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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용납, 감사, 접근성 / 조쉬 맥도웰

LNCK 2011. 6. 3. 22:09

www.youtube.com/watch?v=E6lQNWvJb0s

◈용납, 감사, 접근성          롬15:8           조시 맥도웰 목사님 강의 녹취, 출처

 

 

자녀 양육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원리 한 가지는

‘관계가 결핍된 원칙만의 강조는, 반항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자녀양육의 핵심은 ‘관계’입니다 에서

 

그런데 이 시간에, 제가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칙을 여러분께 말씀드린다면,

‘조건 없는 용납은, 부모의 사랑을 느끼게 한다’ 입니다.

 

 

◑1. 용납   Acceptance

 

‘조건 없는 용납’은 자녀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unconditional acceptance /condition-less acceptance

 

▲롬15:8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개역, ‘받으라 receive’는 헬라어에 가까운 번역)

 

원문은 ‘서로 용납하라!’고 명령법으로 시작합니다.

Accept one another just as God has accepted you.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용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납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용납하셨습니까?

조건 없이 용납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조건 없이 우리를 용납하신 것처럼,

만약 우리가 타인을 용납한다면,

세상에 용납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들이 야구시합에 져도, 저는 아들을 사랑합니다.

제 아들 숀은 10살 때 야구팀에 가입 했습니다.

야구 시즌이 시작하기 며칠 전에, 저는 야구팀을 방문해서

아이스크림 쿠폰 15장을 코치에게 선물하면서 말했습니다.

“야구부원들을 위해, 이 쿠폰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주세요!”

 

그러자 코치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좋습니다. 팀이 첫 승을 올리면 사 주겠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아뇨, 첫 패 후에 사 주셔도 됩니다.”

 

“왜요?”

 

“코치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우리 아이들의 노력을,

아이들의 성공보다 더 가치 있게 인정하며 키웁니다.

 

그리고 저는, 아이들의 존재를,

아이들의 노력보다 더 높이 인정하고 키웁니다.     *존재>노력>성공이네요.

 

코치님, 제 아들 숀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서

무한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진 아이입니다.

 

혹시 숀이 야구를 잘 못한다고 해도,

제가 아이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마음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첫 패 이후에, 아이스크림을 사 주는 것도.. 얼마든지 괜찮습니다.)

 

코치는, 첫 패 이후에, 그 쿠폰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미국 문화는, 조그만 아이들 교육에 엄격해서,

선데 아이스크림 하나 사 주는 것도 큰 행사입니다.)

 

그 후에 시내에서, 제가 우연히 숀의 야구부원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저씨는, 우리가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군요.”

 

바로 그것이 <조건 없는 용납>이요,

제가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였습니다.

 

▲제 자녀가, 부모의 얼굴을 자랑스럽게 만들어주어서, 제가 그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딸 캘리는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매우 모범생으로, 사람들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딸이 공부도 잘하고, 사람들의 칭찬도 자자해서..

그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가 내 딸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용납합니다.

 

저는 제 자녀들에게 늘 이렇게 강조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며,

너희는 무한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지고 있단다.

 

혹시 너희 중 누가, 좋지 못한 결정을 내리거나, 옳지 못한 행동을 하더라도,

너희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나의 마음은 조금도 변치 않는단다.’

 

그러므로 저는,

제 자녀가 혹시 제 얼굴을 먹칠 하는 일이 있어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용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조건 없는 용납>입니다.

크리스천인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조건 없이 용납하셨듯이,

서로를 조건 없이 용납해야 합니다.

 

특별히 가정에서 부모는

자녀를 <조건 없이 용납해야> 합니다.

‘조건 없는 용납이 사랑을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를 확실히 만난 사람만,

자녀를 조건 없이 용납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자녀도, 부모의 체면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2. 칭찬과 감사     Appreciation

 

자녀에게 고맙다는 표현은, 자녀의 자존감을 세워줍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칭찬과 감사를 표할 때, 자녀는 스스로를 귀하게 느낍니다.

자녀가 스스로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자녀가 올바른 일을 행했을 때,

또는 가치 있는 일을 행했을 때,

부모는 즉시로 칭찬하고, 감사를 표시해야 합니다.

 

‘나는 네가 한 일에 대해 감사한다.

네 결정, 네 태도에 대해 감사하다.

네 도움이 정말 고맙구나.’

 

그러면 자녀는 이렇게 느끼죠.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했구나!’

 

자녀가 가정에서 ‘자기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여기면,

뭔가 가정에 기여하는 일을, 자원해서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자녀가, 밖에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겠습니까?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칭찬과 감사를 보십시오.

예수님이 세례 받고 물에서 나오셨을 때,

하늘 문이 열리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마3:17

 

다시 말하면,

‘내가 내 아들 예수로 인해 감사한다’ .. 이런 말입니다.

 

▲저는 자녀들을 키우던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했습니다.

저는 자녀가 넷 인데,

적어도 첫째와 둘째 아이를 키울 때까지는,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하는 방식으로 키웠습니다. 성경에도 일면 훈계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깨달았습니다.

야단치고 훈계하는 식의 자녀교육은

-그것은 어리석은 방식이고,

-효과도 없었을 뿐더러

-성경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녀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성경적인 모델로 완전히 바꿔야 했습니다.

 

-가장 먼저,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발견해, 칭찬과 감사를 표현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고, 훈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물론 저도 훈계를 합니다.

그러나 훈계 이전에, 자녀들이 잘하는 것을 발견하여, 칭찬과 감사를 표현합니다.

 

훈계를 주로 하는게 아니라,

칭찬과 감사를 주로 하면서.. 아이들을 키웁니다.

 

 

▲훈계하기 이전에, 그들의 잘한 점을 발견하려고 애씁니다.

저는 제 자녀들을 키우면서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이들이 잘하는 것을 더 많이 발견하고, 감사를 더 많이 표현할수록
놀랍게도 아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훈계할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집안 분위기도 더 좋아지고,

아이들의 엄마도 기분이 좋아했습니다.

 

제 자녀들이 잘못을 할 때마다, 물론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훈계했습니다.

그러나 먼저 자녀들이 잘한 일을 30~40가지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아버지로서 시간을 내어, 자녀들이 잘한 일을 발견하지 않는다면,

저는 자녀들을 훈계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칭찬 없이 훈계만 하면,

부모가 기대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얻게 될 뿐입니다.

관계 loving intimate relationship 없는 훈육은, 반항을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직원은, 상사가 자기를 찾는다는 말을 들으면,

속으로 ‘제가 뭘 잘못했을까?’ 이런 반응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평소에 그 상사가, 직원들을 항상 지적하고 혼낸다는 증거입니다.

 

지적하고 야단쳐서..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만 나올 뿐입니다.

지적하고 야단쳐서 만약 무슨 결과가 나온다면,

그것은 ‘반짝 효과’일 뿐이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직원들은, 당신에 대해서

‘우리 보스는 나를 칭찬해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야!’ 라는 느낌을 갖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훌륭한 보스, 크리스천 보스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의 자녀도 잘 양육할 것입니다.

직장에서나, 집에서나.. 사람의 행동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의 노력을 보면서도 칭찬과 감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첫째, 둘째, 셋째 아이들은, 다 공부를 잘 하고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각종 상도 많이 타 왔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넷째 아이도 당연히 ‘과학경시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오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대표로 나가서, 열심히 노력했지만, 입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때도 칭찬과 감사가 필요합니다.

저는 넷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헤더야, 너도 입상을 해서 상을 받고 싶은 마음.. 내가 다 안다.

아빠도 정말 애석하고, 마음이 안타깝다.

 

하지만 내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나는 네가 과학경시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그 동안 쏟아 부은 네 노력이 정말 고맙구나.

네가 계속 그렇게 노력한다면, 넌 언젠가는 세상을 바꿔놓을 거야!’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결과는 별로 없었지만,

저는 딸의 노력을 발견하고, 진심으로 칭찬과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용납과 감사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위◑1.과 ◑2.의 균형)

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아이들의 단어 공부를 책임지고 가르쳤습니다.

이때 저는 아이들에게 감사하면서도, 용납하는 균형을 발휘했습니다. ↙

 

저는 아이들과 공부를 마친 후에, 항상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얘들아, 아빠는 너희가 열심히 공부해줘서 정말 고맙단다.

너희가 숙제를 잘 해줘서 고맙고, 학교를 안 빼먹고 열심히 다녀줘서 고맙단다. (칭찬과 감사)

 

그러나 이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아빠는.. 너희가 모범적인 학생이라서 고마운 게 아니란다.

아빠는.. 너희가 아빠의 딸이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무한한 가치와 존엄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너희를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한단다. (용납)

(너희가 혹시 잘못하더라도,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고맙게 생각한단다.)

 

저는 이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만약에 무조건적 용납이 과하면.. 자녀가 방종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감사와 칭찬이 과하면.. 자녀가 성과/실적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납과 감사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3. 접근성  Availability

 

자녀가 언제든지 부모에게 다가올 수 있게 하십시오.

 

▲우리가 자녀 또는 타인에게 내 시간을 쉽게 내어줄 때,

그들은 자기 자존감을 느낍니다. 스스로를 소중한 존재로 생각합니다.

 

사랑이란.. 다른 말로 ‘시간’과 동의어입니다.

사랑은.. 그를 위해 시간을 기꺼이 내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다가올 때.. 절대 거부하면 안 됩니다.

바쁘다고.. 기타 여러 이유로.. 그 접근을 거부하면

자녀는 ‘나는 우리 아빠/엄마에게 중요하지 않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직원들이 상사에게 쉽게 접근하게 하십시오.

그때 그 직원은 ‘나는 내 상사에게 중요하다’는 자존감을 갖게 되고,

사기가 높아져서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직장에 목숨도 걸게 됩니다.

 

자녀도 마찬가집니다.

자녀가 ‘나는 우리 가정에서 소중한 존재다’는 인식이 들면,

어떤 식으로든지, 자녀는 그 가정에 기여하려고 합니다.

 

반대로,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가정에 아무 기여도 없이,

항상 문제만 일으킨다면

‘나는 우리 가정에서 소중한 존재다’는 인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돌을 떡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바쁜 와중에서도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19:14

 

그런데 부모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다가오는 것을, 거절합니다.

 

“얘야, 지금은 안 돼. 아빠가 너무 피곤하거든!”

“아들아, 이번 주간은 아빠가 너무 힘들거든, 나중에 놀이 하자!”

“딸아, 그 얘기는 나중에 집에 가서 하도록 하자.”

 

이런 태도는, 다른 말로 하면,

‘너는 아빠의 일job보다 중요하지 않다’ ...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자녀에게 시간을 내주지 않는 것입니다.

 

자녀가 ‘나는 아빠나 엄마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느끼면..

그때부터 자녀는, 자존감이 낮아지면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자녀 교육에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라고 했습니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형성되려면,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언제든지 다가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grandfather effect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여

세 명 혹은 네 명의 아이를 낳습니다.

그러나 별로 아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합니다.

 

항상 직장에 나가 있고, 가족을 부양하느라 바쁩니다.

아이들을 재워주지도 않고, 아이의 침대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의 운동시합에는 가지만, 연습할 때는 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부모가 40~45세가 되면  자녀가 15~20세가 되면

‘할아버지 효과’가 슬슬 나타납니다.

 

한 번도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자녀들의 성장과정에 일체 개입하지 않았던 부모가

갑자기 아들 또는 딸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제 다 큰 자녀는, 부모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어색해 합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합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데 바빠서, 부모와 시간 보내는 일은 잠시도 내지 못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멋지고 비싼 여름휴가를 같이 가자고 제안해도,

자녀들은, 자기 친구들끼리만 놀려고 하지, 절대 부모랑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제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사람은,

사회적 지위도 높고, 존경 받고 연봉도 높지만,

자기 자녀에게 사랑/인정 받지 못하는 40~45세 된 아버지들입니다.

 

정말 지금까지 성공과 출세를 위해 바쁘게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왔는데,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 도달해서 숨을 돌리고 보니까,

자녀들이 모두 집에서 뛰쳐나가 있는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성공했는데... 가정에서 외로운 남자... 참 불쌍합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당신이 교회에서, 예배 후에 목사님과 무슨 상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때 자녀가 와서 “아빠!” 하고 뭔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보통 부모는, 그런 자녀를 야단칩니다.

“얘야, 아빠가 지금 목사님과 대화하는 것 안 보여? 저기 가서 놀아!”

 

그러면 아이들은 거절감을 받습니다. 접근성 Availability이 막히는 것입니다.

 

이때는 목사님께 잠시 양해를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아이의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어주십시오.

 

그리고 다시 목사님께 “우리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죠?” 하면서, 대화를 계속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보통 다 성숙했기 때문에, 그런 아빠를 다 이해해 줍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다가오는 것을, 절대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모의 작은 거절이, 자녀에게 높은 담을 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