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보핫의 딸들 민27:1~11, 민36:1~12 11.06.26.설교스크랩
▶도입
제가 자랄 때는 온 국민이 함께 한 가지 일을 같이 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모내기철이라든가, 또는 홍수나 가뭄 등 천재지변이 오면
온 국민이 하나가 돼서 그것을 이기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하나가 된 국민 전체를 일컫는 용어가 있었는데
바로 ‘군관민(軍官民)’이었습니다.
그래서 뉴스를 들으면
“오늘도 군관민이 하나가 돼서 전국에서 모내기가 이어졌습니다”
또는 “오늘도 수해 복구를 위해 군관민이 혼연일체로 나섰습니다” 하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시민이, 일간지에 그 용어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습니다.
요지는, 어떻게 전 국민을 일컫는 말이 군관민이냐,
즉 어떻게 군인이 가장 먼저고 그 다음이 공무원이고 그 다음이 시민이냐,
이건 잘못됐다 ‘민관군(民官軍)’으로 해야 옳다 그랬습니다.
결국 그게 정부 안에서 얘기가 되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서,
‘군관민’이 ‘민관군’으로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신문이든 방송이든 모든 매체들도 ‘민관군’으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뭐 지금에 와서는 아예 그런 용어조차도 듣기 쉽지 않게 됐지만
당시로서는 그렇게 용어 하나 바뀐 것도 상당한 변화로 느껴졌었습니다.
▶이렇게 조그만 문제 제기 하나가
새로운 변화를 탄생케 했던 경우가, 역사에도 드물지 않게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고려 시대에,
사람이 늙으면 부모를 산 속에다 갖다 버리는 고려장(高麗葬)이
한 효자의 용감한 행동 때문에 없어졌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또 영국 의회의 의원이었던 윌리엄 윌버포스가
노예제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노예해방 법안을 매해 제출하고,
그게 계속 부결되다가 46년 만에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제기한 당사자들을 보면 참 훌륭하지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같이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했던 사람들이나,
단체들도 참 귀해 보입니다.
언제든 공동체는 이런 소수의 문제 제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다수의 조화 속에 성장하고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아예 문제제기가 없거나,
또는 문제제기가 있어도 다수의 마음이 닫혀져서 그냥 묵살하고 가는 경우입니다.
이런 공동체는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말씀이 바로 그런 말씀입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이, 소신 있게 문제를 제기했고,
그 타당성이 받아들여져서,
그게 이스라엘의 관습법으로 제정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수혜는 자기 당대 뿐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면서 해당자들에게 그대로 이어졌던 겁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은 얼마나 큰 일을 한 것입니까?
아주 보잘 것 없고 연약한 이들이 문제 제기를 하고,
그게 지도자에 의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허락이 떨어져서 법이 됩니다.
우리같이 크지 않고 한참 성장하려고 하는 공동체에
가장 빈번하게 있어야 될 일이 바로 이런 일입니다...
◑본문 설명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살았던 광야 생활의 체험수기입니다.
어느 날, 슬로브핫의 딸 다섯 자매가 모세를 찾아왔습니다.
얘기인즉, 자기 아버지가 광야에서 죽었으니
이제 가나안에 들어가면, 자기들은 어떻게 땅을 분배 받겠냐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들 없이 죽었다고, 그냥 자기 지파에서 그 이름이 삭제되면,
우리같이 딸만 있는 가정은 어떻게 살려는 거냐.. 따지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한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산을 상속 받으려면 꼭 아들을 낳아야만 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호주가 되는 법은 없었지요?
이스라엘은 더했습니다.
여자에게 유산을 상속해 주는 법은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아들을 낳아야만 했는데, 오늘 이 집도 보십시오.
아들 하나 낳으려고 낳다 보니까, 계속 딸만 다섯을 낳은 겁니다.
뭐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땅을 분배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가 죽은 겁니다.
한 마디로 딸 다섯은, 아무 것도 아닌 채로 공중에 붕 뜬 겁니다.
법적으로, 누구네 가족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이 딸들이 오늘 모세에게 와서 요구한 게 뭐냐?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면, 자기들 다섯 자매에게도 땅을 분배해 달라는 거예요.
이건 정말 이스라엘 남자들로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얼토당토 않은 얘기인 겁니다.
▶그런데 모세가 보니까, 이 다섯 자매는 보통 사람들이 아닌 겁니다.
지금 이 민수기 말씀이 증거될 때는
이스라엘이 아직 가나안에 도착도 안 했습니다.
지금 여기는 광야예요.
가나안은 보지도 못한 상태고, 아무도 거기 들어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오늘 이 다섯 딸들은, 이미 가나안을 얻은 것처럼 믿고,
땅 분배할 때 우리도 꼭 끼어 달라고 하는 겁니다.
정말 보통 믿음이 아닌 거예요.
백성들이 맨날 더워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지루해 죽겠다 아우성치면서
광야 생활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는 시점에,
이 다섯 딸들은, 미래를 꿈꾸고 모세에게 자기들 몫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세는 그 딸들이 믿음이 너무 기특해서
금기를 깨고, 자기가 쓴 이 책에다 그 이름을 기록합니다.
민27:1, “그의 딸들의 이름은 말라와 노아와 호글라와 밀가와 디르사라”
▶여러분! 우리들의 문제 해결법은 뭐지요?
우리는 항상 일이 다 벌어지고 난 다음에 뒷북 치지요?
가나안에 들어가고 나서 땅을 다 분배하고 보니까
“어, 우리 땅이 없네. 우리도 땅 주세요” 그렇게 억지 부리는 식입니다.
그런데 이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게 아닙니다.
지금 상황을 보세요.
지금 모든 백성들의 공통 관심사요 당면한 문제는
어떻게 이 광야에서 살아남을까 다들 그 문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의 문제,
즉 미래의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겁니다.
모세가 놀란 거예요.
“미래의 땅 분배할 때 우리 땅도 주세요”, 웬만한 남자들도 이런 얘기 못합니다.
이 딸들과 꼭 맞는 성경구절이 뭐지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히11:1 말씀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즉 바라는 것들을 실상같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 같이 여기는 겁니다.
이게 믿음입니다.
“가나안 땅은 꼭 남자만의 땅이 아니다. 살아 있는 사람만의 땅이 아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면 우리에게도 반드시 땅이 주어져야 하고,
우리는 바로 그런 하나님을 믿는다”
슬로브핫의 딸들은 바로 이런 하나님을 믿었던 겁니다.
▶더군다나 지금 이 딸들이 어디서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요?
민27:2, “그들이 회막 문에서 모세와 제사장 엘르아살과 지휘관들과 온 회중 앞에 서서 이르되”
우와! 정말 대단하지요?
회막 문 앞에서 나라의 온갖 거물급 인사들과 백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당당하게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들입니까?
여러분!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게 이런 믿음입니다.
“네가 밟는 땅을 다 너에게 주마!”
이게 왜 여호수아와 남자들에게만 한 약속이겠어요?
말씀을 내 것으로 붙잡으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 슬로브핫의 딸들의 믿음은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믿음인 겁니다.
◑적용 / 언제나 열린 마음으로
▶1. 단순한 믿음
지금부터 100년 전, 50년 전 설교를 읽어보면 절대 현란하지 않습니다.
한 줄 읽고 ‘이대로 삽시다!’ 그럽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설득할까, 어떻게 하면 성도들을 재미있게 할까?’
그래서 예화도 넣고 복잡하게 설교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신앙 따로, 생활 따로’가 되기 쉬운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주신 것을 단순하게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슬로브핫의 딸들은 여느 남자는 물론
모세조차도 생각 못한 일들을 가지고 담대히 나왔습니다.
사실, 살다보면 마음속에 ‘이건 아니지!’ 하는 문제가 한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조용히 있는 게 미덕이지’ 하고 번번이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 가운데, 공동체와 역사의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이 잘한 것은,
자기들이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옳다 생각하면, 그것을 얘기하고,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생각이면, 그냥 단순하게 믿고 나아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힘이 생기는 때는 복잡할 때가 아니라 단순할 때입니다.
그 단순함을 반복 실행할 때, 거기에 강력한 힘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2. 감동을 받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남자 여자를 떠나서, 그리고 젊고 늙고를 떠나서
어떤 때는 문제 제기를 하라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충동질시킬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것이 있으면.. 일단 순종해야 합니다.
그게 혹 자기만의 생각이라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사람들이 검증해 주면 되는 것이고,
마음에 불일 듯 어떤 생각이 간절해지면.. 그건 제시해야 합니다.
공익을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자기를 위해서라기보다
모든 사람들과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입니다.
더욱이 그게 순수하고 단순한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면
순종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죄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불순종 하는 사람에겐, ‘선지자적 마인드’를 거두어 가십니다.
▶3. 성숙한 반응
오늘 이렇게 문제 제기를 한 슬로브핫의 딸들에게
모세와 지도자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제가 1997년도에 필리핀에 단기선교를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참석하셨던 목사님들이 다같이 안수기도를 하게 됐습니다.
사회를 보시는 목사님이, 모든 목사님들을 강단 앞쪽으로 불러냈습니다.
안수를 시키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여자 목사님도 한 분이 계셨습니다.
당연히 나가셨지요.
그런데 그 사회 목사님이 그 여자 목사님을 향해
“아! 당신은 안 나오셔도 됩니다” 그렇게 말해 버린 겁니다.
그 여자 목사님은 물론 그 여자 목사님을 따라 갔던 성도들이
“이런 경우가 어디 있냐!” 그러면서 다들 분을 내면서 퇴장했습니다.
여자 목사님을, 목사님으로 인정하지 않은 거지요.
6박 7일 동안 선교를 잘해 놓고
마지막 날 모임을 은혜롭지 않게, 정말 난장판 비슷하게 끝낸 겁니다.
일부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인식은, 지금도 이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더 보수적인 이스라엘은 어땠을까요?
그것도 현대가 아닌 아득한 옛날이야기입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여자들이 나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입니다.
모세 또한 남자이고 더군다나 여자는 회막 문 앞에는 얼씬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슬로브핫의 딸들은 그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들 생각을 밝힌 겁니다.
모세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아뢰니라” :5
모세는 보통 남자들이 갖고 있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겁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기도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아 Ego가 깨지지 않은 겁니다.
자아가 깨진 사람은 다윗처럼 항상 하나님께 묻고 시작합니다.
삼하 2장에 보면, 사울왕이 죽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럼 다윗으로서는 당연히 자기가 왕이 되는 것 아니예요?
그리고 지금 이스라엘로서는 다윗 외에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뻔한 사실인데도 묻잖아요?
‘내가 유다로 올라가도 되겠습니까?’
‘올라가라’,
‘어느 땅으로 갈까요?’
‘헤브론으로 가라.’
마치 어린애같이 하나 하나 묻습니다.
Ego가 완전히 깨진 사람입니다.
▶4. 이스라엘 공동체, 새로운 길을 열다.
결국 하나님이 답을 내어 주셨습니다.
‘슬로보핫의 딸들의 말이 옳다’ :7
그때부터 (집안에 남자가 없는 경우) 여자들도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거예요.
모세는 아주 중요한 시기에,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을 연 채로 하나님께 묻고는 새 길을 텄습니다.
이런 문제 제기와 긍정적 수용은
개인 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시스템화하고 발전시키는 동력이 됩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일단 하나님이 내려주신 답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버지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받게 하되
그들의 아버지의 기업을 그들에게 돌릴지니라.” :6~:7
▶5. 규정은 중간에 수정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단 한 번 규정한 것으로 완성된 게 아닙니다.
민수기 36장에 가면, 이 제도에 또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여기서 결정한 것은,
아버지가 아들 없이 죽으면 딸들에게 땅을 물려주고…이게 1순위입니다.
그 다음에 딸들도 없으면 죽은 사람의 형제에게 물려주고…이게 2순위입니다.
그 형제도 없으면 사촌들에게 .. 그렇게 죽죽 하위 순위로 내려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 놨는데 조금 지나다 보니까 새로운 문제가 생긴 거예요.
딸들에게 유산을 상속해줬는데, 이 딸들이 다른 지파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땅을 갖고 가야 되나, 어쩌나?’ 하는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새 규정을 세웠습니다.
‘유산을 받은 딸은, 반드시 같은 지파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하는 규정을 세운 겁니다. 민36:1~7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규정이란 것은 계속 바뀝니다.
하나님은 한 번에 완성된 그림을 주실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별로 없고,
밑그림(스케치)만 주실 때가 더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게 뭘까요?
서로 합의하는 겁니다.
성경과 원칙만 빼 놓고는, 뭐든지 변화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러다 보면 당연히 문제가 생기지요?
그럼 개선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겁니다.
처음에 “이렇게 하자!” 한 것은 약속이 아니라, 수렴입니다.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처음 정해놨다고 해서, 그 스케치를 믿고 밀어 붙이면 되겠어요?
그런데 수정이 불가피할 때가 있습니다.
건물 지을 때도, 꼭 설계도대로 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중간에 설계 변경을 해야 되는 때도 있는 겁니다.
과정 가운데도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면 기도하는 가운데 수정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한꺼번에 정답을 주시는 게 아닙니다.
수정하고, 보완하고, 고쳐가는 과정 속에, 또 여러 은혜가 있습니다.
민27:8~10절은 슬로브핫의 딸들이 들고 나온 문제 때문에 생긴 규정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중간에 민36:1~12절에서 다시 수정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공동체는 점점 더 성숙해져 가고
시스템화되어 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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