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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가.. 구원 받는다

LNCK 2011. 11. 10. 19:27

◈사형수가.. 구원 받는다         요5:24~25      11.10.02.설교녹취

 

 

▲성경을 보는 포커스

사도바울은, 그가 평생을 묵상했던 구약에 대해서 4가지 단어로 요약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3:16


바울은, 자기가 평생 묵상한 구약성경을, 아래의 4가지 주제로 결론 내렸다.

교훈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함


그런데 현대 교회의 메시지를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사랑위로내버려두기에 유익하니..’ 이런 식이다.


사도바울이 보는바, 하나님이 성경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은..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이었다.

-이것은 우리를 회개믿음으로 이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위로, 사랑, 비전, 내버려두기,

-이것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지 못한다.

 

이것은 ‘소금’인 복음을.. ‘설탕’으로 변질시킨 것이다.

 

그래서 설탕 복음을 너무 많이 섭취한 나머지

지금 현대 신자들의 영적인 이빨은 다 썩어있다.

스스로 말씀을 먹을 힘이 없다는 뜻이다.


여러분, 회개하시면.. 이 말씀이 그냥 달아진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으면.. 말씀이 졸린다. 식욕이 없어진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나타나 있다

라고.. 롬1:17에서 말씀한다.


예수님은 의를 선포하시고, 가져오시는 분으로 이사야서에 예언되어 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사42:1~4


위 구절에서 공의는,

영어성경 NIV는 justice(정의)로,

KJV는 judgment(심판)으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는 둘 다 포함한 의미로 보면 된다.


즉, 예수님이 가져오신 복음은, 의의 복음인데,

그것은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justice정의와, judgment심판을 선포하신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있다고 전도하고 있다.


물론 이 말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를 세우지 않으니까,

회개하지 않고, 대거 교회로 들어와서, 신자가 되는 것이다.

의의 복음’을 배제한 결과이다.


여기서 우리가 정리해야 하는 것은, 의=사랑이다. 의는.. 사랑이다.

의가 빠진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이 의를 강조하신 이유는.. 우리를 회개로 인도해서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란..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인 것이다.


stubborn love (강인한 사랑)이란 말이 있는데,

정녕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는, 자녀를 stubborn love (강인한 사랑)으로 키운다.


그래서 정녕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그저 오냐 오냐 하시면서, 내 모든 기도제목을 다 들어주시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의 기준, 의의 기준을 올바로 세워주시는 것이.. 정말 사랑이다.

그래야 내가 구원 받으니까.

 

바울은 그것을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이라 설명했다.


사랑을, 둘을 조화시켜 봐야지,

사랑만 따로 떼서 보면.. 복음을 곡해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 나라와 그 사랑이 아니었다.


오늘 우리는.. 간과되어진 ‘의의 복음’을 (=회개의 복음)

다시 되찾아 세워야하는.. 귀한 사명 앞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천국에 들어가는 복음은.. 회개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의로 인해, 자기가 죄임됨을 깨닫고 회개가 되어진다)가 없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원 못 받는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이것은 그저 지식이 아니다.

'생명'이 정말 강물처럼 자기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생명으로 옮겨졌으니까.

그렇게 되려면, 성령의 초자연적인 감동과 변화가.. 그에게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이 복음을

자꾸 머리로, 논리로 이해하고자 하는데..

여러분, 복음은 그렇지 않다.


마치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초자연적인 역사가..

즉,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역사가

그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그저 지적 동의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구절 요5:24을 지적 동의로 받아들이고 있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위 말씀을 약간 다른 각도로 보면,

‘오직 죽은 자에게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자신이 죽은자 임이 처절하게 깨달아진 자에게만

하나님의 음성이 비로소 들리고,

듣는 자는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산 자가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봐야

그가 진짜 살아나지 못한다. 거듭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 죄를 깨닫고, 오직 철저히 절망하고,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에게만.. ‘살리는 복음’이 깨달아진다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사형수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주님을 좇으려면 사형수 외에는 안 된다는 말이다.


듣기에 따라서, 매우 기분 나쁜 말로 들린다.


여러분, 너무나 많은 사람이, ‘자기 죽음’ 없이. '사형수'의 심정 없이 주님을 따른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역사가 없다.

그 역사는 먼저 사망에서 출발한다.

사형수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형수와 다를 바 없다.’ - 이것이 진정한 복음이다.

‘사형수 여러분!’ (죄송한 표현입니다만, 설교자의 표현)


여러분은 사형수가 되지 않고는,

즉 하나님의 의의 기준으로 나를 심사하면.. 나는 사형수로 판결 받게 된다.

 

그 사형수 판결을 받은 자가.. 철저히 회개하고, 구원을 갈망할 때,

비로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 <사면과 구원>이다.

 

저는 박효진 장로의 교도소 간증을 듣고서, 크게 감동 받았다.

박효진 장로님은, 교도관으로 오래 근무하신, 실실한 크리스천이시다.


하루는 장로님이 교도관으로서, 사형수에게 사형을 집행하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장로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장로님은 사형수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교수형 밧줄이 매달려 있고,

장로님 등 뒤에는 형집행관들이 배석해서 보고 있었다.


그래서 장로님은, 사형수를 향하여, 그에게 손을 얹고서 기도하는데

그 시간에 성령님이 불덩어리처럼 장로님께 역사하셨다.


그래서 장로님은, 자기도 모르게 사형수를 그대로 두고서

뒤로 돌아서서, 배석한 형집행관들을 향하여, 성령의 불의 권능으로,

(사형수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갑자기 이런 예언이 임했다.


‘형집행관 여러분들도, 이 사형수와 다른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십시오.

주님 보시기에는 여러분도 다 죽은 죄인들입니다..’ (다행히 이 일로, 사표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내가 죽을 운명의 사형수와 다를 바 없다는 것.. 이것이 진실이요, 복음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적용한, 인간의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루터가 깨달은 ‘사형수 의식’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올바른 묵상 -클릭- / Luther



▲회개하고 주님을 믿은 삭게오

다 삭게오를 욕한다. 그는 더러운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를 욕하는 착실한? 사람들이,

삭게오가 했던 것처럼

평생을 주를 위하여 남길만한 일을 하지 못한다.


삭게오는, 그를 욕하던 허다한 사람들이

모두가 합쳐서 평생 하지 못하는 일을

회개한 삭게오는, 단번에 해 낸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을 믿는 사람이다.


여러분, 우리들은, '삭게오 그룹'에 속해 있는가?

아니면, 삭게오를 정죄하면서, 삭게오의 틀린 것을 말해주면서

돌이키라고 권고하는 ‘모범적인? 사람들'의 그룹인가?


복음은 죄인들을 위한 것이다.

복음은 죽은 자(사형수)만 살려낸다.


죽은 자(사형수)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5:25


▲히브리서 6:1은 말씀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하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회개는, 죽은 행실을 회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있는데,

선을 행하며 사는데, 자기의 선한 행실이 약간 모자란 줄 아는 것..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

정말 ‘진정한 복음이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신자들 중에 ‘나는 죽을 죄인은 아니다’는 사람이 허다하다.

복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사형수’만 구원하신다.

아무리 선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교회생활 하더라도

구원이 아닐 수 있다.


우리에게 온전한 회개가 임하길 축원 드린다.

그 회개는.. 내가 죽을 죄인됨을 깨닫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관련글/ 시51편을 통해 보는 <회개>


▲예수를 따라야 하는데, 좇아야 하는데.. 안 되는 이유

예수를 바라보고 믿기만 하면 안 된다. 그것은 ‘지적 동의’이다.

그분을 따라야 한다. 그런데 안 따라진다. 그게 좀처럼 쉽게 안 된다.


아무리 믿어도

회개하지 않으면, 예수를 따라지지 않는다. 

회개하지 않으면, 따르는 게 안 된다.

그저 머리로 믿기만 할 뿐이다.


예수를 몸으로 따라야 구원받는다.

그러려면, 초자연적으로, 내가 죽을 운명에 놓인 자,

즉 사형수인 것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한 후에.. 근본적으로 그게 가능하다.


▲자기가 죽을 죄인임을 깨달으니까.. 감옥도 천국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가

4년 동안 중국 감옥에 있었던 선교사가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았다.


중국 감옥에서, 자기 방에 있는 모든 수인들이 ‘억울하다’고 하더란다.

그래서 감옥은 생지옥이란다.


처음에는 자기도 억울하다고 생각이 들어서, 자기 마음이 지옥이었단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거구나’ 라고 받아들이니까, (내가 내 죄로 인한 ‘사형수’니까)

그 감옥이 천국으로 변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일기장에 매일같이 썼다고 한다.

‘여기가 천국이 아니면, 과연 어디란 말인가!’ 여기가 정말 천국이란 뜻


주님을 따르려거든.. 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즉 사형수가 되어야 한다.

내가 죽을 죄인 됨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서의

나의 실존(사형수, 죽은 자)을 발견한다면, 그때부터는 무조건 천국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사형수인 나를 위해서

사형을 당하셨기 때문이다.


그 분은, 그 순간, 나의 죽음을 가져가시고,

그분은 죽으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나에게 전가해 주셨다.


이 세상에 이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다.

여러분이 백억을 벌건, 천억을 벌건,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보다, 더 기뻐한다면, 아직 복음이 없는 것이다.

복음이 온전치 않는 것이다.


이 땅에 어떤 축복, 어떤 부귀와 명예,

왕의 가정, 재벌의 가정,

서로 싸움이 없는 행복한 가정이 될지라도,

가정의 행복마저도..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 천국 복음이요, 구원 받은 감격이다.


▲가정보다 더 중요한 복음

그래서 복음을 얻는 사람은, 가정의 행복도 기꺼이 버릴 수 있다.

미국의 한인 교회들은 '가정의 행복'이 우상이다.

마치 예수님이 가정의 행복을 위해 죽으신 것처럼.. 다들 그렇게 믿고 있다.


예수님은 복음을 위해서 죽으셨다.

복음이 있는 사람들은, 복음이 없는 곳에 나가기 위하여, 가정의 행복도 내려놓는다.

(이런 설교는 목회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데..)


세상이 지옥이다.

지금 자기 가정만 행복할 때가 아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는 탈북자들을 보시라.

우리가 자기 가정의 행복만을 유지해야 할 때인가?

 

여러분,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자.

현대 교회가 필요한 것은 이것 - 복음뿐이다.

 

 

........................ 위 설교문의 서두 ........................

 

▲증상 과 근본원인

오늘날 교회의 많은 문제들을 본다.

그런데 우리가 듣고, 보는 모든 문제들은, 문제의 증상이다.


감기가 들면.. 기침이 나오고, 몸에 열이 나고, 몸에 한기가 든다.

이것들은 다 증상이고, 그 근본원인은 감기다.

그 근본 원인 때문에, 기침과 발열과 한기가 드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교회의 모든 문제들은.. 증상이다.

그 증상들의 근본원인

교회 안에,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 그 복음의 핵심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 교회는, 온전한 복음으로 돌이켜져야 한다.

그래야 그런 증상들이, 근본적으로 치유될 것이다.

오늘은 그 ‘복음’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날 <구원의 확신>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당신은 오늘 죽으면 구원을 확신하십니까?’ 하면서.. 구원을 자꾸 확신하란다.

그런 질문이 갖는 고유의 의미가 있겠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질문 자체가 매우 ‘인간 중심’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구원을 확신하니?’ 라고 물으신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구원을 확신하느냐?’고 묻는 것은,

구원을 확신하기 원하는 것은.. 불안한 인간의 마음의 표현이다.


‘구원의 확신’이란 말 자체가 성경적이지 않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있을 곳은,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

회개하는 것과,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회개에 대한 책과, 회개에 대한 말씀이.. 거의 실종되었다.

대신에 ‘비전, 꿈과 소원 성취’ 이런 말씀이 넘쳐나고 있는데...

그래서 여러 가지 ‘감염 증상’들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