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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LNCK 2011. 8. 20. 15:3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마5:10,  마10:5~6        11.06.22.설교일부녹취정리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복음)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다.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0절은,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 복이 있고 

11절은, 나를 인하여 받는 핍박이, (둘 다) 복이 있다고 했다.

두 구절을 연결해서 보면,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예수님 때문에 받는 핍박’이기도 하다.


즉 ‘예수님이 성취하시고, 완성하신 의(복음) 때문에 받는 핍박’이 된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성취하시고, 완성하신 의(복음) 때문에’ 왜 핍박이 오는가?


마5:10에 나오는 '의'와, 똑같은 단어 '의'가 롬3:21에 쓰였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위 구절에서 바울이 말한 ‘의’의 대척점에 ‘율법’이 있다.


요지는, <예수님이 완성하신 의를 따르는 자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려는 자들>의 핍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믿음을 통해 얻는 의’가 ‘율법’에 의해 핍박을 받는다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를 살피는 중임.


▲마더 테레사의 예를 들어보면,

그 분에 관한 책만, 제가 소장하고 있는 것만 30권이 넘는다.

온 세상이 본받고 싶어 하는 분이다.


심지어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도, 마더 테레사를 존경한다.

그래서 마더 테레사 같은 분들을 (다른 위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의롭다고 인정하고, 존경하고, 칭찬한다.

‘그를 본받아 살자. 그렇게 살자’ 고 말한다.


그런데 본문은, ‘의로 인해 핍박을 받는다’고 했는데, 마5:10

마더 테레사 같은 위인들의 의는, 반대로 ‘의로 인해 칭찬과 존경을 받는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루신 의’는 마5:10

마더 테레사와 같은 의(율법적 행위에 의한 의)가 아니란 뜻이 된다.

                                          ※지금 마더 테레사를 폄하하는 뜻은 아님, 그냥 일례를 든 것임.


우리나라에도 만약 존경(만) 받는 종교인이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의(복음)를 위한 삶’이 아니었다... 는 말도 된다.


왜냐하면 본문은 ‘의를 위하여는 핍박을 받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핍박만 받지 않고, 존경도 함께 받겠지만, 어쨌든 핍박을 필수적으로 받게 된다는 것이다.

핍박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본문이 말하는) 참된 의가 아닌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눅6:26

오직 거짓선지자들이 ‘항상’ 칭찬만 받았다.

그럼 거짓선지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항상 칭찬만 받았는가?


거짓선지자들은, 항상 평강만 외쳤기 때문이다. 렘14:13~15

오늘날로 치면, 항상 잘되고, 복 받고, 성공할 것이라고 외쳤다는 것이다.

예배만 잘 드리면, 만사형통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의 참된 인격적 만남과 교제인데,

그런 본질은 없고,

거짓선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율법적 행위로 얻는 의’인데,

그걸 한국적 표현으로 하면 ‘치성을 잘 드려라. 그러면 복 받는다’이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는 부족하고,

치성(정성 쌓기)만 강조되어, 1천 번제, 백일기도.. 이렇게 나가게 된다.


     그런데 이런 것이 일선 현장에선 더욱 잘 먹힌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적극 호응을 받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가 약화되고,

      <율법적 의>를 통해,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는

      <율법적/행위의/치성적 의>에 의해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5:10


위 본문에서 ‘의’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의(복음)’ 이라고 본다.

저 김성수 목사는 그렇게 해석한다.


그렇지 않고, 세상에서 일반적 개념으로 통용되는 ‘의’는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인간의 심성에서 나온 ‘의’로서

그것은 참된 '의'가 아니라고 본다. 타락한 의이다.


2) 이 <복음적 의>는 <율법적 의>와 대척점을 형성한다.

그래서 <복음적 의>를 위하여 살면.. 핍박을 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세상 가치로 규정한 ‘의’

즉 <율법적인 의>로운 삶을 살면, 오히려 칭찬을 받게 되어 있다.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소개된다.


그런데 성경은,

거짓선지자들이, 세상에서 칭찬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들은 <복음적 의>보다, <율법적 의>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율법적 의>는 <세상 가치의 의>와 동일하다. 전혀 다른 게 없다.
이것과 <복음적 의>는 완전히 다르다.

 

3) 적용하면, 그래서 저는,

오늘날 ‘교회가 잘 해서 세상에서 칭찬을 듣자’ 보다는,  물론 이런 말씀도 성경에 나오지만, 행2:47 

‘교회가 의를 위하며 살고, 그러다가 핍박이 오면 기꺼이 감수하자!’

- 이런 슬로건으로 나가야 한다고 본다. 이게 더 성경적이다.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예수님, 바울, 베드로, 초대교회, 스데반.. 모두 핍박을 받았고,

핍박을 받으면서.. 복음은 더욱 더 흥황하면서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핍박이 없는 것은.. 문명화가 되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쩌면 복음이 타협되어서 그렇다.

 

어째서인지 들려오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면,

본문 말씀대로 ‘교회/성도가 의(복음)를 위하여 살고, 기꺼이 핍박을 받자!’ 는 슬로건은 없고,

‘교회가 세상에서 칭찬 받자’ 라는 소리 일색인데,


그렇게 ‘세상 의, 율법적 의’로 치성을 쌓고, 선행을 쌓아서 칭찬을 들으려 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거짓선지자처럼 될까봐 우려한다.     

 

 ▲마10장에 예수님이 둘씩 짝지워 전도하러 내보내실 때에도,

의(복음)를 전파하면,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제자들이 나가서, 병 고치고, 귀신 내어쫓고, 복음을 전파하면.. 세상에서 칭송을 들어야 할 터인데,

그런데 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약속(경고)하셨나?

 

-그것은 예수님이 먼저 그 십자가의 길을 가셨고,

 하나님 나라 역사는, 십자가/핍박/죽음... 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칭찬이 아니다.)

 

 본문 마5:10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복음전파와=핍박은 항상 짝으로 같이 가고,

 그런데 그것(의의 복음 전파를 통해 받는 핍박)이 '복'이라는 것이다. (칭찬이 복이 아니라)

 

예수님이 '유대인의 마을로 먼저 가라'고 하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마10:5~6

 

 그곳이 '율법주의'의 총본산이기 때문이다.

 복음에 가장 반대되는 율법주의의 총본산으로, 가장 먼저 가라는 것이다.

 -그곳이 마5:10절 (의의 복음 전파로 인한 핍박 받는 복)이 가장 잘 이루어질 곳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의롭고/선한 민족인줄 아는데,

 그곳부터 들어가서, <그 인간적/율법적 의>를 깨부수라는 것이다. <복음의 의>로!

 거기가서 '회개하라!'고 복음을 전하니까, 의로웠던 율법적 유대인들이 기절초풍하고 핍박했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주의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기독교도 주류문화가 생기고, 고착화가 되고, 전통이 되면
        마5:10이 말하는 <복음적 의>와 대척점에 서는 <율법적 의>를 강조하기 쉽고,

 

        거기에 대고 누가 '회개하라!' 그러면.. '너가 뭔데?' 하면서 핍박이 일어나게 된다.

       '자기들의 존재감, 자존감, 존경 받음'을.. 복음이 치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건 참 의가 아니야!

        마5:10절이 역사의 모든 시대마다, 그대로 적용되어 왔다는 뜻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이란.. 의의 복음을 전하면서, 지는 것이다.

요즘 댓글로 웹사이트에서 공격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예순이 넘으신 A목사님이, 복음을 성실히 전하시는데,

30대초반의 청년들이, 그 목사님이 전하는 복음에 시비를 걸고, 

그 교회 홈페이지에 공격적인 댓글을 남겼다.

(그들 청년들도, 신학공부를 상당히 많이 한 사람들이었다. 댓글의 내용으로 봐서.)

 

그런데 그 나이드신 목사님의 응대의 태도가.. 제가 보기에 놀라웠다.

그 목사님도 공부를 아주 많이 하셨는데, 일일이 대꾸/변호하지 않으시고,

'이제 그만들 합시다. 자기가 은혜 받은대로 사세요!'

 

저는 A목사님에게서, '복음을 전하면서 지는' 모습을 확실히 배웠다.

그것이 바로 마5:10에서 말하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모습이었다.

거기에 영광이 있고,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