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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받은 자의 사명

LNCK 2011. 4. 19. 16:22

https://www.youtube.com/watch?v=mVRkiKbv-uQ 

◈말씀 받은 자의 사명                    마24:44~51             05.12.09.설교편집

 

 

◑말씀을 받은 자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예언과 환상을 직접 받은 자의 사명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중보기도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환상이나 예언이나 계시를 주신 것은

단순히 그것을 알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그것을 품고,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언만 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계획을 가지고 예레미야처럼 울며 기도할 때,

(자기가 받은 예언, 환상이 이뤄지나, 안 이뤄지나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중보기도의 자리로 나가게 될 때, 하나님이 계속 예언을 주십니다.

 

다니엘이 예레미야서를 읽고 난 다음에, 70년 만에 포로생활이 끝날 것을 믿고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기도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언과 환상을 전달해서 받은 사람의 사명

이것은 계시를 직접 받은 자 뿐 아니라, 전해들은 자들에게도 해당됩니다.

누가 우리 공동체에 대해서 여러 가지 예언을 하면, 그 예언이 주께로 온 것임이 분변될 경우

 

우리는 그 예언을 듣고, 신기해할 것이 아니라, 그 예언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언이나 환상을 직접 받든지, 간접적으로 전달해서 받든지,

그것을 듣고, 받은 사람에게는.. 주님께로부터 ‘임무와 사명’이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귀를 꽉 틀어막고,

‘그런 예언(하나님께 받아서 전하는 설교) 나는 안 들었으니까, 나는 행할 책임도 없다.’

라고 버틸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편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삼류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예 안 들으려는 사람이나,

‘그런 예언적 설교(하나님께 받아서 전하는 설교)들어도 꿈쩍도 안 하는 사람’은

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죄송한 표현이지만) ‘삼류인생’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시거나, 다른 ‘순종하는 그릇’을 찾으실 것입니다.

 

정리하면,

꿈과 환상, 예언적 설교를 직접 받은 사람은,

자기가 남들 못 받는 것 받았다고 교만하고, 자고할 것이 아니라,

그 받은 것을 전파하고, 그 뜻대로 이뤄지도록.. 간절히 기도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공급이 끊어져’ 버립니다.)

 

꿈과 환상, 예언적 설교를 전달 받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위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고 분변해서 확신되는 경우,

열심히 그 뜻이 이뤄지기 위해서, 기도하고, 자기 소임을 다해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나라의 ‘일꾼, 사명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안 되면, 하나님은 다른 일꾼을 찾으실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을, 그저 재미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들은 사람에게는 ‘책임’이 따릅니다.

물론 그 ‘책임 수행’은 힘들고 무거운 일이지만,

그러면서 자기가 ‘시대적 사명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섬기는 지도자가 됩니다.

 

▶나라를 위해서, 세계선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누가 기도하는지, 안 하는지.. 사람 눈에는 안 보입니다.

증명도 안 됩니다.

 

그런데 5~10년이 지나서 보면,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 사람은.. 국가적인 일꾼이 되어 있을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일꾼, 섬기는 일꾼을 뜻함.

세계선교를 위해서 성실히 기도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에게, 더 중대한 사명을 맡기시기 때문입니다.

(마25:21,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NLT는 more responsibility를 맡긴다고 번역했습니다.)

 

지금 말씀을 받는 것, 또는 (내가 직접 받지는 못 해도)  전달 받는 것의 중대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냥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기에는.. 너무 소중한 주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들은,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무시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서 주변 인생이 될 것입니다.

 

나라와 정부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고,

지금 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고, 다음 지도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 나라에 하나님의 통치를 대변할 지도자가 나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시간' 다 되어가서 기도하면.. 늦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도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폐하시고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의 주권 아닌가요?’

그래서 기도 안 해도, 다 하나님의 주권대로 되는 줄로 믿고 있습니다...

 

예, 종국적으로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것이요,

교회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차선책으로 다른 사람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학생이 큰 탈이 없으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갑니다.

그 큰 물줄기가 도도히 흘러갑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훌륭하신 선생님을 만나서, 학창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고, 쉽게 진학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하고, 학창생활을 힘들게 하다가, 간신히 어렵게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근대사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에 어떤 지도자가 세워지느냐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이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거대한 큰 흐름의 물결 속으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최선으로 예비하신 지도자도 있었고,

하나님이 차선으로 (어쩔 수 없이) 세우신 지도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두 다 하나님이 최선으로 정하시고, 세우신 지도자는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세우시는 지도자도 있고,

하나님이 어쩔 수 없어서 허락하시는 지도자도 있습니다. 모든 공동체의 지도자가 마찬가집니다.

 

여기에 <성도의 기도의 변수>가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차선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미리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를 사모합시다.

 

▶성령의 은사는 ‘소’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잠14: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 구절을 읽을 때, ‘예언, 방언’ 같은 성령의 은사들을 생각하게 합니다.

성령의 은사로 인해 ‘소의 힘으로 일하는 것처럼’

많은 유익과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혹시

‘소가 없어서 구유가 깨끗하다, 어지럽지 않다’고 자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소가 없으니까, 되어지는 일도 별로 없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은사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해,

성령의 은사에 대해,

그게 잘못된 것처럼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분위기가

지난 20년간 한국교회의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은사 중에는, ‘가르치는 은사’도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교사’   엡4:11

‘가르치는 자’ 롬12:7  등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것도.. 진정한 말씀은 은사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전반적으로 축소되다 보니,

덩달아 ‘말씀의 은사’도 위축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가르치는 은사"가 있습니다.

왜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생각하는지요?

이것 때문에 한국 교회가 많이 어두워졌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말씀을 잘 전할 수 있다고 말들을 하지만.. 아닙니다.

말씀을 진짜 잘 전하려면.. ‘기름부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5중 사역자 five offices 엡4:11 는 하나님이 다 기름 부어서 세우는 것입니다.

그 중에 ‘교사’라는 사역자가 있는데,

그것은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기름 부어서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것입니다.

 

▶잠14:6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거니와, 명철한 자는 지식 얻기가 쉬우니라."

 

"거만한 자는 지혜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다."

대부분의 신학생들이,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지혜를 구하면,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거만하면 얻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를 구해야.. 지혜가 옵니다.

 

그렇지 못하고,

‘아, 나는 머리도 똑똑하고, 명문대학 나오고,

영어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었고..’ 이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름부음이 없고, 말씀의 깊은 계시들이 임하지 않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설교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요21장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3번이나 (3번은 최상급 강조임)

‘내 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개역성경은 먹이라 - 치라 - 먹이라 고 번역했습니다. 요21:15, 16, 17  주1)

 

여기서 강조된 것은, ‘먹이라’ 입니다.

‘목회적 돌봄’보다 ‘먹이는 것’이 더 강조된 것입니다.

2번 내지 3번..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먹이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먹이라’.. 무슨 뜻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말씀, 영적 양식을 먹이라’는 뜻입니다.

 

심방하고, 위로하고, 전화 걸고, 상담해주고.. 다 필요한 일입니다.

교회 행정을 잘 해서, 쾌적한 예배를 드리도록 배려하고.. 다 필요합니다.

그런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먹이는 일’에는 소홀하고, 별로 먹을거리를 안 주고,

다른 일에 바쁜 것은.. 제대로 된 목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사명 받은 목자는,

먹이는 데’ 자기 목숨을 겁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목동 때는, 양떼를 먹이는 일에 자기 목숨을 걸었습니다. 시78:72

 

그리고 왕이 되어서는,

모세5경을 완전히 재해석해서, 아름다운 시편을 구구절절 지었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를 지어서) 먹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보고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다른 일을 잘 해서가 아니라

‘내 양떼를 잘 먹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이는 일’은.. 무슨 ‘여러 사명들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아주 독보적이고, 최고로 중요한 사명입니다.

참된 목자는.. 자기 양떼들을 충분히 꼴로 먹이는 일에.. 자기 목숨을 겁니다.

그가 오늘날 21세기의 다윗이요, 베드로요,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은 ‘잘 먹이는 목자’를 찾고 계십니다.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위 45절 말씀은, 종말의 시기의 정황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후 44절과 46절을 보십시오. 그리고 마24장 전체가 종말에 관한 교훈입니다.

 

그런데 마24장 마지막 단락에서,

예수님이 위 말씀을 하신 이유는,

종말이 될수록 ‘말씀을 먹이는 종’이 부족할 것이라는.. 주님의 염려입니다.

 

대신이 이런 종들이 많아질 것을 주님이 경고하십니다. ↓ 

 

마24: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 경고로 ‘마24장,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설교’가 마쳐집니다.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최종적 경고는 .. 말씀을 먹이는 종들이 부족하고,

엉뚱한 목자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

 

주1)

KJV는 feed - feed - feed

NIV는 feed - take care of - feed로 번역했습니다.

헬라어는 보스코 -포이마이노- 보스코 로 번역했습니다. (영어, 한글과 의미가 똑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