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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과 긴장

LNCK 2012. 1. 25. 21:47

www.youtube.com/watch?v=y7dGEnfC0Zc

 

◈안식과 긴장                             막13:33                  모두 정원 목사님 글, 출처  

 

막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1. 안식과 긴장          

  

흔히 긴장이란 단어는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됩니다.

보통 긴장하는 것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물론 어느 면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랑의 대화를 나누어야할 때, 부드럽게 다른 이들을 위로해야 할 때,

내가 긴장을 하고 있다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이나 평화, 기쁨 등의 열매를 맺고 싶을 때.. 내가 지나치게 긴장되어 있으면

그러한 자유롭고 편안한 감정을 경험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많은 내적인 열매들이 긴장을 풀고 안식하는 데에서 나옵니다.

안식을 배우고 훈련한 사람들은

자신이 평소에 경험할 수 없었던 내적인 열매나 자유함을 많이 경험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안식은 좋은 것이며, 긴장은 나쁜 것이다’ 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안식긴장의 관계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것이며

어느 한 쪽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안식은.. 내적인 것이며, 평화에 속한 것입니다.

긴장은.. 외적인 것이며, 추진력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항상 평화와만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영적인 전쟁 중에 거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는 긴장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적절한 긴장은 필요하며, 또한 충분히 긴장이 있을 때에

안식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충분한 일과 사역 후의 안식이.. 꿀맛과 같은 것이지

항상 안식 속에만 있다면.. 그것은 나태함이 되겠지요.

 

내 영혼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기에는 긴장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안식에 대한 명령이 있지만,

또한 동시에 깨어있음(긴장)에 대한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영혼의 내부에는.. 안식과 평화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외부에는.. 긴장과 깨어있음과 능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깨어있는 것과, 긴장하고 있는 것과, 능력이 임하는 것은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마지막 밤에 제자들에게

‘깨어서 기도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밤은 안식해야할 밤이 아니었으며, 깨어서(긴장해서) 전투를 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깨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긴장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숙된 사역자는

안식할 때와 긴장할 때를 구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늘 너무 긴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긴장이 되어 있으므로

잘 웃지 않으며, 아무 것도 아닌 일에 툭하면 화를 냅니다.

그들은 여유가(안식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을 열심히 합니다. 추진력이 강합니다.

그래서 유능하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비록 인간미가 조금 부족한 면은 있지만, 그들은 유용하며 강건합니다.

 

그러나 안식을 잘 누리는 이들은, 너무나 긴장이 부족합니다.

그들은 대체로 선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마음이 착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긴장이 부족하므로 유용하지 않으며

일이 생겼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직장에서 상사들에게 야단을 많이 맞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평소에 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긴장은 곧 능력과 관계가 있습니다.

영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기도할 때도, 집회를 할 때도.. 능력이 쉽게 임합니다.

 

그러나 긴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능력이 그냥 지나갑니다.

능력이 좀처럼 임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긴장이 되어 있는 이들에게는.. (외적) 은사와 권능이 잘 임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강하고 담대하며 열정적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안식이 부족하므로.. 내적인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들은 강하지만.. 분노가 많고, 공격적이며, 이기적입니다.

 

반대로 영적인 안식이 많은 이들은.. 내면의 주님을 잘 경험합니다.

그들이 선하고 희생적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긴장이 부족하므로.. 능력과 힘을 잘 발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약하며, 눌리며, 각종 무기력한 증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긴장안식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긴장은.. 사람의 외적인 면이라면,

안식은.. 사람의 내면적인 면입니다.

 

내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안식하면서, 주님과의 연합이 필요하며

외적인 능력을 위해서는.. 긴장과 열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 안에서 안식은 잘 누리지만, 안식만 누리고, 긴장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긴장이 필요합니다. 이들은 긴장에 대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긴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긴장만 갖고는.. 외적인 열매는 맺어도,

내적인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 긴장안식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나친 긴장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긴장, 그리고 다음에 안식, 그리고 다시 긴장, 또 다시 안식..

이러한 방향으로 반복되면서.. 내 영혼이 자라갑니다.

 

긴장을 모르는 이들은.. 참다운 안식을 얻을 수 없으며

안식을 모르는 이들은.. 긴장의 능력을 맛볼 수 없습니다.

 

기도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내적인 기도, 주님과 연합하는 기도, 주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

교제하는 기도, 주님 안에서 안식하며 친밀함을 나누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외적인 기도도 있습니다.

이것은 뜨겁고 강렬한 기도입니다.

이것은 원수의 진을 파괴하는 기도이며, 성취하고 승리하는 기도입니다.

 

심령이 부드러운 이들은 바깥쪽의 기도, 전투적인 기도를 싫어합니다.

그들에게 부르짖는 기도를 시키면 졸다가 잠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눌리는’ 것입니다.

 

또한 심령이 강한 이들은 ‘침묵 기도, 듣는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항상 전투적으로 부르짖는 기도는 하는데.. 내적인 열매는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 성질이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적인 기도가 강한 사람은,

반대로 강한 기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은사와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외적인 기도가 강한 사람은,

반대로 내적인 ‘침묵 기도, 듣는 기도’를 훈련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인격의 성숙과, 성령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찬양을 드릴 때도

    고요한 찬양만 드리는 분은.. 큰 소리로 요란한 찬양을 드려보십시오.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조용하게만 읽는 분은.. 큰 소리로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그리고 큰 소리로 읽으시는 분들은.. 묵상하며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 보세요.

 

덧붙여서 걸음걸이도, 자기 패턴과 한 번 반대로 걸어보세요.

느리게 걷는 것이 익숙하신 분들은, 

힘없이 걷지 말고, 당당하게 당당한 자세로, 힘을 주고 걷는 것을 훈련해보십시오.

 

그러한 긴장은 당신을 신선하게 만들 것입니다.

무기력하고 유약했던 당신에게 새로운 힘과 강건함을 불어넣어 줄 것입니다.

           <정원 목사. 심령이 약한 자의 승리하는 삶> 중에서.. 편집

 

 

 

◑2. ‘주님의 고독’을 느끼시나요?

 

부모님들이 젊었을 때 열심히 수고하여 자식을 낳고, 기르고.. 그렇게 노년이 되었는데

막상 힘들게 기른 자식은 부모에 대해서 전혀 마음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자기가 혼자 큰 양 그저 귀찮게 여기고

짐으로 여기는 그러한 경향은 이 시대의 한 특성입니다.

 

그러한 일을 겪으면 연로하신 부모님들은

참으로 삶이, 지나간 세월이 허무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요.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일을 겪고 있는 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평생을 교회에 다니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고독과 그 마음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그저 자신의 소원이나 문제가 있을 때 하소연을 하는 것 정도가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렇게 진정한 효도를 알지 못하는 이 땅의 대부분의 자녀들 때문에

주님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고 고독합니다.

 

저는 기도할 때, 이런 내적 음성을 종종 듣습니다.

주님은 ‘누가 나의 마음을 알겠느냐.. 나는 고독하다. 나는 고독하다..’

그런 말씀을 종종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출세를 하면 그게 성공인줄 아는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님의 마음에까지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지 주님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한 것을 신앙이라 믿고 있기에.. 주님은 고독하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보면 믿지 않는 자보다 더 이기적이고 교만합니다.

 

그러한 것은 그들이 진정한 신앙, 진정한 복음에 대해서 잘 모르고

단순히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며

아직 육체로 살고 있고, 영혼의 눈이 뜨여져 진정한 주님의 마음에까지 이르는

신앙생활을 하지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용어에 회심conversion(방향을 바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 썩어질 것들이 크게 보였고 대단하게 여겨졌고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었으나

이제는 영혼의 눈이 뜨여져서 영원한 세계를 알게 되고

그리고 그 영원을 느끼는 영혼의 감각을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심을 하게 되면 점차 영혼이 깨어나서 육체 중심의 삶,

눈에 보이는 것을 좇는 삶을 살지 않고, 이 세상을 초월하게 되며

이 세상의 일로 근심하거나 즐거워하거나 하지 않게 됩니다.

 

재물이 많아도 거기에 관심이 없고

입을 것이 없어도 그다지 마음을 쓰지 않게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명예나 외적 성취에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이 사고를 당하거나 어려움을 겪어도 ‘아.. 그렇군요..’하고 초연합니다.

전쟁이 나도 ‘아.. 그렇군요..’ 하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누가 모함하고 미워해도 ‘아. 그렇군요..’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회심하고, 삶의 방향을 바꾼convert 사람의 삶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주님의 사랑의 손안에 있음을 의식하고 신뢰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겪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영혼이 깨어날수록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일시적이고 썩을 것이며

우리는 영혼을 가진 영원한 존재이고

이 영혼의 발전을 위해서 이 땅에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정원 <일상에서 경험하는 주님의 은혜> 중에서..

 

 

◑3. 나를 ‘속이는 영’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나보다 훨씬 못한 아무개도 유명하고 성공했는데

내가 그보다 부족한 것이 없으며, 아는 것도 훨씬 많은데..

나는 왜 출세 못 했느냐고..’

하면서 속상해 하시는 모습을, 나는 여러 번 겪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도대체 그분이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지요.

 

나에게는 모든 분들이 다 나보다는 훨씬 낫게 보이며

비천한 모습을 잘 알기 때문에

나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는 분들을 보면.. 저는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입장이므로,

위와 같은  분들의 당당함이 놀랍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은.. ‘속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많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많이 알고 있다는 영’에게 잡힌 것에 불과합니다.

 

나는 너무나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로 억울한 것이 아니라

‘억울한 영’에게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속이는 영들’은

우리를 그의 안에 사로잡아서

우리의 느낌과 감각과 판단을 완전히 왜곡시키고 마비시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안에서 갇혀서 계속 속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깨닫게 하시며 자유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 존재인지,

그리고 그분의 허락하시는 은혜가 얼마나 기가 막힌 것인지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두려움과 근심이 사라져

오직 감사와 찬양밖에는 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지는 자신을 죽이는 것이며

참 지식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빛을 받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낮은 마음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들이 우습게 보이고

자신이 대단하게 보일 때

조심하십시오.

 

자신이 억울하게 느껴지고

원망이 일어날 때

조심하십시오.

 

악한 영들, 속이는 영들이

당신의 주변에서

어른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깨닫게 하심을 구하십시오.

주님이 임하실 때 당신은 알게 되며

진정한 자유와 해방과 기쁨 속에서

주를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정원/ 주님은 생수의 근원입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