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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LNCK 2011. 5. 12. 12:04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믹7:7~9      큐티 묵상 3편 스크랩   출처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미가7:7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이 부패하여 세상 어느 누구 믿을 사람이 없을 때

히스기야시대 때,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동안 세상일에 매진하여 달음질해왔던 저에게, 너무도 어울리는 말씀입니다

세상을 바라며 세상 사람에게 의존하며, 세상일을 자랑하였던 저입니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자,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일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어느 시기인지는 몰라도, 어느 때 부터는 일을 위해서, 일을 하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는 열심히 다녔지만

영혼이 깨끗하지 못하고 어두운 시기였음을 고백합니다.

 

이때는 지혜가 닫혀있던 시기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분명한 목표가 흔들렸고,

그 대신 당장 보이는 세상일과 성과에 목표를 둔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많은 직원들의 의견도 감안하여야 했고

자금 등의 문제 때문에, 아니다 싶은 사항도 말 못하고 그냥 넘긴 사례도 많았습니다.

 

‘우물쭈물 하다가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지’라는 버나드 쇼의 비문과 똑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우물쭈물하고 우유부단했던 저였음을 고백합니다.

 

이는 자존감이 낮고, 믿음이 부족한 자이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지금은 큰 회사가 아닙니다. 그냥 가게수준 정도의 회사입니다

직원이라야 저와 가족들뿐입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마치며,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애쓰는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회사라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의지하는 믿음이, 예전보다 더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저의 생각은, 이제 앞으로는 사업규모가 크든지, 작든지간에

회사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저는 하나님의 일을 담대하게 나갈 것입니다

 

혹시 지금은 규모가 적으니 그렇지

규모가 커져서 직원이 많아지고 결재대금이 커진다던지 하면

또 다시 내가 달라질 것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만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맡기는 영혼의 발전이, 예전과 비교되지 않습니다.

또 한 번의 바닥을 경험한 인생이라서 용감해져서가 아닙니다.

 

회사를 정리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통해서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따라 다니시면서, 저를 사랑해주심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벧엘 부근에서 장막을 치고 생활하던 시절입니다.

조카 롯도 같이 양과 소를 키우며, 장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목자간에 서로 다투는 일도 생겨서

아브라함이 롯에게 서로 떠나자고 제의합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먼저 땅을 선택하라 제의합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리고 롯은 보기에 비옥한 소돔 땅을 선택하여 떠납니다.

결국 결과는 비옥한 땅을 선택한 롯은, 전쟁에 휘말려 사로잡히게 되고

아브라함이 그의 가신들과 함께 밤에 기습하여 롯을 구출하고

빼앗겼던 재물과 부녀와 사람들을 되찾아 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하기 어려운 제안입니다

선택권을 먼저 주면, 분명히 좋은 땅을 빼앗길 것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그가 믿고 의지한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이 가능했습니다.

 

그런 믿음이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였고

하늘의 수많은 별들보다 더 많은 자손들을 약속 받았습니다.

 

저의 경우와 너무도 대비되는 부분이라서

어제 가정예배에서 이 부분을 다시 묵상했습니다.

 

실제 살다보면.. 이익이 되는 부분을 양보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양보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잘못 양보하면 바보가 되고..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면 집착이 됩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다른 부분을 더 많이 잃기 쉬운 모습입니다.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이를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미가의 시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려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믹7:8~9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이 여기셔서 우리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믹7:18~20

 

하나님이 계시는 지금 나는 무엇을 걱정하는지요?

당장 눈앞에 보이는 비옥한 땅을 따라가다가, 사로잡혀서 포로가 되는 롯처럼

그렇게 세상을 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무턱대고 하는 양보가 아닙니다, 우유부단한 행동이 아닙니다, 교만한 생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길은, 어디든지 자신 있게 담대하게 가겠습니다.

 

‘하나님 함께하셔서 저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저에게 지혜를 열어주옵소서!

내 마음에 모신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며, 함께 힘찬 승리의 길을 가겠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 미가7:7

 

 

◑오늘도 여리고성을 돕니다.              수6:1~10             출처

 

작년 10월경 중국에서 돌아와 아들 학교 옆으로 이사하면서

집 가까운 고대뒷산인 개운산에 거의 매일 올라갑니다.

 

집에서부터 2~300m쯤부터 산길이 시작됩니다.

당시엔 늦가을이라 단풍이 한창이었습니다.

 

특히 정상부근 나만의 좌석에서,

자작나무가 주연으로 펼치는 파노라마를 감상하곤 했습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오니, 산수유와 진달래가 가장 먼저 반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꽃들의 잔치가 펼쳐 집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연초록이 진한 녹색 잎으로 바뀝니다.

이제는 제법 숲이 우거져 그늘 속에 산책하게 됩니다.

 

산을 매일 돌면서 여리고성을 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여기가 나의 여리고성이야!’

매일같이 돌면서, 여리고성을 돌던 백성들과 함께 해 봅니다.

 

모세가 죽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붙여 줍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백성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수6:2

 

그리고 매일같이 모든 군사는, 그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6일 동안 돌고,

마지막 날은 그 성을 7번 돌고는, 백성들은 큰소리로 외쳐라 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을 생각하면서.. 저도 산 길을 걷습니다.

저는, 산을 돌기 전에는,

‘여리고성은 평지에 있고, 성 주위는 걷기 쉽게 잘 정비되었으리라’

성경지식이 없어서,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산을 돌면서 생각이 바뀝니다.

‘그래도 성인데, 산이 배경에 있지 않을까?’

실제로 여리고성은 요단 계곡에 위치해서 여리고성은 가파랐습니다: 비전성경사전에서

 

전에는 

수원성곽(평지에 있음)을 아이들과 같이 돌때의 경험으로

그렇게 성벽을 따라 돌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만..

당시 여리고를 돌때는, 그렇게 쉽게 돌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당시는 전쟁 중입니다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 성에서 적군들이 문을 열고 기습하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성에서 적어도 몇 백 미터 이상은 떨어져 돌아야 했을 거란 생각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여리고성 둘레는 약 4.5~5km 정도 된다는 정보입니다

성벽에서 떨어져 돌면 적어도 2~3km는 족히 더 될 겁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1번씩 돌되 엿새 동안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7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수6:3~6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수6:10

 

매일 여리고성 주위를 그들은 그렇게 돌았습니다.

매일 산길을 7 Km씩 돌면서,

더구나 적진 앞에서 목숨을 걸고서 돌면서,

한마디 말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발이 아프네.. 용변이 급하네..

그리고 이렇게 돈다고 과연 여리고성이 무너질까..'

뭐 그런 불평이나 생각이 들지는 않았겠는지요?

 

한 두 사람도 아니고, 많은 이스라엘 군사들은 힘든 행군을 하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순종하면서 열심히 성을 돌기만 했습니다.

 

실로 대단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리고성을 정복 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 봅니다.

     성을 도는 것만으로 든든한 여리고성이 과연 무너질까요?

 

     요즘 믿음이 좋은 사람들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면

     과연 몇 명이나 말씀대로 순종 할까요?

 

     지금은 성경을 통해서 이런 역사가 이루어진 줄 알지만

     당시엔 그저 막막하지 않았을까요?

 

개운산을 돌면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봅니다.

‘너는 그렇게  돌 수 있는가?’

 

‘막연하게 성을 돌면, 성벽이 무너진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처럼 힘든 일을 감당해낼 자신이 있는가?’

 

성경역사를 보고서도, 현실의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따져보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여리고성은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할 땅입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을 주셨지만, 이렇게 험한 전쟁을 통하여야만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여리고성도 넘겨주셨지만, 이렇게 순종의 길을 가야만 되도록 하셨습니다.

 

그저 쉽게 기도응답만 바라고 기대했던 였음을 고백합니다.

그저 주시는 은혜만을 바라고, 이 땅에서 나약하고 교만한 저였음을 고백합니다.

 

순종의 길은 애써 외면하고

저의 기대대로 모든 것을 해주실 하나님만을 바라본 사람입니다.

 

그래요 난 매일같이 개운산을 돕니다.

돌면서 그동안 알게 모르게, 건강이 많이 좋아진 걸 느낍니다.

그리고 많은 기도가 이루어지고, 지혜가 쌓여지는 느낌 입니다.

 

그동안 내 자신이 원하던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였던지요?

아님 저의 명예와 세상물질의 크기는 아니었는지요?

 

몇 해 전만 하더라도

회사의 매출규모를 자랑하고 세상에서 받은 상을 자랑하고

얄팍한 실력을 자랑하고 사람을 모으지는 않았는지요?

아파트와 땅 가진 것에 자랑하던 제가 아니였던지요?

 

당시와 지금 모든 것을 잃고

그저 작은방 두 칸에서 사는 지금과의 행복지수는 어떤지요?

 

하나님은 저의 생각의 잣대를 무너뜨리시고

저의 상상을 뛰어 넘는 분이시라는 걸 증명 하셨습니다.

 

난 오늘도 행복한 마음으로 산에 갑니다.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처럼 여리고성을 돕니다.

그리고 기도를 드립니다.

‘순종의 길을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가는 백성 되게 해주옵소서!’

 

저의 생각과 말은 단 한마디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여

넌 부지런히 그리고 말없이 순종할 지어다!

그리고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경건한 생활                    막1:35~39                      출처

 

모처럼 오늘 새벽에 깨어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다 새벽부터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닮기 원한다고 찬송도 드리며 기도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동안은 이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제자훈련을 통해 예수님이 가지셨던 경건한 생활에 대해 공부하면서

많은 부분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루 생활은 하루가 눈코뜰새 없이 부지런한 생활이십니다.

안식일 날의 사례입니다.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 곧 가르치시매..

마침 회당에 귀신 들린자가 있어 소리 질러 가로되...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막1:21~26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드러누운지라 ....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시종드니라 막 1:29~31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든 자와 귀신 들린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막1:32~34

 

새벽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가로되 사람들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을 내어 쫓으시니라 막1:35~39

 

안식을 새벽부터 다음날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쉬지 않으시고 다니시고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온 갈릴리에 다니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이시기에, 이렇게 쉬지 않으시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다니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까울까.. 생각해 봅니다

만약 사랑이 없는 분이시라면, 과연 이런 행동들이 가능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 바쁘게 다니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동안 입으로 예수님 닮기 원한다는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였건마는

과연 저의 행동은 어떠했는지요?

 

이런 경건의 삶을.. 예수님은 저에게 원하십니다.

사랑이 가득하다면.. 결코 쉬는 시간은.. 조금이라도 아까운 것입니다.

 

오 하나님,

새벽에 일어나 기도드리는 것조차 주저하고

제가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게으름과 안일함으로 지냈는지요?

입으로만 사랑을 외쳤는지요?

 

입술은 ‘예수님 닮기 원합니다’ 찬송하고 기도를 드렸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의 사람이고, 몸과 생각은 그렇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다니시며

가르치시고, 기도하시고, 병을 고치시며, 귀신을 쫓으시고

온 동네를 다시시며 전도하시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 가냘픈 육신을 아끼지 않으심을 압니다.

그 당시 제대로 드시기는 하셨을런지요?

 

     경건한 삶은 어떤 것이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요즘은 가족과 어디 가서 맛있는 것을 먹을까, 어디를 가면 좋은 추억을 만들까..

     그런 연구에 골몰한 저에게 직접 답을 주시는 산 증인이십니다

 

이제 먹거리 볼거리를 찾는 저와 가족이 아니라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며, 온 동네 다시며 전도를 하는

귀한 시간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아직 저에게 이 땅에 허락하신 시간동안, 이런 경건한 삶이 펼쳐지게 하소서.

일분 일초가 아까운 그런 삶이 펼쳐지게 하소서.

 

여보, 아들, 딸! 모두 일어나

오늘 허락하신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드립시다.

아름다운 인생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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