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설적인 하나님의 복 히11:3~10 설교일부스크랩
▲히11:3에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히11:3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無)에서 유(有)가 나왔다는 말이 됩니다.
성경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영(靈)이라고 하고, 보이는 세상을 육(肉)이라고 합니다.
그럼 영(靈)의 나라에서, 육(肉)에 나라가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 밖에 몰라요.
믿음을 받아야 육에서 영을 보는 안목이 생겨요.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이 아니고,
이 세상 밖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 라는 겁니다.
그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는 말은
‘보이는 육의 세상’은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본(本) 따서 만든 것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보이는 이 세상의 근본(根本)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보이는 이 세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말해주고자 하시는 겁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그림자이고.. 저 세상이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나안 땅’을 예를 들어서 말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문자적으로 들으면 가나안 땅은 젓과 꿀이 흐른다고 하였으니
그냥 씨만 뿌리면, 농사가 저절로 되어서 큰 풍년이 드는, 풍요롭고 기름진 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에덴동산 같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막상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보니, 그 땅은 산악지대였습니다.
젓과 꿀은 고사하고..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는 땅이었어요.
한마디로 농사를 짓고 살만 한 땅이 아니란 말입니다.
신명기 11장에서의 모세의 증거를 봅시다.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신11:10-12
모세가, 가나안 땅의 특징을, 애굽 땅과 비교해서 말해줍니다.
애굽은, 물이 많아서 가두어 두고, 마음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은 애굽과 반대로, 오아시스 근처만 물이 있고,
나머지 땅은, 하늘의 비만 쳐다보아야 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천수답입니다.
하나님이 권고하시는 땅이란.. 하나님이 농사를 지어주는 땅이란 뜻이에요.
그러므로 애굽처럼 자기 능력으로 농사짓는 사람 입장에선
하늘만 쳐다보고 산다는 것은, 속이 바짝 바짝 타 들어가는 곳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농사를 지어주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곳이란 말입니다.
▲가나안은, 한마디로, 하늘만 쳐다보고 사는 사람들만 살 수 있는 땅이에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면서
하나님이 준비한 하늘에 있는 본향(本鄕)을 바라보고 살았다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Abraham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 looking forward to이라. 히11:10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가나안에서,
하늘에 있는 본향을 그리며 살게 하였다고 합니다. 히11:9~10
본향(本鄕)이란.. 태어난 근원이란 말입니다.
그럼 가나안의 근원이 하늘에 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 가나안 땅은
천국을 가르쳐 주기 위한 시청각 교제였던 셈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청각 교제가, 역설적으로 주어졌다는 것이에요.
천국이.. 천국처럼 보이지 않고, 지옥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평지가 아니고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는 산악지대였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신11:11
거저 주어도.. 싫다고 손사래를 칠.. 그런 땅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지요.
‘생명으로 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협착하여 찾는 사람들이 없고
멸망으로 가는 문은 크고 그 길을 넓어서 찾는 이가 많다’고 했습니다. 마7:14
이는 생명의 길과, 죽음이 길이.. 역설적으로 놓여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죽음의 길’을 택하게 되지요.. 그게 ‘생명의 길’인줄 알고..
▲이게 비밀(秘密)이에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선 비밀mystery이고 역설paradox적으로 와 있어요.
육적으로는 이 땅에서 등 따습고 배부른 것이 복이지만,
영적으로는 복음으로 인하여 고난 받는 것이 복이에요.
즉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복이 아니고,
예수 때문에 버림당하는 것이 복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들을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사가랴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세상으로부터 미움 받고 버림당해서, 죽임 당하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마23:35
구약에선 선지자들이 그리하였고,
신약에선 12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랬어요.
뉘라서 이 비밀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로 난 자’ 외에는 알 수가 없어요.
성경은 이런 비밀스러운 하늘나라 이야기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 안주하지 못하게 하신다
▲히11장의 믿음에 사람들이.. 바로 천국을 역설적으로 살아온 증거자들이에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사람 중에
세상에서 연락하고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었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어요.
모두가 쫓기고 매 맞고 빼앗기는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이들을 일컬어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라고 합니다. 히12:1
우리는 이런 삶을 싫어해요.
도리어 이들과 반대로 잘 먹고 잘 살고자 합니다.
그 누구도, 예수 믿고 고난 받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믿음을 받지 않으면 역설적으로 대우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두는.. ‘육에 속한 자’는 알아보지 못하고
‘영에 속한 자’들만 알도록 해 놓으신 겁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는 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요12: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아니 어떻게 죽는 것이 영광입니까?
육적으로는 세상에 영웅호걸이 되어 세상을 호령 하여야 영광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힘없이 죽임 당하는 것이, 영광이 되느냐 이 말입니다.
그것도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어찌 영광이 된단 말입니까?
이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는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어요.
그러므로 성경 이야기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보이는 것이 허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이 실상이라는 것을 알고 살아요.
암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어요. 히11:3
역설적이긴 하지만, 이 세상은 천국을 말해주고자 하는 시청각 교제입니다.
이 세상은 허상이고, 실상은 하늘에 있어요.
그러니 세상에 안주하고자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에게 이 세상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기존의 세상에서 떠나도록.. 하는 모습으로 간섭하세요.
이는 세상 것을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요18:36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 분깃도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보이는 세상을 육(肉)이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세상을 영(靈)이라고 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靈)이고, 육(肉)은 무익하다고 하였어요. 요6:63
육(肉)은 후패하고 영(靈)은 영원해요.
이렇게 되면 보이는 이 세상은 가짜이고, 보이지 않는 세상이 진짜란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두 세계와, 두 가치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고,
땅의 기름진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보이는 세상의 육적 복이.. 복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상의 영적 복이.. 진정한 복이라고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땅의 복은.. 하늘의 복을 바라보게 하는 의미에서의 복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복으로.. 하늘에 신령한 복을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땅의 복을.. 복으로 붙잡고 있으면
땅의 복이.. 곧 하늘에 신령한 복을 가리는.. 미혹의 대상이 되고 말아요.
※구약의 복을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약의 복은, 신약의 복과 같습니다. 구약의 복은 그림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든다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늘에 가나안을 보아야지
그 땅을 바라보면 안 됩니다.
하늘에 있는 가나안은 잊고
이 세상에 속한 가나안을 보면 실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늘에 있는 본향을 그리며 살도록 인도 하신 겁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가나안 땅에서 하늘은 보지 못하고,
그 땅만 바라보다가 망해 버립니다.
땅만 바라보는 자들을, 가나안 땅이 토해내서, 이방에 객이 되게 만들어 버렸어요.
이건 모두가 보이는 땅만 바라보고 사는 자는
다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표적인 사건입니다.
이런 예표적인 사건을 통해서, 교훈을 얻는 자가 있고
얻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영(靈)에 속한 사람은 교훈을 얻고, 육(肉)에 속한 사람은 못 얻습니다.
◑늙으면 늙을수록.. 소망을 가진다
▲뉴스에 암 환자들이 평균으로 5년을 더 연장하여서 산다고 합니다.
암을 조기 발견하여 수술을 하면
수명을 몇 년 연장을 할 수 있다고 소망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5년, 10년을 더 산다고 해서.. 그게 소망일까요.
5년, 10년 후면 또 다시 죽음이라는 괴물을 만나요. 5년 세월, 금방 지나갑니다.
결국 그 괴물에게 잡아먹힙니다.
그러니 죽음은 안고 사는 인간은
아무리 오래 살려주어도 그건 연장이지 살려주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0년, 20년 더 살려 주는 것이 아니고
어차피 죽을 인생 더 살아서 무엇하겠느냐고 하면서.. 아주 죽여 버려요.
그래서 바울이 ‘병을 좀 고쳐 달라’고 하니.. 그만 되었다고 하잖아요.
예수님이 하는 일이 늘 이러해요.
살고자 하는 인간을.. 죽임으로써.. 죽음으로부터 해방을 시켜주십니다.
죽음을 모르는 인간으로 살려 내세요.
그러므로 죽음에 쫓기는 인간을.. 죽이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아주 역설적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에 쫓기는 인간은 죽이고
아예 죽음을 모르는 인간으로 다시 만들어버리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신다고 해요.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을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예수를 만나게 되면 새로운 인생길이 열리는데
이 새로운 인생길은.. 반드시 과거의 인생을 단절하면서.. 주어집니다.
즉 옛 사람을 죽이면서.. 주어진단 말입니다.
세례요한처럼 쇠하는 모습으로 주어져요.
그러므로 예수 안에선 옛 사람의 죽음은
새로운 사람으로서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이걸 알 때 죽음이 두렵지가 않아요.
옛 사람 입장에선 죽음은 끝인데.. 새로운 피조물 입장에선 죽음은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피조물은 더하는 인생살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면 살아갈수록 소망이 없어지지만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살아갈수록 소망이 점점 더 생겨납니다.
성도는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소망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겉 사람은 후패하여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후4:16
예수를 모르는 자들은,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으니, 후패해 가는 것이고,
예수 안에 있는 성도는, 천국으로 가는 열차를 타고 있으니,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 역설적 진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만이 알아요.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의 특징 중 하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니 성도는 나이가 들고 늙어갈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욱 더 새록 새록 드는 것입니다.
천국이 손에 집히듯이 현실화 되어 가는 겁니다.
이걸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하면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꾼다고 했어요.
병들고 늙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천국 문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늙고 병들수록.. 천국에 대한 꿈이 커져 가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성령이..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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