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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를 주목하느뇨? 2970

LNCK 2011. 4. 25. 17:32

 

◈왜 우리를 주목하느뇨?          행3:11~12             09.03.17. 인터넷설교 스크랩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3:11~12

 

 

◑‘내 믿음’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자기를 주목하니까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고

병을 실제로 고치신 예수님이시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고침 받은 사람이나 구경하는 사람뿐 아니라, 사역자 자신도 그래야 합니다.

사역자 자신이 자기를 주목하면 안 됩니다.

자기의 경건이나 능력이나 권능이나 은사에 주목하면 안 됩니다.


거기에 주목하면.. 헛바람이 들어가 가지고, 가짜 믿음이 일어납니다.

자기를 주목하면, 자기의 경건이나 능력이나 은사를 주목하면,

그것 때문에 기도하면 병이 나을 것 같은 믿음이 옵니다.

그런데 실제로 기도하면 낫지 않습니다.


“믿었는데 왜 그렇지?”

그것은 믿은 것이 아니고 착각한 것입니다.


사람이 교만해지면 혼동할 수 있습니다.

자기 능력은 이것밖에 안 되는데

사람이 교만해지면 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혼동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의 형태로, 자기 심령에는 와 닿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자기 경건이나 권능이나 뭐든지 그렇습니다.

자기가 기도한 것이라든지 은사라든지 이런데 주목하면 헛바람(교만)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하고 똑같이 느껴집니다.


믿음하고 똑같이 느껴져서 “기도하면 낫겠다.”

그런데 기도해도 별로 안 나으니까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로서 충분하고 가능하다고 하면.. 믿음이 필요 없습니다.


믿음은 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는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에,

내 속에 있는 것으로서는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관련해서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이 단락 펀글 삽입

우리가 요3:16절, 롬10:17절 등을 암송하면서

‘나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습니다.’ ... 그러면 구원 받는 줄 아는데,

이런 개념의 문제점은 .. <자기가 생산하는 믿음>이라는데 있습니다.

자기가 생산하는 믿음은 .. 가짜 믿음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진짜 믿음은 .. <위에서 주시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위에서 주시는 믿음>은.. 회심conversion을 뜻하는데,

철저한 회개를 동반한 ‘삶의 변화’가 반드시 일어납니다.

소위 <청교도식 거듭남>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철저한 회개, 청교도식 거듭남 없이, 즉 회심 없이,

그저 ‘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 죽으심을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자기가 구원 받은 줄로 아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자기가 생산한 믿음>이며.. 신빙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반드시

-회심(삶의 방향 전환),

-통렬한 회개,

-예수 믿기 전과 후가 뚜렷하게 달라짐

-죄를 미워하고, 거부함

등이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에서 주신 믿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이 내용은 Paul Washer 목사의 인터넷 설교에서 들은 내용인데,

앞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편.


믿음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를 바라볼 때, 나오는 느낌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

 

▶행3:16절에 그것이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여기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라는 표현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경건이나 권능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 기도나 내가 받은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주목하고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나는 것입니다.


치유를 위해서 기도할 때 “내가 기도하면 나을까?” 그 생각 자체가 교만입니다.

그것이 아니고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뿐이다.

나는 내 은사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의지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님을 의지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뿐이고

그러면 예수님께서 고치신다.”고 믿어야 합니다.


“아니, 이걸 어떻게 고치지?” 이 부담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고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예수님께서 고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약5:15절에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사실은 믿음의 기도가 병든 자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내가 믿음으로 기도해서, 그 사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음으로 기도해서 그 사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으니까 주님을 믿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믿음이 강하다.” 이렇게 자기 믿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안 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내가 고친다고 하면 어려운데

예수님께서 환자를 고치시도록

나는 그분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때 완전히 고쳐지지는 않아도, 이것도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습니다.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입원을 해야 할지, 퇴원하고 집에서 요양을 해야 할지,

무슨 약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매사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순간에.. 기도할 때.. 주님이 지혜와 명철을 주셔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요 6:29)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입니다.


신유 사역도 축귀 사역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을 믿는 것이 신유 사역의 비결입니다.


내 기도나 내 권능이나 내 은사나 내 믿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을 믿지 마세요. 내 믿음을 믿으면 낭패를 당합니다.

(요즘 적극적 사고방식이 .. 자기의 믿음, 신념을 믿는 것입니다.)


내 믿음을 믿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세요.

내 믿음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세요.


믿음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예수님을 의지할 때 생겨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예수님을 깊이 알면 알수록 더 강화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이지

믿음은 우리가 심리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닫고, 치유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믿음에 초점을 맞추니까 자꾸 교만해집니다.


자기 믿음에 초점을 맞추고, 자기 은사에, 자기가 기도한 것에,

자기의 기름부음에 초점을 맞추니까.. 자꾸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만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이것은 치유 기도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서 이러합니다.

모든 것에서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 의지로) 거룩에, 사랑에, 성자 같은 삶은 사는데 초점을 맞추지 마십시오.

대신에 내 속에 계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십시오.

 

고아나 장애인이나 노숙자를 돌보는 사람들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고, 초점을 예수님께 맞추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했더니..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예수로 말미암아 난 사랑이..

나를 이렇게 하게 됐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래서 고아들과 노숙자들을 돌보는 간증을 해도

그 초점이 자기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가야 되는데

초점이 자기에게로 가 있는 사역자들이.. 한국에도 많고, 외국에도 많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왜 기적을 행하고 영광 받는 것만 위험하다고 생각합니까?

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주목 받는 것만 위험하다고 생각하는지요?


거룩한 삶(흠 없는 삶)을 살고 주목 받는 것도.. 위험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주목 받는 것도.. 똑같이 위험합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지금 영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안다.’는 식으로, 여러분 이것을 응용해 보세요.


믿음만 예수님께로 말미암아 나는 것이 아니고

말씀도, 설교도, 거룩도, 사랑도, 기도도, 찬양도, 교회 부흥도

모두 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주목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쏙 빠져야 합니다.

“왜 나를,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다.

바꿔 말해서 이것은 은혜이다.” 이것이 확실히 되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께로부터 말미암아 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참 조심해야 합니다.

병고치고 교만해지고.. 거룩한 삶을 살고 교만해지고..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고, 기도 많이 하고, 찬양을 멋들어지게 하고.. 교만해지고,

이래서 교만해지고, 저래서 교만해지고.. 그것이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으려면, 겸손으로 깊이 들어가야 합니다.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마11:25


“아, 저 사람이 하는 예언들은 다 맞았는데,

저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셨는데,

저 사람이 저렇게 기도를 많이 하는데,

저 사람은 저렇게 거룩한데,

저 사람은 저렇게 사랑이 많고 희생적인 삶을 사는데,

어떻게 저 사람이 틀린 응답을 받고, 오류가 있을까?


그게 그 사람의 그런 장점들로 인한 교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교만은 사람을 속입니다.

그것이 가져온 교만이 눈을 흐리고 귀를 흐려서.. 그런 오류가 생기는 것입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고 말씀한 것처럼

교만하면 위험합니다.

겸손만이, 끊임없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겸손만이 우리의 안전을 확보해줍니다.


 

..............................

 

 

▶앞서간 하나님의 종들이, 신앙생활에서 <겸손>을 최대 덕목으로 꼽았던 이유

 

어거스틴/ 성 프랜시스/ 토마스 아 켐피스 같이 앞서간 분들은

기독교 신앙에서 <겸손>의 덕목을 최고로 강조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극단적 회심’을 체험했든지

-사도행전 2장의 성령충만을 극적으로 체험했든지

-남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신비한 은사/능력/예언이 있든지

-‘복음을 깨달았든지’

-그 외 어떠한 자기 장점과 특기가 있든지 


거기에 겸손이 보태져야

자신이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니면, 교만 때문에 넘어져서, 심한 경우에,

그런 신비한 경험이 없는 보통 신자보다 더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도 이끌어 가시는데, 강제로 겸손하게 만드시는 경우입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12:7


 

 

각 사람마다 자기 신조와 인생철학이 있겠지만,

어떤 사람의 인생철학은 <온유와 겸손>입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에는 패하는 것 같지만.. 결국 최후로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이거든요.

아무리 실패해도, 아무리 넘어져도, 아무리 모래 구덩이에 빠졌어도

겸손한 사람은. 결국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요!

 

 

*관련글   겸손에 관한 글 모음   신약성경이 강조하는 겸손 

        

         참된 계시의 분별 척도 - 겸손    조각글 모음(40) 겸손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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