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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모르면.. 비판, 차별화

LNCK 2012. 1. 21. 14:34

 

◈예수님을 모르면.. 비판, 차별화   요16:1~4    스크랩글, 정리


아래 설교문은 스크랩한 것인데,

남을 비판하는 관점으로 읽으시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그런데 자기를 비판하고 돌아보는 마음으로 읽으시면.. 약이 됩니다.



◑다르다고 비판한다.


▲성도의 운명.. 핍박을 피할 수 없다.

예수님이 가시면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럼 성령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을 증거하게 된다고 합니다.   요15:26~27

그러다가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고 쫓겨나 급기야는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요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지금도 자기가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자기하고 다르면 헐뜯고 비판합니다.


(기독교를 포함해서 모든) 종교가 무서운 것은,

종교는.. 사람들이 생명 걸고 싸우는 어떤 동기제공이 됩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자기랑 신앙 칼라가 조금만 다르면 

뭐 ‘이단’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는 ‘신자’들이 많아요.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그래서 교단끼리, 교파끼리, 교회끼리, 교회 내 당파끼리.. 대결하고 싸우니까..

안 믿는 세상 사람들이 중재하고 나선다는 것이죠. ‘너희들은 왜 그러냐?’


그러니까 이 설교 주제는,

차라리 핍박을 당할지언정.. 이건 괜찮습니다. 성경적입니다.

핍박을 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자기와는 신앙칼라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러니까 별의별 소리를 다 해도

‘같은 신자를 핍박하고, 비난하고..’ 이런 신자들은,

참된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요, 믿음이 아주 연약한 초신자인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입니다.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해서.. 그런다.

적어도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도를 핍박하면서하는 말이,

‘이렇게 핍박 가함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도리)다’ 라고 말하지 말자는 겁니다.


이를 두고서 예수님이 뭐라고 합니까?

“이는 저희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해서” 라고 합니다.  요16:2     주1)


사랑 안 하면.. 비판 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들이 잘 못 믿는 것을.. 판단할 여유가 없어요.

사랑하기도 바쁘고, 여력이 모자라는데..

언제 여유가 있어서, 남들을 비판합니까?


그런데 자기가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을 자랑한다고 하면

지금 그 사람은,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빠진,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남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자기 힘만 커진 사람이(중직자 이상이)

교회의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아

급기야 교회를 자기 색깔의 교회로 만들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


믿음이 없으면 목사는 교인들을 이용하여 자기 야망을 달성하고자 하고!

교인들은 유명하다는 목사를 이용하여 자기 자아실현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항상 가짜는 진짜를 핍박하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진짜 앞에 서면, 자기가 가짜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비복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복음을 없애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는데

그럼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쫓겨나게 되고

급기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미리 알려주십니다. 요15:26~16:4


'내가 미리 말했다'고 하시잖아요.

그 때가 당하면 당황하지 말고 ‘아! 이런 일이구나!’ 라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지금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지식으로 관념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이

삶으로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각자는, 내가 ‘핍박하는 자’라는 관점에서, 설교를 들으십시다.

내가 ‘핍박받는 자’라는 관점만 보지 마시고)


지식으로 알아진 예수가.. 자기 힘이 되어서..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의 꿈처럼.. 파리한 소들이.. 살찐 소들을 죽이고 있어요.


‘파리하다’는 말은 ‘패역하다, 강포하다’는 말입니다.

굶주린 짐승처럼 사나워요.

배가 고프니.. 입만 열면 악독이 나오고, 부정이 나오고

비판과 정죄와 심판이 나오는 것입니다.


왜 파리합니까?

예수를 먹지 못해서입니다.

지식으로 알아진 예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먹어야 하는데.. 지식으로 먹고 있어서 그래요.


복음을 먹고 속사람이 강건해져야 하는데,

복음을 먹지 않고 지식으로 쌓고 있으니, 속사람은 핍절하고 옛 사람만 강건해져서,

복음을 힘으로 삼아 복음에 반反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직선적으로 말씀드리면, ‘사랑’으로 행하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다며 행하는.. 모든 투쟁/비판/정죄의 언행들은

다 ‘반 복음적’입니다.

 

복음은 나를 부인하게 하고!

힘을 버리게 하고!

도리어 사랑으로 섬기게 해요.


그러나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 복음을 가지고 있으면

반反 복음 적인 현상이 나타납니다. 종교는.. 자기 생명을 거는 (잘못된) 신념을 주거든요.


복음으로 자기를 자랑하고!

복음으로 세력을 불리고 힘을 쌓고!

복음 안다는 것으로 으뜸이 되어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난 너희들과 달라” 라는 식으로 교만을 떨면서

특권층으로 행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으로, 복음을 가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초림 당시에 유대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일부러 자기를 차별화 시킨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강단에서도.. 너무 비판적이 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미혹을 받고, 은혜가 떨어진 종들의 특징 중 하나가.. 다른 교회를 아주 비판해요.

그래서 자기와 자신의 교회를 차별화시킵니다.

 

'교회를 비판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이 아니고

교회를 비판하면서.. 자기를 열외로 둔다는 말입니다.

자신은 마치 그 치외법권에 있는 것처럼 말을 해요.


그 분의 말을 들으면,

자기만 진짜고.. 나머진 다 가짜처럼 들려요.


교회는 다 썩었다고 말을 하더라도,

그런데 ‘자기만 안 썩은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은’ ..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교인들은.. 한국교회를 비판하고, 목사들을 비판하면.. 그렇게들 좋아해요.

이건 수준이 낮은 사람들끼리 유유상종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자기가 욕하고 싶은데.. 대놓고 못 하고 있는데

자기 목사가 대신 해 주니..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입니다.


중요하니까, 다시금 말씀드립니다.

비판을 아예 안 하는 것이 좋지만,

혹시 성령의 감동이 와서 비판을 하게 되더라도

은연중에라도 ‘자기만 안 썩은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판단자(하나님)’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고,

그건 비성경적/비신앙적/비사랑적인 비판입니다.


그런데 더 조심해야 할 것은,

신자들의 철없는 이런 심리를 잘 아는 목회자들은

한국교회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쏙 빠지고 말이에요.

(누구 개인적 비난이 아니라,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사실 모두가 그런 성향이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시간이 몇 년 지나면.. 자기가 그렇게 욕을 하던 한국교회 모습을

자기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철없는 신자들로부터.. 비난과 정죄의 화살을 받게 되지요..

자기가 키운 ‘파리한(굶주린) 소떼’들에게, 자기가 잡아먹히는 것이지요..


우리는 이런 패턴을

우리 주변에서 항상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의 특징은 ‘자기 교회에 다니는 것을, 자기 교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어요.’

정말 그걸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그래서 자기 교회만 커지고, 다른 교회가 줄어든다면.. 그것이 과연 주님의 뜻일까요?


그런데 현실은, 이런 네거티브 공략이, 당장은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눈먼 소경이, 눈먼 소경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지요.

(이 부작용이 당장 안 나타나고, 5~10년 후에 나타나니까, 우리가 파악 못하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는 복음 몰라! 우리 교회만 복음 알아!

다른 교회는 엉망이야! 우리 교회만 똑바로 되었어!

다른 교회는 좀 뒤떨어졌고, 우리 교회만 엘리트야!

(은연 중에 자꾸 이런 사상을 심어줍니다. 한 마디로 타인에 대한 존중/사랑, 자기 겸손이 없습니다.)

 

설교시간에.. 교인들은 그렇게 점점 세뇌 되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교회 다 망하고, 자기 교회가 불어난다면.. 과연 주님이 기뻐하실까요?

(잠깐은 불어나겠지만, 몇 년 지나면 모두 망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인들은, 자기 교회만 타락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여

은연중에 ‘엘리트화’ 되어가요.


엘리트화.. 그게 하나님의 뜻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자기 부정, 자기 부인, 자기 낮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복음을 핑계 삼든지, 엘리트화를 빌미삼든지

자기 교회를 차별화 하는 것은..

전체 하나님 나라에 이적 행위입니다.         *利敵


더욱이 자기 교회 부흥(확장)을 위하여

그런 차별화 전략을 쓰는 것은,

-이제 앞으로는 그런 방식이 안 통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이런 방식이 암암리에 통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차별화 하여도, 결국 초록은 동색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자기 교회 차별화가 아니라,

전체가 사는 길로 나아가야 할 때이고요,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부 목회자들은, 항상 자신은 다른 목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해요.

이게 교인들을 끌어당기는 (간접적인) 수완인 겁니다.


교인들 눈에 목사가 안 보이고, 예수님만 보이게 하여야 할 종이

교묘하게 교인들 눈에.. 목사(자기)가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복음으로 말이에요.

이건 심하게 말씀드리면 ‘광명의 천사’로 과장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시대에, 목사를 추종하는 교인들이 다 이런 부류에요.

예수를 안 믿고.. 목사를 믿는 것입니다.


그 속에 예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증거가 없으면.. 유명하다고 하는 사람을 쫓게 되어 있어요.

(편승해서 득을 보자는 겁니다)


시편 기자는 이런 자들을 일컬어 “바람에 나는 겨” 라고 했어요.

그 속에 예수라는 알맹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

 

주1)

예수님은 이러한 것을 일컬어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빠진 신앙”이라고 했어요.

그토록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들이 자랑하는 그 율법 신앙 속에는 정작 담겨 있어야 할

의(義)와 인(仁)과 신(信)이 빠졌다고 합니다.  마23:23


신앙의 알맹이는 없고, 빈껍데기만 있다는 말입니다.

의(義)와 인(仁)과 신(信)을.. 고린도전서 13장식으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구제도 순교도 섬김도 봉사도 말짱 도루묵이에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마음이에요.


마음에도 없는 것을 행하면

반드시 그 행한 것을 가지고, 잘난 척 하면서, 자기 힘자랑하게 되어 있어요...


신앙생활이란? 예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요.


“어떻게”가 없어요.

“어떻게 사랑할까요?” 라고 묻는 것은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걸 믿음으로 응용해 보세요.

‘어떻게 믿을까요?’ 라고 묻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슨 일을 할까요?’ 라고 묻는 것은 일을, 할 일과, 하기 싫은 일을 구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율법과 사랑

내가 주인이라면 일을 어디서 어디까지 구분하지 않아요.

다 내 일이에요.


그러므로 주인에겐 일이란 정해진 것이 없어요.

하지만 종에겐 어디서 어디까지 정해져 있어요.

이걸 (율)법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사랑의 반대에요.

은 어디서 어디까지 정해져 있지만, 사랑은 어디서 어디까지 정해진 것이 없어요.


법으로 사랑하면 얼마큼 사랑 할까!

나 이만큼 했잖아!

난 할 만큼 했어! 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사랑하면.. 얼마큼이라는 양이 없어요.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라고 합니다.


법은 타자로 보고.. 사랑은 한 몸으로 보아요.

법은 남으로 생각하지만.. 사랑은 자신과 동일시해요.

그래서 사랑이 없으면.. 그 무슨 일을 하여도 소용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자기 공적(功績)을 쌓아요.

이걸 종교 놀음이라고 합니다.


종교 놀음은 자기 의(義) 쌓는 것이에요.

자기 의(義)가 힘이 되어서.. 사람을 차별하고/ 판단하고/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교 놀음의 끝에는.. 반드시 힘의 과시가 생기고

자기 자랑이 난무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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