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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가실 때, 방향성이 있다

LNCK 2012. 6. 28. 20:07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가실 때, 방향성이 있다.     출40장      12.06.24.설교녹취


 

▲문제 제기/ 하나님은 어떻게 나를 인도해 가시나?

가끔 제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여쭈어보는 질문이 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제 삶을 인도해오셨는데,

어떤 원칙을 가지고서, 어떤 목적을 향해서, 저를 인도해 오셨습니까?’ 이다.

 

이렇게 기도하며 여쭈어 볼 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해 가시는 어떤 일관된 방향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저 무턱대고, 무작정 주먹구구식으로,

또는 임기응변 식으로 그때 그때, 우리를 인도하지 않으신다. 

 

    특별히 성도님들 가정에, 어려운 일을 만나서, 그 섭리가 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

    ‘하나님, 저 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시려고,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이렇게 기도하며 물어볼 때가 참 많다.

    그때도..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가시는 분명한 원칙이 있으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 내 앞에 길들이 열려지지 않고,

또 내가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을 때,

그때 우리는 문득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고 했는데,

내 삶이 왜 이토록 어렵고 힘들까?' 하는 의문울 품을 때가 많다.


<오늘날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인도해 가실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본문 출40장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1. 하나님은 나와 <동행하시면서> 인도해 가신다.


▲성막을 통해, 광야 길을 동행해 주셨다.

본문에, 그런 의문을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일하게 가졌을 것이다.

그들은 노예로 430년을 살아왔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그들은 노예상태에서 벗어나서, 광야로 나와서 시내산에 도착했다.


막상 나오고 보니까, 그곳은 광야였다.

되돌아 갈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막연했다.

이 광야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민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너희 삶 속에, 내가 거할 처소를 만들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 동행하겠다!’  출40:1~2


그래서 모세가,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여호와의 말씀대로’라는 표현이

7번 정도 반복되어 나올 정도로, 성막을 정확하게 만들었다. 출40:16, 19, 23, 25, 27, 29, 32절


모세가 그 말씀대로 성막을 만들고 난 다음,

즉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고 난 다음,

그 성막 위에 구름이 덮히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이스라엘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이, 백성들을 인도해 가시는 것을, 백성들은 볼 수 있었다.

출40:38,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

 

▲동행하기 꺼려지는 광야길, 그러나 하나님은 동행해 주신다.

여러분,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다. 이정표도 없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곳이다.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 곳이다.


그리고 험한 짐승들이, 독성을 지닌 곤충들이 언제 어떻게 공격할지도 모른다.

먹을 양식도 구할 수 없고, 물도 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족한 곳이다.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도 구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이다.

그래서 광야(半사막)길은 목숨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한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꼭 가야될 사람들만이 가는 길이다.

그런데 누가, 나의 이 광야 길에 동행해 주겠는가?  오직 주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가야될 이 광야 길에

    그들과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좋은 것, 아름다운 것, 미래가 있는 곳, 길이 있고, 편한 길에

    혹시 나와 동행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 괴롭고 힘든 광야 길을.. 나와 함께 동행하기를 즐거워할 사람은, 거의 없다.


이스라엘은(나는), 반드시 이 광야를 거쳐서, 통과해서 가야한다.

그래야만 약속의 가나안 땅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기할 수 없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가다가 죽더라도,

아무도 나와 같이 가지 않더라도.. 그래서 혼자 가더라도.. 반드시 가야되는 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광야 길에 동행해 주시겠다는 것이다.

단순히 동행해 주시는 것만 아니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뿐 아니라,

아침과 저녁에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서 마시게 하면서 인도해 가시겠다는 것이다.


단, 하나님은, 편한 길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으시다.

우리 인생길이 광야 길로 걸어갈 때, 그 광야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동행하여주시고, 필요와 능력을 공급하셔서

그 길을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다고.. 그렇게 약속하셨다.


▲인생 길은, 광야 길.. 그렇지만 주님이 동행해 주신다.

여러분, 외롭고 거칠고 위험한 내 인생 여정 길에,

성막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동행하셨던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 삶에도 동일하게 함께 하신다.


오늘 우리 삶이 어떠한가?

우리가 마치 이 세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처럼,

환경에 붙잡혀 사는 사람처럼,

우리가 살다보면.. 무엇인가에 묶여서 산다는.. 힘겨운 느낌이 든다.


예수님을 만나서 우리가 자유함을 얻고, 믿음으로 살아야하지만..

문득 우리가 서 있는 위치가 ‘광야’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나와 함께 이 길에 동행해 줄 사람을 찾지 못하고.. 외롭고 힘들어한다.

함께 가는 가족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광야 길은, 각각 자기만의 길을 혼자 걸어야 하는 인생 길이다.

그래서 외롭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다가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까지 여러분이 걸어오신 길처럼,

우리 인생의 광야 길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동행해 주셨고,

길 잃지 않도록, 굶어죽지 않도록, 의복이 헤어지지 않도록,

그리고 배고프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동행해 주셨음을,

우리가 다시 돌아불 수 있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인생이 여전히 광야같은 길이라도,

이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동행해 주시고,

공급해 주시겠다는 신실한 약속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일화, ‘여보, 나와 동행해 주어서 고맙소!’

625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가장 가난하고 핍절하게 살 때

한 소년이 있었는데, 그는 13세때 그만 아버지를 갑자기 잃어버린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장이 되어서, 생계를 꾸려나갈 때

얼마 지나지 않아서, 14살 때, 소년은 축구공에 맞아서, 눈을 실명하게 된다.

아마 영양분이 부족하던 차에, 눈에 충격을 받으니.. 큰 이상이 온 것이다.


믿었던 아들이, 눈이 실명되었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충격 받아서,

그 해에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다.


남아있는 가족들은, 이제 누나 한 분이 있어서,

그가 돈을 벌어서 생계를 꾸리게 되었는데,

생계를 책임지던 누나마저도, 2년 만에 쓰러져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결국 시각장애인이 된 16세 소년과 그 동생들은, 세상에 버려지게 된다.


그에게 세상은 험란한 광야였다. 

그와 함께 가려고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었다.


친척 중에도, 아무도 그의 길에 동행해 주지 않았다.

바로 그때 맹아학교에 자원봉사 나왔던 숙대 다니던 여학생이

그 남동생과 함께 동행해 주었고, 그들은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

 

그냥 살아도 힘든 세상, 이 광야 길,

시각장애인이 함께 걷자고 할 때, 쉽게 동행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매는, 그와 함께 광야길을 걸어가겠노라고 약속하고 따라나섰다.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은혜가, 자매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이분들이 바로 강영우 박사와 석은옥 사모님이다. ☞ 석은옥 씨가 직접 말하는 감동 인생


강박사님은, 절망을 딛고 일어서서, 넉넉한 마음을 갖고서

비슷한 절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그 장애우들을 돕는 일에, 헌신했던 분이다.


강박사는 나중에 췌장암 선고를 받고, 소천하시기 전에,

지난날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3통의 편지를 남겼다.


한 통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해서 쓴 것인데, (또 한 통은, 자기 자녀들에게 남긴 편지였다.)

자기와 함께 동행해준, 자기 아내에게 남긴 편지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광야 같은 인생길, 자기는 어디로 가야 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그리고 함께 동행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때,

나와 함께 인생길을 동행하며 함께 광야길을 걸어와 준 여보,

그래서 나는 그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행복했다고..


이 광야 길을 잘 걸을 수 있도록, 나와 동행해준, 당신에게 정말 너무 감사하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누리고, 세상을 떠나간다고,

그래서 너무 고마웠다는 편지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다.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다 광야 길을 통과해 갈 때,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얼마나 편하게 그 길을 통과하느냐.. 하는

그런 ‘환경, 조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차피 걸어가야 할 이 광야 길에

‘누가’ 나와함께 동행해 주는가? ..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여러분, 우리 삶속에 때로는 인간적으로 외롭고, 어렵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하지만,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광야 길에, 나와 함께 동행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저와 여러분의 길을 잘 인도, 동행해 주셨다.

내가 지치고 힘들 때에도,

 

성막의 구름이 머문 것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임재, 우리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그래서 광야 길을 묵묵하게 걸어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나로 하여금 인생의 광야 길을 잘 걷도록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그 하나님을 붙드시고, 남은 광야 여정 길을

무사히, 행복하게 잘 동행하게 되시기를 축원 드린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명의 길>로 인도해 가신다.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명의 길로 인도하셨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하나님은, 나를 인도하실 때, 사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그저 무작정 나를 인도해 가시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성과 목적을 갖고서, 우리 각자를 인도해 가시는데,

그 두 번째 방향성은.. 하나님은 나를 <사명의 길>로 인도하신다.


▲출애굽 백성에게는 사명이 있었다. ↓ 그냥 무작정 데리고 나오지 않으셨다.


출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이후에,

시내산에 도착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오지 못할 곳에서

정말 독수리 어미가 새끼를 업고 나오듯이, 내가 너희를 여기까지 인도해 왔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19:4


너희들이 나를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내 계명에 순종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의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내가 그렇게 하겠다.

이 말에 동의하겠느냐?’ 라고 물으셨다.  출19:5~6 ↑


그때 백성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출19:8


▲사명 받은 자에겐, 훈련이 뒤따른다.

자 그런데 그 이후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즉,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백성으로, 그들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이 백성들을 훈련시켜 나가시는 과정을 보게 된다. 무려 40년 동안이나!


여러분, 이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이들 삶속에 배어있는 것은, 애굽에서 노예의 관점(근성)이 배여 있었다.

노예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노예의 습관이 배여있고,

노예의 마음을 갖고서, 노예와 같은 행동을 하면서 살고 있었다.


이것 가지고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을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백성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과 통로로 삼기 위하여,

불평과 원망으로, 즉 노예관점으로 가득찬 이들을.. 그때부터 훈련시켜 나가신다.


왜요? 이들이 사명자로 살 수 있도록

이들에게는 약속이 있고, 언약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삶을 복된 사명자의 삶으로 만들어가시는 일(훈련)들을

하나님이 인도해 가셨다.


이스라엘을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로 인도하셨는가? ↓

출40:36~37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백성들이 광야 길에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 언제 떠나느냐 하는 것은,

백성들의 상황과 환경에 달려 있지 않았다.

그들의 합리적인 사고와,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명석한 판단에 달려 있지 않았다.


어떤 때는, 상식 밖의 명령이라고 생각하지만,

떠나고, 정지하는 것에 대한 절대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었다.


때로는 ‘우리가 분명히 여기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판단이 섰을 때라도,

구름이 성막 위로 두둥실 떠오르면..

백성들은 각자 자기 천막을 걷어서, 구름 기둥의 인도를 따라 행진해야 했었다.

그것은 주권에 대한 ‘순종 훈련’이었다.


여러분, 요즘 혹시 다급하지 않으신가?

뭔가 빨리 떠나야 하고, 급하게 일을 서둘러 추진해야 하는데..

그 합리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동안 너무 오래 머물렀을 수도 있고,

-지금 있는 자리가, 더 있기에 불편할 수도 있고,

-지금 내가 떠나지 않으면..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모든 정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이 오늘 나를,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인도해 가시는데,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는 방향으로,

나를 인도해 가신다.


나의 합리성, 나의 의지, 나의 환경.. 그 일을 해야 하는 필연성..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시킬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아무리 망가지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성숙하는 길이다.


 

◑3. 사명자의 길에는 <훈련>이 따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훈련의 길>로 나를 인도하신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까지> 40년간 훈련시키신다.


신8:2~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40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40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래서 이 훈련을 통과한 성도는,

자기 상식적 판단으로.. 살지 않는다.

환경의 필연성에 끌려서.. 살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이끌림 받아서.. 살게 된다.


그래서 내 육신의 의지를 꺾어 놓으신다.

나의 인간적 계산을 못하게 만드신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쪽으로.. 내가 선택, 결정하게 된다.


여러분, 순종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비싸고, 성능이 뛰어난 차라도,

핸들과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의 핸들과 브레이크를, 훈련시키신다.


당신은 지금, 사명자이신가?

그건 ‘내 뜻대로 하지 않고, 주님 뜻대로 하는’ 훈련이 통과된 사람이다.

즉, 핸들 steering wheel과 브레이크가, 주님께 100% 붙잡힌 사람이다.

그게 아직 훈련되지 않았으면, 즉 내 뜻내로 움직인다면,

나는 아직 사명자는 아닌 것이다.


▲10세기 전후에, 이슬람 문화가 전세계로 확산되었는 이유는, 운송수단의 발달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낙타와 아랍 말>이 세계적으로 우수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랍 말>은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다.


이 아라비안 명마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예언자가, 정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명마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약 1백마리 정도의 명마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명마들을 훈련시키는데,

나팔을 짧게 불면, 말들이 멈춰서고,

나팔을 길게 불면, 달리는.. 그렇게 명마들을 훈련시켰다.


어느 훈련기간이 지난 다음에, 이 명마들을 모두 우리에 가두었다.

그 우리 근처에는 오아시스가 있었고, 그곳을 향해 개울물도 우리 근처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말들에게, 양식은 충분히 주면서도, 며칠 간 물은 전혀 먹이지 않았다.

말들은 목이 탔다.

그리고 근처에서 물 냄새가 막 나는데.. 우리에 갇혀 있으니.. 말들은 미칠 지경이었다.


어느 날, 주인은 우리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뿔나팔을 길게 불면서, 저 오아시스를 향해 달려가도록 명령했다.

목마른 말들은, 모두 미친 듯이, 물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 오아시스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에,

주인은 뒤에서 뿔나팔을 짧게 불었다. '멈춰서라'는 신호였다.


그 많은 말들 중에, 딱 4마리만 멈춰섰다고 한다.

그 4마리 말만 뽑아서, 서로 교배를 시키고,

그래서 <아라비아 명마>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여러분, 쓰임 받는 명마가 되려면,

주인의 명령에 순종해서,

가라면 가고.. 멈추라면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바로 그런 인생으로.. 점점 성숙해 간다.

사명자의 길을 제대로 가려면.. 전진멈춤이 분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출40:36~37에서 살펴보았듯이

광야 백성들은, 구름이 떠오르면.. 출발하고,

구름이 멈추면.. 멈추었다.

제멋대로 가거나, 제 마음대로 멈추지 않았다.


자기 상황이 아무리 급하고 절박해도,

주님이 싸인을 주시면 가고,

주님이 싸인을 주시지 않으면.. 계속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나는 주님의 싸인을 받고 움직이는가?

아니면 그저 내 뜻대로 움직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