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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혜와 거짓 지혜

LNCK 2011. 12. 16. 12:34

◈참 지혜와 거짓 지혜          약3:13~18      01-04-22 설교스크랩   

 

 

▲도입 일화/ 나도 모르게 나는 전도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 한 영국인 귀족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늘 자기의 가족을 데리고

교회로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루는 영국인 귀족이 그 나라의 소년 한 명을 하우스보이로 채용했습니다.

소년은 조용한 가운데 자기의 맡은 일에 충실했습니다.

그래서 영국인 귀족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뜻밖에도 영국인 귀족을 찾아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이 집에서 일한 지 꼭 석 달째 되는 날입니다.

제 마음 속에 뜻한 바가 있어서 이제는 이 집을 떠나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저를 잘 돌보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국인 귀족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막 정이 들려고 하는데

그만 두고 떠난다고 하니까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년을 이렇게 달래었습니다.

"얘야, 월급이 적다면 내가 좀 더 올려 줄테니, 떠나지 말고 여기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되겠느냐?"

 

그러자 소년은 놀랍게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돈 때문에 이 집을 떠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제가 이 집에 오기 전에 한 가지 결정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어야 할 지, 그렇지 않으면 회교를 믿어야 할 지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작정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집에 가서 한 3개월 일해 보고,

그 다음 회교를 믿는 집에 가서 또 3개월 일해 보고 난 뒤에

제가 믿을 종교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3개월 동안 기독교를 믿는 집에서 일했으니까,

이제는 회교를 믿는 집에 가서 일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소년의 말에 영국인 주인은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그는 호소하듯이 소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너는 왜 진작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 주지 않았느냐?"

그러나 지나간 다음에 그렇게 말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일화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실천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삶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 믿음 vs 거짓 믿음 ... 참 지혜 vs 거짓 지혜

오늘 본문이 기록되어 있는 야고보서의 대 주제가 무엇입니까?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약2:26에서 이렇게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의 믿음에는 실천이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며 거짓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야고보서에서 늘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지혜와 거짓 지혜를 우리에게 대조시켜서 설명합니다.

 

참 지혜는 자기의 변화된 삶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지혜는 말로만 떠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이 없는지 살펴보면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모두 청산하고, 늘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우리는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변화된 삶을 통해서 ‘참 지혜’를 보여주어야

 

약3: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나는 지혜로운 자다, 나는 총명이 있는 자다. 그러니 내 의견대로 하라."

이렇게 말로만 떠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아서 아는 것입니다.

열매가 좋아야 나무가 좋은 것이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서 나무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본문에서는 두 가지로 우리의 지혜를 보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우리의 선행이며, 다른 한 가지는 지혜의 온유함입니다.

 

▲지혜의 온유함

여기에 특별히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말로 떠들어도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동화 속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날씨가 추웠습니다. 밤중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눈이 나뭇가지 위에 수북이 쌓였습니다.

날씨가 추우니까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이 얼어붙었습니다.

 

나뭇가지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쳐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그 옆을 지나갔습니다. 나무를 보니까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바람은 나무를 불쌍히 여기고,

나뭇가지 위에 쌓인 눈을 털어 주려고 바람을 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어붙은 눈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은 더 세차게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급기야 바람을 이기지 못한 나뭇가지들이 소리를 "뚝!"내면서 부러졌습니다.

그러니까 바람은 나무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나무에게 상처를 입히고 만 것입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해님이 떠올랐습니다. 기진맥진한 바람은 해님에게 하소연했습니다.

"해님아, 내가 저 나무들이 불쌍해서 도와주려고 하다가

그만 나뭇가지만 부러뜨리고 말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니?"

 

해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걱정 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그러면서 해님은 하늘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따스하게 동산을 비추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얼어붙었던 눈들이 녹으면서 물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해님은 바람에게 말했습니다.

"바람아, 이제는 네가 나설 차례야. 내가 너를 따뜻하게 비추어 줄 테니까

너는 그저 내 열을 받아서 동산 안을 조용히 지나다니기만 하면 돼.

그러면 쌓인 눈들이 다 녹게 될 거야!"

 

그 말을 듣고 바람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해님은 따스하게 바람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바람은 훈훈해 졌습니다. 훈훈해진 바람이 동산 안을 조용히 다니니까,

해님의 말대로 과연 얼어붙었던 모든 눈들이 녹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동산은 본래의 제 모습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를 꽁꽁 얼어붙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문제 때문에 내 마음이 얼어붙기도 하고

또 때로는 가정이 얼어붙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직장 생활이 얼어붙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한 때 우리가 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겠습니까?

만약 동화 속에 나오는 바람처럼 성급하게 행동했다가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만 입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바람처럼 차갑습니다. 먼저 우리 자신이 따뜻해 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우리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지혜의 온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먼저 녹이고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선행과 지혜의 온유함으로 행할 때, 우리의 주변이 따뜻한 봄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2. 거짓된 지혜의 모습

 

▲독한 시기와 다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약3:14

 

참된 지혜는.. 순수하지만

거짓된 지혜는.. 불순한 것입니다.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입니다.

 

참 믿음, 참 지혜(말씀을 뜻함)에는

독한 시기나 다툼이 없습니다.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그가 전파하는 진리는.. 거짓된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 남을 비판하고 공격합니다.)

 

내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그래야 참 지혜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계속해서 3:15절은, 거짓된 지혜의 특징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인 지혜를 하나님이 주셨을 리가 없습니다.

 

칼이 의사의 손에 들려 있으면.. 사람을 살리지만

칼이 강도의 손에 들려 있으면.. 사람을 해칩니다.

 

아무리 말씀과 성경이 거룩하고,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본문의 지혜)이라도

그걸 마귀적으로 사용하면, 즉, 독한 시기와 다툼으로 사용하면,

말씀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잘못 사용된 결과

16절 말씀은 거짓된 지혜의 결과를 우리에게 말씀해 줍니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거짓된 지혜가 있는 곳에는 요란함이 있습니다. 세상을 시끄럽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속에 시기와 다툼이 일어날 때는,

설교, 찬양, 기도인도를 잠시 중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회복될 때까지요.

 

안 그러면, 나의 설교, 찬양, 기도가

오히려 더 시끄러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 육신에서 나오는 설교, 찬양, 기도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만 만들게 됩니다.

이것은 참 지혜(말씀)가 아닙니다.

 

▲예화/ 사람에게서 나온 지혜는, 전쟁을 만듭니다.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가 밀림 속에서 식인종 추장을 만났습니다.

서로 친해졌습니다. 하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그 당시 유럽에 번지고 있던 세계대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슈바이처 박사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던 식인종 추장은

궁금한 듯 박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그 전쟁의 결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까? 한 열 명이 죽습니까?

아니면 한 백 명이 죽습니까?"

 

슈바이처 박사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백 명, 천 명이 문제가 아니고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듣던 식인종 추장이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이렇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군요. 백인들은 사람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하던데,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죽여서 무엇에 쓸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세상적인 지혜의 결과가 그렇습니다. 점차로 악해 지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세상적인 지혜를 추구하면서 살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땅의 지혜는 세상을 더욱 시끄럽고 악하게 만들뿐이기 때문입니다.

 

 

◑3. 우리가 추구해야 될 참 지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약3:17

 

▲"첫째 성결하고."  (이 단락만 스크랩, 삽글)

참 믿음은.. 성도를 성결하게 합니다.

성결한 삶으로 인도되지 못하면.. 참 믿음(본문에서는 지혜)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는 율법을 다 지켜야 구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쉽게 말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율법을 지키는 비결/도움/동기가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의를 이루는데, 도움을 줍니다.’

※단, 완벽perfect하게 지킨다는 뜻은 아니고, 성숙한 성도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율법을 지키는 비결이 됩니다.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믿음이 율법을 굳게 세운다고 했습니다.

 

▲"다음에 화평하고."

길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화평한 사람이.. 참 지혜/참 믿음/참 신앙에 선 사람입니다.

 

별의 별 아름다운 말을 다 늘어놓아도

화평하지 못한 사람, 자꾸 분란을 유발하는 사람은,

아무리 신학을 논하고, 성경 해석을 늘어놓아도.. 참 지혜가 아닙니다.

 

▲"관용하고."

넓은 마음입니다.

진리를 수호한다면서.. 편협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어쩌면 ‘자기 진리’를 수호할 가능성이 큽니다. 잘못이란 뜻

 

예수님은 열심당원(테러분자), 가룟유다까지 다 화해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참 믿음/참 지혜/참 말씀을 가진 성도는.. 관용합니다.

 

▲"양순하며"

다투기를 싫어합니다.

 

▲"긍휼"

예수님이 자기를 불쌍히 여기신 것처럼,

이웃을 불쌍히 여깁니다.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거짓 지혜는 악한 열매가 가득하지만,

참 지혜는 선한 열매가 가득한 것입니다.

 

▲"편벽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늘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늘 바른 길을 걸어갑니다.

공평한 것입니다.

 

▲"거짓이 없나니"

일부러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늘 진실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참 지혜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18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정리하면,

누가 참된 지혜이고, 누가 거짓된 지혜/말씀/믿음입니까?

 

아무리 신학을 거론하고,

성경을 잘 쪼개더라도..

-다툼, 시기, 요란, 악한 일이 일어나는가?

-화평, 선한 열매가 가득한가? ... 그것으로 분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학박사학위가 3개인 ‘독한 언변자’보다는

초등학교도 못나온 ‘온유한 할머니’가

더욱 지혜로운,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성도가 됩니다.

실제로 하나님도 그렇게 판단하실 것입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아브라함 링컨의 일화입니다.

그에게 일곱 명의 장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그들이 실수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서 모두 경질하라고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습니다.

심지어 링컨에게 속해 있는 공화당의 상원의원 조차도

모두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링컨은 그 가운데 한 사람만 교체를 했습니다.

나머지 여섯 사람은 그대로 유임을 시켰습니다.

그로 인해 거세게 항의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링컨 대통령은 의원들을 모아놓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마을에 농부의 가족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밤마다 스컹크들이 나타나서 농부의 가족을 괴롭혔습니다.

농부의 아내는 남편에게 졸랐습니다. '여보, 스컹크들을 모조리 없애 주세요!'

 

그래서 어느 날 밤중에 농부는 총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뒤에 총소리가 나더니 농부가 다시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것을 보고 농부의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스컹크들을 모조리 다 없앴나요?'

 

그 때 농부는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가 나가니까 스컹크 일곱 마리가 나를 향해 아장아장 걸어오더군.

내가 그 중 한 마리를 총으로 쏘았지! 나머지야 다 죽일 필요가 있겠소?

아마 모두들 깜짝 놀라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거요.'"

 

링컨 대통령의 말을 듣고 난 뒤 상원의원들은 그의 말뜻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하자면 여섯 명의 장관은 링컨 대통령의 보호를 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심기일전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의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링컨 대통령을 잘 도왔습니다.

그리해서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화평을 심을 때 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박상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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