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2~2003

신나는 세리장 3750

LNCK 2012. 8. 11. 19:02

◈신나는 세리장           눅19:1-10            출처보기


읽어보시면 신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건강하게 사느냐? 오래 사느냐?

얼마나 많은 소유와 함께 잘 사느냐?

이러한 삶의 목적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그렇지 않습니다.

새 사람 되고 은혜 받는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에 자유함을 얻으며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있어도 감사, 없어도 감사, 건강해도 감사, 질병 중에도 감사,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가리지 않고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로 살아가는 이 큰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전자의 삶은 만족이 없습니다.

본문의 삭개오처럼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더 높은 지위, 더 좋은 환경, 더 높은 권력..

이러한 삶은 신나는 삶이 아닙니다.

이 삶은 불평불만의 삶이요,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나그네의 길입니다.


긴장의 삶입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하여 늘 고민하며 걱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전자의 삶은 이기적입니다.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버림받은 우리 인간이 바로 이렇게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서

그 분의 품안에 안기면서, 그 분과 함께 이 세상을 바라보고

그 분과 함께 이 세상을 걸어가는 새로운 삶이.. 성도의 삶입니다.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창조자와 만나는 종교입니다.

그 분을 개인적/인격적으로 만남으로써(회심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것이 변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동생이 여러 명 있는데, 여동생들이 오빠/제 말을 잘 안 듣습니다.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잘해 주어도 불만이 많습니다.

자기들도 힘들겠지요.


그런데 하루는 여동생 방에 들어가 보았어요. 피아노 위에 메모지가 있었어요.

그것은 어젯밤 늦게 쓴 일기장이었는데, 애인을 만난 내용이 적혀 있었어요.


거기에는 한마디로 ‘나는 행복하다’라는 거예요. 나는 지금 천사를 만났다는 거예요.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라는 거예요.


여동생이 애인을 만난 후에, 우리 집에서의 모든 생활이 180도 바뀌었어요.

똑같은 집에서, 과거처럼 똑같이 오빠하고, 조카들과 살아가는데

전에는 불평불만이 많고, 말도 안 듣고 짜증을 내다가도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어요. 얼굴이 그렇게 기쁘고 밝을 수가 없어요.

만남이.. 계속해서 그의 삶에 기쁨을 주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주님과 만남을 가지고 살아갈 때, 나그네의 길이 피곤하지 않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살이가,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누구와 걸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공원도.. 혼자서 걸어가면 외롭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막 같은 칠흙 같은 어두운 길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어가면 행복한 것처럼...


우리 인간의 삶을 길이길이 인도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사랑의 목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이것은 환경이 주는 어떤 행복보다 더

이 세상의 물질이 주는 어떤 힘보다 더

세상 지위가 주는 힘보다 더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가장 힘차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송명희 시인을 여러분은 많이 알고 기억할 것입니다.

이 분은 부모로부터 이 땅에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입니다.

모든 몸이 국수같이 휘감기는 그런 팔 다리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냥 누워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삶은 짜증스런 삶이었습니다. 말은 더듬거리면서도 할 줄 아니까요.

항상 원망하며 불평하며 살았습니다. 부모 원망했습니다.


세상을 비관했습니다. 하나님을 제일 원망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태어나게 했습니까?’


16살, 그는 어머니 등에 업혀서 교회를 가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거든 저 좀 만나 주세요. 저를 제발 만나주세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당신을 믿을 수 있도록 나 좀 만나주세요.

너무나 눈물 흘리며 하나님 앞에 울며 매달렸습니다.

나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싫습니다. 죽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늘로부터 두루마리가 내려오면서

영어도 아니고, 한국어도 아닌 글이 적어 내려오는 거예요.


이것을 알려 주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계속해서 두루마리가 내려오고, 이것을 적어서 책을 내고,

전 세계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수십 개국에 번역이 되고,

수십만 부가 팔리게 되었어요.


그는 날마다 빛을 보았어요. 어두움은 떠나갔어요.

마음에 답답함은 떠나갔어요.

똑같은 송명희인데, 주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다음이 전혀 다른 거예요.


똑같은 삭개오인데,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다음이 전혀 다른 거예요.

기독교는 철학적인 종교가 아니에요. 감상적인 종교가 아니에요.

수양하는 교양 하는 종교가 아니에요. 기독교는 만남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과 창조자와 나와의 만남입니다. <회심 conversion>해야 합니다.


주님을 개인적,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면,

하루하루가 천국 같습니다.


견딜 수 없는 고통 짜증스러움이 있지만, 그에게는 다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삶의 불편함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보느냐 전혀 의식이 되지 않았습니다.


행복이 어디에서 옵니까? 주님과 만남에서 옵니다.

머리에서 지워버리려 잊어버리려 했던 것,

어두움의 세력 쓰레기통과 같이 복잡했던 머리가 다 청소되고,

마음에 환한 빛만 나를 주장하여, 기쁨과 소망을 넘치게 하십니다.


송명희 시인은 연희동에서 살았는데

집이 가난하여 방을 비워 달라고 하는데, 돈이 없어서 집세를 낼 수가 없었어요.

글을 썼지만, 그때까지 출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가난했습니다.)

20살 때 그는 하나님께 저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휠체어도 없습니다. 이제 가야할 집도 없습니다.

기쁨을 주신 것은 너무 감사한데.. 내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럴 때 또 하늘에서 두루마리가 내려 왔어요. 적어라 하는 거예요.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나중에 ‘공평하신 하나님’을 쓰라고 할 때, 그는,

‘아닙니다. 이 세상 공평하지 못합니다. 누구는 저렇게 편한데, 저는 이게 뭡니까?

그런데 어떻게 공평하다고 쓰라고 하십니까? 못 적겠습니다.’

 

그래도 적으라고 하셨고

오늘 이 노래가 복음성가의 히트곡이 되었어요.

 

그는, 여기 앉으신 여러분과 상상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주님을 만나면서 오늘날까지, 비록 몸은 여전히 불편해도

가장 큰 기쁨과 힘과 자유함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많은 사람처럼 이 세상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뛰어가야 하는 겁니까?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까?


거기에는 행복이 있고 축복이 있는 줄 알고 뛰고 걷다가

우리는 지쳐 피곤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직장, 더 큰 집에서 더 큰 행복을 누리려는 이러한 생각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신 의도와는 정반대의 삶인 것입니다.


요사이 (10년 전에) 이민 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며칠 전에 케이블 TV에서 이민 상품을 광고했는데

몇 천 명이 순식간에 몰려서 사천 명이 몰렸다나요?


더 좋은 나라로 가보자. 교육의 질이 좋고 교육의 천국으로 가보자.

마음껏 잘 살고 행복할 수 있는 나라로 가보자.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등지고 해외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결론은 어떻게 났는지 아십니까?


역 이민, 작년에 돌아온 이민자만 수 천~ 수 만명,

가보니까 어디든 사람 사는 것 똑같지, 오히려 언어는 통하지 않고

자녀를 공부시켜 놓으니 부모와 완전히 대화가 끊어지고 갈 곳이 없어요.


어디로 가야할지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일 년 동안은 좋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점점 조여오고 불안하고

대화 하나할 곳 없고, 친척, 친구 하나 없고

밤에는 잠이 오지 않고, 외식 해봐야 맛이 없어서 집에서 김치만 먹는 사람도 있대요.


한 일 년까지는 괜찮은데,

그 다음부터는 한국 비디오, 영화, 연속극이 그렇게 좋대요.

한국TV 보고 싶고 한국 사람보고 싶고 한국음식, 한국과일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떠할 텐데 하면서 그리워하고

거기는 교육 천국도 아니고 삶의 천국도 아닙니다.


어디를 가서 헤매십니까?

언론에서 (언론의 사명상 어쩔 수 없이) 자꾸 우리나라가 나쁘다, 경제가 힘들다 하니까 그렇지

사실은 그런 게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너무 부정적인 면만 보지 마시고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그게 안 믿어지면, 해외에서 1년 이상만 살아보십시오.

인천 공항에 내릴 때, ‘감사합니다!’가 연발로 나올 것입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 사는 곳 별 곳이 없습니다.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말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서,

이 땅에서 자자손손 만대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면으로도 더 이상 방황하지 마세요.

예수바깥에는 다 그런 삶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삭개오도 지위도 높고 권력도 있고 세리장이었지만

세상이 주는 것은 참 기쁨이 없었습니다.


전자의 삶은 BC(Before Christ)의 삶입니다.

그러나 이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와 함께 동행하는 삶, 하루하루 그와 함께 하는 삶.

여기에 새 삶이요, 축복이요, 은혜의 삶, 자유의 삶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주님을 사모했습니다. 겸손해졌습니다.


여러분 겸손할 때 주님을 만납니다. 모든 은혜는 겸손한 자에게 찾아옵니다.

집에서도 겸손해야.. 대화가 열리고, 행복의 문이 열립니다.

교회에서도 겸손해야.. 천국 문이 열리고, 마음 문이 열립니다.


삭개오는, 돈 있고 권력 있으니까 늘 마음을 닫고 살았어요.

예수님 앞에 마음을 낮추면서 겸손하게 우리가 교만할 것 아무 것도 없는데

공연히 헛된 교만으로, 하나님을 떠나 살다가, 어리석은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거예요.


그는 회개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자기 가정에 찾아와 주셨습니다.


겸손하십시오. 언제나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 하십시오.’

언제나 여러분의 죄는 주님이 대신 져 주실 줄 믿습니다.


이런 기쁨을 영적 기쁨이라고 합니다. 이런 삶을 영적인 삶이라고 합니다.

이런 축복을 영적인 축복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분을 체험적으로 만나고,

우리의 심령에 송명희 시인과 같이 환한 빛이 우리를 주장하여

영적 기쁨과 자유와 행복과 능력을 누리는 성도들 가정 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힘은 영적인 힘에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자유도 영적인데 있습니다.

(영적인 힘이, 그 근본 바탕이란 뜻입니다.)


영적 건강이 모든 건강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바로 서 있는 임마누엘의 삶이, 모든 일이 형통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보십시오.

면적이 적고, 베들레헴 전경을 걸어 놓은 사진을 보면, 광야입니다.

너무 너무 비참한 광야가 베들레헴입니다.

나무 하나 없는 쓸쓸한 광야입니다.


그러한 것이 유대 땅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민족이고 영적으로 강한 민족입니다.

 

4천년을 믿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하게 살아가는 민족입니다.


우리나라에 보수교회가 있고, 보수신학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유대인은 4천년을 믿어도, 안식일 날에 차를 타지 않아요.

50리도 걸어가요. 자동차 안타요.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거예요.

우리나라 보수교회는 명함도 못 내밉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영적인 민족입니다.


물론 유대교는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있지만,

율법(계명)을 사랑하고, 철저히 지키는 그 정신과 전통은,

우리가 배울 만 합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건강해 보십시오. 다른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께 바로 선 사람은 도덕적으로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덕적으로 바로 섭니다. 가정도 바로 섭니다.

대인관계도 성실하게 해나갑니다. 물질관도 건강합니다.


사상도 건강하고 생각도 깨끗하고 건전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영적인 바른 삶을 살며, 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어울릴 수 없습니다.


자녀를 잘 기르는 일,

모든 사회의 질병을 치료하는 길,

인간의 불행을 치료하는 길,

모두 하나님 앞에 바로 서면 됩니다. 바로 서면 모두 돌아옵니다.


여러분 제가 시골 출신인데요,

여름에 학교나 산에 가보면 제일 몸서리나는 것이 송충이입니다.

송충이가 얼마나 큰지요, 큰 벌레는 사람 손가락보다 더 큽니다.


징그럽습니다. 산에 송충이가 가득 덮습니다.

그런데 10여 년 전부터 송충이가 다 사라졌어요. 끝났어요.


이유는 간단한 거예요. 산에 활엽수라든지 나무들이 우거져 가지고

낙엽이 많이 떨어져 가지구요 낙엽이 많이 쌓였어요. 천연 거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소나무들이 건강해졌어요.

영양분을 많이 섭취하니까 송충이가 다 없어진 거예요.

약할 때 병이 찾아오는 거예요.


우리가 어려서 학교 다녀보면 애들마다 눈에 다래끼가 있었고요.

눈이 벌겋게 튀어나오고, 몸에 (헌데가) 부스럼이 다 났어요.

아프기도 많이 해요. 애들이 온몸이 다 성한 곳이 없어요.


특별히 입술에 피가 많이 났어요. 입술이 다 찢어졌어요.

영양이 적어서, 영양이 충족이 되지 못해서 오는 병 이예요.


지금은 그런 애들 하나도 없어요. 왜, 잘 먹으니까.

나무도 그래요. 건강하면 병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솔잎혹파리나 예를 들어 다른 병이 있을 때도 어떻게 치료하느냐?

산림청에서 농약을 뿌리는 게 아니에요. 하늘에서 비료를 뿌리는 거예요.

건강하면 이겨낸다는 거예요.


또, 솔잎혹파리가 생기면, 산림청에서 나무에 링거를 꽂아 놓아요.

나무가 무슨 링거를 맞냐? 영양을 보충해 주는 것이 병을 이기는 길이예요.


여러분, 우리 인간도 영적으로 건강하면

도박은 끊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끊어져요.

영적 건강이 없어서, 죄의 유혹을 받는 거예요.


모든 타락은 영적으로 병들어서 오는 거예요.

여러분, 왜 자살해요? 영적으로 건강해 봐요.

죽고 싶은 마음은 다 떠나가고, 자꾸 더 살고 싶다니까요. 하나님께 헌신 더 하려고요!


밥맛도 더 나요. 더 잘 먹고요. 더 건강하게 잘 살고 싶고요.

왜요? 하나님께 더 영광 많이 돌리려고!


여러분 오늘 이 사회에 청소년으로부터 노인까지

수백 가지 정신적인 병을 치료하는 길이 뭐냐.

영적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 봐요.

하나님 앞에 바로 서 봐요.


젊은이나 노인이나 다, 우리 눈이 밝아지고, 우리 몸이 깨끗하여지고,

삶이 깨끗해지고, 헌 데가 없어지고, 새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 사는 길이요.

건강의 길이요. 회복하는 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떤 만남, 어떤 능력도,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까?

삭개오의 후반부 인생처럼,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삶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우선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경외합니다.

나의 창조자가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우주에 창조자가 계심을 믿고,

그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심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사업도 결혼도.. 믿음으로 합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입니다.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예배는 내 영혼의 빈그릇을 채우는 길입니다.

술 먹으면 걱정 근심 잊으려고 술 먹지만, 잊어집니까?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로, 믿음이 생기면서,

내 걱정 근심이 떠나가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때 우리는 모든 일에 바로 설줄 믿습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할렐루야!


자기를 위해 살아보십시오. 얼마나 피곤합니까?

교회도 내 만족을 위해 나와 보십시오. 일년도 믿음의 생활 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와 보십시오.

교회에 끝없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갈 줄 믿습니다.


어디든지 나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건 병입니다. 이것은 불행한, 암과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 이것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길도 됩니다.


미국에 제일 좋은 대학들에, 한국 사람이 많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반가운 일이지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고등학교 때까지 죽어라고 공부하는 거예요.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우리는 죽으라고 하는 거예요.

‘너 유명한 사람되어라, 너 성공해라, 너 의사 되라, 변호사 되라!’

그리고 공부시키니까, 어릴 때는 모르고 따라하는 거예요.


그리고 명문대학에 입학 하고부터는, 한국학생들은 다 쳐지는 거예요.

왜요? 공부를 자기를 위해 했으니까 피곤한 거예요.

자기를 위해 사니까, 마음이 해이해지는 거예요.

 


오늘 현대인들이 왜 의욕이 없느냐? 조금 하다가 왜 멈추느냐. 왜 발전 못하느냐?

자기를 위해서 사니까.. 만사가 피곤한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피곤해 합니다.


한국 학생들이 일류대학을 들어가기는 들어가는데,

그 다음에 세계를 향해 인물이 왜 못나오느냐? 세계적 인물이 하나 못 나와요.

자기를 위하니까. 어느 정도 되면.. 그 수준에서 끝나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그래야 지치지 않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줄 믿습니다.


삭개오처럼, 주님을 개인적,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면,

그 사람은, 남은 평생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게 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이웃을 위하여!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도, 먹지 못하는 분 생각하고,

잠을 잘 때도 잠자리가 없는 노숙자를 생각하고,

부부간에 여행을 갈 때도, 혼자 있는 분을 생각해야 됩니다.


늘 이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웃의 슬픈 이야기들을 늘 들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삭개오가 지금까지는 높은 사람에게 더 잘 보이려고 했지만은,

이제 삶은, 저 가난한 분들을 위해서, 내 재산의 반을 나누어주겠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주신 물질, 이 땅을 떠나기 전에 정리하고 가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모님이, 남편 목사님을 잃고 너무 절망이었는데,

밖에 나가 봉사를 하다보니까,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봉사하면서, 자기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남편 없고, 자식 없는 분은 또 괜찮아.

병까지 든 분이 너무 많아요.

이 세상에 가지가지 불행한 분들이 한없이 많이 있는

이 슬픔과 가슴 치는 우리 이웃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위하여 생명까지 버려주신 사랑을,

실천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존경하는 정창근 장로님이 계시는데, 이 분은 이비인후과 의사예요.

새벽 4시에 나환자촌에 가서, 새벽예배 드리고,

자기 교회에 와서 5시 예배를 30년을 드렸어요.


일년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런데 30년을 그렇게 하는 것은 어렵잖아요?

토요일은 종일, 자기 병원은 돌보지 않고, 나환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줘요.

30년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낮에 매일 150명, 170명씩 환자를 받는데요. 그래도 피곤하지 않데요.

그런데 자기 식구는 감기 한 번 걸린 일이 없다고 간증했어요.

행복하게 사시는 거예요.


작년에 중증 장애인들을 돌보는 기관을 인수해서

자기 집에 있는 재산 20억을 다 바쳐서, 그분들을 돌보는 거예요.


그런데 돈이 10억이 모자라는 거예요. 누가 도왔는지 아세요?

나환자촌에서 수십 명의 환자들이 왔어요.

‘장로님, 병원 운영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세요? 그리고 얼마 안 되지만

우리 집에 있는 것 다 모두 모았습니다. 10억을 내어놓으며, 보태서 쓰세요.’


이 분들은 손이 거의 다 없구요, 제대로된 얼굴이 없구요,

모두가 다 양계를 해가지구 그 지역 전체가 양계를 해요.

양계를 해서 살아가는데, ‘우리는 행복하구요,

우리보다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위해서 써 주십시오!’ 하셨답니다.


그리고 10억을 가져 왔더래요.

이건 보통 우리 건강한 사람이 번 돈하고 비교가 안 돼요.

몇 십 년 동안 양계하고 번 돈, 꼭꼭 저축해 두었던 돈을 가지고 온 거예요.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온 국민이, 불평불만이 꽉 차있는 이 때에

우리 모두 마음 문을 열고 하나님을 향하여

내 영혼의 문을 이웃을 향하여 사랑의 문을 열고,

우리 모두 사랑과 긍휼을 베풀면서 남은 생애를 찬송하며 살아가는

신나는 새로운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주의 전에 와서, 우리의 모든 부끄러운 죄를 회개하고,

불평불만 많은 이 땅을 떠나 모두 이민만 가면 되는 줄 알고,

이 나라를 벗어나려고 하는 이 때에, 우리 모두가 삭개오처럼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하는 소금과 빛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

'분류 없음 > 2002~200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146편, 헛된 소망, 참된 소망  (0) 2012.08.13
새겨들어야할 부자의 증언 세 마디  (0) 2012.08.12
하나님이 받으시는 감사  (0) 2012.08.10
인생의 동굴에서  (0) 2012.08.10
마지막 남은 불빛  (0) 2012.08.09