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과 잠 시84:1 01.04.22. 이중표 목사님 설교
◑1. 집
사람들은 누구나 넓고 비싸고 멋진 집에 살기 원한다.
그러나 '집'의 본질은 건물이 아니라, ‘사랑’에 있고, ‘안식’에 있다.
▲가정 집
우리가 사는 주택이 진정한 의미의 ‘집’이 되려면... 따뜻한 '부모 품'이 필요하다.
명절에 고향으로 귀성인파가 북새통을 이루며
부모가 사는 집을 찾아가는 것은
건물을 찾아감이 <아니다>.
어릴 적 따뜻했던 ‘부모 품’을 회상하며 찾아간다.
청소년은 집이 싫다며 가출한다.
실상은 집(건물)이 싫은 것이 아니라, 부모 품이 싫은 것이다.
남편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건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사랑스런 ‘아내의 품’으로 찾아오는 것이다.
요즘 부부가 틈만 나면 외식外食을 하고,
자녀들에게 피자나 치킨을 배달시켜주면...
한 가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데.. 가족 간에 ‘정情’이 생기지 않는다.
부부간에 정은.. 음식을 만들면서 생기고,
만든 음식을 ‘먹어주면서’ 생긴다.
자녀도 마찬가지다.
엄마나 아빠가 정성스럽게 빵을 구워주고, 스파게티를 만들어줄 때
거기서 부모-자녀 간에 ‘정’이 생기는 것이다.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돈은 잘 벌어오는데.. 부부간에, 자녀사이에.. 정이 생기지 않는다.
모든 것을 ‘돈으로 다 해결’하려고 하는 가운데
우리 인생은 점점 더 메말라가는 것이다.
늦게 퇴근하는 배우자를 위해.. 따뜻한 국물과 찌개를 만들어놓는 것..
학교에서 늦게 귀가하는 자녀를 위해.. 맛있는 도너츠를 구워 놓는 부모..
거기서 우리 집은.. 정말 ‘집’으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노래방에 가서 부를 자기 애창곡만 준비하지 말고,
아무리 바쁜 직장인이라도,
자기 ‘필살기 요리법’은 한 두 가지 정도 갖고 있는 것이 좋다.
그게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무조건 외식만 하는 것보다...
▲살맛 없는 노인
칠순이 지나서 배우자를 일찍 사별하고, 혼자 남은 노인들의 공통적인 말은,
‘이젠 살맛이 없어요!’이다.
서로 의지하던 영감/할멈이 떠나니까, 속히 뒤따라 천국 가고 싶은 심정이다.
중년이 된 그들의 자녀들은, 보통 노부모의 재혼을 극구 싫어한다.
그 이유는, ‘지금 부모님 한 분 모시기도 벅찬데, 두 분씩이나 어떻게 모시랴...’
꼭 노부모가 재혼을 하지 않더라도,
부모님께 살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드려야 한다.
서로 의지할 따뜻한 정이 있어야 ‘집’이지, 그냥 건물이 있다고 ‘집’이 아니다.
▲일평생 집이 필요한 사람들
어려서 집이 필요한데.. 거기엔 부모의 사랑의 품이 있기 때문이다.
장성해서도 집이 필요한데.. 거기엔 배우자의 따뜻한 품이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런 가정이 되도록 늘 기도하며 노력하자.
나아가 우리의 영혼도 집이 필요하다. 거기엔 따뜻한 하나님의 품을 느껴야 한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시84:1
장막(성막)은 짐승 가죽을 바늘로 기워 엮은 허름하고 허술한 텐트를 뜻한다.
그런 자그마한 텐트가 뭐가 그리 아름다운가?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서 하나님과 ‘만남’이 있고,
하나님과 만날 때.. 따뜻한 ‘하나님의 품’을 느끼며 아름다움을 누린다.
성도들이 우리 교회를 아름답게 여기고 다니도록 기도드리자.
교회를 출입하면서, 자기 마음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은혜가 있어야겠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마치 공기가 내 안에 들어오면, 공기는 내 안에, 동시에 나는 공기 안에 있다.
주님이 성령의 생기로 내 안에 들어오셨다.
하나님이 나를 성전 삼고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 안에 산다.
이런 사람에겐 주의 성전이, 주님의 품 안이 언제나 아름답다며 고백하며
비록 세상이 고되지만, 그 날개 그늘 아래서 편안한 안식과 쉼을 누릴 줄 안다.
...............................
▲가정을 흔드는 사탄의 전략 (이 단락 펀글)
사탄이 전 세계에 흩어진 부하들을 총회로 소집했다. 다음은 그의 개막 연설이다.
우리는 참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교회 가는 것을 막을 데 실패했다.
그들이 성경 읽는 것도, 주님과 친밀한 교제 관계를 갖는 것도 방해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접근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졸개들이 물었다.
삶의 비본질적인 것에 시간과 관심을 집중하도록 최대한 미혹해야 한다.
다른 잡다한 일로 시간을 빼앗아 개인 경건의 시간을 못 가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을 하도록 만들어서, 외형적인 성취가 많도록 하고,
거기에 도취하고 만족케 하라. 일에 빠지게 하라.
그들이 집에 돌아오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늘 켜 두도록 붙들며,
거실 탁자에는 각종 할인 쿠폰, 파격적 세일을 알리는 전단지를 가득 쌓아 두어라.
우편함에도 여러 가지 광고와 할인을 알리는 홍보물을 홍수처럼 보내라.
각 종 뉴스 프로그램을 신설해서 24시간 뉴스CNN를 청취하도록 만들어라.
식당과 터미널에서도 사방에 텔레비전을 설치, 잠시도 한 눈을 팔지 못하도록 하고,
늘씬한 모델들로 잡지를 도배해서, 남자들이 그것을 할 일없이 뒤적거리게 해라.
대형 백화점 바겐세일을 쉬지 않고 열고, 각종 사은품을 푸짐하게 주도록 유도하라.
거기에 문화 행사와 먹거리 장터도 곁들여서 아예 주부들이 푹 빠지게 만들어라.
값싸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공급하고, 사람들이 많이 먹고 비만에 빠져서
날마다 운동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만들어라
고상한 레크레이션 및 오락 스포츠를 많이 계발해서,
사람들이 사교클럽으로 모이게 만들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곧바로 쉬도록 만들어라.
그들을 총체적으로 바쁘게 만들어라.
그래서 기도 할 시간이, 성경 볼 시간이 없도록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하라!
가족들 간에 서로 대화할 시간이 없도록 만들어라!
가족들이 함께 모여 밥도 먹지 못하게 하라!
바쁘신가?
바쁜 것은 사탄의 멍에 아래 붙잡히는 것입니다!
B-eing U-nder S-atan's Y-oke <외지에서
◑2. 하나님이 주시는 잠
시편 127:1-2 01.05.27. 이중표 목사님 설교, 블로그 글 스크랩
▲잠은 축복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신비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에서 ⅓을 잠으로 보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는 날의 대부분은 잠을 자면서 삽니다.
이 잠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은혜를 받아야 되고, 잠자는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하는 축복도 주시지만, 잠자는 축복도 주십니다.
잠자는 축복은 일하는 축복보다 더 큰 것입니다.
왜냐하면 잠을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또 잠을 통해서, 인간에게 주고자 하는 모든 축복을 다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것은 낮에 주는 것이 아니라, 밤에 주십니다.
낮에 일을 통해서 주시지 않습니다.
밤에 잠잘 때 우리에게 중요한 두 가지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하나는 안식이고, 하나는 행복입니다.
행복은 일에서 받지 못합니다. 잠을 통해서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저는 어린시절에 너무 너무 가난한 집에 태어나 배를 채우지 못하니까
항상 허기졌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배가 고프면 물로 배를 채우고 잔디밭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배는 물로 채웠으나 가슴은 하늘로 채워다오.”
가슴을 하늘로 채운다는 것은 꿈이요 희망이지만 또 다른 비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채우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이요, 숨은 곧 하늘을 마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공기를 마시면서 하늘을 제 가슴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은 후에 내 가슴에 하나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통하는 신비한 은혜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 어렸을 때 잠 잘 방이 마땅치 않아서 친구들 집에 가서 잠을 잤는데
친구 집에 가서 잠을 자다가 어떤 때 문이 잠겨있으면
잠자는 사람들을 깨울 수 없으니까
집 주변을 빙빙 돌다가 짚단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잠자리 하나 가지고 자는 것이 큰 복인데
나중에 예수 믿고 깨달은 것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1-3)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집이 되는데 그 집은 뭐하는 곳이냐? 잠자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집으로 삼고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제가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것은 너무 가난해서 배에 밥을 채워주지 않으므로
내가 하늘을 마시는 은혜를 받게 했고
집이 움막집이라 마땅히 잠잘 집이 없어서
하나님을 나의 집으로 삼아 큰 은혜를 받게 했으니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다.
제가 효자가 되고 싶은 것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나에게 좋은 것을 주어서가 아니라 하늘을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신비한 생명의 숨결을,
그리고 아버지의 안식의 집을 주셨기에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려고 고생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예정된 불효자라고 생각하고
나 때문에 우리 부모님 고생하시고 가난한 집에서 사셨나 하는 것 때문에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는 때가 많습니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1) 첫째는 건강해야 잠을 잘 잡니다. 병들면 잠이 안 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할 때는
건강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신경이 쇠약하면 잠이 안 옵니다.
번민하면 잠이 안 옵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잠을 못잡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을 잘 잔다는 것은 큰 복입니다.
(2) 두 번째로 정신이 건강해야 잠을 잘 잡니다. 정신적으로 병들면 잠을 못잡니다.
우리 마음에 근심이 쌓이면 잠을 못잡니다. 남을 미워하면 잠을 못잡니다.
한 맺혀 있으면 잠을 못잡니다.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면 잠을 못잡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건강의 약속이 잠입니다.
과거를 후회하고 탄식하면 무슨 잠이 오겠습니까.
부부간에 서로 싸우고 밤에 잠이 오겠습니까.
그래서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것은 마음에 평안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참고로, 간혹 어쩌다가 커피를 많이 마신 날, 밤에 잠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제/편집자가 '인터넷 설교 조용하게 틀어놓고 듣다보면' .. 신기하게 자게 됨을 봅니다.
사람은 단조로운 소리를 게속 들으면, 스르르 잠이 온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해 보십시오!
잠자기 위해 설교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를 듣다보면, 쉽게 잠들게 됩니다. TV설교는 말고요.)
(3) 회개한 사람이 평안한 잠을 잡니다.
잠은 천국의 약속입니다. 내 영혼이 잠드는 세계가 천국인데
죄지은 자는 천국을 못갑니다.
그래서 죄지은 자는 밤에도 잠을 못잘 뿐만 아니라 천국의 잠도 못잡니다.
죄지은 자들은 괴로워서, 무서워서, 공포증 때문에 잠을 못잡니다.
사람을 죽인 자, 도적질 한 자, 악한 자는 잠을 못잡니다.
설사 잠을 잔다고 하더라도 쫓기는 꿈을 꿉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죄사함의 은총을 받아야 됩니다. 천국에 가기 위하여,
잠을 얻기 위하여 내 영혼이 안식을 얻기 위해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어린 아이가 잠잘 때 어머니의 사랑이 극치에 이릅니다.
어린 아이가 잠들 때 어머니는 곁에서 지극한 사랑을 보냅니다.
우리가 낮에 일할 때보다도 밤에 잠들 때 하나님의 사랑이 더 크게 임합니다.
일할 때는 나 혼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없어도 얼마든지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밤에 잠잘 때는 하나님 없이는 못잡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야 우리가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4)
또 죄 지은 자는 잠이 안 옵니다. 그래서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낮에 선하게 남을 도와주고 위해주고 사랑해 주어야 마음에 평화가 오니까
잠이 잘 옵니다. 지옥은 잠 못 자는 곳입니다. 천국은 편하게 잠잘 자는 곳입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해서 잠을 잘 자십시오.
때린 자는 발을 웅크리고 자고, 맞은 자는 다리를 쭉 뻗고 잡니다.
양심에 가책이 없으니까요.
이런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잠은 엄청난 축복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4) 여러분은 일하기 위해서 잠잡니까? 잠자기 위해서 일합니까?
일하기 위해서 잠자는 사람은 노동자입니다. 노예입니다.
그런데 잠자기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바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잠자기 위해서 일합니다. 잠이 목적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장삿꾼입니다.
잠자기 위해서 일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비에 이르는 것입니다.
낮에 열심히 일한 사람만이 잠을 잘 잡니다.
낮에 빈둥거리고 낮잠 자고 게으름 부리는 사람은 밤에 잠이 안 옵니다.
하나님께서 잠을 빼앗기 때문입니다.
▲잠은.. 믿음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잠은 전적인 신뢰와 의탁입니다.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 잠입니다.
그래서 잠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냥 자는 것 아닙니다.
잠잘 때 “주여, 믿습니다.” 하고 잠을 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광풍이 휘몰아치는데 그 광풍이 메가톤급 파도였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떨 때 예수님은 배 난간 고물을 베개 삼으시고 주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웁니다.
“주여, 어찌하여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때 주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잠잠케 하셨습니다.
주님은 믿음으로 풍랑 속에서 주무십니다.
하나님의 세계를 믿기 때문에 잠을 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지 못해서 잠 못 자는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근심이 왜 잠을 빼앗아갑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믿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미래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는데
하나님 손에 의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잠을 못자는 것입니다.
지금 근심, 걱정 있습니까? 다 놓으시고 편히 주무십시오.
나는 교회에 와서 조는 것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졸리는 설교는 자야 합니다.
저는 목사들에게 그럽니다. “설교를 잘하든지, 졸리게 하든지 둘 중 하나 하라”
괜히 열나게 하면 목회 못합니다. 설교 시간에 조는 사람은 목사 안 건드립니다.
안자고 눈을 똑바로 뜨고 노려보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졸릴 때 자십시오. 걱정하지 말고 자십시오.
믿음으로 잠을 얻는 것입니다.
▲잠은 천국에 이르는 소망입니다.
성경은 죽은 자를 잠잔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자는 잠이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었을 때 ‘스데반이 자니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무 은혜를 많이 받아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후 5:8)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영생에 이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잠든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재림하시는 날 깨어나는 기대, 이것이 소망인데
내가 잠들 때는 내일 아침 깨어날 것을 기대하고 자는 것처럼
내가 죽을 때 천국에서 그리스도의 새로운 세계를 약속받고 잠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밤도 잠을 잘 때 죽는 연습을,
아침에 깨어날 때는 부활하는 연습을,
죽음과 부활을 계속 되풀이하다가 마지막 날 깊이 잠들어
나중에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의 나팔로 깨어날 때 모두 다 깨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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