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흠 없으신 어린양을 바라보라 히3:1 출처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
죄와의 투쟁은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애씀으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열정은 필요하지만
그 열정은 바른 방향으로 향해져야 합니다.
죄를 이기기 위하여
하루 종일 죄를 생각하고
죄와의 투쟁에 집중하고
자신을 치는 것에 몰두한다면
그는 잠시 승리하겠지만
곧 피곤하고 지치게 될 것이며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수 없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우리의 애씀과 노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이루심을 바라보고 의뢰함에서 옵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자신과 세상을 벗어나
그 영광의 주..은혜의 주를 바라볼 때
그 은혜가 승리의 열매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까만 강아지를 생각하지 마세요..
까만 강아지는 눈도 까맣고 온몸의 털도 까맣고..
다리도 다 까맣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까만 강아지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런 의식의 습관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까만 강아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제 방향을 바꿔 보십시오.
하얀 강아지를 생각하세요..
온 몸이 새하얀 강아지가 뛰어다니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곧 까만 강아지를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즉, 주님의 순결함
주의 자비..그 영광과 거룩하심..
그 한없는 긍휼과 은총을 바라보고 감사하십시오..
곧 우리는 평화와 기쁨을 가득히 누리게 됩니다.
영적인 사람에게.. 주님이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임하셨기 때문에..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죄가 없이 순결한 사람에게.. 주님이 임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임하셨기 때문에.. 죄에서의 승리와 삶의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죄를 다 버려야 주님이 오신다면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도 삭개오도..
어느 누구도 주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노력함으로 자기 의를 세우고
은혜의 조건을 만들기에 힘쓰지 말고
그저 단순히 죄인으로서, 환자로서
최고의 의사에게 나아가십시오.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고 그 은혜에 잠기십시오.
거기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이 필요할 뿐
아무 자격조건이 없습니다.
시선을 자기와 세상에 두지 말고
흠 없는 어린양
영광의 주를 바라보십시오. (2초가 아니라, 3~10분 깊이 묵상하십시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
감사하고 기뻐하며 높이십시오.
그분의 은혜가 가까이 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천국의 기쁨과 평화가 무엇인지
자비에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
누리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정원목사
◈2. 나의 잘못된 ‘반응의 죄’를 보시라
1930년 동아프리카의 ‘르완다’에 부흥이 왔었다.
그 부흥은 해가 거듭하면서 ‘우간다’, ‘케냐’ 그리고 ‘탄자니아’ 등의
이웃나라 교회에 번지기 시작했다.
무려 50년이 넘도록 다른 나라에까지 영향을 주었던 그 부흥은
그 부흥을 이끌던 특별한 설교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부흥 가운데 이런 말이 떠돌았다.
‘부서지는(깨어지는) 것이 부흥의 시작이다. 그것은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명의 길이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상대방의 잘못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상대방을 나에게 보내신 주님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 부족함을 보라고, 그를 나에게 보내신 섭리였다.)
자기에게 모든 수치를 안겨주고, 자기를 시험하고 괴롭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을 깨뜨리는 방편으로
자기들에게 보내주신 줄로 알고 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나쁘게 행동을 할 때,
그들의 행동에 대한 자신의 반응 역시도 나쁠 수가 있고, 그걸 드러나게 하시려는 섭리
그래서 자신의 질투, 분노, 같은 죄들이 드러나면서,
그들은 회개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잠복되어 드러나지 않던 것이.. 그 대적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어.. 회개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많은 죄들을 ‘행위의 죄’가 아니라 ‘반응의 죄’라고 불렀다.
자신에 대한 상대방의 잘못된 행위의 죄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반응의 죄’라는 것을 주께 고백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가 상처를 받고, 손해를 보았을 때
그 사람에게 신경질을 내고, 분노하고, 원한을 품고,
거기에 대항해서 자기를 방어해보려는 것 등은,
다 깨어지지 않아서, 자신이 부서지지 않아서.. 자기가 마음의 평화를 잃은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신을 바라보고 회개하면서,
무엇보다도 자기 마음이 먼저 부서져야(깨어져야) 한다고 여겼다. 남이야 어쩌든지
그 사람의 공격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반응’이라는 것이다.
내가 ‘반응의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시 ‘반응의 죄’를 짓게 되면..
내가 아직 깨어지지 않아서 그러니..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국의 평강을 그들에게 주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이 진실로 깨뜨려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깨달았다.
만일 자기가 평강을 잃었다면, 그 잘못의 장본인은 분명히 자기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평강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으로 주장받는 단순한 생활이 ‘부흥’이었다.
그들에겐 다른 사람들이 몰래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든지,
그들에게 어떤 반감을 가지고 있다 등이
자기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오직 성령께 전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고
다른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생활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시고자 하는 것은
상대방이 그들에게 어떤 일을 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그 형제에게 어떠한 반응을 보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십자가 아래서 부서지는 고통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교제는 회복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에서 시작된 그 성령의 교통이었다고...
로이 헷숀 Roy Hession 은 그가 50년이 넘도록 목격한 부흥을
<갈보리 언덕>에서 라는 책에 기록했다. <신앙 칼럼 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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