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2

3540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LNCK 2012. 4. 9. 12:54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요17:3        설교 일부녹취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의 차이

             knowing God 과 knowing about God 의 차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아는 것’의 뜻을 올바로 알려면,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비교해서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1.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 knowing about God

하나님에 관해서 이론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신학적인 지식, 성경적인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전기, 자서전>을 통해서, 그를 아는 것과 같다.

책을 통해 그의 출생, 학력, 가정생활, 취미 등 저자에 관해 정보를 아는 것이다.


어떤 한국분이, 이스라엘에 가서, 현지인들의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자기가 오바마 대통령을 안다’고 했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한국분은 ‘오바마에 관해서’ 아는 것이고,

그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바마를 개인적으로 친분관계로 아는’ 줄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성경을 읽지만,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서 지식을 얻을 수도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개인적, 인격적으로 친밀하게 알아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1백번 읽어서,

그 속에 나와 있는 내용을 달달 외우다시피 안다고 해서,

그게 하나님을 아는 것 knowing God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knowing about God 것이다.

즉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어려운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면,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예수를 제일 잘 믿는다는 얘기인데.. 그렇지 않다.


문제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 knowing about God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God으로 착각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게 바로 바리새인들의 문제였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을 많이 연구하고,

자기들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게 하나님을 아는 게 아니니까,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식으로 종종 말씀하셨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잘못 이해하게 되면,

저는 그것을 ‘율법주의’라고 부르는데, 그 결과는 매우 참담하다. 정말 심각하다.


그러한 상태로 우리는, 절대로 올바른 신앙생활 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도 바리새인의 신앙을 답습하는 것이다.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그 속에 생명은 전혀 없을 수 있다.


▲‘죽은 정통주의’

로이드 존스의 책 <부흥>에 보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 성경의 지식을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잘못 이해하는 것을 <죽은 정통주의>라고.. 그는 지적했다.


‘죽은 정통주의’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 그것은 옳다.


그러나 문제는, 인격이신 하나님보다

(하나님에 관한) 교리를.. 더 중요시 여기는 잘못된 태도이다.

 

인격이신 하나님이 서야 할 자리, 그 경배를 받으실 자리에,

교리가 대신 서서, 경배를 받는 것이다.

 

인격이신 하나님과 교제를,

교리적인 지식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것이 ‘죽은 정통주의’인 것이다.


이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복음적인 사람들, 정통적인 사람들이,

흔히 걸려 넘어지는.. 매우 크나큰 함정이 된다.


자기가 정통신앙적이면서도, 죽어있을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우리가 교리에만 머물고, 어떤 교리적 신학을 수립, 변증, 연구하는 데만 몰두하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사귐, 만남을 잃어버릴 때이다.


교리는.. 그 인격을 ‘알게’ 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인도해주는 수단인데,

교리하나님이 앉으셔야 할 자리에, 대신 앉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교리적으로는 뛰어난데,

인격이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없는, 어떠한 친밀함도 없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뛰어난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죽은 정통주의자가 될 수 있다.


신학적으로는 정통인데.. 그 심령이 싸늘하게 식어있는 것이다.

생명은.. 하나님 그 분을 인격적으로 ‘아는데’ 있지,

주님에 관한 성경적인 지식을, 이론적으로 많이 아는데 있지 않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는, <죽은 정통주의>에 관하여

‘사실상 죽은 정통주의는, 이단만큼 나쁘다.’고 말했다.


왜 이단만큼 나쁘냐 하면, 그러한 죽은 정통은,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totally orthodox, totally useless!’ 라는 말을 자주 쓰셨다.

‘전적으로 정통인데, 전적으로 쓸모없다!’는 뜻이다.


    ※이단이나 불신자는, 안 믿어서, 구원을 못 받지만,

       죽은 정통은.. 종교 생활 십 수 년 하면서도.. 바리새인처럼 정죄를 받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는, 그가 살았던 시대, 즉 50년 전 영국교회의

가장 근본적으로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이 시대의 우리나라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문제도.. <죽은 정통주의>라고 생각한다.

신학적으로 정통, 정통하는데.. 그 심령이 싸늘하게 식어 있고, 거의 죽은 상태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바리새인의 종교이다.


▲2. 그럼 하나님을 아는 것 knowing God 이란?

이것은 하나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다르다.

하나님과 개인적, 인격적, 친밀한 관계로 아는 것이다.


나는 내 배우자를 인격적으로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내 배우자를 알지만, 내 배우자에 ‘관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즉, 하나님을 아는 것이란,

그 분과 개인적 사귐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그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과 개인적 교제를 통해,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이 두려우신 분이시고,

-하나님이 한없이 은혜로우시고 사랑스러우시고

-하나님은 참으로 언약하시고, 그 언약을 철저히 지키시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그 백성의 아바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심.. 등을

하나씩 하나씩 성령의 조명에 의해, 체험적으로 깨달아가는 것을 뜻한다.


여러분,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대한 그들의 열심히 얼마나 뛰어났느냐 하면,

그들이 자기들은 성경에 의지해서 산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예수님도, 그들이 말하는 것은 지키라‘고 인정하셨을 만큼

그들의 성경에 대한 지식적인 열정은 뛰어났다.

마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서기관들은, 바리새인 중에서 나온 자들인데,

서기관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모세오경을 통째로 암송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모세오경을 암송하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진정 ‘아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낱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 생각해서 (사실은 착각)

자기들이야말로 정말 빛이요, 소경의 인도자요, 선생(랍비)이라 자부했지만, 롬2:19

주님은 그들이 소경이요, 우맹들이라고 오히려 질타하셨던 것이다.


하나님을 아예 모른다고 하면.. 하나님을 알려는 소망을 갖게 되는데

하나님을 지식으로 안다고 하니까.. 예수님을 쳐다보면서도.. 하나님을 오히려 핍박했던 것이다.


실제로 남유다가 망한 예레미야 시대에 보면

‘렘8:8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에게 율법이 있으니, 지혜롭다고 말하느냐?’


위 구절을 보면, 그 당시 최소한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은 율법을 알고 있으니까, 자신들이 지혜롭다고 자부했던 것을 볼 수 있다.


남유다가 멸망한 것은, 율법적인 지식이 없어서 멸망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God 이 없어서,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징계를 받아서, 바벨론에 멸망했던 것이다.


주제를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은 knowing about God 이 아니라, knowing God 이다.

즉 하나님에 관한 성경적 지식이나 교리를 배워서 아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개인적, 인격적인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죄를 철저히 미워하시고, 의를 철저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자기 자녀를,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돌보시듯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시고, 그의 형상으로 성장시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무엇보다, 성도들과 개인적 친밀한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  등 

내가 하나님의 성품을 하나씩 배워가고, 닮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 사람이 구원받고, 천국에 가는 것이지, (또한 여기서도 천국 생활을 한다.)

그저 지식만 갖고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그것을 장담할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이와 똑같은 상황에 있으면서도,

그 말(하나님을 안다)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면서도..

오래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잘 할 수도 있다.

이건 시간낭비요, 망하는 길인데도.. 그걸 못 깨닫는 것이다.

 


....................... 더 읽으실 분 .........................



◑ ‘하나님을 안다’는 말의 의미


<하나님을 안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모르면

본인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할 수 있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과 바리새인이다.

그들을 보면, 우리가 경각심을 갖게 되는데...


▲당시에 하나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유대인들

로마서는 서기 55년에 쓰여졌다.

예수님이 서기 30년 경에 사역하셨으니까, 불과 25년 후에 있었던 일이다.

롬2장에 보면, 그 당시 유대인들이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나와 있다.


롬2:17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19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이 구절을 보면,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이렇게 스스로 믿으니..’ 라고 말씀한다.

즉 ‘그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잘 기록하고 있다.


1) 그들은 자신들을 ‘유대인’이라 불렀다. :17

우리는 이 말을 들어도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그러나 유대인의 선민의식은 대단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율법을 받았으며, 할례를 행하고 안식일을 지키는 선민 유대인은,

   그 차별이.. 자유인이 노예를 차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고 한다.


2)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이 ‘율법 안에 있었다’고 믿었다.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19


자신들은 율법으로 교훈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들은 하나님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알고,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스스로 자부했다.


3)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영적으로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영적으로 어둠에 있는 자들을 위한 빛이요,

영적으로 어리석고 어린 아이들을 위한 교사요, 선생(랍비)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19~20

(그것이 착각이라고, 사도바울이 롬2장에서 설교한 것이다.)


▲구약 호세아 시절에, 망한 이유를 알면서도.. 자신들의 실상은 몰랐던 유대인들

만약 당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아십니까?’ 라고 물으면,

그 질문 자체가, 치욕을 안기는 질문이었다.

아마 질문자는, 뺨을 맞았을 것이다.

자기들이야말로 하나님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강하게 자부했기 때문이다.


그들 신약시대 유대인들은, 호4:6절을 잘 알았을 것이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어쩌면 당시 유대인들은, 이 구절(호4:6)을 가지고 설교를 많이 했을 것이다.

아마 이렇게 설교했을 것이다.


호세아 시절에 우리 조상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들의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당연히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핵심인데, 호4:6에 보면,

우리 조상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조상들처럼 망할 것입니다.


신약 당시 유대인들은 그렇게 설교하면서도,

자기들이 조상들과 똑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고 있다는 것은,

눈곱만큼도 생각화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누구보다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 유대인도, 조상들과 똑같다고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그들 유대인, 바리새인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은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말하였도다!’ 라고 하셨다.  마15:7, 막7:6


비슷하게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마13: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런 말씀은, 신약에 종종 나온다.

이 얘기는 수없이 말씀하셨다는 뜻이다.


호세아와 이사야는 같은 시대에 활동했다.

호세아 시대에 너희 조상들과 (호4:6,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상황)

지금 예수님 당시 너희가 정확하게 똑같은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너희도 똑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서, 망하고 있다’ .. 그 말이다.


바리새인 본인들은, ‘나는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라고 자부하는데,

예수님은, ‘너희가 이사야가 말한 소경이다’ ..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소경이요, 우맹’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마23:17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도 알았지만, 호6:4를 볼 때

눈이 가려지고, 귀가 가려져서,

그저 ‘지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


무서운 것은 이것이다.

영적 분별력이 사라지면, 뭐가 참다운 신앙인지 모른다.


그러면 자기는 ‘잘 믿고 있다’고 안심하다가.. 나중에 낭패를 당하게 된다.

뭐가 참다운 신앙인지 기준을 모르니까!


그렇게 영적 분별력이 가려져 있으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목이 터져라 외치셔도.. 전혀 못 알아듣는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사야가 너희에 대하여 잘 말하였도다.’고 하셨다. 마15:7 막7:6


이 말은, 이사야 시대나 그들의 시대나 신앙상태가 똑같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그러한 상태에 있는 그들에게

이사야서를 통해서 (혹은 호세아서를 통해서) 그들에게 집중적으로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들의 지식적인 신앙을 지적하셨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게 그 시대의 문제만 아니다. 매 시대의 문제요, 오늘날 우리의 문제다.



'분류 없음 > 201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0) 2012.04.10
하나님을 아는 지식 2  (0) 2012.04.09
안 계시는 듯 계시는 부활의 주님  (0) 2012.04.08
축적된 은혜  (0) 2012.04.06
환란을 당하는 것이 섬기는 길이다  (0) 2012.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