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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40년인가?

LNCK 2010. 10. 29. 13:15

◈왜 40년인가?      민14:30~35        1999.05.02.설교스크랩, 출처

 

 

다소 Radical한 메시지입니다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분별해 봅시다.

이 메시지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는지..? 

저도 이미 구세대입니다만,

이 땅에서 기복주의, 성공주의가 사라지려면, '40년'이 걸려야 한다고,

저도 평소에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편.

 

 

▶서론

오늘이 1999년 5월 2일, 앞으로 7개월만 있으면 대망의 2천년대를 맞습니다.

과연 2천년대의 한국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한국교회는 지금처럼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2천년대의 땅에 들어가서 유럽교회처럼 몰락해 버리고 말 것인가?

 

시대를 따라 흥하는 게 있고, 망하는 게 있습니다.

종이와 볼펜이 문화를 주도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가 나오면서 종이와 볼펜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하철이 나오면서 버스가 점점 줄어듭니다.

저는 지금 486 컴퓨터로 설교를 작성합니다만, 이제 486은 고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2천년대에도 계속 성장하면서

한국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껍데기만 덩그라니 남아있는 쇠락한 종교집단으로 남을 것인가요?

 

그에 대한 답은 어린이들, 청소년들이 쥐고 있습니다.

왜냐? 다음 세대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교회는 우리가 주역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의 주인은 바로 자라나는 어린이들이고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을 바로 키우면 다음 세대는 흥하는 것이고

그들을 키우는 일에 등한시한다면 다음 세대는 망하고 말 것입니다.

 

 

◑1. 왜 40년이나 걸렸습니까?

 

▶나의 고민과 질문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이후 광야에서 40여년을 방황했습니다.

그 거리는 한달이면 넉넉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40여년을 헤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사실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40일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걸렸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엉금엉금 기었다 해도 40년씩이나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신학생 때, 이 불가사의 때문에 고심했습니다.

 

‘왜 40여년이나 걸렸는가?’

저는 이 질문을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도 그 명쾌한 대답을 제게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해답을 찾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며, 찾는 자에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40년의 비밀을 간절히 찾는 저에게, 40년의 섭리를 알려주셨습니다.

40년의 비밀!

 

사람들 대부분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에서 해답을 찾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거역하고 불순종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뺑뺑 돌리셨다는 것입니다.

그 해석이 틀린 게 아닙니다. 옳아요.

 

그러나 저는, 그 해석이 모든 해답을 주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언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는 죄의 역사요, 부도덕한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근성을 다 아시면서 출애굽시키셨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그들의 죄에 진노하셔서,

40년을 뺑뺑 돌렸다는 것은 옳은(충분한) 대답이 아닙니다.

 

이 문제로 오래 고민하던 제가, 드디어 해답을 찾았습니다. ↙

 

 

◑2. 세대교체 되는데, 40년이 필요했습니다.

 

당장 1년만에 세대교체 되지 않고, 40년이나 걸린 것이 은혜이지요...

물론 그 이유는, 은혜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세대가 준비되는데, 40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4백년 동안 애굽에 동화된 히브리 백성들

이스라엘이 광야 40년을 헤매는 동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2가지입니다.

심판과 교육입니다.

 

누구에게 심판하셨을까요?

기성세대, 즉 불신의 애굽세대를 향해서 심판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들을 향해서 진노하시고 멸절시키는 일들을 계속하셨습니다.

 

애굽세대는 겉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언약의 자손이라 했지만

사실 4백여년 애굽에서 살다보니, 모두 애굽사람들이 되어버렸어요.

출애굽 이후 그들이 보여준 모습들을 살펴보세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다른 게 없습니다. 원망, 불신, 거역, 믿음의 후퇴...

 

4백년 전,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갈 때는 이런 영적 질병들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요셉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는 여호와 중심의 신앙이 있었습니다.

 

▶4백 년 동안, 사실 영적 침체기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에 들어가서 병에 걸려버렸습니다.

육신적으로는 수 백 만 명의 민족으로 번성했지만,

믿음의 부흥은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럴만도 한 게 애굽 4백여 년 동안,

선지자도, 랍비도, 예언자들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숫자적으로만 부흥한 것입니다.

 

4백년 동안 내려오면서 애굽화된 기성세대들,

그들은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강한’ 군사들이 필요했습니다.

왜냐? 가나안땅에는 일곱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고 온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들 종족을 네피림의 후손인 아낙 자손 대장부라고 했습니다.

네피림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로서 짐승에 가까운 종족들입니다.

 

그들은 부도덕했고 반종교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죄성(罪性)이 강했습니다. 죄성은 인간이 쉽게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을 쉽게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더군다나 가나안은 그냥 자동적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닙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땀흘리고, 노력하고, 점령하고, 수고하여,

젖과 꿀이 흐르도록 만들어 내야할 땅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아야 하며, 고생을 각오해야 합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사는 동안 그들의 야성(野性)은 약해졌습니다.

 

그들의 시조(始組) 아브라함은 누구입니까? 개척자 아닙니까?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해 온

불타는 개척의 정신을 가진 선각자 아닙니까?

 

그들의 조상 야곱은 어떤 사람입니까?

야곱은 하나님과 겨룬 사람입니다. 그만큼 삶에 치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애굽에 사는 동안 개척자의 정신, 치열한 삶의 정신이 무디어져 버렸습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투정이나 하고

새로운 세계로 날아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새장 속의 길들여진 새와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정신을 갖고서는 가나안에 들어가봐야 네피림의 밥이 되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네피림의 밥으로 만들려고, 가나안으로 끌고 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은.. 광야에서 그들을 다 세대교체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40년 걸렸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가 적당할지 모르지만,

옛날 백제 계백장군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을 맞아 황산벌 전쟁터로 나가면서

아내와 자식들을 제 손으로 죽였습니다.

그는 그 싸움이 패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장수는 항복하거나 물러날 수가 없습니다.

 

전투에서 패배하면 장군의 아내와 자식들이 수모와 겁탈을 당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직접 그들을 베어 장사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하나님은 애굽에서 길들여진 사람들,

도무지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거듭날 수 없는 기성세대,

그들을 광야에서 제 손으로 죽이리라 결심하셨습니다.

 

홍해 앞에서, 가데스 바네아(정탐꾼 파견지)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도무지 가나안에서 함께 할 수 없는 불신앙이었습니다.

그들의 고집과 아집은 어떠한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죽어야만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차단

또 하나, 하나님께서 기성세대를 멸절시키신 것은

그릇된 영향력을 차단시키려는 것입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은 아버지 세대, 할아버지 세대와는 다릅니다.

그들은 애굽에 과히 물들지 않은 세대들입니다.

 

그러나 불신의 기성세대와 함께 있으면 물이 듭니다.

좋은 것은 전염이 늦게 되지만, 안 좋은 것은 쉽게 전염이 됩니다.

우리 속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른이 되고, 지도자로 남아있는 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여인들과 애굽의 남성들과 지내본 사람들이기에

쉽게 가나안 족속들과 혼합됩니다.

그러면 가나안의 세속문화에 쉽게 빨려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성인들을 멸망시키심으로

기성세대의 그릇된 영향력, 불신앙의 전염성을 뿌리채 제거하신 것입니다.

그러느라 40여년이 걸린 것입니다.

 

▶새 세대를 양성한 기간이 40년

광야 40여년은 단순히 하나님의 징벌과 심판의 세월만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만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과 그분의 속마음을 너무도 몰라주는 것입니다.

 

광야 40여년은 새로운 세대를 키워내는 생산의 세월이었고

그들을 교육시키는 훈련과 교육의 기간입니다.

 

그들은 나이 어린 세대로서, 애굽의 영향권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여러 가지 이적과 양식의 공급으로

직접 자신을 계시하시며 교육시켰습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現存)과 인도를,

메추라기와 만나를 통해 하나님의 공급을,

반석에서의 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직접 교사가 되셨고, 선지자가 되셨고, 랍비가 되셔서,

보여주는 교육을 통해 광야의 세대를 키워나갔습니다.

 

애굽세대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기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너무 확실했습니다.

하나님의 교육 기간이 끝나고 요단강에서 졸업시험을 치루었는데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그들은 법궤를 앞세우고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40년 전 그들 조상들이 홍해 앞에서 보여준 불신앙에 비해

엄청난 차이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우등생이 된 것입니다.

바로 우등생을 만들기 위해 40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림과 손수 다듬으심을 통해

새로운 세대교체를 이루어 어 내셨던 것입니다.

 

 

◑3. 신사고를 가진 갈렙과 여호수아

 

갈렙과 여호수아는 애굽세대이면서도,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신사고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신 사고는 하나님 중심의 사고입니다.

하나님 중심은 긍정적인 사고입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는 사고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사고를 지닌 사람들만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신세대를 키워내는 학교가 되어야합니다.

 

▶마치는 말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곧 2천년 대를 맞습니다. (1999.05.02. 설교)

그러나 그 세대는 우리의 세대가 아닙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에게 가나안이 해당되지 않았듯이

우리는 이미 20세기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녀가 다음세대의 주역들입니다.

21세기의 한국교회를 위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 자녀가 하나님 중심의 사고로 살 수 있도록

모두들 가정에서 교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21세기의 한국교회는 계속 부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

 

 

▶성경 본문

민14:30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31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32 너희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

 

33 너희 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사십 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35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

 

 

관련 일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간증                                  이 단락 녹취 스크랩

 

어제 제/설교자가 고등학교 학생들과 그룹 나눔 모임을 가지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데, (아직 어린 나이인데)

그의 얘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모임을 마치고, 밤에 잠을 자는 시간에도, 자꾸 그의 말이 뇌리에 떠올랐습니다.

 

제가 이런 ‘나눔 주제’를 던졌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실감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그때 그 고등학생이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저는 정기적으로 기도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제 나름대로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특별히 기분이 나쁠 때는, 보통 혼자서 기도를 드립니다...

 

   (제가 그의 얘기 중간에 물었습니다.

    ‘왜 특별히 기분이 나쁠 때, 기도를 하게 되는 건지..?)

 

제가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제 마음이 점점 떨어져 나와서,

마음이 올라가고(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자리가, 이 세상에서 제일 낮은 자리인데,

제가, 그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마음이 높아질 때,

반드시 제가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 마음이, 십자가에서 낮은 상태로만 계속 유지 되었더라면,

그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해도,

내 주변에서 사건이 그런 식으로 발생하더라도,

제가 기분이 아주 우울할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을 터인데..

 

제 마음이, 나도 모르게 높아져 있는 순간,

제 기분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기분이 나쁠 때는, 특별히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니다.

기도하면서, 다시 나의 십자가의 자리로 제가 나아갑니다.

제 마음이 십자가에 달린 것처럼 낮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기분이 다시 회복되고,

어떤 어려운 일이 주어져도, 내가 기분 나쁘지 않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면서, 그 일을 해 나가게 됨을 경험 터득 했습니다.”

 

제/설교자가 그 학생의 나눔을 듣고, 마음에서 눈물이 퍽 쏟아질 뻔했습니다.

불과 고등학교 1학년인데,

십자가의 신앙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설교자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신앙생활 30년~40년 한 권사님, 장로님보다

(평생 교회 생활하면서도, 십자가 신앙을 아직 체득하지 못한 어른들보다)

어쩌면 신앙심이 더 나을 수도 있겠구나!’

 

제가 평소에 늘 ‘십자가 설교’를 하는데,

어른들은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지, 늘 듣고 잊어버리시는데,

아이들은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지, 듣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삶으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아, 얼마나 마음이 감동스럽던지...

(신앙도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잘 배워야 하는데요..)


 

▶옛날 우화 - 처음 교육이 중요하다는 내용

 

오래전 과거에, 어느 두메산골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일자무식이었습니다.

서당도 없었고, 훈장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의 최대의 숙원 사업은, 자녀들을 공부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서당을 만들고는,

지나가는 한 나그네를 붙잡고,

제발 우리 아이들의 선생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나그네는, 너무 강청하니까, 하는 수 없이 훈장이 되기는 했는데,

문제는 그 역시 거의 일자무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훈장은

地(땅 지)를 써 놓고, ‘하늘 천’이라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따라 읽었습니다.

天(하늘 천)을 써 놓고, ‘따 지’라고 읽었습니다. 아이들도 모두 따라 읽었습니다.

그 다음 초대 훈장은 그 마을을 떠났습니다. 더 가르쳐 줄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나그네가 그 두메산골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은, 제발 부탁해서, 그를 서당의 훈장으로 모셨습니다.

 

두 번째 부임한 훈장은

天(하늘 천)을 써 놓고, ‘하늘 천’하고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따 지’로 읽었습니다.

地(땅 지)를 써 놓고, ‘따 지’라고 읽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하늘 천’으로 읽었습니다.

 

두 번째 부임한 훈장은.. 쫓겨났습니다.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하늘 천을 써 놓고, 따 지로 가르치고,

땅 지를 써 놓고, 하늘 천으로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 우화의 교훈은 ‘사람은 처음 배운 것, 선입견’을 진리로 받아들인다..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입문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처음에 ‘기복주의’로 입문한 신자들은.. 그게 진리인 줄 알고, 절대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심한 경우 죽을 때까지) 

 

    그런데 위의 고등학생은,

    처음 배운 신앙이 '십자가 신앙'이니,

    그것을 평생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