내주고 있다. 벧전2:9
그래서 이어지는 5절, 6절에는 교회의 엄청난 영적 권세가 더 자세히 나온다.
◑5절, 교회(성도)의 권세 - 말씀의 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 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11:5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온다.
그 불은, ‘말씀의 불’을 의미한다.
렘5:14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
성도는 ‘말씀의 검’을 가진다고 했는데, 히4:12
또한 ‘말씀의 불’도 가진다.
영적 전쟁에서, 성도의 공격 무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전파’가 강력한 교회는.. 마귀가 틈타지 못한다.
그 불에 다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씀전파’가 약한 교회는.. 마귀가 활개 치게 된다.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는, 영적전쟁에서, 강력한 공격 무기가 되는 것이다.
◑6절, 교회의 엘리아, 모세 같은 권세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1:6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엘리야의 기적 사건을 차용하고 있다.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모세의 기적 사건을 차용하고 있다.
이 두 선지자의 기적 사건을 통해서, 계시록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모세와 엘리야는,
강력한 사탄의 권세(아합과 거짓 선지자들, 바로와 그 술객)와 싸워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영적으로 승리했다.
두 선지자는 ‘사탄의 종교(바알종교, 애굽우상)’에 적대적 관계에 있었다.
오늘날에도 ‘두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는,
이 세상의 우상 종교와 적대적/전투적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이 땅에서, 그 적대적 우상숭배 세력과
싸워서 승리하는 (십자가에서 죽는 원리로) 존재 목적이 있음을
본문은 보여주고 있다.
‘모세와 엘리야가 이겼듯이, 너희도 이긴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그렇게 이기셨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의 예표였고,
오늘날 우리도 ‘작은 예수’들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11:3절에,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었다.
우리가 참회하고, 회개하는 모습으로 싸우는 것이다.
성도는 물리적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성도의 권세’가 아니다.
그 ‘성도의 권세, 무기’가 없으면, 성도는.. 세상에 계속 지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물리적 힘'으로 싸우려 하다가는..
반드시 백전백패 하고 말것이다.
아니면 '십자군의 역사'(치욕적인 것)를 새로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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