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2

축적된 은혜

LNCK 2012. 4. 6. 09:21

www.youtube.com/watch?v=PLOlkcHa7L8

◈축적된 은혜          고전7:25, 11:23                    펀글 정리                  中國 敎會 講道 모음

 

  

 

◑바울은 축적된 은혜를 가지고 있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영혼의 깊은 밤>을 보낼 때가 있다.

즉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하나님이 무응답이실 때를.. 지낼 때가 있다.

사도바울도 그런 때가 있었다고 보는데.. 그때 그는 ‘축적된 은혜’로 그 시절을 극복했다..

 

말씀의 사역의 근원은 영감(위에서 주시는 계시)에 있다.

우리가 사역을 할 수 있으려면, 우리에게는 지속적인 영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로 인정하는 것은,

‘영감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계속적인 것도 아니라’는 현실이다.

살다 보면, 영감이 한동안 중단되는 시기가 있다는 것이다. ‘영혼의 깊은 밤’이라고도 한다.

 

초대교회 사도들에게조차도 영감, 계시가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며,

바울에게조차도 영감, 계시가 항상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6시간 동안, 하나님과 단절되고, 끊어지는 고통을 겪으셨다.)

  

 

바울은 어떤 때에는 ‘내가 주님께 받은 명령은 없으나’ 라고 말한 바 있다.

고전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고전11:23참조

 

그는 주님께서 자기에게 어떤 것을 말하지도 않으셨다고 했다.

바꿔 말한다면, 계시가 없고, 어떤 영감도 없고,

근본적으로 주님의 신선한 말씀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바울이 ‘주님께 긍휼을 받은 신실한 사람으로서 나의 의견을 말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바울은 매우 분명하게 영감이 주어지지 않았으면서도, 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에겐, 내면에 축적된 것이 있었고, 남아 있는 것이 있었고,

여분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영감이 없었지만, 할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것도, 교회의 계시가 되었다.

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서, 성경 가운데 놓여졌다.

그의 개인적 의견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영감과..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축적된 은혜’가 필요하다.

마치 저수지에 물이 모여 있듯이, 평소에 많은 은혜와 영감을 저장해 놓으면,

 

때로는, 영감과 은혜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에라도,

평소에 ‘축적된 은혜의 저수지’에서, 그 은혜와 영감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 했던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는 뜻이 아니라,

저수지에서 ‘융합된 새로운 은혜’를 끄집어 낼 수 있다는 뜻)

 

사도바울은, 여러 해 동안 신실하게 주님을 따랐고,

여러 해 동안 핍박을 받아도, 중단하지 않았고,

여러 해 동안 주님을 떠나 방종하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고,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며 충성을 다 했다.

 

그런 가운데, 그의 평소 신앙과 삶에서, 어떤 신앙의 내공이 축적된 것이다.

그래서 비록 위로부터 계시가 없을 때라도,

오히려 여전히 그에게는 능력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가진 <축적된 은혜>이다.

또한 우리도 이런 <축적된 은혜, 축적된 저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수도꼭지만 틀면, 맑은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듯

나를 쿡 찌르기만 하면, 그의 입에서, 은혜의 말씀이,

언제든지 콸콸 쏟아져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축적된 은혜>를 갖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감은 내가 원하는 때에,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이따금씩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로부터 영감이 주어지지 않을 때는, <축적된 은혜>에서 끄집어내어야 한다.

 

크리스천의 시련과 고통을 많이 겪어서 아는 분 중에, 잔느 귀용 여사가 있다.

 

여사는, 마치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고, 자기를 돌보지 않으시는 것 같고,

하나님은 입을 닫으시고 말씀하시지 않는 것 같으며,

 

아무리 하나님을 찾아도.. 응답하시지 않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소리를 내지 않으시는 것 같고, 침묵하시는 것 같으며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과 같은.. 오랜 시간을.. 여사는 보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영혼의 깊은 밤’(오랜 기간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기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우리 각자도 겪을 수 있다.

 

이때 특별히 <축적된 은혜>가 요긴하게 쓰여진다.

그러나 <축적된 은혜>가 없는 사람은, 이때 심령이 고갈되고, 흔들리고 만다.

 

귀용 여사는, 몇 개월 동안 계속해서 사탄의 시련을 받았었다.

자기를 둘러싼 온 세상은,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귀용 여사는, 마치 예수님의 광야 40일 같은 그 시련의 기간을,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며, 이겨냈다.

 

계시록에, 서머나 교회에, 예수님이 이렇게 편지하셨다.

계2: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여기서 ‘부요하다’는 의미가, <축적된 은혜>를 뜻한다고 본다.

서머나 교회가 환난과 궁핍을 오래 겪었으나, 그들에게는 <부요함, 축적된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승리하고, 예수님께 칭찬과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마치 성경이 불허된 북한에서, 성도들이 과거에 암송한 말씀을 되새기며 신앙생활 하듯이

우리는 이 시련과 연단의 기간에는.. <축적된 은혜>로 버텨내야, 인내해야 한다.

그러려면 평소에 은혜를 축적하며 살아야 하는데...

 

 

◑<축적된 은혜>를 가지려면

 

▲1. 신앙의 연수(경력)이 필요하다.

가만히 보면, 이런 관찰은 사실이다.

 

젊은 성도연로한 성도를 비교해 보면,

젊은이는 뜨겁게 기도하고, 뜨겁게 헌신하고, 뜨겁게 금식도 한다...

그런데 신앙이 식을 때도, 아주 뜨겁게 식는다. 급속히 타락으로 떨어진다.

 

반면에 연로한 성도는.. 기도도 상대적으로 열정적으로 못하고, 헌신도 쉬엄쉬엄 하는 것 같고,

금식도 잘 못한다... 그런데 식을 때도 아주 천천히 식는다. 아니 잘 안 식는다.

 

이것이 바로 <축적된 은혜>의 차이라고 본다.

젊은이는.. 젊은 열정으로 뜨겁게 주님을 섬기며 헌신하지만.. 축적된 은혜가 미약해서,

환란, 시험이 닥쳐올 때..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연로한 성도들에겐 <축적된 은혜의 저수지>가 있어서,

살다 보면, 환란과 시험이 끊임없이 닥쳐오지만,

그때 ‘위에서 계시나 영감이 주어져서’.. 능히 그 시험을 극복하면 좋은데,

 

그런데 ‘위에서 계시나 영감이 주어지지 않을 때’.. 가 엄연히 있다.

    시련과 연단의 시기에는 이런 것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때는 연로한 성도는 ‘축적된 은혜’가 있으니까,

거기서 은혜의 물을 빼서, 가뭄을 극복하는 것이다.

 

서두에 사도바울이, 처녀 딸의 거취에 대해서는, 주께 받은 영감이 없지만,

내 의견을 말한다고 했듯이..

‘위에서 계시나 영감이 주어지지 않을 때’

성도는.. 자기의 판단과, 기억과, 생각의 자원을 총동원해서,

시련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신중하게 분별하여,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2. 반드시 다양한 체험(시험)을 통과해야.. 은혜가 축적된다.

어떤 신자들은, 그들이 신앙생활 해 온 연수는 오래되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통과한 체험은 매우 적다.

 

<축적된 은혜>를 소유하려면, 신앙 연수도 있어야 하되, 또한 반드시 체험이 있어야 한다.

무엇을 체험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령의 징계이다.

 

어떤 신자는, 크리스천이 된지 10~20년이 지났는데도,

마치 성령께서 그를 아주 느슨하게 다루시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은 무난하게 신앙생활 잘 해 나가는 것 같지만,

10~20년 지나서 (늦게) 성령님이 그를 다루시는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를 천국에 데려가시려면. 그러므로 먼저, 젊어서 다루심을 받는 것이 백번 낫다.

 

그러나 어떤 성도에게는, 성령의 징계가 매우 엄하다.

그래서 ‘특수부대’처럼 강한 징계discipline와 훈련을 받는데,

 

이런 체험과 훈련을 통과한 성도는

‘영혼의 깊은 밤’이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베테랑이 되었기 때문에, 전투를 힘들기는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축적된 은혜를 갖고 있고, 또한 그것을 계속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험과 연단의 ‘체험’은 아주 소중한데,

특별히 영혼의 목자가 될 그릇들에겐, 하나님은 반드시 이런 ‘체험’을 주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특수부대원으로 훈련을 통과하게 하실 것이다.

그래야 ‘먼저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자기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올바로 길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많은 시련, 시험, 체험을 통과한 사람은.. 그의 설교가 남다르다.

그것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과.. 설교의 깊이가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말은 유창하고, 지식이 탁월해도.. 은혜의 깊이가 메마른 설교가 있고,

반대로 은혜의 깊이가 남다른 설교가 있다.

그것은 <영혼의 깊고 어두운 밤을 통과한/승리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설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쓰실 ‘영적 지도자’는

젊어서부터 <영혼의 깊은 밤>을 강권적으로 통과하게 하신다.

그래서 그에게 <축적된 은혜>를 쌓게 하신다. 요셉, 다윗, 모세가 그랬다.

다른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서이다.

 

오늘 당신은 ‘축적된 은행잔고’를 자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축적된 은혜’를 감사하고 있는가?

오늘 내가 통과하는 모든 시련은.. <축적된 은혜>를 쌓는 시간이므로, 감사히 받아야 한다.

 

 

◑더 읽으실 분

 

신앙의 연수도 오래 되었고,

그 오랜 기간 동안에 많은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축적된 은혜’를 쌓고

또한 그 ‘축적된 은혜’로, 그 시련을 통과하고 승리한 성도에게는

반드시 결과가 따라온다. 증거가 나타난다.

 

꼭 무슨 복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런 점도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명자로 쓰임 받게 된다.

 

▲하나님은 느슨하게 다루시지 않는다.

성경이 보여주는 바는,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다루시는데 있어서

결코 느슨하지 않으시며, 그를 아주 매섭고 철저하게 다루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욥을 다루시는 것을 보면, 생축이 사로잡히는 것도 불사하고,

양떼와 노예가 불살라져도 부족하고, 집이 무너져도 부족하고,

자녀가 죽어도 부족하고, 몸에 악창이 나도 부족하고,

결국에는 입술과 혀가 낮아져서 입을 진토에 대는 날까지 이르러야 했다. 욥1:6~2:10, 42:1~6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까지,

그들이 70년을 이방 땅에서 연단을 받으실 때까지,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40년이나 연단하실 때까지..

(40년은 너무 긴 기간이다.)

하나님은 결코 느슨하게 다루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기 백성’을.. 언제나 만들어 가신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그런데 (욥처럼) 자기 자녀가 죽어도, 그런 시련을 당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도 간혹 있다.

하나님이 그의 사랑하는 가족까지 데려가시는데도, 끄떡도 없이 버틸 수도 있다.

하나님께 철저히 항복하지도 않고, 옛 자아가 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그가 아직 옛사람으로 계속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결코 변화될 수 없다.

변화는.. 오직 ‘새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예수를 수 십 년 믿었는데, 변화되지 않았다면.. 아주 희한한 일이다.

(모든 것은 하나님만 정확히 아시지만)

아마 그는 옛사람 그대로 남아있을 수 있다. 진정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결코 변화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깊이 만난 적이 없기 때문이며,

성령이 그의 영적 신분을, 아직 변화시켜 주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은 지적 동의로도 예수를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옛사람에서 → 새사람으로 그 근본이 변화된 사람은

하나님은 결코 느슨하게 다루지 않으신다.

매섭게 다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백성으로 만들어 가신다.

 

-그 과정에 신앙의 연수도 필요하다. 연단의 연수도 필요하다.

-그 과정에 연단의 체험도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 <은혜의 축적>이 일어난다.

 

성도에게 언제가 계시나 영감이 임하는 것은 아니다. 그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에 온다.

더욱이 성도는 ‘영혼의 깊은 밤’을 보낼 때도 있다.

 

이러한 때는 <축적된 은혜>로 버텨나가는 것이다.

다시 계시와 영감이 내게 임할 때까지!   <일곱 광주리 가득히2> 45~58쪽 참조,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