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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사보다 나은 사람

LNCK 2011. 7. 19. 22:46

용사보다 나은 사람 / 신앙생활 묵상글 - YouTube

◈용사보다 나은 사람        잠16:22         모두 펀 글         출처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16:32

 

고대의 용사들은 사나이들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들은 남자다움의 표상이었고, 국가 사회의 안녕을 지키는 수호신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보통 인간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며 누릴 수 있는 명예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일상에서도 영웅으로 존경을 받았고,

전장에서는 한 나라의 버팀목이었고, 한 공동체를 지키는 영웅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용사들에게 용사의 모든 명예를 무력하게 하고

존경을 무위로 돌리는 아킬레스의 건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노입니다.

 

한 순간의 분노로 자신의 명예를 허물고

자신의 성공을 스스로 파괴한 용사들의 리스트는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사람은 용사보다 낫다고 한 것입니다.

 

용사 알렉산더 대제에게 클레토스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클레토스가, 알렉산더를 모욕하는 언사를 한 것이

대제를 분노하게 했다고 합니다.

대제는 창을 친구에게 던져 친구를 죽게 하였습니다.

 

이 일을 후회한 대제는 이 일로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온 세상을 정복한 그가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 실패한 것입니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 다스리기 훈련은 평소의 일상에서 학습되어야 합니다.

 

예로부터 마음을 다스리는 수양은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지도자들의 가장 큰 마음공부의 덕목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통치를 사모하는 영성 훈련의 부단한 진보로

마음 다스리기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기도 / 우리 마음의 주인이신 주 하나님,

주님의 영으로 늘 우리 마음을 다스리시사,

분노가 아닌 온유로 평생을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2. 선한 눈을 가진 자의 복            잠22:9            출처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잠22:9

 

눈은 마음의 창이다. 우리는 이웃의 눈을 보며 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이웃의 눈은 그의 마음의 미로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눈을 통해 이웃들의 의식 세계와 무의식 세계를 접근할 수 있다.

 

그러므로 눈을 관리하는 일은 마음을 관리하는 일이다.

아니, 마음을 관리함이 곧 눈을 관리함이다. 우리의 마음은 눈으로 드러난다.

 

크게 보면 사람의 눈은 선한 눈과 악한 눈으로 나뉜다.

그것은 사람이 마음이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선한 마음은 선한 눈을 만들고 악한 마음은 악한 눈을 만든다.

그런데 여기 ‘선하다’고 표현된 단어는             *토브

본래는 인색함이 없는 넉넉한 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영어로 ‘제네러스’(generous)하다는 뜻을 가진다.

 

그러면 선한 마음은 어떻게 드러나는 것일까?

잠언 기자는 양식을 가난한 자와 나눌 줄 아는 것이

바로 넉넉한 마음의 가장 구체적인 증거라고 말한다.

 

자선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한 마음에서만 자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다.

인생의 여로에서 만나는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태도가

바로 우리의 선함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부요한 이웃들만이 아닌

가난한 이웃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아픔과 그들의 고통을 주목하는 눈이야 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복한 눈이다.

 

성도의 눈에서 흐르는 가난한 이웃을 향한 자비의 눈물이야 말로

세상의 먼지를 씻는 청량제라고 할 수 있다.

선한 눈을 지닌 복 있는 사람이 되자.

 

 


◑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각도>      펀 글

 

사람이든 식물이든 물건이든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위치와 각도가 있다.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추하게 보이기도 하며

날카롭게 보이기도 하고, 부드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진작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그냥 찍지 않고,

그 각도(앵글)를 잡으려고, 이리 저리 카메라를 돌려대며 애를 쓴다.

 

우리는 나무 한 그루를 옮겨다 심을 때도,

보기에 좋은 위치와 각도를 잡아 심는다.

아무렇게나 심지 않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분명 그 사람에게도 좋은 점이 있을 텐데

그것은 찾아보지 않고,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과 시각으로만 줄곧 바라보면서,

그를 미워하거나 무시한다.

 

사람은 그가 누구냐인 것보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의 중요도와 의미가 크게 달라진다.

 

오늘은 그를

어제와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았으면.. 한다.

 

그러면 사람마다 다른 성격과 습관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새롭고 놀라운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 이하 녹음 없음 ..............................................

 

 

◑민족 사랑의 로맨티시스트 김준곤 목사님                      출처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근,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개의 운동은

민주화 운동복음화 운동이었다.

 

민주화 운동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운동이었고,

그래서 억압당한 인권을 구조 악으로부터 회복하는 정치적 해방이 그 중요한 초점이었다.

 

반면에 복음화 운동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불신의 이웃들에게 증거 함으로써

인간을 죄로부터 해방시키는 영적 해방이 그 중요한 초점이었다.

 

민주화 운동이 우리 민족사의 한 복판에서 신앙의 영역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 모든 계층에서 주목을 받았음에 반하여

 

복음화 운동은 기독교 특히 복음주의적 개신교의 영역 안에서만

회자되어 온 운동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민주화 운동 못지 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복음화 운동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본다.

 

복음화 운동 없이 오늘의 한국 교회는 존재할 수 없었고

한국 교회를 통한 세계 선교의 생동하는 에너지도 찾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복음화 운동의 파고의 한 복판에 김준곤 목사님이 계셨다.

나는 20대 와 30대 초반까지 YFC(십대 선교회)운동에 관련되어 있었지만

 

당시 민족 복음화를 외치며 “민족의 가슴마다 피 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예수 그리스도의 푸르고 푸른 계절이 오게 하자”는 목사님의 외침에 크게 감전되어 있었다.

 

나는 CCC회원은 아니었지만, 1971년 그가 민족 복음화를 선언하던 현장에 있었고,

그가 주관한 1980년 세계 복음화 대 성회에서도 통역 강사로 섬기면서

그분의 사역에 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그분에게 크게 영향을 입은 것은 한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나는 그분의 설교를 들으면서

설교를 큰 목소리로 고함치지 않아도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처음 그 분의 설교를 접하면서 작은 낭만적인 목소리로 호소함에도

그의 설교는 마치 내 세포의 깊은 구석 구석을 터치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둘째로 그의 유명한 <백문 일답>처럼 무슨 문제를 제기해도

대답은 그리스도라는 명제 곧 그리스도가 구원이고 그리스도가 소망이라는 외침은

젊은 설교자인 나의 영혼에 깊은 울림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그의 영향은 민족 사랑의 외침이었다.

정치, 경제, 교육, 과학, 예술 모든 삶의 영역에 그리스도를 심어

이 민족을 그리스도의 민족으로 삼아야 한다는 그의 외침은

아마도 그가 이 땅에 남긴 가장 위대한 로망스가 아니었나 싶다.

 

그는 진실로 민족 사랑의 로맨티시스트였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성시화 운동을 위해 목숨의 불꽃을 사르다가

지난 29일 향년 85세를 일기로 그의 영원한 사랑이신 주님의 품으로 출발하였다. (1925~2009)

한국 교회의 영원한 청년 전도자 김준곤 목사님의 별세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이동원 목사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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