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LthKK6V5HcI&feature=youtu.be
◈현 시대를 향한 설교 습3:16~20 출처1, 출처2
http://www.spurgeon.org/sermons/1990.htm
A Sermon for the Time Present
Oct 30th, 1887, by C. H. SPURGEON, At the Metropolitan Tabernacle, Newington
※스펄전이 왜 그 시대에 위대한 설교자였는지, 알게 해 주는 설교문입니다.
그냥 유명세를 얻어서, 유명해진 분이 아니군요.
원문 영어설교는 훨씬 깁니다. 참조하세요. (어떤 분이 축약, 번역해서 인터넷에 올려주신 글을, 정리했습니다.)
▲도입
성경은 깊은 놀랍고도 깊은 의미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길어도 길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물을 안 길어서 그렇지, 그 샘물에 물을 기르기(퍼내기)만 하면
당신은 그 깊고 오묘한 샘물을 계속 길어낼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 우리시대에도 그러하며, 앞으로 다음 세대도 그러할 것입니다.
샘물은 절대 마르지 않습니다. 물 긷는 사람만이 변수입니다.
성경의 모든 약속과 그 성취는.. 한 시대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시대마다 계속 성취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람과 약속을 하면, 그가 약속을 지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만,
하나님과 약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대마다 또 약속이 새롭게 체결되고, 시대마다 그 약속은 또 지켜집니다.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 습3:18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시련의 시기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거룩한 대회’(안식일 또는 절기로 모두 함께 모이는 날)는 치욕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대회는 그의 영광이었습니다.
잔치와 제상의 기간 동안 온 나라가 기쁨으로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거룩한 대회’가 치욕을 당했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룩한 집회’에서 복음의 찬란한 빛이 죄악으로 빛을 잃었을 때
우리는 서글픈 고통에 빠집니다.
의심 많은 목소리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져 갈 때,
그리고 오직 진리만을 전해야 하는 자들이 사람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교리와
그 시대의 가치들을 말할 때.. 복음의 순수성은 더럽혀집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계시’ 대신 ‘철학’을,
하나님의 흠 없는 ‘말씀’ 대신 ‘큰 기대감(대박?)’을 말하려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진보와 성장의 사회적 가치에 접목되어서
해마다 더 수정(진보)되고 더 다듬어져야(성장) 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교회와 세상은 모두 병들어 있습니다.
아픈 날 ill day입니다.
나팔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때
누가 나팔을 불어서 전쟁을 대비하겠습니까?
▲거룩한 집회에 생명 없음과 무관심
그리고 영적 능력의 결핍이 살금살금 우리 가운데 기어들어 오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진정 견딜 수 없는 고통의 극치입니다.
신앙의 생명력vitality이 무관심하게 여겨지고,
기도 모임의 중요성이 무시될 때,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모습은 마치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그리스도가 입에서 토해 내야 했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우리의 교회는 부요한 것을 자랑했고
더 이상 부족한 것이 없으므로 인해 세상의 부러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내내 그 교회의 주인은
밖에서 단단히 닫혀 있는 문을 두드려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 장면을 불신자에게 들이대지 마십시오.
문(교회) 안에 있지만,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열정을 잃은 교회의 모습이며,
참된 십자가의 대속 진리를 가지신 살아 계신 주님이,
문 앞에서 거부되고 있는 동안
문 안에서는 스스로의 풍성함과 명성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오, 주님이 영접 받아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실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주님은 너무나 간절히 들어오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면 라오디게아(우리) 교회는 곧 자기 ‘물질적 부요함’을 던져 버리고,
대신에 ‘믿음의 정금의 부요함’을 사모하고, 갖게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시면
자기들의 비싼 세상 옷을 벗어버리고,
주님이 입혀주시는 ‘흰옷’으로 모두 갈아입었을 것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8
아! 교회는 주님을 떠난 채 만족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교육과 화려한 달변, 과학,
그리고 다른 많은 어릿광대의 지팡이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먹장구름이 가득 낀 것처럼,
교회는 화려한 세상 것들의 먹장구름 아래서, 햇볕을 못 보고 신음하고 있습니다.
진정 교회에 ‘예수님과 사도들의 가르침’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때 *사도적 신앙의 전통 Charles Price
우리가 모이는 ‘거룩한 대회’는.. 먹장구름으로 가득 덮이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그것은 예레미야가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라고 부르짖으며
애가를 부를 만한 충분한 이유입니다(애4:1).
눈보다 깨끗하고 우유보다 희었던 나실인(성도)들이, 이제 숯보다 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대적이 우리를 향하여 예로 사자처럼 입을 크게 벌렸나이다"(애3:46).
세상에 부합하려는 태도가, 교회에 독버섯처럼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헛된 재미거리들을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교회와 세상 사이에는 더 이상 뚜렷하고 명백한 구별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사람들이, 불신자들과 손잡을 때
우리는 진정 괴로움으로 울부짖을 것입니다!
병든 시대 ill time가 교회와 동시에 세상에 찾아왔습니다.
교회가 병들면, 세상도 같이 병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을 자연스럽게 기대하게 됩니다.
주님이 분명 이런 자들(세상과 짝한 크리스천)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6장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그들과 연합했을 때,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갚으실 것입니다.
▲거룩한 대회가 더렵혀질 때 - 하나님은 근심하는 자를 모으십니다. 습3:18
‘거룩한 대회’가 더럽혀질 때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병든 시기 ill days 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으로 인해서.. ‘치욕’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진정 ‘무거운 짐’으로 여기는 거룩한 성도들이 있습니다.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습3:18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소수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거룩한 대회가, 세상적인 가치들로 범람되어 더렵혀질 때를
치욕이나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영혼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암6:6
그러나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거룩한 십자가의 진리가 멸시받는 것(세상 가치에 밀려)을.. 견디지 못합니다.
복음의 진리가 길바닥의 먼지처럼 짓밟히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성도에게 참된 부요란.. 말씀을 전해서 사람들이 회심하는 것이며,
기존 신자들은 더욱 성숙해지는 것.. 이것이 성도가 사모하는 ‘참된 부유함’입니다.
그런데 세상 가치에 휘둘린 신자들은.. ‘세상 부유함’을 추구하라고 가르칩니다.
만약 그런 일을 계속 하다가는 ‘수금harp을 버드나무에 거는 일’(포로로 잡혀감)이 생길 것입니다. 시137:2
진정한 그리스도의 신부는, 그리스도가 함께 하시지 않으면.. 금식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마9:15
여러분, 엘리 제사장의 며느리는,
법궤가 빼앗기고, 그 남편 비느하스가 전장에서 죽은 날,
별안간 해산의 고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때(법궤가 빼앗길 때)는, 반드시 고통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삼상4:19, 21
세속적인 신자는.. 늘 재정finance, 숫자, 유명세.. 이런 것에 신경을 씁니다.
그러나 참 성도는.. 부유하지만 영적으로 죽은 교회보다는,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더라도, 영적으로 살아서 열심히 움직이는 교회를 추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리 저는 자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습3:19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며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저는 자를 구원하며."
‘저는 자’는..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비틀거리며 다리를 절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시온을 향한 순례자(천국을 향해 가는 성도)들은 내내 다리를 절어야 했습니다.
순수한 복음이 선포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삶의 여정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힘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래서 그 천국 순례의 길에서, 절뚝거리며 피곤해하고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도, 멀고 피곤한 길을 말입니다.
빵을 빼앗으면.. 아이들은 주리게 됩니다.
양떼에게 독초를 먹이거나 사막처럼 황무한 들로 인도해 간다면.. 곧 파리해집니다.
마찬가지로 목자를 따라가는 매일의 삶 속에서.. 이렇게 신자들이 다리를 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잠을 잡니다.
진리를 듣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지도,
사람들의 영혼에 유익을 끼치지도 못하는 것들을
신물 나게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곳에서 양떼들이 먹을 양식을 기대하며 고개를 들지만
그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쫓겨난 자를 모으십니다. 습3:19
아! 많은 이들이 19절에 있는 "쫓겨난 자를 모으며"에 나타난 자처럼 쫓겨나 있습니다.
거짓 교리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소망을 품었던 사람들은 삶의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본성에 의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죄로부터 회개시키는 진리는 더 이상 선포되지 않습니다.
진리를 구하는 자들을 평안으로 인도하는 진리는, 먹구름으로 가리워지고
영혼들은 겪지 않아도 될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능력을 느낄 수 있도록 은혜와 영광스런 대속의 교리가
사람들의 마음 앞에서 분명하게 제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모든 악한 것들이 그 뒤를 따라오게 됩니다.
이 끔찍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 교회에도 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립니다.
머뭇거림은 멸망으로 치닫게 되고 약한 자들은 동요되며
영적으로 강한 자들조차도 당황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의 거짓 교사들은 가능하다면 택한 자들을 속이려 합니다.
이런 생각만 해도 우리의 마음은 근심에 빠집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피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동안
내내 소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방황하는 백성들을 회복시켜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본문에 동일한 의미가 두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습3:19).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습3:20).
대적들은 영원한 증거를 침묵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 주님을 나무에 매달고
그의 몸은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졌습니다.
그리고 돌을 굴려 무덤 문을 막고는, 그것을 굳게 지켰습니다.
자랑하지 말지어다. 너희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아!
돌로 막고 지키는 모든 일들이 얼마나 헛된 것이었는가요!
정한 때가 왔을 때,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나타나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세마포가 구속할 수 없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없애려 했던 그들의 꿈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요!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2:4)
여러분, 치욕은 아직 거룩한 대회에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가 트럼펫 소리처럼 우렁차게 다시 울려 퍼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교회를 부흥시킬 것이고, 추수할 볏단처럼 많은 회심자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그때 짐 지고 근심하는 자들은
기쁨과 아름다음의 옷으로 갈아입을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의 속죄는 찬양과 영원한 기쁨이 되어 그들 머리 위에 되돌아올 것입니다.
의심의 갈등이 사라진 전쟁의 끝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외치는 그 소리를 듣습니다.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계19:6).
교회가 가장 낮은 곳에 처할 때도
교회는 여전히 하나님의 교리에 의해서 세워지고,
온전하시고 충만하신 하나님에 의해서 공급받고 있습니다.
지옥의 문은,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인해 기뻐합시다.
우리가 아무리 가난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했기 때문에.. 무한히 부요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할지라도, 우리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전능하신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수 십만 명의 페르시아 군대들이 치러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알렉산더의 용기는 더욱더 빛났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푸줏간 주인은, 한 명이라도, 무수한 양떼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았소?"
그러자 다른 사람이, "아, 그 많은 페르시아인들이 활시위를 당기면
태양이라도 어둡게 만들 것입니다" 라고 말하자,
영웅은 "어둠 속에서 싸운다면 더 쉽게 승리할 수 있을 것이오"
라고 소리 높이 외쳤습니다.
모든 이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다나시우스는 말했습니다.
"나 아다나시우스는 혼자라도, 세상과 대적할 것입니다. I, Athanasius, against the world"
이 말은 유명한 격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전쟁에서 홀로 싸우는 것은 영광스런 일입니다.
우리에게 여섯 명의 아군이 있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힘을 더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돌봐야 할 연약한 자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홀로 싸워야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더 좋은 일입니다.
하나님께 더 많이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이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쳐서, 아무도 주위에 남아 있지 않을 때
하나님이 그 모든 빈자리를 채우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사12:6)
배를 조종하고 있는 주 예수님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왜 두려워하십니까?
오, 주님 안에서 안식을 취하십시오. 그리고 인내하며 그를 기다리십시오.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사35:4).
◈A Sermon for the Time Pres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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