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본받은 아들, 요담 대하27:1~9 출처, 정리
▲서론/ 사람의 모방 본능
어떤 성격 급한 사람 A가 운전하고 가는데, 상습 차량 정체구간을 만났답니다.
언제쯤 정체가 풀리려나 짜증내고 있는 데, 앞서가던 택시가 샛길로 빠지더랍니다.
그래서 A는, ‘택시 기사는 길을 잘 알기 때문에 따라가면 되겠구나!’ 하고
열심히 쫓아갔답니다.
이것을 눈치 챈 다른 차량 몇 대가, A를 뒤따라 왔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쫓아가도, 길은 나오지 않고, 드디어 택시가 멈춰 서더랍니다.
그리고는 그 뒤를 따라서 줄줄이 멈춘 차들 앞에서 택시 기사가 나오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소변 좀 보려는데 왜 자꾸 따라와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를 쫓아가기를 좋아합니다. 모방 본능이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남유다의 11대 왕 요담에 대한 기록입니다.
유다 왕 20명의 왕 중에서 오늘 나오는
요담은 아버지를 의식적으로 거울삼아 산 사람 중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본문을 포함한 <역대기>는, 학사 에스라가 기록한 말씀인데
41년의 요담의 삶을 단 9절로 압축하여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요담에 대하여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또한 성경의 일차적 저자이신 성령님께서는, 요담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요담을 한 마디로 평가하자면, 아버지 웃시야를 모방하고 살았던 인물입니다.
이제 역사가 에스라가 평가하는, 요담에 대해, 한 번 자세히 살펴보실까요?
◑요담의 공 功
▲대하27:1, 요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25세라 예루살렘에서 16년 동안 다스리니라.
요담은, 웃시야의 아들로서, 웃시야를 뒤이은, 남유다의 10대 왕입니다.
그는 25세에 왕이 되어, 16년간 다스렸습니다. 27:8
그의 아버지 웃시야는 남유다에서 최대의 판도를 이루어 놓은 왕이었습니다.
☞축복의 유효기간 (웃시야에 관한 설교)
아버지 웃시야에 대하여 대하26:8절에서 이렇게 평가합니다.
‘암몬 사람들이 웃시야에게 조공을 바치매 웃시야가 매우 강성하여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졌더라.’
그런데 아들 요담은 어떻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점점 강성해졌다”고 합니다. 대하27:6
마치 우리나라 광개토왕-장수왕과 같은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광개토왕: 영토를 최대로 넓힌 고구려의 왕인데, 웃시야에 비교되고,
장수왕: 그의 아들인데, 요담에 비교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유다 나라는 그렇게 강력해질 만한, 좋은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나라와 비슷합니다. 강력한 여러 나라와 인접해 있었습니다.
서쪽 지중해 쪽으로는 강력한 블레셋이 있었고,
남쪽 홍해 쪽으로는 에돔 나라, 그리고 애굽
동쪽 사해 쪽으로는 모압, 암몬
북쪽으로는 앗수르가 있었습니다.
이런 국제 정치 속에서 아주 작은 나라인 유다가 점점 강성해 지는 것은 27:6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그는, 아버지가 이룬 최대의 판도를, 강력하게 지키어 냈습니다.
▲27:2,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요담은 부친 웃시야를 많이 의식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웃시야를 거울로 삼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결과를 6절에서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요담이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입니다.
우리도 우리 부모를 거울로 반영하여/모방하여 살아
점점 강하여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점점 강하여 지는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영적으로 점점 강하여 져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점점 강하여 지십시오.
사회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윤리적으로도 점점 강하여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의 원리, 사랑의 원리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그 삶을 잘 구현하려면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강력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기도의 능력으로 강하여져야 합니다.
▲27:2下,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지금 우리는 ‘요담이, 아버지 웃시야를 본받았다.. 그래서 잘 했다’를 살피고 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의 모습을 보십시오. 26:4절입니다.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다’고 기록합니다.
그러니까 아마샤-웃시야-요담
이렇게 3대가 좋은 점을 물려주고, 또 그대로 계승했다는 것입니다.
결혼할 때, 가문을 중요시 여기는 이유도,
할아버지-아버지를 보면.. 그 아들을 어느 정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부모를 거울로 삼아 부모의 장점을 본받되,
부모의 좋지 않은 단점은 철저히 관리하고 추방해야 합니다.
요담이 그것을 잘했습니다.
“그의 아버지와는 달리, 주의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27:2下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은 것입니다.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는, 광개토대왕에 비교될 만큼 국력을 떨친 왕입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실수로 망했는데,
“저가 강성하여 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을 하였습니다. 26:16
그의 아들, 요담 왕은, 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이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월권을 행하다가, 문둥병에 걸려, 왕실에서 쫓겨나 비참하게 죽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웃시야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한 것은,
할아버지 아마샤의 단점을 그대로 답습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 아마샤를 보십시오.
에돔 나라를 이기고 나라가 강력해졌습니다.
그러자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네가 에돔 사람을 쳤다고 하고 네 마음이 교만하여 자긍하도다” 25:19
결국 아마샤는 이 전쟁에서 패하고, 신하들의 모반으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요담의 아버지 웃시야는 이것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그대로 따르다가 (부전자전 되어 버렸지요)
자신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담은 달랐습니다. 그 고리를 끊어 버렸습니다.
철저하게 관리하고 악을 추방했습니다.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 들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분명한 선을 그은 것입니다. 확실하고 선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업에 성공하는데도 인생에 성공하는데도 이것이 있어야 합니다.
점점 강성해지려면 이 분명한 가치관과 기준이 있어야 합니다.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살면 지속적으로 강성할 수 없습니다.
▲27:3~4 그가 여호와의 전 윗문을 건축하고, 또 오벨 성벽을 많이 증축하고
유다 산중에 성읍들을 건축하며, 수풀 가운데에 견고한 진영들과 망대를 건축하고
‘여호와의 전 윗문을 건축’하였습니다.
요즈음 말하면 교회 확장하고 수리를 하는 것입니다.
또 ‘오벨 성을 많이 증축하였다’고 했습니다.
‘산중에 성읍을 건축’하였습니다.
산중 오지까지 도로를 만들고, 집을 개량하고, 도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수풀 가운데 견고한 영채와 망대를 건축했다’는 것은
전쟁에 대비한 전략 기지를 만든 것입니다.
요담은, 아버지가 이룩해 놓은 건축(경제 건설)을 기반으로 26:9~10
더 확장했습니다.
거기에다, 아버지가 하지 ‘않은’ 성전을 수리했습니다.
그래서 점점 강해졌습니다. 27:6
우리도, 요담처럼, 부모/부모 세대를 본받아
점점 강력해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문 주제
그래서 교회도 부흥되고, 나라도 발전하고, 가정도 더욱 부해지며
평강과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때에 미치지 못한 것까지 강력해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울이나 엘리 처럼 기우는 가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처럼 다윗처럼 점점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을 통해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우리 성도님들이 강력해졌으면 좋겠습니다.
▲27:5, 암몬 자손의 왕과 더불어 싸워 그들을 이겼더니
그 해에 암몬 자손이 은 1달란트와 밀 1만 고르와 보리 1만 고르를 바쳤고
제2년과 제3년에도 암몬 자손이 그와 같이 바쳤더라.
요담은 점점 강하여 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강력한 나라가 되었습니까?
암몬에게 조공을 받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제 정치를 좌지우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인접 국가(암몬 등)에는, 확실한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회사로 말하면 경쟁업체나 거래처와의 관계에서
주도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도 아버지의 좋은 점을 거울로 삼은 것입니다.
아버지 웃시야가 에돔 나라에 있는 엘롯(홍해 쪽)을 지배하고 항구를 건설하였는데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26:2
아버지가 블레셋 땅을 정복하여 지중해 해상권을 확보하였는데 그것을 지켰습니다. 26:6
(‘점점 강성해졌다’는 27:6에 근거해서, 아버지의 영토 확장을 ‘지켜냈다’고 봅니다.
아버지 때에 암몬을 쳐서, 조공을 바치게 하였는데 26:8
요담 역시 암몬으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조공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최고를 이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어려운 것은 최고를 지속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담 왕은 최고를 지속적으로 지켰습니다.
▲27:6,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
이렇게 강력한 나라가 되는 비결이 무엇이겠습니까?
요담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바른 길을 걸었으므로.. 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는 데 있습니다.
정도 정치를 하는 것입니다. 바른 정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도 경영을 하는 것입니다. 바른 경제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관이며 정치철학이었습니다.
빨리 가는 것이 성공이 아닙니다. 느리더라도 바르게 가는 것입니다.
편법을 쓰고 꾀를 부린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편법을 쓰고 꾀를 쓰면 순간적으로 강해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강해지지는 못합니다. 생명이 길지 못합니다.
요담이 재위했던 당시의 상황을 보십시오.
인접국 북이스라엘은 ‘말기 증세’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가장 강력한 왕 여로보암 2세가 죽고
스가랴가 왕이 되었으나, 6개월 만에 반역에 의해 살롬이 피살되었습니다.
살롬이 왕이 되었으나, 바로 1개월 만에 므나헴에게 피살되었고,
므나헴이 10년 재위하다가 죽고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지만 2년 만 재위하고,
베가에 의해 피살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이 본문의 주인공 요담이 살아 있는 동안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그가 어려서부터 듣고 보면서 자란 것입니다.
세상에는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때였습니다.
권력욕에 혈안이 되어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요담은, 세상을 모방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반면교사로 삼았습니다.
아버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어떻게 할 때
나라가 강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멋진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아버지의 단점을 최대한 억제하는 아주 멋진 아들이었습니다.
◑요담의 과 過
성경은 ‘요담이 점점 강성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앙은 분명한 가치 시스템입니다. 분명한 선이 있어야 합니다.
적당히 섞이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과 힘이 있는 자일수록, 더욱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점점 더 강해집니다.
요담은 ‘아버지 일’ 때문에, 다시는 비참한 길로 가지 않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철저하게 경계를 한 것입니다.
그것을 (역대기 저자 에스라에 의해) 성경은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담은 후대에 강력한 나라가 지속되지 못하는 화근을 남겼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반면교사, 타산지석으로 삼아,
아버지로부터 받은 좋은 것은 잘 개발하고, 아버지의 단점을 철저히 잘 차단했는데
자신의 인생을 창조적으로 개발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사악을 행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한 것입니다.
▲27:2, 요담이 그의 아버지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여호와의 성전에는 들어가지 아니하였고.. 백성은 여전히 부패하였더라.
나라가 부강해지고 경제가 활성화되자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부해지자 은혜를 받자, 강력해지자 백성들이 오히려 사악을 행하였습니다.
요담은 이것을 방치해 버린 것입니다.
직원 관리를 잘못하여 부도가 나게 한 사장과 같은 것입니다.
소극적인 면에서, 아버지의 잘못을 따라가지 않은 것은 잘했는데
적극적인 면에서, 백성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으로 강력하게 끌지 못한 것입니다.
창조적인 통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입니다.
모방은 모방에서 끝나지 말고, 창조로 이어져야 합니다.
백성들의 사악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왕하15:34-35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담이 그 부친 웃시야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을 제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오히려 그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요담은 오랜 동안 지속적으로 백성들에게 뿌리 박고 있는
산당 제사를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민간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이방신을 섬기는 관습을 제거하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랬을 것 같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부터 뿌리박고 있는 토착신앙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이었고 가나안 사람들은 농경사회 사람들입니다.
농사가 잘되려면 이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물신 숭배입니다.
구조적인 사회악입니다. 누구도 타파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도 이제까지 선왕들이 하지 못한 것 왜 내가 하냐고 방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적 파괴를 해야 했습니다.
민족 독립을 위해 독립 운동가는 죽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인류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지 않습니까?
스데반은 물꼬를 바꾸기 위해 순교했지 않습니까?
어떻게 희생 없이 거대한 물결이 바꾸어지겠습니까?
이것이 아들 때에 가서.. 나라가 기울어지는 원인이 됩니다.
결국 그것이 나중에는 나라를 바벨론에게 망하게 하는 이유가 되어 버립니다.
28장에 보십시오. 요담이 41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들 아하스가 12대 왕이 되었습니다. 아들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28:1~4절까지 읽어 보십시오. 온 땅이 우상 숭배로 붉게 물들어 버렸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5절 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버리니까, 하나님이 저들을 버려 버립니다.
그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여 버립니다.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여 버립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의 연합군이 쳐들어와
12만이 죽고, 20만이 포로가 되고 재물들을 노략질 당했습니다.
점점 강성한 나라가.. 아들 대에 이르러.. 패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왕이 되는 것은, 자신만 잘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삼을 때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라고
왕을 세운 것입니다. 요담왕은 이 일에 실패했습니다.
▲마치는 말
<성공한 왕, 실패한 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조선왕조 찬란한 500년 역사 속에서 살았다 간 27명의 왕을 연구하여
성공한 왕5명 실패한 왕 5명을 선정했습니다.
그는 성공한 왕으로 치밀한 국가 경영술을 보인 태종,
수평적 경영 마인드로 위대한 성취를 한 세종,
견제와 균형의 지배원리를 실행한 성종,
이상 국가 실현을 위해 인재를 잘 발탁한 선조,
공명정대하고 솔선수범의 리더십을 보인 정조를 꼽았습니다.
그가 말하는 성공한 왕들의 공통점은
국운이 성하고 쇠하는 근본 이치를 깨우치고 있었으며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기보다
신하와 백성들을 신임하며 국제 정치에서도 국익을 우선해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실패한 왕들은 절대 권력을 사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면서
정치를 자신의 권력연장 도구로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신앙인으로 말하면
권력을 주신 분의 목적에 맞게 잘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나의 사유물/사익으로 전락시켜
나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를 불렀습니까?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라고 불렀습니까?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에게 부여된 임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후에
우리 각자에게, 왕처럼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창1:28
아브라함을.. 자신 만 잘 먹고 잘 살라고 부른 것 아닙니다.
모세를 불러.. 자기만 행복하게 살라고 부른 것 아닙니다.
민족을 세우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 낚는 어부로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마28:18~20
이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 비록 적은 무리였지만, 세상을 변화시켰습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바꾸어 갔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문화, 학문 등 곳곳에 미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미치는 곳이 점점 강한 나라, 점점 강한 기업,
점점 강한 교회, 점점 강한 가정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아개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중요한 타인’이라고 하는데
그 중요한 타인의 첫 번째는 부모이고, 그 다음은 교사이고, 친구입니다.
부모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나는 비춰진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처럼
부모를 통해 우리는 나를 만들어 갑니다.
우리는 부모를 거울로 삼아 부모의 좋은 점을 반영하여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거울로 삼아 부모의 좋지 않은 점은 철저히 관리하고 추방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부모를 거울로 삼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들고
부모에게 없는 것을 더욱 창조적으로 자신을 개발하여
후손에게 예수님을 닮은 거울로 남겨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앞에서 정도를 행하였으므로 점점 강하여졌더라’는 말씀이 27:6
우리 이름에도 따라다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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