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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의 중생 체험 Charles Spurgeon

LNCK 2011. 8. 19. 14:37

 

◈스펄전의 중생 체험             사45:22, 렘45:5            모두 펀 글

 

 

1834년 영국 켈베돈 마을에서 탄생하여

1892년 58세의 나이로 남프랑스 멘톤마을에서 설교하다가 주님 품에 안긴 스펄전은

“설교의 황태자”라는 칭호에 부족함이 없는 위대한 3,544편을 설교전문 그대로 후대에 남겼다.

 

한 시대 구술로 전달되고 사라진 메시지가 아니라

주님의 재림까지 수많은 설교자들에게 설교의 영감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보석보다 귀한 영적인 유산을 남겼던 것이다.

 

 

◑1. 스펄전의 중생 체험                              출처

 

찰스 스펄전은 1834년 6월 영국 남부의 에섹스 州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1568년부터 찰스 스펄전이 태어나던 때까지

12대를 걸쳐 전통적인 청교도 신앙을 지켜왔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청교도 목사였다.

이 때문인지 그의 부모들은 어릴 적부터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자녀들에게 심어 주기 위해서 대단한 관심을 가졌다.

 

당시 순회 설교자였던 스펄전의 아버지는 어느 주일 아침에,

자기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사로잡혀 마음이 울적하였다.

 

자신을 정죄 하는 이러한 생각을 못이긴 채 집으로 돌아온 그의 아버지는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나는 큰 방에 아이들이 하나도 없는 것을 목격하고 깜짝 놀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내가 자녀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가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특히 찰스의 순서가 되자 특별히 기도를 했다."

 

찰스 스펄전은 어렸을 때부터 천로역정 Pilgrim's Progress 을 자주 읽었는데,

전생애 동안 무려 100여 번이나 탐독했다고 한다.

 

6살 어릴 적에 목사관 2층의 어두침침한 방에서 천로역정의 복사판을 발견했는데,

그 책은 표지가 목판화로 되어 있었다.

아래 층으로 가지고 와, 밝은 불빛에서의 표지의 그림을 잊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는 7살부터 15살까지 콜체스터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청교도들이 쓴 책을 많이 읽었다.

백스터의 '비회심자에 대한 부르심 (call to the unconverted)',

제임스의 '갈급한 탐구자', '죄인에 대한 경고' 등이다.

 

스펄전은 다른 학생들보다 정신 연령이 높아 조숙했다.

그래서 그는 존 번연의 '풍성한 은총'에 나오는 긴 문장들을 외웠다가

그의 친구들에게 즐겁게 들려주곤 하였다.

 

그러나 1850년 1월 6일 확실히 거듭남을 경험하기까지      당시 만15세 

그는 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뇌를 겪었다.

 

"나는 젊었을 때, 약 5년간의 심히 괴로운 시기, 즉 암흑기를 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나는 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은 느낌을 가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자신을 살펴볼 때, 그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패역무도한 죄인이었다.

결국 그는 그 자신을 율법 가운데로 인도해 주는 모세를 만났다.

하나님의 선한 법, 곧 십계명에 부딪히는 일이 자주 있었다.

 

십계명을 대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비추어 보았을 때,

지극히 거룩하신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자신은 확실히 죄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 때 그의 마음은 빛을 잃은 태양과 같았고,

그가 지은 죄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이 존재하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찾아보았지만

이렇다 할만한 해답을 받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은 더욱 더 답답해갔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었다.

여러 가지 이론을 꾸며 가며, 그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선민의 특권을 가졌다는 확신을 가지려고 했지만

그 노력은 헛수고였으며, 그 확신은 자기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는 확실히 복음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너무도 답답해서

콜체스터의 모든 교회들을 찾아가 뭔가 해답을 얻기를 원했으나,

어떤 설교자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어찌하면 구원을 얻을까?’ 하고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질 않았다.

인간 행위의 열심 만을 강조하는 내용들이었다.

설교가 끝날 때는 '좋은 말씀 잘 들었다' 하는 생각뿐이지,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펄전은 당시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여전히 주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이렇게 고민에 빠져 있던 스펄전에게, 전 생애를 바꾸어 놓는 순간이 다가왔다.

1850년 1월 6일, 우연히 들른 교회에서

어느 평신도의 설교를 듣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스펄전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쓰고 있다.

"요즈음 그 때를 가끔 생각하는데,

만일 그날 아침 그처럼 대단한 눈보라가 치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까지도 암흑 속에서 헤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날 아침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길이 막혀 버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자기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보잘것없는 조그만 감리교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예배당에는 20여명 채 못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으며, 목사도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한 초라한 사람,

아마 양복점 직공이거나 구두 수선공처럼 보이는 이가 강단에 올라갔다.

 

그 사람의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성경 본문을 외어대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준비된 원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은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는

이사야 45:22절이었는데,    - 이 글 본문↑

그 사람(존 에글렌)은 그 본문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였다.

 

스펄전은 그 작고 초라한 예배당에서

목사도 아닌 집사의 설교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친애하는 여러분!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합니다. 여기에 '앙망하라'고 하였습니다.

앙망한다는 것, 즉 바라본다고 하는 것은 결코 어렵거나 힘이 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보기 위해서 한다리를 들거나, 손가락을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대학 같은 곳에 다니거나,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린 아이도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여러분은 모두 자기 자신만을 바라봅니다.

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자기 자신을 바라본다고 자신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보십시오. 지금 당장 그를 바라보십시오!"

 

힘을 주어 말씀을 전하던 그 사람은, 한 순간 숨을 돌리고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십자기에 매달렸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핏방울을 떨어뜨리고 있다. 보라, 나는 죽어 장사되었다!

나를 바라보라! 나는 다시 살아났다. 나는 승천했다.

나는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있다. 나를 바라보라! 오오~ 나를 바라보라!

그리스도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난 그 집사는, 강당 바로 밑에 앉아 있던 스펄전을 바라보았다.

그는 스펄전을 향하여 ‘청년이여! 당신은 왜 그렇게 가련한 모습을 하고 있소?’ 라고 물었다.

스펄전은 무척 당황했다. 그 설교자의 한마디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힘을 주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시간에 성경 말씀에 순종하면 당신은 구원을 받을 수 있소!".

"청년이여, 예수를 바라보시오! 지금 바라보시오!".

 

스펄전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의 가슴에 꽉 차 있던 구름은 걷히고, 그의 영혼에 구원의 빛이 비추었다.

그는 진실로 그를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감격에 넘쳐 구주의 귀하신 보혈과

단순하고도 명확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찬송하고 싶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지고 왔던 죄의 무거운 짐이

바로 나의 어깨 위에서 영원히 굴러 떨어져 버렸을 때,

그는 죤 번연의 천로역정에 나오는 순례자와 같은 환희에 도취되었다.

 

"이제야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말씀 안에 비밀을, 넓은 대지 위에서 어린아이처럼, 마음껏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다.

"주님! 십자가에서 그 모든 것이 해결 됐었군요. 나의 그 무거웠던 죄가 모두 다!"

 

스펄전은 거듭남의 체험에 대해,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뉘우침의 포도주 통에서 짜낸 포도주는 실로 값진 것입니다.

회개의 광산에서 채굴한 금이야말로 정금인 것입니다.

깊은 고통의 동굴에서 발견된 그러한 진주들이야 말로 참으로 찬란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받고 자기의 목에 오랏줄이 묶여 있었던 자는

죄사함을 받고서 구세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겨져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때, 기쁨의 눈물을 흘릴 사람인 것입니다".

                                                                                      *관련글 당신은 숨은 영웅

 

1850년 1월 6일, 그는 확실히 구원을 받은 후 온 종일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신의 거듭남이 확실하다는 것을 거듭 느꼈다.

 

부모님들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펄전은 1850년 어머니 생일날 침례를 받았다.

그는 자켓과 바지를 입은 그대로 물속에 들어갔다.

물속에서 나온 후, 그는 그의 마음에 여러 가지 공포들이

그 물 속에 잠긴 채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 이듬해 16세가 되던 해 그는 케임브리지학교에 입학한 후

그 도시 근처 테버샴의 한 작은 집회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첫 설교를 했다.

 

청중의 감화력은 매우 커서 그의 명성은 곧 알려졌고

1852년에는 18세의 나이로 워터비치의 작은 침례교회 목사가 되었다.

 

이 젊은 목사의 평안은 전국에서 화제 거리가 되었다.

그의 설교는 문서화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읽혀졌고,

그 후 40년 동안 무수한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여

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였다.

 

        

◑2. 스펄전과 성령의 역사                                               출처

 

▶창조성과 영감 넘치는 그의 설교들이, 바로 성령의 기적

그의 생애는 그 자체가 기적이며

창조성과 영감 넘치는 설교들이 표적이라 할 수 있다.

 

청교도 신학을 가지고 회중교회를 목회하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성경과 기독교 문헌을 탐독하던 스펄전은

16세 되던 1850년 1월에 회심하여, 그 해 5월에 침례를 받고 침례교인이 되었다.

 

스펄전의 어머니는 회중교회를 떠나 침례교인이 된 것에 대하여

“내가 너를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기도하기는 했으나

침례교도가 되도록 기도하지는 않았다”고 하여 악간의 서운함을 표현했다.

 

스펄전은 “하나님께서는 어머니의 구하시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응답해 주셨습니다.”라고 답변하며

자신의 신앙적 확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어머니를 안심시키고자 하였다.

 

1850년 10월부터 “성앤드류 침례교회”의 교인이자 평신도 설교협회 회원이 되어

설교자 없는 시골교회에서 자신의 설교은사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1851년 10월에 17세의 나이로 워터비치마을의 담임목사로 초빙되었다.

 

오락이나 운동, 이성교제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말씀, 기도, 전도, 설교에만 전념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영위함으로

첫 설교할 때 출석 12명의 교회를, 불과 몇 달 사이에 400명으로 부흥시켰다.

 

그의 은사가 알려지자, 영국의 침례교회 가운데

가장 유서 깊은 New Park Street Chapel에서 그를 담임으로 청빙하였다.

 

19세의 나이인 1853년 12월에 설교를 시작할 때는

1,200석 교회에 120명의 교인들이 듬성듬성 앉아있을 뿐이었으나,

불과 3달만에 예배당을 꽉 채우고 밀려드는 회중을 감당 할 수 없어

예배당 증축을 거듭하다가, 1856년에는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4년 반의 노력 끝에 1861년 3월에 Metropolitan Tabernacle이 완성되어

5,600석을 갖춘 대 예배당을 헌당하게 되었다.

 

스펄전의 설교는 매주 속기로 기록되어

1페니에 구입할 수 있는 “페니 풀핏”으로 인쇄되어 시중에 유통되었고,

수많은 성도들에게 애독되었다.

 

아프리카 선교 개척자인 리빙스톤의 배낭에는

어김없이 스펄전의 “페니 풀핏”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성공회를 국교회로 하여

다른 교파의 종교적인 자유를 다양한 방법으로 제한하고 있던 영국의 상황에서

침례교를 표방하던 스펄전이 이런 부흥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그 자체가 기적이다.

 

강력한 칼빈주의 신학설교자

스펄전은 침례교인이면서 강력한 칼빈주의 신학을 설교했고,

‘국가교회’ 제도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대했던 ‘자유교회’ 제도의 신봉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의 목적에 관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스펄전은 19세기 초반에 에드워드 얼빙(Edward Irving, 1792-1834)을 중심으로 하여

방언, 예언의 기적은사들을 강조했던 운동의 열매가 바람직하지 않았던 것을 알고 있던 상황이었으므로

이러한 기적은사들에 대해서 호의적인 신학을 형성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1871년 3월에 “그리스도의 승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한 내용 가운데

사도나 선지자의 은사들은 일시적인 것이었으며

그와 함께 기적을 행하는 능력도 철회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은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복음전도자나 목사와 교사의 은사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역사 한다고 하였다.

 

스펄전은 방언과 같은 성령의 기적은사를 통한 능력보다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는 구령의 역사를 더 큰 성령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특별히 1869.10.31의 설교는 눅11:29절 가운데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를 본문으로 하여

“표적과 기사를 앙망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다.

 

구약시대에 모세나 기드온에게는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로 말씀하셨지만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에 기사와 표적을 요구하는 것은

“태양 앞에 촛불을 켜는 일이요, 태양에 물을 붓는 일”이라고 하였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많은 기적을 보고도 믿음에 이르지 못한 경우와,

바로왕이 열 가지 재앙의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경우를 들어

믿음과 기적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였다.

 

기적을 보거나 체험해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겠다고 말하는 것은

심기도 전에 먼저 거두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스펄전의 사역은 외형적이 표적과 기사보다는

내면적인 성령의 역사를 강조했으며,

주관적인 체험보다는, 객관적으로 완성된 기록계시에 대한 믿음을

더욱 중요시했음을 알 수 있다.

 

스펄전 생애에 드러난 성령의 기적(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펄전의 생애가운데는

성령의 기적은사에 대한 몇 가지 드러난 경험들을 찾아 볼 수 있다.

 

①먼저, 예언의 은사에 대한 체험이 있다.

1844년 스펄전이 10되던 해 할아버지가 목회 하시던 스탬본에 런던선교협회 소속의

리처드 닐 Richard Knill 선교사가 스펄전과 함께 할아버지 댁에 머물고 있었다.

 

3일 동안 선교체험을 어린 스펄전에게 이야기 해주던 닐 선교사는

마지막 날 할아버지 James Spurgeon목사와 온 가족 앞에서

스펄전을 무릎에 앉히고 예언을 하였다.

 

“이 아이는 앞으로 복음 설교자가 될 것이며 수많은 사람 앞에서 설교할 것이다.

내가 확신컨대 그는 Rowland Hill의 교회에서 설교할 것이다.”

 

Rowland Hill 목사는 스펄전이 탄생하기 10년 전에 죽었으나,

유명한 조지 휫필드 목사의 후계자라고 거론되던 부흥사였다.

 

닐 선교사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으며,

스펄전은 Rowland Hill목사가 설교하던 Surrey Chapel에서

수많은 회중 앞에 설교한 경험을 갖게 되었다.

 

스펄전은 이 예언을 전설로 돌리려는 사람들을 향하여

닐의 예언은 역사적인 사실이었음을 확증하였다.

 

②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체험

스펄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체험도 있다.

스펄전은 대학졸업장이 없는 사람이며, 명예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스펄전에게도 워터비치교회의 “소년 설교자”로 유명해지기 시작할 때

대학진학의 기회가 있었다.

 

오늘날 Regent Park College의 전신인 당시의 Stepney 대학에 입학하려고

학장인 앵거스 박사와 면담을 약속하였으나,

약속장소인 인쇄업자 맥밀란씨의 집에서 그의 하녀가 실수함으로 인해서

2시간 동안 다른 방에서 각각 기다리다가.. 면담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스펄전은 면담을 이루지 못하고 나오는 길에

하나님께서 개인적으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하였다(1권 207-208).

“너는 너 자신을 위해서 큰 일들을 구하느냐? 그것들을 구하지 말라.”  렘45:5

이 음성을 들은 스펄전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목회에 전념하여

워터비치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다.

 

꿈에서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지혜를 체험

꿈에서도 역사하시는 성령의 지혜를 체험한 적도 있다.

스펄전은 그 많은 설교를 하면서도 매 설교마다 혼신의 노력을 다 기울였다.

 

한번은 이사야서 60장 3절을 본문으로 하여 토요일 저녁에 묵상하는데

도무지 마음에 드는 설교 구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다.

 

이를 보다 못한 아내 수잔나는 오늘밤은 주무시고

내일 새벽에 설교 준비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 날 밤 스펄전은 그 본문을 중심으로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고,

아내는 잠꼬대를 받아 적어 주일 아침 푹 잠을 자고 일어난 스펄전에게

그 내용을 주었다.

 

설교준비가 안 된 스펄전은 허둥대었으나

아내가 받아 적은 내용이 바로 자기가 설교하고 싶은 내용임을 확인하고

좋은 설교를 했다는 일화가 자서전에 기록되어있다(2권419-420).

 

④하나님의 임재 체험

스펄전은 기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며

강단기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하였다.

 

스펄전의 설교 중에는 신유의 능력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그의 사역기간 동안에 그의 기도로 신유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며

런던의 의사들이 치유한 것보다

스펄전이 기도로 치유한 경우가 더 많았다는 과장된 표현도 찾아볼 수 있다.

                                                                                                                        <피영민 교수

 

 

◑3. 은퇴 당시 일화

 

스펄전이 그의 타버너클 교회에서 평생을 사역하다가,

이제 늙어 몸이 쇠잔해지니까, 사역에 대한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그랬더니 온 성도가 일어나서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자 스펄전이

“제가 이 건강으로는 한 달에 한 번 설교를 할 수 있을까 말까입니다.

그처럼 불충하게 목사일을 하는 것보다 나를 쉬게해 주십시요”라고 청했습니다.

 

온 교회가 안 된다고 떠들었습니다.

 

“목사님. 한 달에 한 번밖에 설교 못하셔도 좋으니

제발 그만 둔다는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교인들이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지금이야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제가 말했지만

그 다음 달에는 한 달에 한 번도 설교를 못할 터인데.”라고 하자

온 교인들이 울면서

“목사님, 우리 교회 목사님이 스펄전이다 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저희들은 만족하겠습니다.

제발 그만둔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라고 온 교우가 울며 말렸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잘 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요.

많은 축복 중에 하나는 좋은 신앙의 지도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축복입니다.

 

스펄전은 평생 맡은 일에 충성했기에

하나님께는 물론 교인들에게 인정받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