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 기뻐하는 추수감사절 신16:13~17 09.11.15.설교스크랩
◑초막절(추수감사절) 올바르게 지키는 법 한 가지
▲추수감사절에 느끼는 부담감
저는 이번 주간 추수감사 주일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감사절을 지키게 하시는 이유’ 중에 하나를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어서 나누려고 합니다.
지난 목요일, 어떤 모임에 참석했다가.. 거기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미자립 교회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는 예년에 비교하면 우리 형편이 참 좋다.
특히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풍성하게 채워주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금년 추수감사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에 갔다가, 저는 그 자리에서 미자립 교회 실태를 들었습니다.
40% 정도의 교회가 1년 결산 2,500만원 미만이라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생활이 되지 않고, 교회가 존폐 위기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듣는 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저는 올해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면서.. 솔직히 제 마음이 풍성하였습니다.
적어도 작년 같지는 않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렇고.. 특히 교회적으로도..
작년 이맘때보다 형편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올해가 작년 보다 더 고통스런 교회나 이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동하여 오는 교인이 많은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부담감이 생겼습니다.
우리 교회가 예년보다 많이 성장했고,
재정적으로도 하나님이 복주셨다고 좋아만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래서 오늘 추수감사절을 기분 좋게 잘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을.. 내가 감사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생각보다 더 깊은 곳에 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빈자들과 함께’ 추수감사절을 지키라
본문은 추수감사 주일 때마다 자주 인용하는 성경입니다.
그런데 늘 흘려 지나치던 구절이.. 금년에는 유난히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7일 동안 초막절(추수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신16:13~14
예전에 저는, 이 구절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추수감사절을 지킬 때는
하나님이 이 구절을 제게 주시고.. 제 마음을 사로잡으셨습니다.
감사절에 ‘자녀’나 ‘레위인’과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노비나 나그네나 고아와 과부와도 함께 즐거워할 절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즐거워하는 추수감사절은.. 안 됩니다.
저는 우리의 추수감사 주일이
‘우리 주위에 사는 가난하고 어려운 교회나 이웃들이 즐거운 날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정신이 번쩍 났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추수감사절 예배로 인해서
우리 주변의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이 얼마나 즐거우냐 하는 것도
하나님이 함께 보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희 교회가 추수감사절 예배가 풍성하게 드려지는 것 때문에
주위의 어려운 교회들도 그렇게 즐거울까요?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이 그렇게 기쁜 일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나름대로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을 전혀 안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 기준에 합할 만큼 우리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 예배를 거창하게 드렸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이 그렇게 즐거웠으리라고는
제가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성도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감사를 드리는 감사절 예배만 신경 썼지
주변의 가난한 이웃을 위한 생각은 너무 소홀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빈자를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특별법’
▲화목제물을 하루 만에 먹어야 하는 이유.. 구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사 제사를 드릴 때,
이상한 규정을 두신 것을 보게 됩니다.
레7:15~18절, 하나님께 바쳐진 제물 중에
바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제사가 있었는데,
감사의 제사인 <화목제>입니다.
그런데 이 제물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되, ‘그 날로 다 먹으라’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화목제물의 고기는 드리는 그 날에 먹을 것이요
조금이라도 이튿날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니라. 레7:15
혹 서원제인 경우에는 다음날까지 먹어도 되지만 :16
그 경우에도 셋째 날이 되면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레7:18, 만일 그 화목제물의 고기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되지 못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그 죄를 짊어지리라.
(셋째 날까지 남은 것은.. ‘불살라서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17)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이상한 규정을 두셨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려운 형편의 가정은 제물로 비둘기를 잡거나 곡식 가루를 바칠 수 있었지만)
좀 넉넉한 가정에서 소를 잡고 양을 잡는 경우,
하루나 이틀 만에 그 고기를 온통 다 먹기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말은 어려운 이웃, 나그네, 고아와 과부들과 함께 나누어 먹게 한 것입니다.
그래야 그것을 하루에 다 먹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감사 제사를 드려 잡은 제물을
어렵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먹게 하시려는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감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추수에 관한 법’도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수할 때
자기 밭이라도 네 귀퉁이까지 다 추수하여서는 안 된다는 법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하여.. 네 귀퉁이는 남겨 놓고 추수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추수하다가 단을 떨어뜨리거든.. 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추수를 해도 대충 하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워갈 수 있도록 버려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추수 등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 생길 때, 언제나 가난한 자들에게 도움을 베풀어
그들이 함께 기뻐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
동물학자 리처드 리키 Richard Leaky는 오랫동안 케냐에 살면서
인간과 가장 흡사하다는 원숭이를 연구하였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하여, 원숭이와 사람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알아냈습니다.
사람이 원숭이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원숭이 세계>에서는 철저하게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지배하고 괴롭히는 세계였다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들의 세계>에서만 약한 자를 너그럽게 대할 줄 알고
의좋게 나누어 쓸 줄 알고,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길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과 원숭이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기적인 점에서.. 동물의 본성도 있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에.. 약한 자를 돕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인 이상..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러면 동물입니다.
사람이라면 강한 자는 약한 자를 도와주게 되어있고,
많이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과 나누어서 같이 쓰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본성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람 공동체가, 동물 공동체와 다른 점입니다.
▲신명기 24장에, 빈자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이 구구절절 나옵니다.
신24:14-22,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추수의 영적 의미.. ‘종말과 심판’
여러분, 추수감사절은 1년의 수확을 거두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이지만
영적 의미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 때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기억해야 될 것은
이렇게 ‘마지막에 추수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추수할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인류 역사도 심판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알곡과 가라지를 추수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추수감사절인 초막절에 전도서를 읽습니다.
전도서의 중요한 교훈은 말세론적인 교훈입니다.
이것은 초막절이 하늘에서의 영적 추수, 천국 추수와 관련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심판을 알곡과 가라지를 가르는 추수에 비유하셨습니다.
우리가 오늘 추수감사절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사실 예행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 받을, 그 날에 대한 예행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추수감사 주일을 준비하면서
‘지난 1년간 내게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점검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추수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정말 물어야 할 것은
‘나 자신은 하나님께 알곡인가? 아니면 쭉정이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추수감사절을 제대로 지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올 1년 여러분의 삶을 살펴보시면서
“야, 대단한 수확이군! 정말 믿음의 열매/사랑의 열매/소망의 열매가 잘 맺었구나!”
하시며 흐뭇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니, 이게 뭐야! 쭉정이잖아!” 하시겠습니까?
여기까지 가야 진정한 추수감사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알곡이고 무엇이 쭉정이 입니까?
예수님은 마25장에서 마지막 심판 자리에 내가 서게 될 때,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알곡과 쭉정이로 나뉘는 기준이 무엇이냐 하면
‘병든 자, 감옥에 갇힌 자,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였느냐?’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예수님께 하듯 했느냐?’ .. 그러면 알곡이고
‘높은 길 성공하는 길만 바라보다가 더 많이 가지는 삶만 사모하다가
내 옆에 어렵고 고통당하는 사람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면.. 쭉정이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주변에 있는 ‘작은 자’들이 눈에 들어옵니까?
눈에 들어오는 정도가 아니고 그들이 예수님처럼 보입니까?
아니면 그들을 ‘루저’(loser, 패배자)라고 멸시하는 눈으로 쳐다보십니까?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헐벗은 자, 나그네 된 자, 이런 사람들이 눈에 들어옵니까?
그들이 예수님처럼 보입니까? 그러면 알곡이 되어 가시는 것입니다.
‘어떤 어려운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그저 나 먹고 살기도 힘들고 어떻게 하든지 성공해야 되겠다고
이를 악물고 살았습니다.’
그러면 열심히는 살았어도.. 뭔가는 이룬 것이 있어도.. 쭉정이가 된 것입니다.
자신이 ‘루저 loser’가 아니더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루저’인 것입니다.
▲마치는 말
사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가 제대로 된 것이라면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들에게 그것이 기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많이 드렸는데.. 내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들이 즐거운 일이 없으면
감사절을 온전하게 지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이 함께 즐거워져야 감사가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과 테러, 지진과 태풍, 가난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울고 계십니다.
우리 주변에도 가정 파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건강 때문에
애통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눈물을 보시고, 주님도 눈물을 흘리십니다.
어려운 자녀들의 형편을 부모는 가장 아파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중에 있는 어려운 이들에게 가 있습니다.
그들을 돕는 사람을 하나님이 반드시 복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나에게 하듯 했다면.. 하나님은 그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25:40
▲지금 우리 교회 주변에 있는 어려운 교회와 이웃들이
“선한목자교회 추수감사 헌금이 많이 나오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할까요?
관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정말 하나님 말씀대로 하게 되면,
오늘 선한목자 교회 추수감사절 헌금이 목표보다 더 나오게 해달라고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교회가 간절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기쁨이니까요.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말할 수 없는 복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알곡과 같은 믿음으로 여러분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뻐하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 같은 교회가 되도록, 이 시간에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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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맥스웰 목사님은, 어느 주일에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우리도 그 길을 걷자!’는 내용으로 설교를 준비하고 계셨는데,
너무나 영감이 넘쳐서.. 열심히 말씀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때 한 행려자가 찾아 와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설교 준비하는 데 방해가 되었기에 짜증이 나서
다음에 오라고 문전박대를 하고 보냈습니다.
그리고 오는 주일에 설교는 참 은혜롭게 마쳤는데,
그 행려자가 길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그 날 목사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십자가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그 행려자를 도왔어야 했는가?’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 때부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항상 자문하며
목회하고 교인들에게도 호소하였답니다.
그 이후에 목사님과 교인들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신문 편집장, 가수, 장사하는 이들, 도시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유명한 찰스 쉘던 목사님의 신앙 소설
「In his steps,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의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주간 11월 7일자 신문에 기분 좋은 뉴스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베푸는 나라로 바뀐 지구상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세계은행의 원조 대상국 명단에서 제외되기 까지
국제 사회의 공적 개발원조(ODA)로 '연명'했다는 표현이 적합한 '수원(受援)국' 이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2009년 올해 9350억 원(작년 기준)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의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원조 공여(供與)국'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혹자는 아직도 우리 경제 규모/세계 12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규모라고 합니다만...)
6·25 전쟁 때 한국에 군대를 보내 피를 흘리며 함께 싸웠던 필리핀, 에티오피아,
콜롬비아에 우리나라는 지난해 각각 895만 달러, 419만 달러, 133만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오는 11월25일 우리나라는 DAC 곧 OECD '개발원조 위원회'에 가입하게 됩니다.
한국이 DAC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국제 사회로부터
진정한 '원조 선진국'으로 인정받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나라는 국제 원조를 받다가 주는 나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유일한 사례입니다.
2차 대전 후 원조를 받은 대부분 국가는 부패한 정치 환경 등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됐지만, 한국만 그 수렁을 빠져 나왔습니다.
"DAC 가입국 중 개도국 경험을 가진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살리면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원조 공여국과 수원국 간의 연결고리'라는 차별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