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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1

너희는 세상의 소금

LNCK 2011. 10. 21. 20:49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마5:13                  출처, 정리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세상의 소금’은 마치 ‘절임’과 같다.

여러분, 절임이라는 반찬은 ‘소금에 절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이지, 무절임, 깻잎절임, 짠지..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원래 오이, 무, 깻잎이 있는데,

거기에 소금이 더해져서, 절여진 것입니다.


본문의 ‘소금’은, 바닷가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이 아니라, ‘암염’을 뜻합니다.

마치 석탄 캐내듯이, 산에서 암염을 채취합니다. 요즘도 소금광산이 세계에 많습니다.


그 ‘암염’을 은밀히 따져보면

흙+소금 성분이 결합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오이지, 무절임, 깻잎절임과 같다는 것이지요. ‘흙절임’입니다.


주제부터 말씀드리면,

흙은.. 우리 각자가 원래 다 흙입니다.

흙에 묻은 소금(암염)은.. 성도에게 임한 천국입니다.


결국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란 말씀은,

너희 속에, 천국이 임한 사람들이다.. 라는 뜻입니다.


성도 각자가.. 하나님의 나라/천국을 내포하고 있다는 겁니다.

마치 암염이 소금기를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믿음으로 산다는 게 뭡니까?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는 거,

이게 바로 ‘천국절임’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에요.


나에게 ‘소금기’(천국)가 묻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지요?

 

이런 의미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과 일맥상통합니다.

‘빛’ 역시 .. 천국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천국(빛 or 소금)이 묻어있는.. 천국을 나타내는..

그런 존재라는 뜻입니다.


▲직전 구절과 연결해서 보면

본문에 직전인 마5: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하시는 말씀은,

앞에 천국의 교훈과 이어서 해주시면서

이제 천국을 소유한 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느냐?


천국절임(소금, 암염)으로 살아간다는 겁니다.

흙(육신)을 갖고 있지만, 천국에 절여져서 삽니다.


그러니 누가 ‘소금(암염)’ 맛을 보면,

소금기(천국)맛이 납니다. 흙 맛은 당연히 아니고요.

그렇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대한 오해

우리는 이 본문을 잘못 이해해서

소금기로 인해서 음식의 부패를 방지하듯이

‘내가 도덕적/윤리적으로 사는 것이 바로 소금의 역할이다’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부차적인 얘기고요,

나는 원래 흙이지, 소금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소금은, 흙과 소금기가 붙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비유말씀 풀어서 설명하면,

내 몸에 천국기운을 붙여 갖고 다니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을 두고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내가 어디를 가든지 천국을 실어 나르는 몸인 것이지,

소금기를 실어 나르는 오이처럼, 무처럼,

천국기운을 실어 나르고, 천국을 나타내 보여주는 몸이지,


내가 소금이 되어서 윤리적으로 행한다..

이런 뜻이, 본문의 원래 의미가 아니라는 겁니다.

 

▲내 의지적 행위 이전에, 내게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본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의

앞에는 8복이 나오고,

뒤에는 산상수훈이 계속 이어집니다.


우리가 산상수훈을 대할 때,

‘하라’ ‘하지마라’ 라는.. 어떤 의지적/도덕적 교훈을 듣는 것 같습니다만


그러나 성경의 전체 그림도 그렇고,

본문 마5:13절도 그렇고,

산상수훈인 마5~7장 전체도 그렇고,


신약성경은,

‘하라’ / ‘하지마라’는.. 어떤 의지적/도덕적 교훈이기 이전에

‘너에게 천국이 임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걸 먼저 강조합니다.


너에게, 예수님이 가져오신 천국이 임했다면,   ←이게 우선이고요,

산상수훈의 여러 교훈들(하라/하지 말라는 계명)은   ←이건 부차적입니다.

‘나에게 천국이 임한 결과’로 따라서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상수훈의 말씀이

물론 ‘행해라, 행해라’ 말씀 하더라도,   ←이건 부차적이고,

그 근본의도가 어디 있느냐하면,

네 삶을 통해서 천국을 나타내라는 겁니다.    ←이게 원래 목적


▲‘너희는 세상의 빛’도 마찬가집니다. 

빛(천국)을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마치 내 몸이 천국에 연결된 ‘심지’가 됩니다. 등잔불을 연상해 보세요,

기름에 흠뻑 젖은 심지처럼, 내 몸이 천국에 젖어서, 천국의 빛을 비춥니다. 천국을 나타냅니다.

그 천국의 기운이, 내 몸의 심지를 통해서 활활 타오르게 되는 것이에요.


내가 내 의지와 내 에너지를 사용해서

즉 선한 행실을 해서, 빛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천국과 연결되어서, 천국의 빛을 받아서, 내가 태운다/반사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천국’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1)


▲구원이란?

구원이란, 천국행 티켓을 받는 것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천국/하나님의 나라와 단절되어 있던 내가

이제 하나님/천국/하나님의 통치와 연결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구원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구원 받은 성도는,

그 삶에 하나님/천국/하나님의 통치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표현에 의하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입니다.

그래서 ‘천국이 나에게 임한 삶’을 나타내 보여주게 됩니다...


▲적용/ 천국이 임한 다윗의 삶

시편을 읽어보면 참 묘합니다.

‘나의 피난처’ ‘요새’ ‘방패’ ‘나의 바위’

이것은 전부 방어적인 단어입니다.


왕이요, 전쟁에 능한 다윗이

웅지를 품고, 영웅다운 호기를 품고 세상을 향해 나간 자가 아닙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 안쪽으로 후퇴해서 피난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요새/방패/반석’이라고 노래합니다.


문제를 자기 힘과 뜻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항상 도망가서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시다. 방패시다.’ 하면서

자기 힘으로 이 세상 삶의 현장으로 뛰어나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이요, 승전한 왕인데,

자기 힘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힘을 빌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천국이.. 그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즉 그는 ‘소금, 빛’이었습니다.

...................

 

주1)

여러분, 출3장의 모세의 떨기나무 불꽃..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세상 나무들은 불이 붙으면 다 재가 되어버립니다.

 

그런데 모세의 떨기나무는.. 불이 활활 타고 있는데도, 재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름이 천국에서 계속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그 떨기나무는 마치 ‘등불의 심지’와 같습니다.

그래서 태워서 없어지지 않고, 계속 타면서 천국의 영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게 ‘소금’이요, ‘빛’이요, ‘성도’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