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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아는 지식 2

LNCK 2012. 4. 9. 18:00

◈하나님을 아는 지식 2        호4:6          설교 스크랩, 녹취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호4:6


하나님을 아는 지식 1 에 계속 이어지는 설교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하나님을 알기 위한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쓸데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성경적/교리적/신학적 지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위한 수단이 된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것을 <컵과 우유>에 비유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 - 컵

‘하나님을 아는 지식’ - 우유이다.


우리에게 영양분을 주는 것은 우유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리 크고 위대하고 사랑스러우셔도,

우유가 아무리 풍성하게 흘러넘쳐도

이 있어야, 그 우유를 퍼서 담을 수 있다. 우리가 마실 수 있다.

또는 이 너무 소꿉놀이 장난감처럼 작으면, 그 우유를 제대로 담을 수 없다.


우리의 교리적/성경적 지식이 너무 작거나 왜곡되어 있으면,

하나님을 올바로 알 수가 없다.


혹자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없이, 자기 체험에만 의존해서 신앙생활 하는데,

그런 사람은 쉽게 잘못된 신비주의로 빠지고 만다.

‘하나님을 잘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배우는 것도,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단이다.

목적지는, 그 수단을 통해, 결국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나마 <하나님에 관해 아는 지식>도 없을 수 있다.

우리나라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고사하고,

② ‘하나님에 관한 지식’도 없다는 것이다.


정말 예수 믿은 지 20년~30년이 된 직분자들 조차도,

가장 신앙의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하나님에 관한 올바른 교리적 지식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 그분들이 가진 지식은 뭐냐 하면,

어려서부터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서 배운

③‘교단적 전통’을 갖고서 신앙생활 한다.


가장 안 좋은 경우는,

④‘자기 생각, 자기 고정 관념’에 따라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이것이 뭔가 하면, 여러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선택적으로 믿는 것>이다.

이것은, 거의 미신 수준이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 이것이 사라지면

②<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강조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상당한 수준을 요한다.


그러면 ③‘교단적 전통’만을 주장하는 ‘외골수’가 되든지

제일 심한 경우는 ④담임목사의 개인적 신앙성향(자기 생각)이 교회를 이끌어간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경이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인격체이시고,

성경은.. 나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길잡이다.


성경을 열심히 읽고, 가르치고, 배우지만,

하나님을 모를 수도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말씀, 말씀’ 하면서도 .. 지식에만 머문다면 .. 슬픈 일이다.


▲제가 하나님을 체험한 knowing God 간증을 잠시 나누려고 한다.

저는 19살에, 다니던 교회에서 집사로 임명 받았다.

몇 년 후에, 폐가 나빠서, 방위(단기사병)로 복무했는데,

휴가 때, 제가 기도원에 올라갔다. 


그런데 그날, 평소에 하던 방언과는 달리, 제 입에서 ‘뜨거운 방언’이 나왔다.

마치 용암이 분출되어 나오는 것처럼,

갑자기 제 속에서 ‘뜨거운 방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고는 ‘방언 통역’처럼, 어떤 말씀이 제 마음에 떠오르는데.. (방언 통역이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느니라!’


저는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이래뵈도 19살에 집사된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에 불과했었다.

그 날 체험을 통해서,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인격적으로 알게 되었다.


증거가 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라면으로 겨우 끼니를 연명해야 할 만큼 가난했는데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깨달아지니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르면서.. 삶의 걱정이 모두 다 사라져버렸다.

재벌이 부럽지 않았고, 장관이 부럽지 않았다.

내가 가난해도, 배가 고파도, 라면을 먹어도.. 내 입에서 웃음과 찬송만 나왔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말한 대로

‘기독교인들의 문제 99%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라 했다. 이 말이 맞다.


정말 내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게 되고 나서 보니까,

내게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예수님의 사랑이 그것보다 더 컸다.

그 당시 약 10개월 동안, 그런 은혜가 내게 계속 지속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적용


▲이렇게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알고, 인격적 관계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

-하나님의 음성을 늘 듣고 따라간다.

 특별히 아침 기도시간에.. 하루 일과를 하나님과 의논한다.

 저녁기도 시간에는, 일과를 하나님과 함께 반추(되새김)한다.


-그리고 자기 죄를 늘 깨달으면서, 지속적으로 회개하는 삶을 생활화 한다.

 그래서 혹시 잘못을 범해도, 즉시 돌이킨다.


 반대로, 하나님과 개인적 인격적 관계가 없으면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 알면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한다.

 그러면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못한다.


※참고로,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면,

직통 계시 이단이라고 공격한다.


직통계시란,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 새로운 규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 새로운 진리

성경에 나와 있지 않는 새로운 도덕적인 명령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하며

전하는 것이 직통계시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개인적 교제’를 갖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 inner voice을 듣는 것’은 신앙생활의 필수인데

그것을 오히려 ‘직통 계시요, 이단’이라고까지 매도한다. 물론 음성을 잘못 들을 수는 있지만..

 

그러면서 자기가 ‘교리적인 신앙생활’ 하는 것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그렇게 형식적으로 ‘율법적인 신앙생활’ 하는 것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스스로 아예 ‘나는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가 없다’는 점을 자랑(?)하는지도 모른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영적 전쟁인데..

에베소 교회는, 우상숭배가 가득한 지역이었다.

그 도시 외곽에,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 신전’이 있었다.


그 도시에 얼마나 우상숭배가 가득했다는 증거는

바울이 전도한 후에, 마술 책을 불태웠는데, 그 가격이 은 5만이라고 했다. 행19:19


은 5만은 상당한 가격이다. 어림잡아 오늘날 30억이 넘는 돈이다.

어쨌든 많이 불태웠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마술책을 불태운 사람들 중에는, 신자들이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행19:18,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위 구절의 ‘믿은 사람들’

그 사건을 통해, 즉시로 믿은 사람도 되겠지만,

과거에 복음을 듣고, 이미 믿고 있었던 사람도 포함한다. 위 구절의 뉘앙스가 그렇다.


이렇게 당시 에베소 교회가 있었던 도시의 영적 분위기가,

마귀에게 심하게 억눌린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엡6장에서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며,

사도바울이 영적 전쟁을 강조했는데,

이것은 엡6장에 이르러서.. 막판에 강조한 것이 아니라,


에베소서 1장~6장 전체에서,

사도바울은 계속적으로 <영적 전쟁>을 강조했다는.. 어느 신학자의 주장이 있다.


이들에게 편지하면서 사도바울은,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라고 하면서

 

즉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knowing God 해야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

그 에베소 도시의 무시무시한 <영적 전쟁>의 환경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아데미의 우상도시 환경 속에서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권면하기를

‘하나님을 알아라! knowing God이 중요하다. 그래야 <영적 전쟁>에서 이긴다!’

서두 1장부터 강조했다는 것이다.


엡1: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 두 구절도, 1:17의 ‘하나님을 아는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처음에는 오히려 줄어든다.

부흥의 시대에는 언제나 이런 일이 일어난다.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길로 행하면, 정말 ‘하나님을 아는 신앙’을 진실하게 추구하면,


처음에는 교회가 오히려 어려워진다.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도리어 ‘이상한 교회’라는 평판을 듣는다.


그러나 계속 인내하며, 그게 진리니까,

그 길(하나님을 ‘아는’ 신앙)을 계속 추구하다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할 것이고,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하여, 거기로 다시 모여들 것이다.


    부흥이 일어나는 징조는,

    성도들이 ‘하나님을 진실로 아는 신앙’에 목말라 하는 것이다.


    그 영광을 사모하는 것이다.

    자신이 라오디게아 교인과 같이, 영적으로 비참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나에게는, 또한 우리 공동체에는

이런 ‘부흥의 징조(예비단계)’가 나타나고 있는가?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한 목마름과 갈망이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만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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