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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거룩하라 살전5:23~24 타이페이 쩐리탕 교회, 출처, 정리
◑1. 성도는 언제 거룩하게 되는가?
살전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성도가 ‘온전하고 거룩하게 된다’는 말씀은,
다른 말로, 예수님처럼 온전한 사랑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거룩은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말인데,
가장 비슷한 다른 말을 찾으면, 바로 사랑이고, 사랑이 바로 거룩입니다.
▲그런데 ‘온전히 거룩함’은 언제 일어납니까?
많은 신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우리가 변화될 때,
바로 그 때.. ‘온전히 거룩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반쪽만 맞습니다.
성도의 거룩함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그 순간부터,
거룩한 생명은 “시작”됩니다.
성도가 거듭나서 구원을 얻는 그날,
예수님은 온전한 거룩함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그렇다고 어느 날 예수님을 만난 그날,
성도의 삶이 갑자기 거룩해지는 것이란 뜻은 아닙니다.
‘온전히 거룩해지는 것’은
구원을 얻어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가운데 들어온 그 순간, 바로 시작됩니다.
그 날부터, 이제 ‘거룩함’이 점점 성숙되어져 가다가,
예수님의 재림 때, 완성이 되겠지요...
◑거룩의 양면성
▲양쪽을 다 함께 보아야
①거룩함은.. 예수 믿을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나의 어떤 행위와 노력 이전에, 이미 주어지는 특권입니다.
②이렇게 거룩해진 사람은,
이제 자기를 더욱 거룩하게 살려고 추구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이미 거룩해졌기 때문입니다.
롬6: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우리는 ①과 ②를 함께 보는 거룩의 양면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구원을 은혜로 얻듯이, 거룩함도 은혜로 얻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가,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나가듯이
거룩함을 받은 성도도, 온전히 거룩함(거룩의 완성)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내면에 ‘새 생명, 하나님의 씨’가 심겨져 있어서, 요일3:9
그것이 점점 움이 트고, 싹이 나서,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면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는 어떤 주도적 역할은 아닙니다.
성도의 거룩함을 이루는 주도적 역할은,
거듭난 성도의 속에 있는 ‘새 생명’이고,
그것이 성도의 윤리적, 도덕적 노력의 동기를 일으킵니다.
내면적 근본적 변화, 즉 새생명의 탄생 없이
인간의 윤리적, 도덕적 노력은.. 외식에 치우칠 뿐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하면서,
거룩함에 이르는 길에 있어서는,
자신의 노력으로 합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합니다.
우리는 거룩해지는 삶이, 우리의 노력으로 생기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불교 신도나 이슬람 신도처럼,
율법주의, 금욕주의적으로 힘들게 살려고 합니다만... 그것은 참 복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미션 임파서블’이며, 도리어 외식주의자에 빠질 수 있습니다.
본래 우리 본성에는,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길이 근본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전적 타락’입니다.
선하고 거룩하게 살려는 본성도 조금 있지만, 그것은 피상적이고,
근본적으로는.. 그 본성이 타락하고 파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선행을 하고, 의를 행해도
그 속에는 교만, 자기 자랑, 자기 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또는 ‘그렇게 하는 척’일 뿐입니다. 그건 플라스틱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에 이르는 길은,
먼저 새생명, 내면의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새생명을 얻어서, 근본적 변화가 있어도,
아직 옛습관이 깊게 뿌리내려 있고,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새생명도, 아직 완전히 성숙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점점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예수님, 성령님이..
우리를 그 길(거룩함, 온전함)로 주도적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자기 본성적인 착함, 가지고는 실패합니다.
제가 아내와 함께 있으면서, 자주 성령충만을 간구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적인 제게는, 사랑, 인내, 온유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내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나올 때에야,
사랑, 인내, 온유함으로써 가족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젊은 부부가 결혼해서 부부가 서로 화목하려면 (요즘 이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진리를 빨리 깨우쳐야 합니다.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이야, 나는 원래 천성적으로 인내하고 온유하거든...’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천성적으로 착하신 분들.. 이혼하기 쉽습니다.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새생명 가운데서.. 사랑, 인내, 온유가 나와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성령을 소멸치 말아야 합니다. 살전5:16~19
성령이 충만할 때,
우리 속에서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함께 싸우는데,
성령의 소욕이 승리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랑, 온유, 인내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었더라도, 성령충만 하지 못하면,
자기 속에서 ‘육신의 소욕’이 득세하게 되어서,
우리는 온전히 거룩하게 살지 못하게 됩니다.
여전히 육신에 져서 육신적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에 교만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부당한 대우를 참지 못합니다.
그리고 버럭버럭 화를 잘 냅니다...
◑거룩이란.. 사랑입니다.
▲아래 12절과 13절을 연결해서 보면, 거룩은.. 곧 사랑입니다.
살전3:12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신 ‘온전한 거룩함’은
일종의 ‘사랑의 생명’이고, ‘부활하신 영원하신 생명’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 형제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온 그 순간,
바로 이 ‘사랑의 생명, 곧 거룩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넘쳐서, 거룩함에 흠이 없어야
너희도 피차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살전2:12~13
그리고 이런 ‘사랑의 생명’이
‘더욱 많아 넘칠 때’
거룩함에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은,
‘무슨 계명을 내가 어기지 않았다’ 가 아니라
‘사랑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 바로 세상과 구별된 사람이요,
거룩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해진 사람은, 다투지 않습니다.
살전5장에, 바울이 이 서신을 마무리 지을 때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살전5:23
바울은 재림 때까지,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하는데,
바로 ‘온전히 거룩한 삶’을 드러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거룩한 삶이란,
살전5:23절을, 같은 단락 살전5:12절과 13절부터 연결해서 보면,
첫째, 우리는 우리 중에 수고하고 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즉 사랑으로 그들을 귀히 여기고
둘째, 형제 자매와의 관계에서 서로 화목하며,
셋째, 관계가 쉽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게으른 자들을 권면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삶을 살기 소원하는 성도는,
이웃과 다투지 않습니다. 싸우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품고, 용납하고, 인내하며, 서로 화목합니다.
이 세상에 살다 보면,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이 끊임없이 생기지만,
그러나 비록 그럴지라도,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르는 사람..
그가 바로, 온전히 거룩해진 사람, 다른 말로 서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과 같이
마치 바울이 형제들을 사랑하심과 같이,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 온전히 거룩해지는 것입니까?
‘바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이웃끼리 온전히 사랑하는 삶을 살 때..
이미 거룩해진 성도가, 점점 더 온전한 거룩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적용
▲어떤 자매는 빨리 말하고, 빨리 걷고, 일도 빨리빨리 처리합니다.
밥도 빨리빨리 먹습니다.
이 자매가 ‘느린’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매사에 자기와 반대로 느립니다.
생각하는 것도 느리고, 말도 느리고, 일도 느리게 처리하고, 매사에 느긋하게 삽니다.
이 두 사람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사니까, 서로가 힘이 듭니다.
자매는, 남편의 느려터진 성격을 완전히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설득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자매는 점차 낙담하게 되었는데,
매일 자기 삶 속에서 가장 큰 노력을, 남편을 바꾸는데 쏟았지만,
전혀 소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점점 절망해 갔습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 상담가를 찾아가서 상담했습니다.
여러 번의 상담을 거친 후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자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편의 느려터진 성격이 아니라,
늘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자기 의’였습니다.
그동안 늘 성공만 하면서 살았던 자매는,
은연중에 늘 자기 생각과 판단이 옳다고 여기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 바탕에서, 남편을 바꾸고자 시도했던 것이었으니...
자매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결혼을 하나님께 다시 한 번 의탁했습니다.
천성적인 ‘자기 의’가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새 생명’의 힘을 의지해서 살려고.. 기도했습니다.
얼마 후에 자매는 느꼈습니다.
‘남편의 느려터진 성격이.. 이제는 귀엽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관계가 좋아졌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자매에게 있었던 위궤양과 고혈압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엡6:18
이 자매도 예전에 기도했을 것입니다. 무엇을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 남편을 변화시켜 주세요. 그를 바꾸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남편을 욕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 기도에는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비추심이 임하고, 성령의 감동이 임했을 때,
성령의 계시, 성령의 말씀이 자매 안에 들어갔을 때,
자신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자기 근본적인 문제인
‘자기 의, 교만, 이기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룩하지 못함이었습니다.
만약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이런 면을 결코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서 새생명을 얻은 성도도,
성령을 소멸치 말고, 늘 성령충만 가운데 거할 때에라야
비로소 ‘온전히 거룩함’으로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불교신자도 얼마나 기도 열심히 합니까?
무슬림들도 기도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의 기도가 다른 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달라고, 무조건 길고 오래 부르짖는 것이 아닙니다.
▲몇 주 전에, 제/ 설교자가 휴스턴에 가서 장모님의 추모예배에 참여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저희 가족들은 호텔에 가서 식사를 했고,
식사 후에, 우리 부부와 처남은, 급히 대만으로 다시 돌아올 참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에 와 보니, 큰 일이 생겼습니다.
도둑이, 차 속에 있던 우리 트렁크와 짐들을 몽땅 훔쳐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는, 여권을 몸에 지니고 다녔는데,
처남은 여권과 현금까지 몽땅 다 도둑맞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당시 제 반응은 이랬습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누구를 원망하거나, 화를 내거나, 스스로 낙담하지도 않았습니다.
몇 년 전에, 경건(거룩)을 훈련하며 기도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기도가 생각났습니다.
‘주님, 제가 어떤 일을 만나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하심을 압니다.
주께서 저와 함께 하시면, 평안도 저와 함께 합니다.’
이것이 주차장에서 제가 보인 첫 반응이었습니다.
그 후 저와 아내는 여권이 있었기 때문에,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처남은 여권을 다시 만들기 위해서, 휴스턴으로 되돌아갔다가, 며칠 후에 타이완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공항에서, 저희 부부는 몸이 참 가뿐하다고 느꼈습니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마다, 무거운 트렁크를 들고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했었는데,
지금처럼 몸이 이렇게 가뿐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짐이 없으니까 수속도 얼마나 빠른지..
공항에서 제일 먼저 들어가서, 제일 먼저 나왔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했던 적이.. 과거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양손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얼마나 어색했던지요..
이때 성령께서 이런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나를 만날 때마다, 이렇게 빈손으로 나오너라!’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중에 우리가 예수님을 뵐 때.. 어차피 빈손으로 가서 뵙게 됩니다.
그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뭘 붙잡는 것에 대해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젠가, 어느 단계에 이르면, 중환자실에 들어갈 즈음이면
양 손에 쥐었던 것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입니다.
-바로 거룩함과 사랑입니다.
제가 모든 짐을 잃어버리고 빈손이 되었을 때, 성령께서는,
그 빈손으로 주님을 만날 연습을, 지금부터 하라는 ..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좀 어색하기는 해도, 삶이 매우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거룩과 사랑입니다.
그것만 천국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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