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필자 바룩 렘45:1~5 출처, 편집
◑서론
▶예레미야 선지자의 공적인 예언은 렘44장으로 끝을 맺었고,
45장부터는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주권을
렘45장에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서기관 바룩에게 기록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6장부터 51장 까지는 열방의 나라에게 대한 심판을 선포하시고
마지막 52장에서는 다시 한 번 남유다의 마지막을 언급하면서
예레미야서는 끝을 맺습니다.
◑렘45:1~5 대필자 바룩 에게 주신 메시지
▶1절, 남유다의 왕 여호야김 4년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모든 예언의 말씀을 바룩에게 기록하도록 하였습니다.
45: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넷째 해에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이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니라.
바룩의 대필 작업은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첫 번째 기록한 말씀은 여호야김 왕에 의해 불태워졌기 때문에 렘36:23
두 번에 걸쳐 기록하였고, 그 말씀을 백성들 앞에서 낭독까지 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룩이 기록하던 그 때에, 하나님의 위로가 바룩에게 주어졌는데
그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3절, 서기관 바룩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을 대필하면서
남유다가 당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영혼의 고통으로 평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고 3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45:3, 화로다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을 더하셨으니
나는 나의 탄식으로 피곤하여 평안을 찾지 못하도다.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 비록 대필자인 바룩이라도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지 깨닫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도 다를 바 없습니다.
세상의 심판의 메시지를 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적으로 고통을 주는지 모릅니다.
듣기 좋은 소리 못해서,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찌 합니까?
예레미야나 바룩이 받은 사명은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기 위해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육적으로 영적으로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전해야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사명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명을 받은 자는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며 전해야 할 것입니다.
왜 감사해야 합니까?
바룩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위로를 받을 것이므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바룩에게 3가지로 위로의 말씀을 주셨는데
이 위로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4절, 첫째는 바룩에게,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45:4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건축자가 건물을 세우기도 하고 헐기도 하듯이,
농부가 나무를 심기도 하고 뽑아버리기도 하듯이
하나님은 온 땅의 나라들을 그 뜻에 따라 세우기도 하시고, 헐어버리기도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손에 세상 나라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입니다.
그 어떤 세상 권력자도, 그 어떤 누구도 이 주권 앞에 “왜 이렇게 하십니까?”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세우셨지만
그들이 거역하고 배반하였으므로 이제 헐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바룩은 남유다의 멸망을 이러한 관점에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남유다의 멸망은 강대국인 바벨론을 통헤서 이루어질 것이나
이 모든 일의 주체는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바룩은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두려운 것이지만, 완전한 절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는 가운데
심판을 받아들이고, 다시 회복될 날이 올 것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대필자 바룩의 특권이요, 축복은
자신이 하는 일이 ‘진리를 전한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벨론의 위용’만 생각했지,
그 이면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무지했을 것입니다.
그 무지한 백성들에게
‘진리를 선포하고, 하나님의 뜻을 대언(대필)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룩 자신의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마라톤 경기가 생겨난 계기가,
주전490년경,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쟁에서 ‘아테네가 이겼다’는 승전보를
메신저(필리피데스)가 42km를 단숨에 달려와서, 아테네 시민들에게 전하고
그 자리에서 숨져 죽은 사건지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메신저의 축복이요, 특권’인 것입니다.
바로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주는 사명’ .. 그 자체가 축복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레미야와 같은 대언자, 바룩과 같은 대필자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비진리, 유사진리’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언자가 없고, 대필자가 없으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땅에서 숨겨지고, 가려질 것입니다.
▶5절, 둘째는 바룩에게 개인의 꿈을 포기하라고 하셨습니다.
45:5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바룩은 서기관으로서 학식이 많았고, 유력한 집안에서 자라면서,
자신의 나름대로 포부와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남유다의 멸망 받는다는 말씀 앞에, 바룩은 자신의 미래가 암담했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바룩에게, 이제 개인의 꿈을 위해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역사를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사사로운 개인의 소원이나 계획을 포기하고
더 큰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5절b. 셋째는 바룩의 안전을 지켜주신다고 하셨습니다.
45:5b “보라 내가 모든 육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너만은 내가 보호하여,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목숨만은 건져 주겠다. 나 주의 말이다.'"
서두에 예레미야에게도 하나님은 보호의 약속을 하셨습니다. 1:8등
대필자인 바룩에게도 하나님은 보호의 약속을 주신 것입니다.
보통 선지자의 특성 중 하나가, <강한 핍박 그러나 강한 보호>
strong persecution, strong protection 이라고 말합니다.
바룩에게도 하나님은 ‘강한/남다른 보호’를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의 대언자/대필자들에게도, 하나님은 똑같은 약속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룩에게 꿈을 포기하게 하시고 어떤 큰 일을 하게 하셨습니까?
예언의 말씀을 기록케 하는 큰 일도 하게 하셨지만
더욱 큰 일은 훗 날에 예레미야가 애굽에서 순교한 후에
바룩은 바벨론 땅 까지 가서
자신의 민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적용
▶1. 하나님은 숨은 사명자들을, 개인적으로 알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모양의 사람을 부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는,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본문은 대필자 바룩에 관한 말씀입니다.
대필자는 .. 마치 하수인이나 시다바리처럼 .. 심부름이나 하는
하찮은 인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직접 지목하여, 예언의 말씀을 주실 만큼
바룩은,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어디 대필자뿐이겠습니까.
묵묵히 청소하시는 분, 묵묵히 ‘밥 퍼’ 봉사하시는 분,
묵묵히 장애우 돕는 사역 등
오늘날에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는 못하고,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하지만,
(바룩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필한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대신 전하고,
하나님의 관심을 대신 전달하는.. 수많은 봉사자들이 계십니다.
오늘날 ‘하나님 나라를 떠받치는 근간’은.. 그 숨은 사명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2. 사명자라면.. 너무 대사를 경영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5, 네가 이제 큰일을 찾고 있느냐? 그만 두어라
과거에 개역성경에는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
고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오랜 전통과 습관적으로
‘큰 일’을 하는 사람이.. 신앙생활 잘 한 사람이요,
‘큰 일’을 못 하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간증을 할 때도..
사업에 성공하든지, 관직에 오르든지, 금메달을 따든지,
하다못해 연예인이 되어서 인기라도 얻어야.. ‘간증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세속화에 그런 ‘성공사례 간증’이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큰 일大事’을 경영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신 자기 사명’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큰 일’의 유혹이 있을까봐
하나님은 바룩에게 ‘대사를 경영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늦어도 40세가 될 때까지는
자기 사명, 자기 천직, 돈벌이에 관계없이 할 수 있는 자기 일을 찾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돈까지 많이 벌면, 더 좋겠지만요)
바룩은 어쨌든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자기 일)을 받았고,
-그 일에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본문성경에는 자세한 설명이 안 나오지만
사람이 ‘자기 사명/자기 천직’을 찾으려면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길게는 몇 년 동안을)
그 문제에 대해 전혀 기도하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쉽게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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