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1

죄로부터의 해방 Charles Spurgeon

LNCK 2011. 8. 19. 21:31

 

◈죄로부터의 해방                        마1:21              찰스 스펄전, 출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1:21

 

 

 

◑죄에서 해방되기 어렵습니다만...

 

지금부터 저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진리를 깨닫고 있으면서 

진작 죄로부터 떠나지 못하여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되기까지 

결코 즐겁고 평온하고 영적으로 강건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멀리 할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의 대단히 중요한 문제점입니다. 

 

옛 성품이 너무 강렬하게 작용하므로 

이것을 다스리고 길들이고자 심히 애써 왔습니다. 

 

그러나 이 못된 성질이 길들여지지 않고

개선되기를 갈망하지만, 오히려 전보다 더 나빠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마음은 너무나 굳어있고 

의지는 고집스러우며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맹렬하고 

상념은 심히 변덕스럽고 

 

상상은 제어할 수 없으며 

또 욕망은 난폭하여 

이 사람은 자신 속에 야생동물이 우글거려서 길들여지기는커녕 

자신을 삼켜버리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에 대해서, 

주께서 욥을 향하여 리워야단에 대해 하신 말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네가 어찌 그것(리워야단, 공룡?, 타락한 성품)을 새를 가지고 놀 듯 하겠으며 

네 여종들을 위하여 그것을 매어두겠느냐?”  욥41:5

 

사람이 자기 속에 도사리고 있는 타락한 성품의 권세들을 제어하려는 것은 

마치 사납게 휘몰아쳐 가는 북풍을 손아귀에 쥐려는 것 같습니다. 

 

이거야 말로 전설적인 헤라클레스의 공적보다 더 위대한 과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나는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의 근심이 되는 것은 

계속해서 범죄케 되는 사실이며, 

내 속에 죄의 경향이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공중으로 높이 던져진 돌이 땅에 다시 떨어지듯이 

힘 있는 설교를 들을 때는 마치 내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듯하다가도 

이내 침체된 상태로 떨어져 버리고 맙니다. 

 

“아! 슬프도다! 

저는 죄악의 *바실리스크의 눈에 현혹되어서 

마력에 끌려 자신의 어리석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구나”

           *아프리카의 사막에 살며, 한번 쏘아봄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전설의 동물

 

친애하는 친구여!     스펄전식 표현

만약 우리의 파괴된 상태에 대한 어떤 조치가 없다면 

구원이란 한낱 ‘불완전한’ 비애의 사건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죄 받음과 마찬가지로, 성결케 되기를 우리는 갈망합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면, 문둥이가 깨끗하다고 선언 받고나서 

집에 돌아가서 그 병으로 죽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혹은 반역자가 용서받고 나서

계속해서 왕에게 반역 행위를 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그 결과는 해소시켜 버리면서, 원인은 덮어두기 때문에 

우리 앞에 항상 끝없고 소망 없는 일만 쌓여지게 하고 맙니다. 

잠시 흐르는 물을 막았다가, 더 한층 거센 물결이 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죄를 없이 하는 일에 대해서 고찰해 봅시다. 

 

그분은 '죄책'과

'죄의 권세'

그리고 '죄의 존재'를 없애버립니다. 

 

단번에 여러분은 둘째 단계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즉 죄의 권세까지는 믿음으로 즉시 깨뜨려집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세 번째 길,

즉 죄의 잔존을 소탕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된 것입니다.

‘죄의 잔존 소탕’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아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약속1을 붙잡으십시오.

주님께서 우리 죄들을 제거하시려고 나타나신 것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주의 천사가 전한 말씀입니다. 

 

“그녀가 한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마1:21

 

우리 주 예수께서는 우리 속의 마귀의 일을 멸절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주님의 탄생 시에 선포된 말씀은 

그분께서 운명하실 때에도 동일하게 선포되었습니다. 

 

어째서 그런가 하면 

병정들이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피와 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는 우리를, 

범죄한 것과 죄의 오염에서 치유하는 이중적인 효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죄의 권세와 여러분의 나쁜 성질에 대해서 근심하신다면 

여기에 여러분을 위한 한 약속이 있습니다. 

이 약속 마1:21 을 굳게 믿고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약속2를 굳게 믿으십시오.

거짓말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께서 

에스겔서 36:26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으리라. 

내가 너희 육체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 같은 부드러운 마음을 주리라.”

 

이 말씀을 보면 

“내가 주겠고” 

또 “내가 넣으리라” “내가 주리라”, 

그리고 “내가 없애버리겠고” 

라고 계속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만왕의 왕이시며 자기의 모든 뜻을 이루실 수 있으신 분께서 

친히 나타내신 표현입니다.

 

또한 역시 주님은 이 일을 능히 이루실 수 있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구스인의 피부를 바꾸실 수 있으시고 표범의 반점도 없애버릴 수 있으십니다.’ *렘13:23 참조

                    성경에는 구스인이 피부를 바꿀 수 없다고 나와있으나, 성령의 능력, 거듭남으로 가능하다는 뜻. 

 

이 말을 듣고서 여러분은 경이로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한 번 더 창조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신비인데 성령님께서 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이아가라 폭포 밑에 서서 

말 한마디로 폭포의 물을 회전시켜서 거창한 압력으로 떨어지고 있는 물을 

다시 벼랑을 타고 올라 거꾸로 흐르게 한다면 이는 놀라운 기적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기적을 성취할 수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든 성질들이 전적으로 바뀌어 진다면 

그야말로 더 큰 이적이 될 것입니다. 

실은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욕망으로 치닫는 본성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가는 여러분의 생의 흐름을 바꾸어,  폭포가 거꾸로 흐르듯이

온통 하나님을 향하여, 여러분의 전 존재가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드실 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진정 이와 같은 일이 

하나님께서 언약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해서

성취하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믿는 자는 언약(약속) 안에 있습니다. 약속3을 봅시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읽어 보도록 합시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줄 것이요, 또 내가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으리라. 

또 내가 그들의 육체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하고 살 같은 마음을 주어서” 겔11:19

 

참으로 놀라운 약속입니다!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이 됩니다. 

이것을 굳게 붙드십시오! 

 

이 말씀을 진실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구원으로 삼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대로 여러분 속에 이루어질 것이며 

날이 지나고 해가 바뀜에 따라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역사로 인해서 여러분 속에 이루어진 변화의 신비에 대하여 

찬송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의 굳은 마음을 제하실 적에는 

이것이 온전히 뿌리 채 뽑혀져 버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일단 주님께서 새로운 마음을 넣어 주시면 

어떠한 세력도 이것을 없앨 수 없을뿐더러 

우리에게 주신 의로운 영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으심이니라.” 롬11:29

 

즉 하나님 편에서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일단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다시 찾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새롭게 하도록, 주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새롭게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찾는 것같이 

     사람의 수양과 개선은 곧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마음은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있게 되며 

     다시 돌같이 굳어지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키신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그렇게 보존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의 왕국에서 창조하신 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와 돼지 예화

이 점을 좀 더 명백히 설명하기 위해서 

로운랜드 씨의 고양이와 돼지에 관한 예화를 들어봅시다. 

 

이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만들어서 

“반드시 거듭나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상 깊은 말씀을 

여러분에게 명백히 제시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고양이를 보신 일이 있겠지요? 

고양이는 참으로 깨끗한 동물입니다. 

혓바닥과 발로서 아주 슬기롭게 자기 몸뚱이를 씻고 있습니다. 

이 광경은 정말로 일품입니다. 

 

그런데 돼지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물론 보신 일이 없을 겁니다. 

목욕하는 것은 돼지의 성질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차라리 진흙 구덩이에서 뒹굴기를 좋아합니다. 

 

가서 돼지에게 목욕하는 법을 한번 가르쳐 보십시오. 

곧 그것은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강제로 돼지를 목욕시킬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곧장 진흙 구덩이로 달려가고 말 것입니다.

 

돼지를, 고양이처럼 자기 몸뚱이를 씻을 수 있게 하는 방도는 

단지, 돼지를 고양이로 바꾸는 (내면이 거듭나는) 길 뿐입니다. 

 

고양이로 변화시켜 놓으면 자동적으로 목욕하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는 어림없는 일입니다.

 

      이런 개조가 성취된다면 어렵던 일이 얼마나 수월하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여러분의 응접실에 돼지를 안내하여 들여서

        고양이처럼 얌전히 의자에 앉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건하지 않는 자(거듭나지 않은 자)의 경우가, 꼭 이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변화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자유롭게 행하는 일들을 

경건치 않는 자로 하여금 똑같이 행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람을 가르칠 수 있겠고, 또 좋은 본보기들을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만 

이들이 그 마음속에 이런 경향이 전혀 없으므로, 거룩함을 배우기가 불가능합니다. 

이들의 성질은 전혀 딴 방향으로 이끌려가게 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시면,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는 법입니다.

이 변화(거듭남, 회심)가 절대적이므로 

어떤 회심자가 “온 세상이 변했던지.. 혹은 내가 변했던지 둘 중에 하나이리라”

라고 고백하는 것을 저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옛 성품이 죄를 따르듯이, 새로운 마음은 의를 좇아갑니다. 

이런 새 성품을 부여받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오직 성령만이 이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새 마음과 의로운 영을 주시는 이 놀라운 일에 

여러분은 참으로 감격해 보셨습니까? 

 

▶접붙임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메뚜기들이 서로 싸우다가 다리가 떨어져 나가면 

다시 거기에 새 다리가 돋아 나온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이보다 몇 십 배 더 놀라운 일입니다. 

이야말로 자연적인 능력을 초월하는 역사입니다!

 

여기,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여러분이 그 가지를 잘라낸다면 다시 새로이 돋아나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까? 쓴 물을 달게 할 수 있습니까? 

가시나무로 하여금 무화과를 맺게 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더 좋은 것을 거기에 '접붙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접붙임이, 바로 은혜의 역사에 대한 비유가 될 것입니다. 

 

나무속에 생명의 즙액을 온통 바꿔버리는 참된 기적이 될 것입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는 일이 

바로 이런 능력의 신비와 경이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을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맡기면 

주님께서 여러분의 성격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옛 성품을 제하여 버리시고 새로운 생명을 여러분 속에 심어 주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뢰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돌같이 굳은 육적인 마음을 없이 하시고 

새로운 성결케 된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접붙임해 주십니다. 

 

모든 것이 굳어 있었지만,

이제 모든 것이 부드럽게 해결되는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사악하였던 곳에서, 모든 것이 의롭게 되어질 것입니다. 

 

아래로만 치닫던 것이, 이제는 맹렬한 힘으로 위로 향하여 치솟을 것입니다. 

사나운 사자가, 온유한 양에게 친절할 것이며 

더러운 까마귀가, 순결한 비둘기 앞에서 날아가 버릴 것이며 

또 간교하고 악한 뱀이, 진리의 발굽 아래 짓밟히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일은 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이 덕스럽고 영적인 성격의 놀라운 변화를 많이 목격했으므로 

어떤 사람일지라도 경멸하지 않습니다. 

 

한때는 정숙하지 못한 여인들이, 눈같이 순결하여지고 

불경건하던 남자들이, 열성적인 헌신으로 온통 빛으로 충만된 생활하는 것을 보아 왔으므로 

이런 일은 현재에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도둑들이 정직한 사람이 되고 

술주정뱅이가 정숙한 사람이 되며 

사기꾼이 신실한 사람이 되고 

냉소하던 사람이 열렬한 성도가 되는 변화를 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곳이면 

어떤 사람이든지 불경건한 일과 세상의 육적인 것을 부인하고 

이 죄 많은 세상 가운데서도, 정결하며 의롭고 거룩하게 살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하십니다!

그런데 친애하는 독자여! 

어떤 이는 “저는 도무지 이런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오”라고 반박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단 말입니까! 

 

위에서 인용한 성경 말씀은 

사람이 하는 일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요, 자기의 약속을 성취하실 분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여러분에게 이루실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간은 대체로 오래 걸릴 것입니다. 예외도 있겠지만.

 

“그러나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이루어진다는 것일까요?”

라고 스스로 의문스러워 하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의 할 일은 무엇이라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주님을 믿기 전에, 주님께서 주님의 방법을 설명해야만 될까요? 

 

주님의 이 역사는 큰 신비입니다. 

성령님께서 이것을 성취하십니다.

 

약속을 맺은 사람이 그 약속을 이행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역시 그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주셔서 

이 놀라운 변화를 약속하신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그 언약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비록 커다란 이적이지만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신실하시므로 여러분을 위해서 이 일을 하실 수 있고 

또 기꺼이 하신다는 점을 여러분이 믿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확실히 믿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으므로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주실 것을 여러분이 믿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바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그분의 아들에 대한 믿음,

성경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존귀와 영광과 찬양을 세세토록 주님께 돌릴지어다!           ▣ 죄, 복된 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