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1

너희는 세상의 빛 B 3100

LNCK 2011. 7. 19. 14:55

◈너희는 세상의 빛                 마5:14                 11.06.29.설교녹취  36'~46'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보통은 이 말씀을, 무슨 도덕교훈의 구호처럼 해석하는데, ‘신자는 빛이 되어야 한다!’

이 본문을,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방식’으로 한 번 해석해 봅시다.


※저/편집자가 녹취 작업을 하기 전에,

과거에 본문을 이런 식으로 해석해서 올린 적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녹취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결론부터 먼저 말씀 드리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 말씀의 뜻은

‘신자가 어두운 세상을 밝히 비추는 빛으로 살자’ .. 이런 뜻은 빈약한 해석이다.

그냥 사람이 자기 상상으로 지어낸 해석이다. 틀렸다기 보다는 빈약하다.


‘성경을 성경으로 푼다’는 원칙아래

‘빛’을 성경으로 먼저 풀어보면,

‘빛’은 원래 참 빛이신 예수님을 뜻한다.


그 참 빛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자,

어두움이 드러났고,

자기 스스로 빛이라고 착각했던 사람들이 폭로되었다.


▲1.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은,

그 참 빛이 오셨을 때,

그 앞에 나아와 ‘나는 이전에 소경이요, 어둠이었습니다.’를 고백하는 사람들,

그들이 정말 ‘세상의 빛’된 자격을 얻는 것이다.


‘나는 의가 없습니다. 나는 추하고 캄캄한 어둠이었습니다. 그래서 빛이 필요합니다.’

스스로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이

‘세상의 빛’이 되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즉, 회개하고 예수를 참되게 믿은 사람이.. 바로 '세상의 빛'인 것이다.


그런데 이걸 지식적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있고,

성령의 역사로, 자기 내면이 변화되어, 진심으로 고백하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는.. 남을 비판하고 손가락질 하는데서.. 그 차이와 증거가 나타난다.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은,

자연스럽게 ‘세상의 어둠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된다.

예수님처럼 말이다.


어둠을 찾아가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일상을 평범하게 사는데,

어둠이 괜히 빛에게 찾아와서, 시비를 걸다가,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빛’은, 처음에는 ‘어둠’의 시비와 공격을 당하지만, 핍박을 받지만

그러나 ‘빛’과 ‘어둠’의 싸움의 결국은.. 우리가 다 안다.


그렇게 해서, 그런 방식으로 ‘어둠’에 속한 사람들도,

자기 자신의 ‘어둠’의 실체를 낱낱이 깨닫고,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와 ‘함께’ 구원을 받는 것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는 말씀의 진의眞意가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성도는 바로 예수님과 똑같은 일을 한다.

예수님이, 어둠을 (자기들은 참빛이라고 스스로 착각하며 살았는데) 어둠이라고 드러내셨듯이,

성도도 똑같은 일을 한다.


왜냐하면 성도는 ‘세상의 빛’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은, 특별히 어둠을 찾아다니며, 색출해내어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는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아가는데,

곁에 있던 ‘어둠’이, ‘어둠’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사람은, 자기 본성을 절대 감출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빛’인체 해도.. 자기 본성(어둠)은, 얼마 안 지나서 드러나게 마련이다.


▲3. 문맥에서 해석하면, 

본문 14절은, 8복(마5:1~12절)에 이어지는 말씀이다.

즉 8복의 말씀에 따라서 사는 것이..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삶이다.

 

그런데 여러분, 빛으로, 소금으로 산다고.. 세상에서 칭찬을 받을 것이다...

이건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린다.

 

8복을 잘 지키며, 빛으로 소금으로 사는 삶의 결론은, 마5:10~12절에 나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본문을 '신자가 빛과 소금으로 살아서, 세상에서 칭찬 듣자'

     즉 '칭찬 듣자'가 본문의 주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4. 지금 많은 교회들이 스스로 ‘건강하고/건전하고/좋은 교회/칭찬 받는 교회’라고 자기를 홍보하는데,

일면 그런 면이 맞다.

그러나 ‘지나친 자기 義의 강조는, 자칫 복음의 정신을 흐리게 할 수 있다.’

라는 점에서, 저 설교자는 한 편으로 우려를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나/공동체적으로

자기 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예수의 의, 십자가의 은혜’가 혹시나 퇴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적 부패하고 타락해서, 흑암이었고, 어둠, 소경이었는데, ①

참 빛이신 예수를 믿고서, 우리가 밝아져서, 세상의 빛이 되었다..’ ②


여기서 너무 문장이 길어서 전반부①를 생략해 버리고

후반부②만 강조하다 보면  ‘우리는 건강하고/건전하고/좋은 교회’

본의 아니게, 교회가 점점 어두워져갈 수도 있다. 우려이다.


‘세상의 빛’인 교회와 성도는,

자기 의가 밝아서 빛이 아니라,

자기는 원래 어둠이었는데, 예수의 빛을 반사해서 빛이 되었다.


그 원래 어둠 total depravity인 자기과거를 잊어버리고,

‘나는 빛’만 강조하다가는,

‘빛’이 아니라, 내가 ‘어둠’이 될 수도 있다는.. 경각심을 갖자는 것이다.


괜히 잘 하고 있는 사람들 보고, 태클 거는 얘기일수 있으나,

자기가 ‘건강하고/건전하고/좋은 교회 및 성도’ 라는 자만심에 빠져서

마치 십자군 전쟁처럼 오만하게 굴 가능성이

매 시대마다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관련글 : 은혜 아래 있는 이방인



본론1. 을 배척한 사람들


▲빛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내려오셨다.

본문 ‘너희는 세상의 이다’가 무슨 뜻인지 살펴볼 때,

우리는 의 원형이신 하나님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4 그(말씀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이라

5 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의 대척점은 ‘어두움’이다.

그 어두움의 특징은.. 빛을 못 알아보는 것이다.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5


어두움은.. 이신 예수님이 나타났으나

‘내가 왜 저 빛의 도움을 받아야 돼? 내가 곧 빛인데 (내가 의롭게 사는데)..’ 한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이 오셨는데,

자기 스스로가 빛이고, 빛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착한 사람이야..

이신 예수님을 배척했다.


의 역할은.. 어둠을 드러내는 것이다.

빛이 오기 전에는, 세상에 어둠이 드러나지 않지만,

빛이 오면, 자연적으로 어둠과 대비되면서, 어둠이 드러나게 된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상에 빛’이었다. 스스로 그렇게 행세하고 살았다.

(과거에 우리 각자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그들이 도리어 ‘어둠, 소경’이라고 폭로하셨다.

성경은 그 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을 ‘소경’이라고 한다.


문제는, 평균 이상의 선한 사람들 (꼭 선한 것도 아니지만) 빛을 밟아 꺼트리는 것이다.

참 빛이 세상에 오셨을 때, 반대로 죄인들은, 그 빛을 영접했다.

그러나 스스로 선하고 의롭다는 사람들은, 그 (복음, 예수)에 도리어 반발하는 것이다.


▲어둠은.. 소경이다.


요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소경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소경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본론2. 을 영접한 사람들


▲그러나 참 빛을 영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바로 ‘세상의 빛’이다.   ←설교 제목

빛이 왔을 때 ‘저는 소경이 맞네요! 저는 어둠이었네요. 저는 소경이었네요.’

‘예수님이 저를 비춰주시지 않으면, 저는 빛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네요.’

- 이렇게 고백하는 사람을.. ‘빛’이라고 한다.

 

    *이 해석이 본문의 진의眞意라고 본다.

      본문을 도덕적, 윤리적으로 해석(빛으로 세상에 본이 되게 살자)하는 것은.. 부차적 해석이라고 본다.


그런데 ‘당신이 구태여 날 비춰주지 않아도, 난 지금 착하게 잘 살고 있어요.

율법 잘 지키고, 교회 꼬박꼬박 잘 다니고 있거든요.’

-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소경’이라 그런다.


다시 말씀드린다.

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그 빛을 확 비추실 때,

‘나는 어둠이었군요, 나는 소경이 맞습니다.’ .. 그가 바로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을 빛을 받아서, 눈을 떠서 보게 되었고, 그 을 반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괜찮아. 나는 밝다니까. 어둠이 아니야. 나는 밝아서 다 본다니까!’ ..

그래서 참 을 배척하는 그가 바로 소경이요, 어둠인 것이다.


▲여전히 인간(자신)의 가능성을 의지하는 자들을 ‘흑암’이라 하신다.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마4:16


이 빛을 못 알아보는 자들은, 모두 사망이며, 흑암인 것이다.


주님은,

율법을 외적으로 잘 지키며

남의 눈에 보기에 의롭게 산다고 인정받았던 그들을,

그래서 예수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못 느꼈던 그들을 흑암, 사망이라 하신다. 마4:16 ↖

                                                                    (‘너희는 세상의 빛’의 반대)

나는, 자신의 어둠과 소경됨을 깨닫고,

주님을 믿고, 눈을 뜬.. '세상의 빛'인가?

 

아니면, 애당초 나는 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지금도 선한 사람으로 여기면서,

근사한 행위나 외모를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세상의 빛)들을 멸시하거나 차별하는.. '세상의 어둠'은 아닌가?


 

'분류 없음 > 201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긍휼이란?  (0) 2011.07.20
너희는 세상의 소금 A  (0) 2011.07.19
산 위의 동네 C  (0) 2011.07.18
영적 전쟁에 관한 묵상 3편 David Wilkerson  (0) 2011.07.15
세미나 마친 후의 허탈감  (0) 201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