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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프란시스 St. Francis of Assisi

LNCK 2012. 1. 24. 23:08

 

◈성 프란시스  St. Francis of Assisi

  1181~1226


*프란시스, 프랜시스(영어), 프란치스코(이태리어).. 다 같은 이름입니다.

 여러 설교에서 인용된 성 프란시스에 관한 내용을 한 자리에 모아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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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난한 지도자 성 프란시스


13세기에 앗시시의 프란시스는 마10:8~10절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가면서 전파하며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 말씀이 프랜시스의 맘을 흔들 때, 청빈, 봉사, 사랑, 순명, 노동을

서원덕목으로 하는 13세기 성 프랜시스 탁발수도회가 탄생하였다.

이 수도회는 당시 부자로 치닫던 교계에 신선한 개혁과 부흥을 가져왔다.


▲부유한 중세교회를 구한 프란시스의 가난

중세의 찬란한 황금시대에서 가난이 다시 그 탁월한 위치를 회복하게 된 것이

바로 성 프랜시스를 위시한 탁발 수도회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러나 12-13세기의 이러한 개혁운동 안에서 가난이

그 탁월한 평가를 받게 된 것도 불과 몇 세기를 가지 못하였다.


이른바 종교개혁에서 프랑스 혁명이라는 일련의 큰 대가를 치루고서야

세속적인 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교회가 가난으로의 길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자발적이지 않으면 외압에 의해서 된다는 뜻)


그러나 이러한 큰 충격하에서도 또 다시 물질문명의 발달과 황금만능주의의 팽배로

인하여 가난과는 멀어진 교회가 되어 갔으며,

따라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시 가난에로의 길로

그 쇄신의지를 명백히 하게 된 것이다.


프랜시스는, “시장 입구에서 거지 옆에 서서 같이 구걸해 보기 전에는

결코 거지의 심정을 이해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거지가 되어 본 사람이, 거지를 깊이 이해해 줄 수 있고,

아파서 수술을 받아 본 사람일수록, 병든 사람 마음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


그래서 ‘영혼의 인도자’는 고난을 많이 당할수록 좋다.

사람이 더 깊어지고, 고난받는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위로하게 된다.


이태리에 가면 성 프랜시스 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그의 망토가 유품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것은 그의 유일한 재산 목록으로서,

비가 오면 우비였고, 밤에 잘 때는 덮는 이불이었다.


프랜시스의 남루한 그 망토를 직접 보는 순간,

그것은, 뭘 많이 갖고 싶어 하는 나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해 줬는지 모른다.

그의 남루한 망토에서, 나는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2. 기도의 지도자 성 프란시스


▲성 프랜시스의 기도문 중에도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주 예수님, 제가 죽기 전에 두 가지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첫째, 영혼과 육체의 고통을 겪어서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의 맛을 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영혼과 육체의 고통을 주어서 당신의 십자가의 고통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몸으로 깨닫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는 당신이 우리 죄를 위하여 그처럼 참으셨던 일,

그 불타는 듯한 사랑을 간직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 뜨거운 불타는 사랑이

십자가의 고난을 이길 수 있게 하셨던 거거든요.


우리를 사랑하는 그 불타는 사랑으로 인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는데

나도 그 같은 불타는 사랑을 가지게 해 주세요. 얼마나 위대한 기도입니까!


▲성 프란시스는 종종 동굴 속에 들어가서 기도했는데,

그 분이 종종 눈에 안 보여서, 하루는 제자들이 프란시스를 몰래 뒤따라가 봤다.


그는 깊은 동굴 속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있더라는 것이다.

무슨 기도를 하는지 들어봤더니


‘하나님, 부디 저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깨닫게 하시고,

저의 죄악됨을 절대로 잊지 말게 하시고, 나의 이 비통한 죄악이

내 속에서 계속해서 깨달아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더라는 것이다.


사람이 주님의 빛 앞으로 가면 갈수록, 진리 앞에 정직하게 서면 설수록,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감사와 감격과 기쁨이 있지만,

동시에 자기 연약함, 추함, 더러움을 깨달으면서 비탄함도 동시에 있더라는 것이다.


세 종류의 기도, 세 종류의 사람   

"레오 형제, 마음을 활짝 열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를 깊이 새겨 들어봐요.

인간의 육신은 마치 활과 같고

하나님은 그 활을 당기는 사람이며

영혼은 화살입니다."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네요, 프란체스코.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당신의 생각을 좀 더 세상 가까이로 끌어내릴 수는 없어요?

내 머리로는 쉽게 이해가 안 되네요."


"레오 형제, 우리의 기도에는 세 가지가 있어요.

첫째는 '주님, 저를 구부리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제가 녹이 슬고 말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 저를 너무 구부리지 마세요. 그러면 부러지고 말 것입니다.'

셋째는, 레오 형제, 이것은 바로 우리가 늘 해야 하는 기도예요.

‘주님, 저를 있는 힘껏 구부리십시오. 제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이렇게 세 종류의 기도가 있듯이, 신자도 세 부류가 있어요.."


프란체스코 생애의 절정을 이룬 십자가의 신비체험은

1224년 9월 라 베르나 산에서 40일간 금식하며 기도와 명상에 몰두하던 중 일어났다.


9월14일 그는 하늘이 열리며 십자가의 형태로 된, 여섯 날개를 가진 스랍천사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그 찬란한 환상을 보는 중에 그의 손발과 옆구리에 십자가의 못자국과 창자국이 생겼는데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예수의 상처 흔적이 그에게 각인된 것이었다.



◑3. 겸손한(연약한) 지도자 성 프란시스


진정 가정, 사회, 나라, 역사를 바꾸는 힘은.. 사실은 ‘약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암흑시대 중세교회를 살린 힘은, 약하고 가난했던 성자 프란시스였고,

그것은 매 시대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가장 큰 특징은 겸손이었습니다.

다른 성자들도 마찬가지.. 그들 성자들의 특징은 다 겸손이었습니다.

단순히 의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성 프랜시스에게, 당신이 쓰임 받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 땅 모서리 한 구석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장 무지하며

가장 미련한 한 사람을 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보다 더 낮고 미련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눈동자는 머무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께서 프랜시스를 선택해서 사용하시는 비결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저는 부족합니다!' 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이지,

'저는 별로 문제가 없습니다!' 하면...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다.


겸손의 옷

아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에게 마세오 형제가 진지하게 물었다;

당신은 용모가 뛰어나지도 않고 학식도 별로 없는데,

어찌하여 모든 이들이 당신을 따르고 당신에게 순종하기 원합니까?


프랜시스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장 못난 인간인 나를 지명해서

놀라운 일을 성취하고자 하신 거지요.

나보다 더 천한 인간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은 미천한 나를 택하셨고

그런 나를 통해 이 세상의 모든 고귀한 신분과 부자와 잘난 사람과

그리고 높은 학식을 깨뜨리고자 하셨던 게 아닐까요?


맞다. 프랜시스는 겸손으로 옷 입은 사람이었다.(골 3:12)

우리는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부자잘난 사람이 되기 원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먼저 겸손으로 옷 입기를 원하신다.



◑4. 그리스도를 닮은 성자 프란시스


▲아씨시의 성자인 프란시스는,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습니다.

전기(傳記) 작가 한 사람은 프란시스의 생애를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달이 태양의 거울이듯, 그의 일생은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거울이었다.

그가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꼈다.

그의 심장은 그리스도의 심장이었고, 그의 언어는 그리스도의 메시지였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주께서는 지금도 자신의 빛을 발하고 계십니다.


▲성 프란시스가 구한 영광

그는 처음에 기사가 되어, 자기 영광을 얻으려 했으나,

후에 성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았다.


기독교의 성자 프랜시스는 기독교 세계가 모두 정죄한 모슬렘들과

심지어는 이단들까지 찾아가서 십자가의 용서와 사랑과 가난과 청빈의 복음을

온 몸으로 전한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차한 평안을 떨치고 구도의 길에 나서다』라는 성 프란시스의 전기에 보면,

레오라는 형제가 진눈깨비를 맞으며 힘겹게 걸어가는 모습을 본

프란시스가 그에게 말합니다.


“레오 형제, 우리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한다고 해도,

성경을 통째로 외우고, 신학자들의 학설을 모두 통달했다고 해도,

그 안에 진정한 기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별들의 길을 모두 알고 온갖 생물의 특성을 전부 안다고 해도

그것은 절대로 온전한 기쁨의 근원이 아닙니다.”


길을 걸으면서 계속되는 프란시스의 말에

레오 형제가 걸음을 멈추고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기쁨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이때 성 프란시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간신히 목적지에 도착하여 문을 두드렸을 때,

집주인이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라고 말해도,

우리를 도둑이나 부랑아 취급하며 모욕할 때도,


우리가 이런 일들까지 인내와 친절과 사랑으로 모두 참는다면

그제야 우리는 온전한 기쁨 언저리에 도달한 셈입니다.

이렇듯 자신을 정복하는 데 온전한 기쁨이 있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마5:11~12


즉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어떤 환경이나 여건에서도 빼앗기거나 흔들릴 수 없으며

그 기쁨은 마음속에서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프란시스는 말합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는,

군주나 전쟁영웅에 의해 ‘만들어져’ 내려오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사람의 성자에 의해서 ‘변화되어’ 내려오는 것입니다.


진정 가정, 사회, 나라, 역사를 바꾸는 힘은.. 사실은 ‘약한’데서 오는 것입니다.

암흑시대 중세교회를 살린 힘은, 약하고 가난했던 성자 프란시스였고,

그것은 매 시대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은 주기철, 손양원, 한경직, 김용기, 장기려 등 약하고 가난한 분들이었습니다.


▲자기가 죽고, 예수가 부활한 프랜시스

1207년 봄에 앗시시의 프랜시스는 진정한 회심을 경험합니다.


말을 타고 시골 길을 지나가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싶다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정말 나의 뜻을 알게 된다면

지금 네게 달콤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이 쓴 것이 될 것이고,

혐오하던 모든 것이 달콤하고 더 없는 기쁨으로 변할 것이다.’

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 순간 갑자기 타고 가던 말이 놀라서 움직이는 바람에 눈을 떠보니

몇 발짝 앞에 심한 나환자가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가서 그의 문드러진 손에 돈을 쥐어주고

악취가 나는 손가락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말에 올라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감정에 북받쳐 울었습니다.

자신이 변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가 사랑했던 것을 경멸하고, 자기가 멸시했던 것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앗시시의 프랜시스는 그 날,

인간이 거둘 수 있는 최고의 승리, 곧 자신에 대한 승리를 얻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그 안에 계신 주님이, 그를 이기고 최고의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되는 체험을 처음 하게 된 것입니다.


성 프랜시스는 새들에게 항상 말했다고 한다;

“새들아! 하나님께서 너희들에게 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고,

먹을 것과 샘물을 주시고, 둥지를 주셨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을 찬미해라!”

 

우리도 수많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항상 우리의 입술에 항상 찬송이 넘치도록 하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일은 곧 주님께 한 일이다.

천년 전 일이다. 이태리 아시시에 프란시스가 살았다.

그는 부자 집 아들로 방탕하게 살다가 예수를 만나고 변화되었다.

아버지는 변화된 아들을 기뻐하며 좋은 모피 외투를 아들에게 선사했다.


프란시스는 길을 걷다가,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오는 노 병사를 보았다.

그는 다 헤어진 남루한 옷에 뼈만 앙상한 말을 이끌고 걸어오고 있었다.

프란시스는 자기 모피 외투를 그 병사에게 주면서 추위를 피하라고 했다.


그 날 밤 프란시스는 꿈에서 예수님을 뵈었다.

그런데 주님은, 낮에 자기가 벗어준 그 모피 외투를 입고 찾아 오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마 25:40)

그는 집을 나가 맨발로 다니면서, 평생 가난한 자의 친구로 살았다.


인자가 올 때 모든 민족을 모아놓고, 양과 염소를 나누실 것이다.

‘구원의 신앙고백’뿐만 아니라 다른 신앙고백과 아울러

‘헌신의 신앙고백’이 드려질 때, 양 편에 속하게 될 것이다.



◑5. 그 외


▲은사자 vs 교권의 조화를 이루었던 성 프란시스

성령의 은사를 나누는 일에 있어서

특히 악령을 치유하거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있어서

은사를 받은 사람과 교권church authority은 자주 충돌을 합니다.


그러나

교권은 성령의 은사를 존중해야 하고

개인(은사자)도 교권의 판단을 존중해야 합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주님으로부터 복음을 선포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신도로서는 할 수 없는 설교의 허락을

교황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이는 당시 교권의 허락을 받지 않을 뿐 아니라

교권을 부정하고 비판하며 복음을 선포하던

이단과는 다른 태도였습니다.


교황님으로부터 설교의 허락을 받았지만

그는 어느 교구를 가던지, 그 교구장의 허락을 또 받았습니다.


하루는 어느 교구에 들어가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그 교구장께 설교의 허락을 청하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주교님은, 자기가 설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하며

프란치스코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밖으로 나가라고 내치셨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이쪽 문으로 나가더니, 저쪽 문으로 다시 돌아와

주교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었습니다.


왜 다시 돌아왔냐는 주교님의 물음에 프란치스코는

자식이 어떻게 아버지 곁을 떠날 수 있느냐고

여전히 주교님께 대한 애정과 존경을 보였습니다.


이를 보고 주교는 자신의 교구에서 설교할 수 있는 허락을 주었습니다.

교권을 존중하고 순종하는 자세를 보고

교권은 그의 복음 선포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고

허락을 준 것입니다.


개인 과vs 교권,

카리스마 와vs 제도.

이것은 끊임없는 갈등의 관계이지만,

서로 존중해야 할 영원한 상대입니다.


성경에도 좋은 예가 나옵니다.

사도행전 5장은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당시 유다교의 충돌을 얘기하며

올바른 교권 행사의 한 예를 소개합니다.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인이

사도들의 말과 행위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면

인간, 즉 교권이 막아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내버려 두어도 결국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태도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성장과 발전의 시기가 5시대가 있었습니다.

1) 그 첫 시기가 사도행전과 바울이 살았던 1세기이고,

2) 두 번째가 크리소스톰과 어거스틴이 활동했던 4세기,

3) 세 번째가 아시시의 성 프랜시스가 활동했던 13세기이며,

4) 네 번째가 루터와 칼빈의 활동하던 16세기,

5) 다섯 번째가 스펄젼과 휫필드의 18~19세기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임종

성 프란시스의 마지막이 가까웠을 때,

의사로부터 자기 삶이 몇 달 안 남은 것을 알게 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전기 작가의 기록에 의하면)

“프란시스는 하나님을 향하듯 두 손을 치켜들고

형언할 수 없는 기쁜 표정으로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오라. 오, 나의 잠의 죽음이여, 나의 잠의 죽음이여>


그는 육체의 죽음을 ‘잠’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죽음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육체의 죽음에 의해서 당신은 찬송을 받으소서.

이 땅에서 한번 삶을 누린 자라면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

죄 중에 죽는 자는 재앙이로다.

그러나 당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며 세상을 떠나는 이,

그는 행복한 자가 아닌가!”


죽음의 날이 드디어 그를 찾아왔습니다.

프란시스는 조용히 시편 142편에 자신의 곡조를 붙여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이때 프란시스는 완전히 실명(失明)한 상태입니다.


전기 작가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아니 볼 필요가 없었다.

그에게는 마지막 한 번 더 보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의 영혼은 단 한 분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조용히 움직이면서 계속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다.

<내 주여, 나의 전부여, 내 주여, 나의 사랑이여!>


프란시스는 회개한 지 20년이 되던 해인 1226년 10월 3일 토요일 저녁에

찬송하면서 죽어 갔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 다섯 이었다.”


▶한국 교회가 보여주었던 예수 형상

여러 모습의 예수의 이미지 중에서,

그래도 가장 전통적이고 가장 보편적으로 서구와 한국에 영향을 미쳤던 예수 상은

중세 ‘성 프랜시스의 형상’이며,

청교도적 신앙의 유산으로서 ‘청빈한 예수의 형상’이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그런데 최근에 나타난 색다른 예수상이 있는데

이른바 CEO(최고경영자) 예수 상입니다.  

모든 일에 유능하고, 탁월한 경영 능력이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지도하는 ‘리더쉽 예수’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탁월한 경영자를 찾아서

그 속에서 예수와 일치되는 점을 분석해 내려 합니다.


보십시오. 조금 부흥하고 뜬다는 (일부) 교회는

한 도시를 여러 교구로 나누어 전 지역을 복음전파할 계획을 세우고,

나아가 전국을 단위로 쪼개어 확장할 계획을 세웁니다.

더 나아가 전 세계를, 무슨 대기업 진출하듯이, 조직적으로 진출하려고 합니다...


성 프랜시스의 기도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

불의가 있는 곳에 진리를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끝 부분에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더 자세히 번역하면,

“우리가 죽음으로써 영원한 세계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성 프랜시스도 직접 손으로 책을 쓴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의 주변 인물들이, 프랜시스에 관한 기록을 남겼고,

그것 때문에 지난 7세기 동안 그의 후대들이,

그의 인격에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