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1

3220 회개가 주는 유익과 축복

LNCK 2011. 9. 30. 09:14

◈회개가 주는 유익과 축복             마18:3            모두 스크랩글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동생의 죽음을 통해 보았다!        출처         

                 -어느 목사님의 간증


지금 까지 30여년을 목회하면서, 나는 회개를 외쳐 왔고 또 내 자신이 회개를 해 왔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회개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깊이 알지 못하고

회개하라고 외쳐 온 것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2002.05.14. 밤11경, 나 보다 6살 작은 남동생이

위암으로 순천향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부릅뜨고 숨을 거둔 그 모습을

도무지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고, 지금도 가슴 아픈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6살 터울이 있는 남동생을, 어렸을 때 제가 엎어주고 데리고 놀았기 때문에

칠남매 형제들 중에 정이 더 갔던 동생이었습니다.


제가 군대 가기 전에, 고향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였기에

동생들을 데리고 신앙생활을 같이 하였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저는 신학을 하느라고 그때부터 동생과 떨어져 살면서

객지에 살고 있는 동생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지만

명절 때나 부모님 생신 때나 겨우 만나는 동생을 어찌하지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만난 동생 얼굴을 보니, 바짝 마른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처음에 동네 병원에서 진단을 받으니 ‘위궤양’이라고 해서

잘 먹으면 된다고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위암 말기’였습니다.


저는 동생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3개월여 동안 찾아가서

‘이제라도 돌아서서 주님 앞에 돌아와라’고 권면을 하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통증에 신음하는 동생에게

아무래도 하나님이 너를 불러 가실듯 하니 ‘회개하고 준비하자’고 했더니


‘형님! 지금 아파서 죽겠는데, 또 무슨 회개하라고 힘들게 하세요!

주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그러셨잖아요!’

라고 너무 힘들어 하는 동생을

저도 더 이상 어찌지 못하고 기도만 해 줄 따름이었습니다.


의사가 오늘밤을 넘기지 못한다고 해서

식구들을 다 불러 모으고 예배를 드리고, 계속 해서 찬송을 부르고 또 불렀더니

동생이 너무 좋아하고 그 찬송에 빠져서

손을 들어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 모양으로 계속해서 손을 저었습니다.


임종을 앞에 놓은 사람이

마치 국립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모양으로 지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가족들은 좋아서 계속해서 찬송을 부르고 불렀습니다.


찬송을 잠간 멈출 때는 제가 ‘동생아!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하면

동생은 감동이 섞인 음성으로 ‘아멘~’ 했는데,

그 아멘 소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쌩콩’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싶을 만큼 성격이 퉁명스런 동생이

나긋나긋한 목소리, 정겹고 은혜 스런 목소리로 ‘아~멘~’을 연발하였습니다.

그 때는 죽는 마당이 아닌, 은혜스런 가정예배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지금까지 목회하여 오면서 임종예배를 많이 드려왔었지만

그런 은혜스런 분위기가 일찍이 없었을 만큼 좋았습니다.


그런데 지휘를 하던 동생의 손이 내려오고 기운이 떨어져 가면서

갑자기 눈이 무서움으로 가득차서

제가 눈을 감기려고 하는데 도무지 눈이 감겨지지 않습니다.


냄새가 나서 보니 대변이 나옵니다.

눈은 말할 수 없는 공포로 가득 찼습니다.


‘이상하다~ 아까까지 너무 은혜스러웠는데..

갑자기 공포의 얼굴을 하다니 어쩐 일인가!’

제 생각이 번거로웠습니다.


장례를 다 치루고 나서도, 그 무서움이 가득한 얼굴!

도무지 잊혀지지 않습니다.


깊이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그러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아참~ 내가 회개 하도록 왜서 더 독촉을 않았을까!

회개하도록 좀 더 힘써 기도해줄 걸!’


‘죽고 난후에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 이 미련한 놈아~’라고 자책을 했습니다.


기가 막혔습니다.

지금도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추석에 교회 부활 동산을 찾아가서,

어머니 아버지 산소 곁에 누워있는 동생의 묘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빌었습니다.


‘주님! 그때 동생이 죽음을 앞에 놓고 주님을 믿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바라보았지 않았습니까!

회개 못한 동생이 거룩하신 심판장이신 주님 앞에 설 때,

무서워서 벌벌 떨 때,

동생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천국에 데려가신 줄로 믿고 싶습니다.’


‘동생아! 천국에서 만났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생전에 약속한데로 천국에서 만나자!’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마음이 유쾌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동생이 아무리 아프다고 몸부림을 쳐도

회개를 시키고.. 동생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제가 힘써 했더라면

천국에서 만날 확신을 가지고 살 텐데... 라는 아픔이 늘 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늦게나마 회개의 중요성을 깨달으며

우리 형제자매님들에게 회개를 힘쓰라고 전하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그렇습니다. 살아있는 동안에 회개해야 됩니다.

숨 넘어가면 회개의 기회는 없습니다.


생전에 엄청나게 주의 일을 많이 했어도

회개하지 못하고 죄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는

절대로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한 번 구원 받았어도.. 짓던 죄 회개 안하면 지옥 갑니다.

(평소에 회개하며 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정말 회개가 중요함을.. 몸으로 깨달은 바를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회개하고 천국에 간 처남 이야기                           출처 


망나니로 살았던 처남 예기입니다만,

그래도 그는 제가 시키는 대로, 회개하고 천국에 갔다는 이야기를.. 올립니다.


그 처남을 한 마디로 평가를 한다면 후레자식입니다. (죄송)

왜냐하면 그 처남 때문에 처가에 가기가 싫을 정도였습니다.


술 먹고 행패를 부릴 때는, 부모도 그 누구도 위아래도 없는 사람이고

목사(매형)인 저도 말릴 수도 없었고, 도무지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허랑방탕하게 살던 처남이, 병이 들어서 병원엘 갔더니

위암이라는 진단을 내립니다. 그것도 위암말기 중에도 말기라는 것입니다.


병원에서는 퇴원을 종용하면서, 마지막을 잘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집으로 와서 할 수 있는 일은

배에 복수가 가득 찼으므로, 진통제를 놓게 하는 일 뿐이었습니다.

     (못 보신 분을 위해 설명합니다만, 임신한 여자처럼 배가 튀어나옵니다.)


배는 남산 만 해서 조금만 움직여도

썩은 냄새나는 복수가 입에서 흘러 나왔습니다.


그렇게 집에 온지 2~3일 지나면서.. 제가 전도를 시작을 했습니다.

‘너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 죽으면 너 불구덩이 지옥으로 빠진다.

어쩔래?’ 원색적으로 전도했습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불신지옥 예수천당’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사정을 봐줄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지금 급한데 무슨 심적 고려를 하거나, 점잖게 전도할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려면 회개해라!’고 윽박질렀습니다. (멱살은 안 잡았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은 죄를 회개해라! 사람에게 지은 죄도 사람에게 회개해라’

반 협박, 반 사정으로 전도 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지나는데.. 그 완악하던 사람의 얼굴이 차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어린아이 얼굴이 되어가면서, 시키는 대로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우선은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잘못 살아온 자기 인생을 회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어머니 손을 잡고 회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내와 자녀들에게 회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누나(제 아내)에게도 회개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조금도 어색함이 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제게도

‘매형! 왜 내 마음이 어린이 같아서 어리광 부리고 싶어요?’ 라면서

어리광을 부리기까지 합니다.


나는 지금껏 살면서, 죽음을 앞에 놓고, 어리광을 부리는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생전에 나에게 ‘이놈 저놈’ 하면서 술 먹고 행패를 부렸던

그 밉고 싫었던 그런 처남이.. 더 이상 아니고

이제는 응석을 받아주고 싶은 형제로 보여 졌습니다.


세상 사람은 죽음을 앞에 놓고는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마음의 여유가 없는데

처남은 죽음 따윈 아랑곳없이 천진난만하게 어린 티가 얼굴에 나타납니다.

우리는 죽음을 앞에 놓은 마당에서, 다 큰 사람들이 어리광으로 장난 놀았습니다.


나는 그 때에 마18:3에                                  *이 글의 본문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 그래서 성경 말씀대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믿을 수도, 회개도 안 되니까

주님이 처남을 어린아이로 만들어 주셨구나!’ 라고 생각 했습니다.


처남은 회개를 한지 얼마 안 되어 하는 말이

‘나, 갈꺼에요! 너무 아프니까 빨리 갈꺼에요!’ 라고 합니다.

마치 자기 갈 곳이 있는 것처럼, 채근을 합니다.


마치 옆집에라도 가는 것처럼.. 가겠다는 것입니다.

처남은 건너 마을에라도 가는 것처럼..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와~ 꽃밭이 보인다~’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자기 뱃속에는 복수가 가득해서 입으로 나왔지만은

처남은 환한 얼굴로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았지만 천국을 보았을 때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은

20년 넘게 지금도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틀림이 없습니다.

목사도, 장로도, 그 누구도

성경에 이름과 같이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결단코! 입니다.


‘결단코’ 라는 낱말을 사전에 찾아보았더니 "절대로"라는 뜻이 있더군요!

눈꼽 만큼도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결단코 어린아이가 되어야 믿음도, 순종도, 회개도, 성령도 주십니다.

우리 모두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고 최권능 목사님은 칠십이 훨씬 넘은 노인이었는데도

여자 성도는 모두 ‘누님’이라 불렀고

남자 성도는 모두 ‘형님’이라 불렀다고 하네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 ‘누님’ 또는 ‘형님’이라 불러주기를 바라는 마음,

즉 대접받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교회가 천국이 못되고

마귀 싸움터가 되는가 봅니다.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면 좋겠습니다.

주여! 우리 모두 어린아이의 맘을 주시옵소서. 아멘!  -진형곤 목사


 

◑회개가 주는 3가지 유익과 축복         이 단락 출처


축복 중에 가장 큰 축복은 회개하는 것이다.

심판 중에 무서운 심판은 회개가 안 되는 것이다.


회개란,

깨닫고 돌이키고 악에서 떠나 애통하고 통회자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의 통로로 우리에게 오신다.

그러므로 회개가 막히면 하나님은 오시지 않으신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도 막힌다.


한국교회에서 점점 회개가 약화되고 있음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초대교회로 갈수록 회개의 역사가 농후하게 나타났다.


성령의 역사란, 회개의 역사를 말함이며 회개하는 곳에 성령이 임하신다.

그러므로 회복과 소생의 첫걸음은 '회개'뿐이다.


회개가 막히면,

아무리 기도해도 마음이 무겁고 개운치 않다.


회개가 막히면,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그것은 쇼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이 땅을 살피사 회개하는 자를 찾으신다.

아무리 수준 높은 성형수술을 한다 한들, DNA를 바꿀순 없지 않는가?


회개란, DNA를 바꾸는 것이다.

회개는 우리의 근본을 바꾸는 것이다.


성령의 충만도 ‘회개 충만’ 후에 일어난다.

위로와 회복도 회개 후에 경험 되어지는 것이다.


회개 없는 말씀, 회개 없는 기도, 회개 없는 봉사는,

DNA를 그대로 두고 성형수술을 반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성령의 역사 중에 한 가지는,

우리에게 회개꺼리를 생각나게 하시며 회개를 도우시는 것이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일들을 끄집어내어

마음을 찢고, 통회하며 자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길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의 은총(축복)을 준비해 두시고 회개를 촉구하신다.


첫째는, 임재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영혼가운에 임하신다.

그것이 회개의 싸인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거룩하셔서 죄와 함께 유하실수 없으시다.

그러므로 통회하고 자복한 심령에 내주하신다.

임마누엘의 축복 그것은 회개로 주어지는 것이다.


둘째는, 회복의 은총이다.

하나님은 기운 없는 영혼들에게

회개를 통해 생기와 회복을 주신다.


셋째는, 기쁨이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유쾌하게 되는 날을 주신다고 하셨다.

이러므로 회개의 유익은 기막히게 많다.


반대로 회개가 막히면,

우리의 삶은 허전하고 답답하고 컬컬하고 기운이 빠지고 슬픔이 많다.


그러나 회개조차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회개는 대부분 뉘우침이나 후회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회개에는 열매가 있다.

회개한 후로는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그 일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회개가 아니다.

단지 '후회'일뿐이다.


기운이 없으신가?

답답하신가?

마음이 천근만근 무거운가?

하나님을 갈망하는가?


회개의 영을 갈망하시라.

‘회개의 은총을 주십시오’ 라고 간구하시라.


그곳에 주의 영이 임하시리.

그곳에 생기와 기운이 회복되리.


그곳에 세상에서 맛 볼수 없는 기쁨이 하늘로부터 임하리라.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