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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어둠의 확보

LNCK 2012. 6. 28. 09:56

◈어둠의 확보!         막15:33~41           출처보기



▲어둠을 찾아야만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100년 전에 비해서, 지구 전체 위의 어두움의 절반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물이 없어서 지구의 초목지가 사막으로 변해가고 있듯이,

마찬가지로 어두움이 지구 위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어두운 시간대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어두운 면적이 10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는데, 이것은 큰일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빛 공해’라는 말을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국에서는 ‘빛 공해’에 대한 법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빛 공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인공조명이 필요 이상으로 많아지면서 인체가 해를 입게 되고,

자연현상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식물들은 밤낮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면서

정상적인 성장과정이 파괴되어버리고,

호숫가에 건물들이 들어서고 조명이 많아지면서, 호수에 홍조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거기에 있는 미생물들을 잡아먹는 일이 없어지게 됩니다.


철새들은 원래 밤에 날아갈 때, 달빛과 별빛을 보면서 방향을 정해서 날아가는데,

도시 전체가 하나의 발광체가 되면서 달빛과 별빛이 눈에서 희미하게 보이고

공중에 날던 새들이 도시 근처로 날아들게 됩니다.


이렇게 도시 속으로 들어오면서, 건물에 부딪히고 탑에 부딪히고 하면서

철새가 길을 잃게 됩니다.


야행성동물들은 사냥에 문제가 생기고, 짝짓기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생태계 전체에 교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도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인체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습니다.


멜라토닌은, 눈으로 시신경 망막에 빛이 차단될 때

인체에서 밤인 줄 알고 내보내는 호르몬인데,

이 멜라토닌이 수면을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멜라토닌은, 잠자는 동안에 인체에 들어오는 모든 균들을 이겨내는

저항력을 발휘하면서, 암세포까지도 잡아먹습니다.

그런데 멜라토닌이 분비되지 않으면.. 건강이 나빠지게 되지요.


그래서 조사해본 결과, 야간에 인공조명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이

인공조명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은 여성들에 비해서

무려 73%나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멜라토닌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을 때 우울증이 생기게 되고,

여러 가지 생체리듬이 깨어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빛 공해’로 인해, 가장 민감하게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천문학입니다.

천문대는 도시로부터 주변에 50~100km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있지 않으면

천체를 관측할 수가 없습니다.


도시에 있는 주황색 가로등 빛이 아주 결정타를 준다는 거예요.

아무리 예민한 관측 망원경을 갖다 놓아도,

도시 불빛이 한 3,40km 내에서 뿜어 나오고 있으면

별이 관측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위가 완전히 어두워야, 별이 보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을 찾아야 된다’는 것이,

의식이 깨어있는 나라 정부의 노력의 일환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두움을 찾아야 됩니다, 어두움을 확보해야 됩니다.


▲십자가를 믿는 것은, ‘그 어둠’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문은 2천 년 전에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십자가에 달려있는 시간이 총 6시간 동안이었는데,

그 중 절반인, 6시부터~ 9시까지 어두움이 임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정오부터 ~ 오후 3시까지입니다.


이 시간대는 적도에 가까운 중동지방에서

태양이 가장 강렬하게 빛을 발할 때를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골고다를 중심으로, 온 하늘에 어둠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요즘 의식이 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빛 공해’ 문제의 대책,

즉, <어둠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이미 2천 년 전에 <어둠을 확보>하신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십자가사건이라는 거예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십자가 위에 3시간 동안 드리워져 있는 이 어두움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어두움을 회복하는 것이고, 어두움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 어둠이 확보되지 않으면

천문대에서 도시의 불빛이 조금이라도 침입해 들어올 때 천체를 관측할 수 없듯이,

이 주님의 십자가 위에 드리워진 어둠이 내 마음에 확보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관측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 입으로 하나님을 불러도.. 마음에 하나님이 관측되지 않습니다.

즉, 그의 구원은 성립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이 관측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 위에 어둠이 필요하다는 얘기에요.


오늘날 십자가가 ‘값싼 은혜’로 치부되는 것은

십자가의 혜택, 그 은혜만 받아들이고,

십자가가 주는 어둠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십자가를 믿고, 십자가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십자가의 어둠도 같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의 마음에 <인공조명>이 가득 차 있어서, 십자가가 보이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어둠 가운데.. 환하게 보이는 것인데,

그 어둠을 방해하는 것이.. 바로 ‘인공조명’입니다.


도시의 가로등 불빛 때문에, 천문대가 관측을 할 수 없듯이,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인공조명’ 때문에, 십자가가 뚜렷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인공조명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삶은.. 에덴동산 때부터, 저주 받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그 저주 받은 인간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고,

자꾸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행복한 삶을 가꾸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공조명’입니다.


자꾸 인간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저주와 어둠을 몰아내는

가짜조명을 밝히는 것   *오직 예수님만이 참 빛이십니다.

그것이 바로 인공조명입니다.


▲삶은.. 저주 받은 상태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우리가 산다고 하는 것, 우리 삶의 자리, 이것의 특성이 뭡니까?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까?


바로 저주 받은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주의 특성은, 어두움입니다.


하나님과 끊어진 것이 저주이고, 저주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둠을 말합니다.

원래 자연인은, 아무리 선진국에 살고, 아무리 복지국가에서 상류층으로 살아도,

근본적으로 ‘어둠의 저주’ 속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지가 멀쩡하고, 대학을 나오고,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어도,

근본적으로 저주 속에 있는 사람이고, 저주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상태입니다.


그 어떤 성공이라도, 그 어떤 성취라도

모두가 다 ‘저주의 흑암’ 속에서 이루어져 있는.. 그런 성공이고 그런 성취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또 하나의 저주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 저주가 뭔지 아십니까?

희망이라는 것이에요, 희망!


희망이 바로.. 인간이 저주의 어둠을 몰아내려고.. 스스로 만들어낸 가짜 빛입니다.

인공조명이에요.

그게 바로 희망소원비전이라는 겁니다.


세상의 삶이 ‘저주’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어 살겠다는 인간의 노력이.. 바로 인공조명입니다.


그 인공조명 때문에.. 십자가/예수님/하나님이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건 ‘어둠 가운데서’ 똑바로 보이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산업혁명 이후,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서구에서는

교육, 의료, 과학, 민주화, 근대화의 발전이 급속도로 일어났습니다.

이제 교육을 잘 시키고,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나라가 선진국이 되면..

지상에 유토피아가 건설되는 줄 알았습니다.


19세기 말에, 인류역사가 6천년으로 끝난다고 보고, 후천년설이 유행했는데,

후천년설은 쉽게 말하면, 재림 전에 지상낙원(천년왕국)이 이 땅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거와 전혀 딴판인 세상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다가올 20세기는 모두 ‘지상낙원(유토피아)’을 꿈꾸었습니다.


그 꿈은.. 1,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무참히 박살나고 말았습니다.

유토피아/후천년설의 꿈은, ‘인공조명’이었습니다.

 

▲(예수가 빠진) 희망은.. 인공조명입니다.

비전ambition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주어진 인공조명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죄 값으로 내리신 이 저주의 어두움 속에서

그 어두움을 이기겠다고 인간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 희망이요, 비전인데,


그 희망의 내용들이 무엇입니까?

좋은 것, 좋다고 하는 것을 향한 희망입니다.


그건 다 세상에서 설정된 것입니다.

‘자, 돈이 좋다고 하자!’ 설정된 것이에요.

‘성공, 권력, 이런 모든 것들이 있으면 좋은 것이지!’ 이것도 설정된 것입니다.

진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을 갖기 전까지는, 만족이 없는 줄 알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간혹 그 돈과 성공을 획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근심이 더 많아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정’이요, ‘설정’이요, ‘미혹’이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희망이라고 하는 말을 송대관 씨가 노래로 불렀어요.

‘쨍하고 볕들 날 돌아온단다, 하고 또 하고 노력하면은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이게 인공조명이에요.


나도 언젠가는 돈 많이 벌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는 큰 집에서 살고 좋은 차 타고 다닐 것이라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는 백마 타고 온 기사와 결혼할 것이라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는 건강을 회복해서 하고 싶은 일 다 하며 살 것이라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는 서울대에 들어간 자식을 갖게 되는 부모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나도 언젠가는 크루즈 여행을 할 수 있는 여유로운 노년이 주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전부 이 세상에 갇혀있는 희망을 인공조명으로 밝히면서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저주의 어두움을.. 저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리신 것이 저주라면.. 그 저주도 받아들여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실 정도로,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의 상태는.. 저주 속으로 버려진 상태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거라면, 하나님이 저주를 내리셨다면

저주까지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되는 거죠.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고요)


그 어둠의 저주 속에서..

비로소 밝은 빛되신 십자가와 그리스도가

환하게 비치는 것입니다. 내게 밝히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이전에는 눈이 가려진 소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이전에는 파선한 배와 같았습니다. 내게 소망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상태에 놓여져야.. 십자가/구원/구세주가 밝히 보이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를 자기들이 극복하겠다고

스스로 인공조명을 만들어낸 거예요.

희망, 비전, 돈을 벌자, 성공하자.. 등입니다.

그 인공조명의 방해를 받아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전혀 관측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근본적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처럼,

완전히 파괴되어버리고 맙니다.


자기 스스로 설정한 인공조명 때문에,

생태계의 교란과 파괴로 인하여.. 스스로 자멸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분명히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내신 창조의 의도에 따르면

인간은, 삶이라는 것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게 아닙니다.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려면,

쉽게 말하면, 예수 믿고, 예수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가 처한 환경이 어떻든지.. 그는 행복한 삶을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결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남녀는.. 불행하게 됩니다.

‘결혼은 행복하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있다’ .. 이건 설정이고, 신기루입니다.


예수 안에서, 먼저 자기가 진리를 발견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런 남녀가 만나면.. 행복한 결혼이 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 이혼의 진짜 이유, 행복한 결혼 을 보세요!


인간은 원래 ‘행복한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닙니다.

재벌 집에서, 돌잔치로 수 백 억 주식을 선물 받았어도, 마찬가집니다.

성경은.. 인간은 원래 ‘저주 받은 세상’에 태어났다고 증거합니다.

‘세상은 원래 어둠’이라고 말합니다.


거기에다 더 큰 착각은,

내가 성공하고, 출세하면.. ‘행복한 세상’이 될 줄 압니다.

아닙니다. 


‘행복한 세상’이 되려면,

내가 먼저 ‘예수 믿고 거듭나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와 관련지어 말씀드리면)

그게 되려면, ‘세상은 어둠이고, 나도 어둠이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지식적으로 깨닫는게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신비하게 깨달아져야 합니다.

그런데 지식으로 배우는 것은, 신비하게 깨달아지는 역사를 아마 앞당길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심지어 교회에서까지

자꾸 ‘희망, 비전, 성공’을 거론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아닌

가짜 인공조명등을 자꾸 밝히고 있어서,

진리/구원으로 향해 가는 길이.. 관측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들 쨍 하고 해뜰 날을 기다리면서.. 불만에 차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쨍 하고 해뜰 날이 되면.. 행복할까요?

(그 집에 가서 가사도우미라도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아버지!

돈이라는 인공조명, 출세라는 인공조명, 인기라는 인공조명,

아름다운 결혼이라는 인공조명, 건강이라는 인공조명을 켜놓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혀 하나님을 관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모든 인공조명이 사라지고

십자가 위에 임했던 어두움이 내 마음을 차지하면서

그 어둠 속에서 하늘에 빛나는 아버지 하나님을 관측해낼 수 있게 하여 주시고,

관측된 하나님과 연합되는 복음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